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44화 (244/350)

244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해하기 위해, 청수채 수적 3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그의 이름 아닌 이름이 수적 1도 수적 2도 아니고 수적 3인 데는 이유가 있다.

수적 1은 김진, 그러니까 금태양과 한 번 맞붙은 전적이 있는 수적들이다.

이미 금태양의 신위를 잘 알며, 부채주의 팔이 그의 손에 사라졌다가 다시 처억 붙은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자들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체로 큰 욕심이 없고 잔머리를 부리는 타입도 아니라 전 청수채주가 자신의 검으로 애용하던 이들이다.

수적 2는 금태양이 항주로 향하는 쾌속선에 탔을 때 함께한 이들이다. 수적 1과 수적 2의 교집합도 존재하긴 하지만, 의외로 수적2에만 속하는 숫자도 적지 않다.

부채주가 잔머리는 굴릴 줄 몰라도 자신이 모시기로 한 사람에게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던 탓에, 수적 1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부러 많이 태워 금태양과 그를 따르는 신비로운 노파의 힘을 목도하게 한 것인데, 의외로 수적 1보다 이들이 금태양을 더 두려워했다.

부채주를 비롯한 수적 1들이 금태양을 존경한다면, 수적 2들은 은 파파와 같은 괴물을 친할머니처럼 편하게 대하는 금태양의 저력과 그 뒤에 숨겨진 세력(저런 괴물이 ‘도련님’이라고 부른다면 대체 그 뒤에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인가!)을 저들 멋대로 상상하며 심적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수적 3이 있다.

“우리는 솔직히 당황스럽죠. 심부름하러 장강에 다녀왔더니 갑자기 채주가 죽고, 새 채주가 생겼다는데 우리 수채 사람도 아니라고 하고, 또 원래 수적인 것도 아니래. 근데 채주도 아니고 두목이래.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도통 이해가 안 가더란 말입니다. 당신은 이 상황이 이해가 가쇼?”

어쨌든 수적 3은 부채주를 비롯해 수적 1과 수적 2를 닦달해 얻은 정보로 그간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장강까지 갔다 온 이유가 뭐 때문인데. 말이 수로맹이지, 그냥 장강 놈들 대가리 노릇 하는 집단인데, 그놈들 때문에 웬만해선 얼굴 한 번 볼 일도 없는 장강 놈들에게 우리가 꼬박꼬박 세를 바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여기 회수 수채들은 다 그거에 불만이 많아요. 근데 청룡채가 있잖아. 그게 아주 장강 놈들 어용수채라서 세를 좀만 안 내면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핀다니까? 근데 우리 채주는 지 약 처먹느라고 금고 돈을 다 털어놨지. 청룡채가 와서 따져도 없는 돈을 뭐 어떡해. 그러니까 누구라도 가서 싹싹 빌어야지.”

수적 3는 장강의 수로왕 앞에 오체투지하며 네 시진을 싹싹 빌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무릎이 아프고 머리가 저렸다.

“근데 새 두목이 청룡채도 쓱싹하고, 우리보다 덩치가 큰 수채도 쓱싹하고. 이야, 이 정도면 우리가 청룡채 급으로 크나? 그러면 나도 저 머저리 같은 놈이 부채주 달고 있는 거 눈꼴셔 할 게 아니라, 아예 새끼 수채 하나를 달라고 해서 채주가 되어봐? 하고 있는데, 이놈의 두목이란 게 코빼기를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적 3은 머리를 썼다. 술과 돈, 약밖에 모르던 채주나 무식하게 힘만 센 부채주와 달리 그는 물에 사는 여우와 같았다.

그는 빠르게 ‘두목’이 갔다는 항주의 정보와 김진이라는 작자에 대해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거 잘하면 새끼 수채가 뭐야, 그냥 손 안 대고 코 풀기, 돈 놓고 돈 먹기도 되겠는데? 싶었던 거지. 머리 나쁜 놈들은 밥 먹고 사는 거 외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녹림채 쪽에는 심심찮게 있는 일이거든.”

수적 3은 자신의 교활함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정보 취득에도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수채와 제법 성질이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산채들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였고, 그들을 통해 들은 사례를 기반으로 작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파의 무림 초출내기들이 가끔 그런다고 하더라고. 혈기를 주체 못 하고 산채를 뒤집어 엎어놨어. 그런데 문제 되는 몇 놈, 특히 채주 모가지를 따긴 했는데, 산적들이 다 살려줍쇼 하고 무릎 꿇으니까 마음이 약해지는 거지. 해산을 시키기도 하지만, 내가 니들을 책임지마! 하고 반쯤 채주 아닌 채주가 되는 경우들이 있대.”

