255화
나는 천장단애와 같은 절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선, 상당한 고수라는 점.”
무기는 아주 가느다란 철심이다. 긴 바늘이라고 보면 될까? 경추를 정확히 찔러 넣어 단숨에 사람을 죽였다. 부위 하나 손상시키지 않고 죽였으니, 해부할 시신을 만드는 데는 최적의 도구다.
“또, 상당한 해부학 지식과 실력이 있다는 점.”
일부러 의술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해부학이 의학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저런 걸’ 의술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그리고…… 성격이 아주 지랄 맞다는 점까지.”
중원 무림에는 고수가 많다. 의술의 대가도 적지 않다.
무림의술의 뿌리가 무림문파에서 나왔으니 이 둘의 교집합인 사람도 그리 적진 않을 거다.
그러나 이렇게, 썩을 대로 썩은 무당의도, 소림의 반야원에서 만났던 적폐 의원들도 이렇게 잔혹한 짓을 대수롭지 않게 하진 않는다.
그놈들은 적어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썩었다.
이건, 보통의 인간이 한 짓이 아니다.
“……마의(魔醫)예요.”
그때, 저쪽에서 주저하던 신생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시신을 해부할 때, 이런 방식이었어요. 몇 번이나 봐서 똑똑히 기억해요.”
마의라면 설마―
“사대신의 중 한 사람, 유일하게 사파의 의원이죠. 아니, 사파도 그자가 사파의 의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걸요?”
제갈다영이 표독스럽게 내뱉었다.
“실력은 좋지만 본인이 흥미를 가진 환자만 봐요. 특이한 병증이 있거나 타고난 신체가 기이하거나 뭔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있거나. 그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처방과 시술을 하고요! 거기에 기분이 수틀리면 이런 식으로 끔찍한 짓까지 벌이고! 정말, 정말―.”
말하다가 분이 차올랐는지 제갈다영이 말을 맺지 못하고 심호흡했다. 손에 꼽을 만한 후기지수는 아니지만 제갈다영도 나름 명문 제갈가의 무인인데, 저렇게까지 평정심을 잃고 흥분하다니.
“정말―, 정파의 무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런 자를 사대신의 중 한 명으로 올리다니. 후우.”
……뭔가 말하려다 삼킨 거 같은데.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반대로 말하면, 사파나 흑도도 꺼릴 정도의 존재를 사대신의 중 한 사람으로 부를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졌단 거겠지?”
솔직히 그렇잖아.
명의도 아니고 신의인데.
자존심 빼면 시체인 정파에서 이런 기행을 저지르는 존재를 마의라고 부르면서도 사대신의에 꼽으려면 대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지?
“……보시다시피, 저런 짓을 하고 다니니까요. 인체에 대한 이해는 그 누구보다 대단할 거예요. 거기에 마의는 절맥을 치료하는 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죠.”
“절맥? 구음절맥 같은?”
“제일 유명한 절맥이죠.”
절맥.
중원 무림에서 의술에 몸담은 사람치고 그 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의원이 아니라 무공이나 무림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말이지.
절맥은 기의 흐름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구음절맥은 음기가 극단적으로 강한 체질이다. 구음절맥을 앓는 이들은 대체로 여인이며, 대체로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스물이라는 것도 무공을 익혀 체내의 흐름을 가다듬을 때의 얘기.
일반 사가에서 구음절맥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수명이 열 살 전후라 봐도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리스크에 상응하는 절세미모와 뛰어난 오성이 뒤따라온다는 점일까?
무공을 익힐 때도 그 습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과거 구음절맥이지만, 그 음기를 검으로 풀어내 고수의 반열에 오르고 천수를 누리다 간 여고수에 대한 얘기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런데 그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라…….
“재밌군요.”
예전 내 증상은 절맥에 비유됐다. 많은 의원들이 나를 절맥으로 진단하고 단념하거나 치료하려 했지만, 그건 절맥과는 또 달랐다.
구음절맥을 예로 들어보자. 음 기운의 통로는 16차선 고속도로지만, 양 기운의 통로는 이중 주차된 골목이다. 자연 기의 편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양기가 제대로 통하지 못해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거다.
반대로 예전 내 증상은, 도로는 그럭저럭 깔려있는데, 지나다니는 차가 없는 거에 가깝다.
결과적으로는 전신에 기의 흐름이 약하니 의원들도 헷갈릴 수밖에.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가 비슷하다.
그런데 그 절맥을 치료했다고?
……어쩌면 거기서 괜찮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겠는데.
“리가 왜 그자에 대한 정보를 내게 감추라고 한 거지? 이유가 뭐야?”
“그건…….”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는지, 신생은 내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내가 떠난 직후 나를 찾아 태양의원을 방문했던 마의. 금리는 그자가 나를 쫓아와 해를 가할까 봐 일부러 이런저런 거짓말로 그를 붙들어놨다고 한다.
“그런 걸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하죠? 총관님은 그분에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렸어요. 태양의원 분원을 노리는 마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곳에 스승님이 가셨다고 한다든가, 어느 분원에 무당 무인들이 강짜를 부리고 있다는데, 거기 일을 처리한 후에나 오실 거 같다, 그런 식으로요. 제가 종종 바람잡이를 했고요.”
“……그리고 거기서 이런 걸 목격했다?”
“네…….”
금리의 방식은 나쁘지 않았다.
마의가 태양의원을 방문했고 나를 목적으로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붙잡아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만사 제쳐두고 돌아갔을 거다.
