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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43화 (243/350)

243화

두 번이나 기강을 잡은 탓인지 내 말에 수적들이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밥은 남기는 거 아닌데, 그 말 한 마디에 부채주가 호들갑을 떨며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객잔 주인을 닦달했다.

“야야, 그건 내가 가져가면 안 되겠냐?”

“그러시죠.”

도개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서 부채주가 챙긴 음식 보따리를 낚아챘다. 어차피 가서 남은 음식 챙겨먹을 시간도 없을 텐데, 거지들 줘서 나쁠 건 없지.

“출발하자.”

항주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도 먹고 휴식을 잠깐 취해서 그런지 수적들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나절은 꼬박 걸었어야 할 거리였지만 나란히 신법을 발휘하며 달리자 반 시진 만에 저 멀리 항주성이 눈에 들어왔다.

“팔은 괜찮아 보이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고?”

이동하며 나는 틈틈이 수적들의 상태를 묻고 간단히 진단하기도 했다. 특별히 신경을 쓴다기보다는 뭐랄까. 중고물건을 X근 거래 해도 최소한 큰 얼룩이나 흠은 좀 닦아서 거래를 하잖아. 그런 느낌이지.

“세밀한 동작은 쉽지 않은데, 생각보다는 잘 움직입니다! 운기조식을 열심히 했더니 진짜 감각이 빠르게 돌아왔습니다!”

“맥도 잘 돌고 있네. 거부작용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야. 운이 좋았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목을 만난 건 제 인생 최대의 행운입니다!”

“아,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나를 만난 것도 만난 거지만, 거부작용 없이 팔이 잘 붙은 게 운이 좋다는 건데. 정말이지 이들의 이런 태도에는 영 적응이 안 됐다.

“수시로 훈련을 계속하도록 해. 젓가락으로 콩이나 쌀알 같은 작은 걸 집어서 옮기는 식으로.”

“예! 존명!”

엄밀히 말하면 내가 팔을 잘라서 남의 팔을 갖다 붙여야 했던 거잖아. 그에 대해 반감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지.

사람이 아니라 신이 된 기분이다.

신을 모시는 신자들이 그러지 않나. 자신의 불행도 고통도 신이 준 시련이니 받아들일 뿐, 신을 미워하진 않는다.

아무래도 난 사이비 교주 같은 건 못 될 팔자인 거 같군.

몇 명이 이러는 것도 불편해 죽겠는데, 수백, 수천 명이 내게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못 견딜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이런 관계를 유지하지만, 이 녀석들과도 되도록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서라.”

“에?”

“뭔 생각 하는지 얼굴에 빤히 보인다. 네 녀석, 가면을 쓰고 살아서 표정 감추는 법을 꽤 오래 잊고 산 모양인데.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함께 갈 수 있는 놈들이 있고, 아닌 놈들이 있는 거다.”

젠장, 그렇게까지 표정에 드러났나?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은 파파에게 단기속성으로 표정 다루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확실히 가면을 쓰고 산 세월이 오래라 쉽게 바뀌진 않는 모양이다.

“잘 못하겠으면 그것도 별로 상관은 없지. 어차피 그런 걸 잘하는 놈들에게 맡길 게 아니냐?”

그건 그렇지.

속도를 높여 달린 우리의 앞에 항주성이 가까이 다가왔고, 그곳에는 내가 이들을 맡길 존재가 성문 앞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홀홀, 오셨습니까요, 도련님. 조금 늦으셨구만요.”

“미안. 아픈 녀석들이 좀 있어서.”

“아프다고요?”

“너무 심한 녀석들은 남겨서 배를 지키라고 했어. 이 녀석들은 멀쩡해.”

“흐음, 썩 보기에도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이긴 합디다만.”

은 파파가 가는 눈을 뜨고 내 뒤에 오와 열을 맞춰 시립한 수적들을 쓱 훑어보았다.

