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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48화 (248/350)

248화

“끌끌, 다 늙은 노인네에게 산만한 놈들을 맡겨놓고 이제야 오십니까?”

객잔에 들어가자마자 은 파파가 혀를 차며 나를 반겼다. 말은 그래도 진짜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노파가 공손하거나 고분고분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

“수적들은?”

“객잔 주인이 바닥에 피 묻는다고 질겁해서 죄 밖에 내놓았습디다. 밖에 곡소리 안 들리십니까?”

확실히 객잔 밖에서 끙끙 앓는 소리들이 여기까지 들렸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문을 나섰다.

“진짜 곡소리 날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아무렴요. 적당히 잘 패놨으니 그런 걱정은 하덜 마시지요. 하이고, 걱정을 하실 거면 이 늙은이 걱정이나 좀 해주시고요. 몸 하나로 두 곳을 건사하라니, 죽다 살아난 노인네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으신 게 아닙니까?”

은 파파가 수적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투덜거렸다. 이번엔 진짜 감정이 좀 실려 있었다.

하오문주와 수뇌부가 한 순간에 날아간 하오문을 다시 책임지게 된 태상문주. 거기에 나는 은 파파에게 당분간 수적들의 관리도 부탁했다.

“도련님 주변에 마땅한 사람이 없는 거야 쇤네도 알긴 합니다. 수적 놈들이니 정파 나부랭이들보단 이쪽에서 목줄을 잡고 있는 것이 낫겠지요. 그 탓에 그런 일을 꾸미신 걸 테고요.”

항주로 신나게 쳐들어갔던 수적들은, 은 파파와 십이월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다.

일부러 얼굴을 감추지 말고 패라 지시했으니 수적들은 그 얼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노, 노 선생께서 오셨다!”

“빨리들 일어나!”

“히, 히익!”

“홀홀, 기강이 아주 잘 잡혔고만.”

은 파파가 실실 웃으며 너덜너덜한 수적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도련님께선 다른 일을 보느라 바쁘시다. 때문에, 당분간 니들 일은 내가 관장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예, 예!”

“일의 진행에 있어 내 수하들을 보낼 것이니 잘 협조하고, 간간이 들러 상황을 살필게다. 무슨 일이 있다면 즉각 항주의 하오문 본타로 연락을 취하고.”

부채주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그 옆에 서 있는 여우같은 생김새의 수적, 청수채 참모로 알고 있는 자는 그 말에 바쁘게 눈알을 굴렸다. 그 모습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해서 나는 피식 웃었다.

“헌데 저분은 누구……?”

그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여우가 내 쪽을 보며 은 파파에게 물었다. 은 파파가 데려온 사람이라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저분 같은 경칭을 썼다. 그러면서도 계속 눈이 내 위아래를 스캔하고 있는 걸 보니…….

신분을 위장하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도련님의 절친한 친우로, 유명한 명의시다. 네 녀석들을 봐달라고 부탁해 먼 길을 오셨다.”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들어본 자들이 좀 있는지 몇몇이 눈을 황소처럼 크게 뜨며 쑥덕거렸다.

“잘린 팔도 붙인다는 그 금태양?”

“야, 잘린 팔은 우리 두목도 붙이잖아.”

“그러니까 둘이 친구겠지! 게다가 두목은 무인이잖아, 아무렴 팔 붙일 줄 아는 무인보다는 전문 의원이 의술에 더 뛰어나지 않겠어?”

“맞아, 금태양이 팔을 붙여줬으면 부두목도 좌수검만큼 고수가 됐을지도 몰라. 아깝다!”

전후가 완전 뒤바뀐 얘기들을 하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몇몇이 나를 알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크게 자기소개를 할 것 없이 내 할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상태가 위중한 사람들 먼저 살필 테니 손을 드세요.”

내 말에 몇몇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중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참모도 있었다.

“이분 먼저 봅시다. 앉으세요.”

나는 정자의 의자에 걸터앉아 참모를 건너편에 앉히고 맥을 짚었다.

“상태가 썩 좋지 않네요?”

“예, 좀 많이 얻어맞아서…… 내상이 심한 거 같습니다.”

참모가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 겉보기로는 크게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맥을 짚은 바로도 그랬다. 정말 얌체 같은 자로군.