그 말을 하며 수적 3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그 멍청한 것들이 뭘 하느냐, 자기 문파의 먹거리 하나를 갖다가 산적들 목에 떡 걸어주는 거야. 등신들이지. 칼밥 먹고 살던 놈들이 그렇게 얌전하게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먹고 살 수 있겠어? 뭐 대문파쯤 되는 밥그릇이면 모를까, 작은 밥그릇이면 슬쩍 눈치 좀 보다가 개심한 척하고 무공도 좀 얻어먹고 힘을 키워서 죄 털어먹고 다시 산적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 그것도 양심에 부숭부숭 털 난 놈들은 키우는 거 아닌데. 수적 3은 그렇게 말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아, 대문파쯤 되면 어쩌냐고? 그러면 또 재밌어지지. 정파도 몸집 큰 문파의 대가리들은 혈기 넘치는 젊은 애들하고 또 달라. 적당히 일 보다가 우리가 쓸 만하다 싶으면 슬쩍 칼질 할 일을 맡겨주지. 그게 또 은근 짭짤하다네? 내가 아는 산적 중에서는 어쩌다 그렇게 잘 물어가지고 무당의 백정이 된 놈이 있는데, 가끔 더럽고 치사하긴 해도 떡고물 떨어지는 게 다르다더라.”

어쨌든 손해 보는 일은 없다. 그게 수적 3의 생각이고 판단이었다.

“아니지, 그 정도로 끝나면 섭섭하지. 겉으로는 잘 아양을 떨면서 뒤로는 더 크게 해먹을 수도 있지 않겠어? 부자도 망하면 삼대를 간다는데, 천년 소림이 망하려면 얼마나 더 걸리겠어? 우리가 한 십 년쯤 앞당겨주는 거지. 아무렴.”

수적 3은 금태양이 소림의 대표로 화산지회에 나가게 됐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그건 말하자면 명예제자 취급이다. 금태양보다 무림사정에 빠삭한 수적 3은, 금태양이 소림의 제자 중 하나가 몰래 낳아 기른 자식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유나 배경, 정파에 가까운 듯하지만 또 완벽하게 정파 무인 같지 않은 부분들이 설명됐다.

“뭐 말이 길긴 한데, 요약하자면, 싹싹 발라 먹기 좋은 호구라는 거지. 안 그래?”

수적 3, 그러니까 수적 3으로 대표되는 교활한 수적과 그를 따라 장강에 다녀왔던 무리들은 그간 벌어진 변화에 대해 그렇게 납득했다.

수적 1, 2가 아무리 새 두목의 무용이나 의술, 그를 따르는 귀신같은 노인에 대해 입이 아프게 떠들어댔어도 그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새 두목의 그 다양한 기술들을 어떻게 살살 발라 먹어야 호구 하나 잘 발라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했다.

“근데 앉은 자리에서 백날 고민해봤자 뭐 합니까? 한번 봐야 정확하지. 그래서 두목에게 연락이 왔다고, 가봐야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자원한 겁니다.”

그때 부채주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수적 3의 무리들이 새 두목에게 딱히 충성할 맘도 없어 보이는데, 두목은 주력을 이끌고 오라고 하니 걱정이 되었던 게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새 수적 3가 딴 맘을 품으면 영락없이 수채를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럴 경우 새 두목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긴 했지만, 그랬기에 수적 3가 제일 먼저 자원한 것은 의외였다.

“뭐, 크게 예상과 다른 점이 없기는 했습니다. 괜히 똥 기강 잡는 것부터가 빤했죠. 개방 방주가 나선 건 좀 의외긴 했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된 것도 있고.”

얼마나 큰 건을 맡기려고?

기강을 잡는다는 건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거다. 별일 안 시키고, 그냥 내버려 둘 거면 뭐하러 기강을 잡나?

거기에 개방 방주라는 외부인사까지 끼워서 말이다.

수적 3은 거기서 한 가지를 더 확신했다.

“이 두목은 우리 수채에 머물 생각이 없구나. 그걸 딱 알았단 말이죠. 캬, 그러니 기강 빡시게 잡는 게 얼마나 반갑습니까. 좀 쫄긴 했지만, 앞으로 우리 앞에 떨어질 게 떡고물 수준이 아니라 금가루일 수도 있는데.”

그들이 하게 될 일이 치료용 마약의 내륙 운송이라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면 수적 3은 별거 아닌 척,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실실 쪼갰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싹 변하는 겁니다. 딴 놈들이 말했던 그 노친네들이 나올 때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수적 3은 수적 2들의 가설을 요만큼도 믿지 않았다. 금태양이 ‘도련님’으로 불리는 걸 보니 그 뒤에 엄청난 세력이 있을 거다, 모시는 사람이 늙어빠진 할망구인데 가느다란 은사로 수십의 목을 따고 세 치 혀로 청룡채를 궤멸시켰더라. 전부 안 믿는 건 아니었고, 엄청난 세력이 있을 거라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러면 자기들이 좀 곤란해진다.

수적 3이 믿는 건 정파 출신 도련님들의 끓는 혈기였다. 그런 혈기를 가진 사람들은 결코 수채에 머무르며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지 못한다.

근데 관리를 대신해 줄 사람이 생긴다면?

“좀 까마득하긴 했는데 그것도 뭐 나쁘진 않았습니다. 하오문 얘기를 하고 중독자 얘기를 하고, 그즈음부터 약 관련된 일이다 싶었거든요. 생각만 해도 몸이 짜릿한 게, 손톱만큼만 빼돌려도 그게 얼마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 * *

“가거라.”

