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사실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낌새가 좀 수상쩍기는 했다.
이 임시 정박지는 하중도(河中島)로, 큰 강 가운데 퇴적물이 쌓여 생긴 작은 섬이다.
전생으로 치자면 한강의 여의도나 밤섬 정도?
이 일대는 강 옆이 전부 높다란 절벽으로 이어지는 지형이었다. 배를 잠시 정박하고 식량이나 물을 조달할 곳이 여의치 않아서, 이곳에 있는 객잔에 들러 보급과 휴식을 하고 지나가는 게 으레 통례라고 한다.
말만 들으면 수적이 위치하기 딱 좋은 자린데 그렇다고 수채 규모가 되기엔 섬이 작거든.
듣자 하니 수적질을 오래 하다가 나이가 든 이들이 머물며 객잔 같은 걸 운영한다나. 회수 일대 수적들이 각 수채에서 모이니 일종의 중립지역 같은 곳이 되는 거지.
그 객잔이 바로 저기 있다.
“똑같습니다!”
먼저 배에서 내렸던 부채주가 다시 배 위로 올라와 내게 다가왔다.
“객잔 또한 똑같은 상황인데요. 의원님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목소리 낮춰라. 뭐 좋은 일이라고.
내 예상, 그건 한 가지 불길한 예감이었다.
밥 때가 됐는데 객잔에서 불 때는 연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수적들에게 피해를 입을 일이 없으니 사람이 없는 척하지 않아도 되고, 좀 이르긴 하지만 객잔 같은 곳은 미리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까 연기가 올라오는 게 정상이다.
뭣보다, 연락선을 보내 식사와 물자를 준비해달라고 했다고.
“먼저 보냈던 사람은요?”
“아, 그건―.”
부채주가 미간을 좁혔다.
“똑같습니다. 다 저 노인네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체된 상탭니다. 어디서 인간 백정이라도 들이닥쳤나…….”
인간 백정.
보통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는 마두를 가리킬 때 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좀 다르다.
백정이 짐승을 해체해 부위별로 고깃덩이를 만드는 것처럼 사람을 해체해놨다는 거다.
“물자는요?”
“대충만 봤지만 그건 있는 거 같더라고요. 값나가는 것만 가져갔을지도?”
“여인들의 피해는, 아니다, 내가 직접 가서 보죠.”
나는 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부채주가 허둥지둥 나를 뒤따랐다.
회수 일대에 나타난 미지의 위협이라니.
이번 표행이 안전하게 성공하고 이어서 계속되려면 회수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청룡채를 궤멸시키고 청수채를 회수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래서 무림이란 곳은!
“저도 같이 갈게요.”
내 뒤를 이어 제갈다영이 뛰어내렸다. 은영이라는 이름의 하오문도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는지(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도 이제 별 의미 없지만) 높은 뱃머리에서 뛰어내려 착지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위에서 의생들이 “은영이 쟤, 언제 저렇게 무공이 늘었어?” “아닌 척하더니, 쟤도 금 의원님에게 관심이 없진 않은가 보지?” 하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의생 흉내는 그만 내기로 한 건가요?”
“빨리 가죠. 여인들이 강제로 범해진 흔적을 확인하는 건, 금 의원님에겐 좀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제가 대신 해드릴게요.”
그러나 제갈다영은 내 물음에 답도 안 하고 먼저 성큼성큼 객잔 쪽으로 향했다. 말을 건 내가 오히려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그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보통 그에 이어지는 반응이 저런가? 좀 놀라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라고 발뺌이라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물론 제갈다영에게 보통의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다. 아니, 내가 알던 제갈다영이라면 오히려 뻔뻔하게 나올 거라 예상했다.
‘어머나, 알고 그냥 내버려 두신 거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죠? 어떤 이유일지 엄청 궁금해지는데요?’
하며 눈을 빛냈겠지.
그러나 객잔 문을 여는 제갈다영의 뒷모습은 전날의 그 같지가 않았다. 기이한 사태에 호기심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서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도대체가, 수치스러워서……!”
문을 열고 들어간 제갈다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났나?
화가 날 만한 광경이긴 하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지독한 피 냄새만 봐도 그랬다.
“부채주, 의생들만 데려오고 나머지는 배에서 대기하라고 하세요.”
“예? 그치만―.”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해!”
내공을 담아 소리치자 부채주가 잠깐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예, 옙!” 하고는 허둥지둥 배로 돌아갔다.
객잔 안에는 아까 배 위로 실어왔던 그것과 똑같은 상태의 시신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놓여 있었다.
나이 들어 은퇴한 수적들이 살고 있다 했으니 노인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가족을 꾸렸다.
중장년의 남자도 있었고, 여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
이것을 불행이라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두가 공평하게 분해된 상태였다.
그래, 분해.
해부가 아니라 분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 따위를 부품별로 나누어놓은 것 같다.
그 감각이 단순한 살육 장면보다 더한 공포를 불렀다.
“……금 의원님이 걱정하셨던 일은 없네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갈다영이 여인이었던 이들의 조각난 부위를 뒤적거려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에 서려 있는 분노는 선명했다.
“금 의원님, 저희 부르셨―.”
부채주가 의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의생들은 객잔 안에 벌어진 참사에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아까처럼 기겁하진 않았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시신 수습하세요.”
“수습을, 요?”