“그러게요. 내부가 다 분탕이 났는걸. 김진 그 녀석이 혼을 냈습니까?”

“하하, 그렇다 보단―.”

“진이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닌데,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걸 참 싫어해요. 예를 들면 겉으로는 알겠다, 하고 뒤에서 딴 짓 하는 거라든가.”

나는 무심하게 맥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내 말에 찔리는 게 있는지 참모가 내 눈을 피했다. 하긴, 내 계략에 속아서 된통 얻어맞긴 했지만 김진의 친구라고 소개한 내 앞에서 그 욕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진이 녀석, 사람이 괜찮아요. 하라는 대로, 뒤로 너무 지저분한 짓만 안 하면 잘해 줄 겁니다. 흐음, 아무래도 침을 좀 놔야겠군요.”

나는 침구를 꺼내 늘어놓았다. 내 첫 시술에 관심을 가진 수적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침구 중 가장 큰 장침을 꺼냈다.

“……의, 의원님. 그건?”

“상태가 많이 위중합니다. 지금 내상을 입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척수에 문제가 있어요.”

“예? 척수예요?!”

“탁기가 든 거 같은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위험합니다. 당장 침을 놔서 해소를 해야 해요.”

“그 침을 어디에……?”

나는 침 끝으로 참모의 정수리를 가볍게 톡톡 쳤다. 그러자 참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기, 저 괜찮은 거 같습니다! 저기 더 안 좋은 사람도 있고, 저 친구는 아까 피를 토했는데요! 저기 다리가 부러져서 절뚝거리는 녀석도 있고!”

이제와 발 빼기는.

하지만 딱 걸렸다.

참모라는 놈이 더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자기가 제일 아프다고 얌체같이 손을 들어?

‘김진’으로서 기강을 잡아도, 은 파파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도 얌체 본성을 죽이지 못한다면.

이번엔 ‘금태양’으로서 딴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주지.

“가만있으시죠.”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가기 전에 사지에 점혈을 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녀석의 품에 손을 쑥 넣어 뒤적거리다 무언가를 잡아 꺼냈다. 약 봉지.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약은 제가 처방한 것만 드시고요. 많이도 드시네요. 이렇게 섞어서 먹으면 오히려 효과가 중첩되거나 반작용으로 몸에 더 나쁠 수 있어요.”

나는 내용물을 간단히 확인하고 약 봉지를 품에 챙겨 넣었다. 사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이건 녀석이 항주성으로 쳐들어갔을 때, 중독자들이 떨어트린 걸 몰래 챙긴 거니까.

그러니까 보편적인 약이 아니라 마약이라는 말이다.

청수채의 참모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모로 알아봤다.

부채주는 원래 있던 채주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머리 좋은 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자가 채주에게 마약 도화를 소개시킨 장본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도 떨어지는 떡고물을 좀 주워 먹었다고 하니, 평소에 챙긴 게 있을 줄 알았지.

“그러면 침 시술 들어갑니다. 긴장 푸세요.”

그럼에도 녀석을 살려놓은 이유는, 조직이라는 게 우직하고 충성심 강한 사람으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대침이 정수리의 말랑한 부분으로 쑤욱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침이라고 해서 단숨에 푹 누르는 게 아니다. 가장 예민하고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혈을 찌르는 것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

애초에 아혈까지 제압한지라 참모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정수리에서 척수까지 침이 박히는 느낌은 생생할 거다.

―꿀꺽.

지켜보고 있는 수적들도 숨소리 하나 못 내고 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침이 내가 원하는 혈에 가 닿았을 때, 참모의 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어어, 저거 봐. 눈에서 뭐가 나와.”

“쉿, 조용히 해.”

“아니 하지만 신기하잖아. 눈에서 녹색 눈물이 나오다니. 어? 코랑 귀에서도 흘러내리는데?”

“평소에 참모가 하던 약이 녹색이었잖아. 진짜 몸에 독으로 쌓여 있었나 봐.”

“어쩐지 요새 밤에 영 시원찮다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만.”

몇몇 수적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쑥덕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대침을 뽑았다. 그리고는 평소 그들이 익숙하게 봐 왔을 침을 다시 몇 군데 놓았다.