꿀꺽.

뒤에서 몇 놈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노인들의 시선이 보통은 아니긴 하지.

자리에 나와 있는 건 은 파파뿐이 아니었다.

남은 십이월들, 현업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갑작스러운 수뇌부의 증발로 다시 하오문을 짊어진 늙은이들이 은 파파의 뒤에 서 있었다.

“안은 좀 어때?”

“예상하신 대로, 개판입디다.”

은 파파가 영 껄쩍지근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돌아가는 분위기상 예상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은 파파는 내심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랐나 보다.

“어차피 한 번은 홍역을 치러야 해. 빠르게, 더 번지지 않게 끝내자고.”

“예, 알겠습니다. 이자들은 저희가 데려가지요.”

“그래. 수고해. 천천히 따라갈게.”

“나도 이만 가보마. 우리 쪽도 시끄럽겠어.”

도개걸이 먼저 음식 자루를 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항주성에 들어갈 때를 생각하면 문을 지키는 관원들이 통행증을 요구하든지 돈을 요구하든지 해야 할 거 같았지만, 그들은 그냥 의례적으로 도개걸의 이름만 묻고는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그를 들여보냈다.

“오랜만이구나, 아해들아.”

그동안 은 파파는 청수채 수적들의 앞에 서서 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있었다.

“몇몇 놈들은 내를 알겠제?”

은 파파는 전날 나와 청수채의 배를 빌려 탔을 때 썼던 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본 놈들은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내 궁금해하는 다른 수적들에게 조심스럽게 속닥거렸다. 몇몇 놈은 전음을 보내는 거 같았다.

은 파파는 녀석들이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잠시 시간을 주었다.

이윽고 모두들 은 파파가 수채들을 정리할 때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선보였는지 알았다. 청룡채를 궤멸시킬 때는 어떻게 고작 세 치 혀로 그 강대하던 회수의 지배자를 자멸하게 만들었는지도 알았다.

몇몇은 경외와 감탄의 시선을 보냈고, 몇몇은 혀를 내두르며 눈빛에 두려움과 경계를 담았으며, 몇몇은 자신이 들은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은 파파의 주름진 눈가와 작은 몸집 등, 그 말이 진실이 아닐 거라는 증거를 찾아내느라 가는 눈을 떴다.

마지막 부류야 조금 지나면 의심의 눈초리를 뜬 대가를 치르게 되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세 부류 다 공통적으로 입에 담은 말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대체 왜……?”

였다.

“지금부터 이 안에 들어가서는, 은 파파의 말을 따르면 된다.”

나는 궁금해하는 이들을 대표해 입을 연 부채주에게 일렀다.

“별로 어렵진 않아. 잘하던 거 하면 돼. 끝나고 나면 다시 배로 돌아갈 거야. 이번에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랑 앞으로도 계속 협력해야 하니까 서로 안면도 익히고, 잘해.”

“……저, 두목. 그러니까 저희가 저 안에 들어가서 대체 뭘 하는……?”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그러고 보니 얘길 안 했나 본데. 주력을 이끌고 최대한 빨리 오라고만 했지. 도착해서도 기강 잡고 밥 먹이고 상태 확인 하고……

못 할 만했네. 진짜 손 많이 간다.

“내가 너희들을 오라고 한 이유는―.”

나는 말하며 성문 쪽으로 다가갔다.

두꺼운 문은 전날과 달리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들이 오고갈 때는 옆에 있는 쪽문을 열어주었다. 아까 도개걸이 통과한 곳도 그 쪽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두꺼운 문이 가로막고 있던 소란이 들려왔다. 내 뒤를 따라 문에 다가온 수적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표정이 굳었다.

“이건―.”

“싸우는 소린데?”

내가 수적들을 불러들인 이유.

외로워서는 당연히 아니고.

“문을 열어라.”

내 말에 미리 얘기가 끝난 문지기들이 서둘러 빗장을 내리고 문을 열었다.

