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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53화 (253/350)

253화

다른 재밌는 일이나 사정이 생겨 떠났을 거라는 금태양의 추측은 빗나갔다.

제갈다영은 대담하게 다른 사람으로 분장해서 금태양이 이끄는 표행에 합류했다.

그것도 금태양이 직접 지도하는 하오문 의생이 되어서 말이다.

‘들키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는 편이 낫겠지만, 내 목표는 그게 아니니까!’

제갈다영의 목표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금태양과 김진의 관계에 대해 알아낸다.

금태양에 관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도 이미 충분히 조사했다. 제갈세가의 기준에서 충분히다. 가볍게 겉핥기만 한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금 의원의 정보에 김진 소협과 관련된 얘기는 없었어.’

정황을 따져보면 김진 소협이 소림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 소림이 산불을 진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 나아가 소림의 대리인으로 화산지회에 나가기로 한 것까지. 전부 금태양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사이라는 거다. 무슨 이유에선지 약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진고수가, 세상에 얼굴과 이름을 드러낼 만큼.

제갈다영은 김진이 일인전승 비밀문파의 제자라 여겼다. 무림에는 그런 문파들이 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보단 대를 이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목표인 문파들.

‘그런 문파의 무공은 유독 고강하다는 특징이 있지. 그러니까 함부로 나서지 않는 거야. 그 힘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미칠 파급력을 알아서.’

그런 사상을 갖고 있는 문파의 전승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할 만한 부탁이다.

자연 두 사람은 엄청난 관계일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제갈세가의 정보망에 두 사람의 관계는 실오라기 하나 걸리지 않았다.

제갈세가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함과 동시에, 도전정신이 불타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아니지, 혹시 금왕이 금 의원을 염려해서 어릴 때부터 붙여준 또래의 그림자일지도.’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그래서 제갈다영은 분장을 한 후 금태양의 옆에 찰싹 달라붙기로 했다.

정보는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기록으로 남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내용이 있다.

제갈다영은 자신이 그 부분을 놓친 거라 여겼다.

곁에 붙어 있다 보면, 분명 그 부분을 손에 잡을 수 있으리라.

둘째로는, 금태양의 의술을 직접 배우는 것이다.

제갈세가도 본인들의 체질을 극복하기 위해 선조 제갈량의 대부터 의술을 익히고 발전시켜 왔으니, 제갈다영도 대단하다 할 수는 없지만 기본은 다 배웠다.

그럼에도 금태양의 의술은, 어딘가 사람의 눈을 끄는 면이 있었다.

분명 기본은 같은데 그 사람의 눈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거 같달까?

단순히 기술과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다.

소림에서 반야원을 도울 때도 느꼈고, 이곳 항주에서 임시 구호소를 운영하는 걸 지켜볼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제갈다영이 느낀 것은 금태양의 현대인으로서의 감각이었다.

전생에 의료직종에 종사하진 않았지만, 금태양은 현대에는 당연한 상식을 체화하고 있다.

몸이 병에 걸릴 때 그것이 단순히 나쁜 기운이 들어와서가 아니라 원인이 되는 병균, 바이러스가 원인임을 안다.

피를 함부로 수혈할 수 없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른 혈액형 때문임을 안다.

이 시대 많은 질병이 청결과 위생, 영양을 해결하기만 해도 치유된다는 사실을 안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라도 원인을 알든, 자연스럽게 체득을 했든, 이를 현장에 적용할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결과로 나온다.

제갈다영은 그 당연한 확신, 태양의원 사람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금태양의 식견. 그 원류가 궁금했다.

금태양과 김진의 관계만큼이나 비밀에 싸여 있는 금태양의 의술 스승에 대해서도.

무공 또한 제법 실력이 있는 금태양이다. 대체 그의 스승이 어떤 사람일지는 김진의 문파가 어느 것일지 궁금해하는 것만큼이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호기심 충족, 짜릿함 맛보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제갈다영은 자신에게 온 촉을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위험할 것이다, 어쩌면 끔찍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태양을 따라가면 그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았다.

사실 처음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해도 상관 없다.

그 두 개를 이루지 못했는데도 끝내주게 재밌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거보다 더 짜릿할 수도 없을 거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이 쭉쭉 나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는 거다. 그런 반전만큼 사람을 짜릿하게 하는 건 없다.

물론, 제갈다영의 앞에는 그런 짜릿한 전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것이 정말 제갈다영의 생각처럼 즐거운 짜릿함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다들 잘하고 있어요?”

그렇게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금태양이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의생 교육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금태양은 사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이 좁은 배 안에서도 의생 교육시간 외에 의생들과 함께하는 일이 드물었다.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금태양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려던 제갈다영에겐 아쉬운 일이었지만, 괜히 조급해해봤자 원하는 걸 제대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주어진 의생의 역할에 충실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금태양이 예정된 시간 외에 그들을 찾은 것이다.

“하오문 의생분들께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은영 의생님이 너무 엄합니다! 천자문 정도는 반나절이면 외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자꾸 타박을 합니다!”

수적 의생들이 장난기를 담아 금태양에게 성토했다. 그 때문에 금태양이 시선을 돌려 제갈다영과 눈을 마주쳤다.

별말은 없었다.