“좀 더 그러고 있으세요. 갑자기 독소를 배출해서 몸이 많이 놀랐을 테니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태양의원 본원에 와서 치료를 받으시고요. 적잖은 시간 독에 노출되어서 장기가 많이 상했습니다. 제대로 관리 받지 않으면 가장 부실한 곳부터 제 기능을 못하게 될 겁니다.”

“―!”

제압한 아혈을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참모가 눈동자를 빠르게 위아래로 굴렸다.

역시 굿캅 배드캅 만한 게 없다니까.

단순히 좋은 일만 해준 게 아니긴 하지만. 대침이 정수리에 박히는 느낌은 꽤 살벌했을 거다. 사람이 그냥 단순히 얻어맞아서 통증이 생기는 거랑, 무력한 상태에서 척수 같은 가장 내밀한 곳을 침범당하는 느낌은 또 다른 거거든.

거기에 제가 복용한 마약들이 몸에 남아 있다가 배출되는 것을 눈으로 봤으니―

“자, 다음! 위급 환자!”

“의원님, 이 친구가 많이 안 좋습니다!”

“여기도요! 아까 기절해서 여태 깨어나질 않습니다!”

참모를 손본 효과는 확실했다.

그냥 참모를 치료해준 게 아니다. 딱히 위급하지 않은 참모가 자신의 위계만 믿고 나선 것을 점혈로 제압하고 강제로 침을 놨다.

그 자체로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진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각인됐는지 자신보다는 진짜 위급한 환자를 봐달라며 손을 들었다.

그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 세 사람, 그쪽에 머리 두건 쓴 사람, 저기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 다섯은 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내가 호명한 수적들은 영문을 모른 채 다가왔다. 다들 부상이 심하지 않아 거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세 사람은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두건 쓴 사람은 객잔에 가서 깨끗한 천을 최대한 많이 달라고 하고, 머리카락 없는 당신은 객잔의 독주를 전부 달라고 하세요.”

그들은 내 지시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이해가 빨랐고 행동에 굼뜸이 없었다. 준비 과정도 척척, 한 마디를 하면 둘은 알아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왜 준비해야 하는지를 한 번 더 일러주자 그들은 곧바로 협력해 끓인 물에 천을 삶고, 내가 건넨 피 묻은 도구들을 불에 지진 후 뜨거운 물로 닦아 말끔한 상태로 만들고, 독주를 부어 상처를 소독하고 금창약을 발랐다.

충분히 관찰하고 고른 거지만 생각보다도 괜찮군.

“부목은 이렇게 대야 안 움직이고 효과적입니다. 따라 해보세요.”

“네!”

“이렇게 말입니까?”

“잘했습니다. 나머지도 똑같이 처리하세요.”

특히 어디가 부러진 자들이 많았기에 나는 그들에게 간단한 처치법을 가르쳤다. 확실히 몸으로 익히는 건 빠른 이들인지 시범을 보여주고 몇 번 잘못된 것을 고쳐주자 빠르게 부목 대기에 숙달되었다.

“홀홀, 저 녀석들까지 의원으로 키우려 하십니까요?”

급한 이들을 치료하고 한 숨 돌리는데 은 파파가 귀한 얼음을 넣은 차를 가져왔다. 얼핏 다정하고 친절해 보였지만 나는 그 안에 숨은 불만을 꿰뚫어보았다.

“왜, 하오문에 집중하지 않아서 불만이야?”

“글쎄요. 이유가 궁금한 것이지요.”

불만은 있지만 이유가 있다면 넘어가겠다는 거군.

“단순히 운송에만 쓰기엔 인력이 아깝잖아.”

“허나 이들은 글도 모르고, 때문에 일일이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합니다. 하오문의 아이들과는 사정이 다르지요. 손이 많이 가실 텐데요.”

“겸사겸사 경험해보는 거지. 문맹을 가르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머리가 좀 있는 자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다 좋은 자산이 되겠지.”

“호오, 그리 가르쳐본 경험을 어디 쓰실 요량이십니까?”

“학교.”

나는 남은 찻물을 한 번에 들이켜고 잔을 내려놓았다.

“태양의원 부속 의학원을 차릴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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