“그, 그러니까…… 저놈들을 진짜 때려잡기만 하면 된다 그 말씀입죠?”

“가는 귀가 먹었나? 도련님 하는 말씀 못 들었느냐? 가서 저기 난동 피는 놈들 다 때려눕히거라. 죽이지는 말고.”

부채주는 얼떨떨했지만 일단 도를 뽑아들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눈앞의 놈들은 다 패도 된다.

“……그러면, 가볼까?”

부채주가 조심스럽게 말했고, 수적들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노인들의 눈초리가 심상찮긴 했지만 일단 그들이 박도를 뽑아들고 달려가는데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그러자 수적들이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이놈들아! 회수의 지배자 청수채가 왔다!”

채주가 죽었고, 부채주는 팔이 잘렸다. 약삭빠른 놈들은 가족 같았던 수적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재물을 빼앗아 도주했고, 웬 젊은 놈이 나타나 새 두목이 되었다. 그 두목이 청룡채와 다른 수채들을 박살 내주긴 했지만, 청수채 자신들의 규모와 힘은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든 걸 모르지 않았다.

금태양을 진심으로 두목으로 받아들인 놈들이라고 해도 그간의 일에 울분을 안 쌓았을 리가 없다.

“다 죽여! 아니, 죽이진 말고! 다 때려잡아!”

“약에 미친 새끼들! 이거나 처먹어라!”

“부채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까? 하나 잘라도 돼요?”

무엇보다 다들 앞으로의 삶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새 두목은 최소한 정사지간의 인물. 그들이 전처럼 신나게 칼질을 하며 살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라고 여겼건만, 이런 기회라니!

수적들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약에 절은 중독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오문에서 빠져나와 이들을 선동한 전 하오문도들도 수적들의 칼에 맥을 못 추고 뒤로 밀려났다.

“수적이 물에서만 강할 거라는 건 아주 크나큰 오산이라 이 말이야!”

부채주가 껄껄 웃으며 박도를 휘둘렀다. 비록 죽이지 말라는 지엄한 명이 있어서 시원하게 칼을 쓰진 못했지만, 칼질을 밥벌이로 하던 수적들과 그저 약을 구하지 못해 분노에 찬 보통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물며 항주는 항구가 있는 도시다.

많은 중독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분노한 만큼 그 목적지는 하오문이 원래 약을 들여오던 항구일 수밖에 없다.

파도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배와 넘실거리는 물이 있는 곳.

수적들은 더 신명이 나서 날아다녔고 몇몇은 그 분위기에 취했는지 금태양의 경고를 잊고 피를 보기 시작했다.

“꺄악!”

“으하하하하! 이놈들아! 이것이 바로 청수채다! 회수의 지배자, 이제 항주도 우리 손에 들어왔다! 다 죽여!”

“죽여버려!”

앞서 편의상 수적 3이라 지칭했던 이들 중, 전대 채주의 오른팔이자 청수채의 참모가 먼저 살육에 취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수적들도 싸움을 피해 바다로 피신하거나 도망치는 자들의 목을 벴다.

“야, 야! 이놈들아! 두목이 죽이진 말라고 했잖아!”

부채주가 목소리를 높여도 소용이 없었다. 항구는 넓었고 상대해야 하는 약쟁이들의 숫자는 많았다. 수적들이 우세하긴 했지만 이들을 죽이지 않고 헤치고 가 놈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 수적이 사람들을 죽인다!”

“항주에 수적이 쳐들어 왔어! 관군들은 뭘 하는 거지?”

“아이고, 아범! 우리 아범이 수적들의 칼에 죽었어!”

거기에 항주 사람들의 분위기도 기묘해지기 시작했다.

폭동을 주도한 전 하오문도들은 수적들의 칼에 무력화 되거나 몇몇은 죽임을 당했고, 금단증상보다 더 강한 현실의 통증에 약쟁이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부러 죽인 것은 아니지만 팔다리가 잘려 실혈이 심해 숨을 거둔 이들이 있었고, 떨어져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소요를 지켜보던 항주 사람들은 가족의 죽음에, 그리고 난데없는 수적의 침입에 동요하고 있었다.

그림이 이상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네.”

부채주가 기묘한 상황을 인식했을 때, 항주성 내 가장 높은 누각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금태양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하오문과 개방이 다시 나설 차례군.”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이 칠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밀물처럼 밀려온 하오문도들과, 개방의 거지들에 의해서.

“웬 같잖은 것들이 항주에서 소란을 일으켜? 이 거지들아! 오늘이 복날인가 보다, 다 패 죽여라!”

“이제 겨우 소란 좀 정리하고 장사를 하려나 싶었더니, 갑자기 수적들이. 손님으로 왔다면 술을 내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매를 드는 수밖에!”

개방 방주 도개걸, 그리고 하오문의 태상문주 은 파파.

두 사람이 각각 문도들을 이끌고 청수채 수적들을 치기 시작했다.

“가자, 우리의 고향을! 수적 놈들에게서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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