덕분에 크게 신경 안 쓰고 해야 할 일을 했지.
그 부분은 총관의 역할을 다한 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근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 신생, 이게 마의의 흔적이라고 확신하니?”
“네,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시신을 해부해놓은 방식뿐 아니라 주변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실력까지…… 그 사람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어요.”
“그렇단 말이지…….”
“제가 소림으로 출발하기 전엔 총관님의 계략으로 다른 곳에 가 있었어요.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하지만 총관님이 그 사람을 여기까지 보내진 않았을 텐데―.”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그렇다면 마의는 네가 출발한 이후, 태양의원을 떠났다?”
왜? 나에 대한 흥미가 식어서?
아니면, 금리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
“기미는 있었어요. 제가 멀리서 마의의 손속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끔 눈이 마주쳤거든요. 총관님의 생각을 알지만 지루하니까 속아주는 거 같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리에게는 얘기했고?”
“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스승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보낼 거라 하셔서 제가 간다고―.”
신생은 뭔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이를 보낼 거였으면 굳이 네게 말하지 않았겠지.”
금리는 일부러 신생을 내게 보냈다.
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객잔 외에도 여기저기 깔끔하게 해부당한 시신이 널려 있었다.
태양의원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마의가 금리의 속셈을 눈치챘으니, 보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해 신생을 내게 보낸 거라면?
“가자.”
“네?”
“가자고. 본원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든 하오문이나 개방을 통해 내게 소식이 들어왔을 거라는 걸.
하지만 또 모르지.
두 객잔마저 화를 입어서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 수도 있다.
의생들이 급하게 수습한 시신은 청수채 수적을 몇 남겨 처리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수채에 들러 이곳에 사람을 보내라고 할 것이다.
빠르게 물자만 챙겨 다시 배를 띄우자 잠자코 배 위에 남아 있던 창천, 그리고 현건이 다가왔다.
“그냥 가는 건가.”
“의생들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금 의원. 마두를 쫓지 않고 바로 출발하는 겁니까?”
현건은 자연스럽게 일행에 합류한 상태였다. 달리 갈 곳도 없어 보이고 내게도 녀석과 함께할 때 이득이 많았기에, 금태양이 오면 그쪽을 따라가라고, 그러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일러놨더니 바로 뒤를 따랐다.
항주의 일을 도모할 땐 자신은 끼어들지 않는 게 좋겠다며 물러나 있었지만, 표행에서는 자신이 활약할 일이 있을 거라며 수시로 수적들과 함께 뱃전을 지키는 등 성실히 움직였다.
창천이 합류할 줄 알았다면 굳이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겠지만, 어쨌든 내 편인 고수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상황이 그렇게 됐어. 본원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 가봐야 해.”
“그 문제라면, 굳이 배가 빨리 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나뉘어 움직이는 건 어떨지요.”
“……!”
마음이 급해서 그 생각을 미처 못 했군.
현건의 뱃삯은 방금 그 조언으로 받은 걸로 쳐줘야지.
“……그러면 이렇게 해보죠. 현건 소협?”
“예, 금 의원.”
“지금 이곳을 습격하고 사라진 자는, 내 제자의 말에 의하면 사대신의 중 마의라고 합니다.”
“그자가…….”
“압니까?”
“어느 정도는.”
하긴, 무당의 제자니 사대신의에 대해 모를 수가 없겠군. 잘됐다.
“그자를 쫓아주세요. 어디로 향했는지, 다시 이곳 회수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그자를 추적하는 데 성공해도, 위험한 행동을 하는 대신, 제가 요구한 걸 우선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합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번 표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아는 현건이다. 내 방식에 심정적으로 크게 동조했으니, 자신의 정의감을 조금 접어두더라도 내 지시에 따라줄 거다.
“창천, 너는 배를 지켜. 나는 신생과 먼저 내려서 뛰어간다.”
“어째서지. 내가 가는 편이 훨씬 빠르―.”
“지만 엉뚱한 데로 가겠지. 빠르게 돌아가는 것보단, 너보다 조금 느려도 제대로 가는 게 나아. 애초에 네 녀석이 제대로 본원에 도착했으면 지금처럼 걱정되진 않을걸? 그리고 나도 이제 그렇게 느리지 않다고.”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 이제는 창천과 비등하거나 더 빠를지도 모른다.
녀석에게 김진의 정체를 들키고 싶진 않으니 당분간은 그런 기미를 보여주지 않을 거지만.
……녀석, 김진에게 경쟁 의식이 있는 거 같더라고.
소림의 대리인 자리를 뺏긴 거 같아서 기분이 나쁜가?
“하지만, 나는―.”
“네 녀석 마음은 알아. 리를 걱정하는 마음은 나도 너에 비해 부족하진 않을걸? 걘 일단 내 조카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지독한 길치 성향을 이번에 뼈저리게 자각했는지, 창천은 오래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눈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청수채 녀석들, 내가 없다고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했다간 창천에게 호되게 당하겠는걸.
내 입장에선 오히려 안심이다.
이어 부채주와 의생들을 모아, 내가 먼저 본원으로 가겠다는 얘기를 전달하고 간단한 짐을 챙겼다.
“신생, 가자!”
“네, 스승님!”
그리고 우리는 회수의 높은 절벽을 뛰어올랐다. 배 쪽에서 어떤 감탄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것에 새삼 어깨를 들썩일 여유는 없었다.
제발 모두 무사하기를, 별일 없기를.
나는 그 마음을 담아 본원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