금태양은 적당히 하라는 장난기 어린 타박도, 문자 교육에 성실히 임해줘서 고맙다는 등의 칭찬도 없이 제갈다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별말 없이, 조금 어색할 정도로 두 눈을 뚫어져라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리곤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오늘 의술 교육은 끝났지만 추가로 볼 게 생겨서 왔습니다. 다들 나와 보시죠.”

지금처럼, 이렇게.

금태양이 먼저 선실을 나섰고 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히 수적 의생들은 문자 교육에 지치던 차였는지 옳다구나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하오문 의생들은 느긋하게 일어났다.

“배가 멈춘 거 같더라니. 무슨 일 있나?”

“밖이 소란스럽긴 하더라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하오문의 문도로서 기본 소양 정도로 무공을 익혔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밖에 뭔가 일이 있다 정도로 알아차렸지만, 제갈다영은 좀 더 많은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리가 들렸었지?’

아침에 수적들의 말을 엿듣기론, 오늘 임시 정박지에 들러 음식과 물을 보급할 예정이라 했다. 다른 하오문도들의 말처럼 좀 전에 배가 정박했다. 그리고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의생들을 부른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은영이 너, 한창 기루에서 일할 땐 부잣집 남자 물어서 일 관두고 첩으로라도 들어가는 게 꿈이라더니. 정작 꿈을 포기하고 나니까 기회가 오는구나?”

“무슨 얘기예요?”

“눈치 못 챘니? 금 의원님이 걸핏하면 은영이를 빤히 보잖아. 의술에 재능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진 않다더니만. 거봐, 의생이 되니까 이런 기회도 오잖아?”

“언니도 참, 주책은.”

“주책이라니? 잘 봐봐. 금 의원님 시선이 은영이를 졸졸 따라다닌다니까? 너네 금 의원님이 무한 금가장 막내인 거 몰라?”

“그거야 유명한 얘기죠. 근데 빈털터리로 독립했잖아요.”

“얘 좀 봐. 태양의원으로 성공한 게 언제적 얘기인데. 너 하오문 문도면서 정보를 아주 허투루 보는구나? 게다가 이번 항주 일이 성공하면, 금 의원님, 모르긴 몰라도 엄청나게 돈방석에 앉을걸?”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 얘긴 그만하고, 어서 나가요. 금 의원님 기다리시겠어요.”

이성으로서의 관심? 제갈다영이 생각하기엔 아니었다. 관심이 있다면 다른 의생들에 비해 탁월한 의술 실력이나, 자신의 정체 정도―

“히익, 이게 뭐야?”

먼저 뱃머리로 나간 수적 의생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무슨 일이기에 저러지?”

하오문 의생 무리도 서둘러 그 뒤로 종종 쫓아갔다. 그리고 그들 또한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히익, 저게 뭐야?”

“생각보다 징그러워…….”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시체였다.

그냥 시체라면 그들이 그리 놀랄 이유가 없다.

수적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오문 또한 뒷골목 장사다. 죽어 나자빠진 시체 한두 구 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잔인하게 난도질당했거나, 목을 맸거나, 수적들의 경우 물에 퉁퉁 불어버린 시신도 많이 봤다.

그러나 이렇게 섬세하게 해부된 시신을 보는 것은 그들도 처음이었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은 건 그들 중 제갈다영이 유일했다.

“낯설겠지만 꼼꼼히 봐두세요. 이 정도로 해부가 잘된 시신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금태양이 썩 좋지 않은 낯으로 말하며 제갈다영을 보았다.

“은영 의생님이 하나하나 설명 좀 해주세요.”

“……제가요?”

“할 수 있으시잖아요?”

금태양이 제갈다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깔끔하게 해부된 시신을 보며 표정을 굳히던 하오문 의생들이 그 모습에 피식피식 웃으며 제갈다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제갈다영은 알았다.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던 거지?!’

* * *

언제부터 눈치챘느냐 한다면, 맨 처음부터겠지.

금태양은 동공이 떨리는 제갈다영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맨 처음부터 눈치챘던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진 것도 아니고.

홍령이 있었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알려줬을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 내 곁엔 홍령이 없고, 믿을 건 내 눈치뿐.

창천 녀석이 고장 난 로봇처럼 구는 게 수상쩍어서 닦달을 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가지 ‘일’을 하는 대가로 모든 빚을 변제받았더라고.

그리고 그 일이라는 건, 제갈다영이 이 무리에 숨어들 수 있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거고.

제갈다영이 누구로 분해서 숨어들었는지는 창천도 몰랐지만, 누군가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추리해보자면 가장 수상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어, 어, 그러니까…… 여기 보이는 게 우리가 배웠던 심부예요. 의학적으론 그렇고, 기의 측면에선 이 부근에 중단전이 생긴다고 하죠.”

제갈다영은 당황하다가 이내 내가 시킨 대로 해부된 시신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할 텐데, 지금은 다른 일 때문에 거기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이건 벗겨낸 피부고, 지금 지방과 근육을 결대로 다 분리해놨는데―, 금 의원님, 이거 금 의원님이 해부하신 건가요?”

“아뇨.”

그게 문제지.

내가 잘 해부된 시신을 두고 의생들에게 가르치지도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이걸 해부한 건 내가 아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부된 시신이 보란 듯이 놓여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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