“태우든 묻든, 수장을 하든, 적어도 제 것끼리 모아줘야 할 거 아닙니까.”
의생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나는 욕지기를 참으며 부연 설명했다.
“나이와 성별이 같은 시신들, 신체 부위가 섞여 있습니다. 맞춰보며 제자리를 찾아주세요.”
한 자리에 한 구의 시신만 해부해놓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제 것이 아니다. 팔과 팔의 길이가 맞지 않고 덩치에 비해 보란 듯이 놓여 있는 장기의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다. 해부를 한 녀석이 제멋대로 섞어놓은 것이다.
누군가 이걸 발견한다면, 퍼즐 맞추기처럼 시신을 맞춰보라는 듯이.
“……완벽하게 맞추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눈앞의 망자에게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신을 수습하면서 여러분의 감각에 인체의 모든 것이 새겨질 테니까.”
사실, 내게는 좋은 일이다.
이렇게 많은 시신을, 그것도 아직 사후경직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 작은 근육 하나까지 해부된 걸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무니까.
“우욱…….”
“토할 거면 그냥 토해. 어차피 피범벅에 장 내용물까지 범벅인데 너 하나 토한다고 별로 달라지도 않을걸.”
“언니, 그 말 때문에 속이 더 안 좋으려고 해요. 우욱.”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곳 중원무림에서 십 년을 의원 생활을 해도 쉽게 겪지 못할 상황이다.
이후 그들의 습득력은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의생들이 들어와 시신을 살피는 동안 먼저 주변을 돌아보러 갔던 제갈다영이 다시 객잔 문을 열고 들아 왔다. 표정이 어두웠다.
“흔적은?”
제갈다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찾아보지.”
“아뇨. 소용없을 거예요. 우리 집안의 추적술은 보통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스승님!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배에 남아 있었던 신생마저 내려왔다.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의원 생활도 한 만큼 다른 의생들처럼 화들짝 놀라거나 구역질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어? 이건 설마?”
오히려 신생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가 있어?”
“아뇨, 그건 아닌데…….”
신생은 잠시 망설였다. 의생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듣기는 애매한 얘기인가?
나는 그들에게 하던 일을 마저 하라며 손을 내젓고는 신생을 데리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무슨 얘긴데 그래? 전음으로 말해도 되긴 할 텐데.”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스승님께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서…….”
“나한테 비밀로? 누가?”
사실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신생이 착하고 순하긴 하지만 아무의 말이나 듣는 건 아니다.
하물며 나한테 비밀로 해야 할 만한 얘기?
서프라이즈 파티가 아닌 이상 내가 모르는 게 나은 얘기라는 거잖아.
종합해보면 누군지 답은 나왔지.
“리가 비밀로 하라고 했어?”
“제, 제가 말한 건 아닌 거예요!?”
대답을 망설이던 신생은 내가 답을 맞추자 그대로 튀어오를 듯 화들짝 놀랐다.
역시 리였군.
큰 형님의 외동딸이자 내 조카이고, 과거 무한에서 만났을 때는 대립했지만 지금은 태양의원의 든든한 총관을 맡아주고 있는 금리.
내가 태양의원을 떠나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데는 리의 든든한 보조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주에 오기 전까지는 꾸준히 보고를 받았고, 그 보고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던데.
나한테 비밀로 할 만한 일이 있다고?
그것도 지금 이 눈앞의 참상과 관련된?
“어디 한번 말해봐. 무슨 일인데?”
“하지만, 총관님이 스승님이 알면 걱정할 거라고, 혹시라도 물어보면 대충 둘러대라고 했는데…….”
누가 비밀로 하라고 했는지도 맞췄는데, 여전히 비밀이라고?
찝찝했다.
나를 위해서 비밀로 하는 거,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 비밀과 관련된 위협이 나타났는데, 여전히 비밀이라고?
“신생.”
“네, 네! 스승님!”
“너는 현명한 아이니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줄게.”
“생각할 시간……?”
“어느 쪽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한 번 더 생각을 해봐 주렴. 잠깐 돌아보고 올 테니.”
신생은 벙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대로 발을 떼고 주변을 훑었다.
괜찮다. 이 정도 여유는 있다.
홍령이라면 그렇게 말해줬을 거다.
여태까지 신생은 나이답지 않게 잘해 왔다. 한 번쯤 실수할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어차피 당장 그 비밀을 알게 된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을 거 같고-
그동안 나는 제갈다영이 한 번 훑었던 주변을 다시 살폈다.
시신은 이제 막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날씨를 감안해도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흉수는 흔적 하나 없다.
제갈다영이 호언장담했지만, 그래도 은 파파에게 잠깐이나마 배운 추적술로 뭔가 다른 힌트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신생에게 생각할 시간도 줄 겸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수확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 텐데.”
궤도에 오르긴커녕 이제야 삽을 뜬 사업에 물을 끼얹는 격이다.
적어도 그 정체는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대처를 하지.
하지만 실마리 하나 찾지 못하고 나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섬은 작고 일대는 높다란 절벽이라 흔적이 남을 만한 곳도 애초에 몇 없었다.
“뭐가 좀 있던가요?”
“아니, 소저 말대로 없더군요.”
“내가 그랬잖아요. 제갈세가의 기술은 무공만큼 뛰어나다고요.”
제갈다영이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