묵직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며, 그 틈새로 성내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 약, 약을 내놔……!”

“이건 못 가져간다! 내 거야!”

“저, 저, 저, 저놈들 손에 약이, 저것만 있으면, 허억―.”

아비규환이라는 말은 딱 이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니, 저게 대체―.”

“더 이상 항주에서는 마약이 거래되지 않을 거다.”

“예? 그렇다면?”

“그래서 약쟁이들이 저 난리가 났지.”

하오문 창고 내에는 아직 마약이 남아 있지만 그건 전부 태양의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약 판매가 양지와 음지 둘 다 끊기자 중독자들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며칠은 갖고 있는 양으로 버틸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하물며 하오문도들에게 지시해 중간 거래상들의 물량까지 전부 되사들이거나, 불응할 경우 강탈도 허락한 상황.

지금 항주성 내는 혼돈 그 자체다.

“문을 막아놨는데도 성 밖의 중독자들마저 어찌저찌 개구멍으로 들어와서, 지금은 도련님이 출발하시기 전보다 더 개판입디다.”

“하오문은? 곤란할 정도야?”

“솔직히, 예, 그렇습디다.”

은 파파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무공 실력을 갖춘 수뇌부가 날아가고 은 파파들이 하오문을 재접수하는 상황에서 이탈한 자들도 꽤 많다.

붙잡는다고 있을 자들도 아니고 괜히 끌어안았다가 나중에 동티날 게 뻔해서, 정말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거나 요직에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냥 가게 내버려뒀다.

지금 저 안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것도 그자들이 주축이다. 중독자들에게 교묘한 소문을 퍼트려 제 편을 만든 후 하오문을 역으로 접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잘됐네. 한 번에 정리하면 되겠어.”

“그렇지요, 홀홀.”

“다 들었지? 슬슬 가봐.”

“예? 그러니까 어딜―.”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된 부채주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걸 본 십이월 중 하나, 꼬챙이처럼 바짝 마른 몸에 그 성격 또한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이월이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젊고 건강해 뵈는데 대가리가 안 돌아가서 큰일이구만. 칼질로 밥 벌어먹는 놈들 불러다 어따 쓰겠어? 칼질이나 시키겠지.”

“……아! 그렇군요! 가서 저놈들을 다 때려잡으란 말이군요!”

“끌끌, 입에 처넣어줘야 삼키는 놈들일세. 도련님도 고생길이 훤하구만.”

이월이 혀를 쯧쯧 차며 내 쪽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대들에게 맡기는 거죠. 잘 부탁합니다.”

“칼잽이 구실은 하게 만들어두지요, 걱정 마소. 야들아, 가자!”

이월이 앞장서서 안으로 발을 들였다. 수적들은 잠깐 눈을 굴리더니, 그나마 빠르게 뒤를 따른 부채주를 좇아 안으로 들어갔다.

“저렇게 어리버리해서 어찌 강바닥에서 밥 벌어 먹고 살았는지. 하여간 앉은 자리에서 세나 받아먹고 산 놈들이란. 쯧쯧. 하여간 쇤네도 가보겠습니다. 도련님도 볼일 보시지요.”

“응, 잘 부탁해. 아! 칼질은 해도 사람 죽이지는 말라고 하고. 알지?”

“그럼요, 잘 알지요. 항주 내에 피바람 불라고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도련님 보시기에 딱 흡족할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은 파파가 생긋 웃어 보였다. 한없이 온화해 보이는 노파의 미소이건만, 왜 내 눈에는 악마의 웃음처럼 보이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그저 폭도로 변한 약 중독자들을 때려잡으면 되는 일인지 알고, 자신 있는 일이라며 의기양양하게 떠났던 수적들은 두 시진 후, 실력 고하에 상관없이 팔다리 하나가 부러지거나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드는 등, 제대로 혼쭐이 나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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