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그래서, 니들끼리 좋은 건 다 해쳐먹고 우리는 쏙 빼시겠다?”
도개걸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유유히 흐르는 회수의 강물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술 한 잔을 비웠다. 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누각에서 술 한 잔이라, 같이 마시는 사람이 꾀죄죄한 거지만 아니면 절로 술맛이 날 거 같은 풍경인데 말이지.
“이놈아, 뭐라도 말이나 해봐라. 사람을 불렀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그러게요. 불러서 이제 같이 나눠 먹을 얘기 좀 하려고 했는데, 다짜고짜 왜 우리는 뺐냐 하시니까 저도 별로 할 말이 없고 그래서.”
“하아, 이놈 봐라?”
말투는 다시 전과 같이 돌아갔지만 내용이 더 분통이 터지는지 도개걸은 한숨을 푹 내쉬곤 내 앞에 있는 술병을 병째 들어 목구멍에 콸콸콸 부었다.
그래, 속이 타겠지.
지금 급한 건 개방 쪽이니까 말이다.
나도 이쪽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는데, 하오문 내부를 정리하고 일을 추진해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오랜 시간 하오문을 먹여 살리던 마약 사업의 폐해와 수뇌부가 한 번에 날아간 일이 꽤 타격이 컸나 보더라고.
“그래, 항주가 아니라 왜 이 먼 강변에서 보자고 했는지 그 이유나 먼저 들어보자.”
“방주를 만나는 거 외에도 볼 일이 있거든요.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허어, 그래? 이 도개걸이를 두고 약속을 또 잡았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개방에도 좋은 얘기 하려고 겸사겸사 한 자리에서 보자고 한 거니까. 신생, 방주께 술 한 병 더 갖다 드려라.”
“네네, 동이째 가져올게요.”
이미 도개걸의 그런 언사에는 익숙한 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객잔 안으로 향했다. 전에는 그래도 도개걸과 함께 있으면 몸을 벌벌 떠는 등, PTSD로 인한 증상이 엿보였는데, 이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했다.
의원으로서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려나.
그치?
“하오문이 항주 전체에 약을 끊은 건 아시죠?”
“알다마다. 그 때문에 우리도 난리다. 거지가 되고도 동냥밥을 긁어모아서까지 약을 사는 머저리들이 한둘이어야지.”
도개걸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으로 항구도시는 거지가 많다. 큰 꿈을 가지고 한탕 하러 왔다가 쫄딱 망하는 뜨내기가 워낙 많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개방 방주쯤 되는 작자가 한숨을 쉬게 만들 정도라니.
“거지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만, 그놈들은 진짜 해악이야. 다른 거지의 동냥그릇을 훔쳐다가 약이랑 바꿔먹는 놈들이니 말 다했지.”
“그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요. 뭐 하러 개방 방도로 만들어서 챙기십니까?”
“네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너 진짜 금가 그놈이 맞냐? 아닌 거 같은데?”
“저 맞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런 사람들까지 품지는 않거든요.”
내가 태양의원을 운영하는 기조나 나의 행동방식이 정도(正度)에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나도 그런 답 없는 사람들까지 챙기는 건 아니다. 의원 경영에 있어서도 말이 안 통하는 진상에게는 칼을 뽑아도 된다, 가 내 방침이기도 하고.
“쯧, 너희 정파 놈들이 그따구로 하니까 우리가 잔반 처리를 하는 거 아니냐. 젠장, 죄다 되다 만 놈들뿐인 집단을 문파랍시고 끌고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네가 아냐?”
“예예, 그러니까 이제 도움을 드리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얼마까지 가능할 거 같으냐?”
“모르긴 몰라도, 삼 할까지는 구제될 겁니다. 아니, 삼 할이 확정 최소치라고 생각하시죠.”
“뭐가 삼 할이에요?”
술을 들고 돌아온 신생이 물었다. 동이째 들고 온다고 해서 하나 가져오는 줄 알았더니, 무슨 묘기를 하듯 세 동이를 쌓아서 그 작은 몸으로 들고 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위험하게 가져오면 어떡해? 힘들지 않아?”
“이제 괜찮아요!”
“그래도, 쓰러졌다 일어났었잖아. 너무 무리하지 마.”
“아주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정도껏 해라. 그 정도로 맛 갈 놈이 아냐.”
“아직 어린앱니다. 그리고 제 제자고요.”
“참견 말라? 하, 진짜. 여기 앉아 있다가 내가 화병 나겠다. 어서 하던 얘기나 마저 해라.”
도개걸은 내가 받아든 세 동이 중 두 동이를 번쩍 들어 가져가더니, 마개를 뜯고 아예 국자째로 술을 떠먹기 시작했다.
“현재 항주에 있는 거지 중 삼 할, 그 정도는 반드시 경제인구로 재활할 수 있을 만큼 항주 경제가 돌아올 겁니다.”
“거 좋은 소식이군. 어떻게?”
나는 하오문과 논의했던 사업 방향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건 사실 하오문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오문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객잔과 주루, 기루 등의 구성원이다. 다시 항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 인력을 가져다 쓸 수는 없다.
“기존에 항구에 죽치고 있던 놈들 있잖아?”
“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람들 중 상당수, 특히 실력자들이 이번 일로 날아가서요.”
항구에 배치된 문도들은 무공 실력이 수위에 오른 이들이 많다. 때문에 그들은 하오문주의 행사에 동행했고 그가 마물이 되면서 생기를 빨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원래도 개방 거지들 중 항구에서 일하다가 거지가 된 자들이 많잖아요. 썩어도 준치라고, 치료를 하면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구걸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겁니다.”
“아주 희망적인 전개구만.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 일을 새로 추진하는데 장에 구더기 꼬일 거부터 생각하고 일할까요?”
“해서, 그 일을 할 만한 거지들을 선별하고 그놈들의 엉덩이를 차 달라? 내게 그걸 바라는 게냐?”
“싫으세요?”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도개걸을 상대할 때 안 그런 적이 더 드물긴 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짜증스럽게 구는 방주였다.
더블부킹을 한 게 그렇게 기분이 나쁜가?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싫으면 그만 가시고요. 아니면 닥치고 공짜 술이나 마시고 가시든가.”
“이눔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삐딱해?”
“그러는 방주께서는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더 삐딱하시고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지, 이딴 식으로 나오시면 저도 아무 도움 못 드립니다. 알아서 하시든가요. 약을 못 구한 거지들이 망가지는 거, 거지들이 끝내 거지로 죽는 걸 두고 보시든가. 개방 입장에서는 좋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거지들이 정상적인 삶을 되찾으면 사실 개방의 세가 줄어드는 거잖아요? 그럴 바엔 거지가 길바닥에서 거지로 죽는 게 낫지.”
“이, 이눔이!”
쨍그랑―
도개걸이 술동이 하나를 요란하게 밀쳤다. 잘 빚은 술동이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아 있던 술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거 비싼 술인데, 아깝게. 방주쯤 되면 거지도 술 귀한 줄을 모릅니까?”
“후우, 후우…… 넌 말이다, 젊은 놈이 말이야!”
“네네, 압니다. 젊은 놈이 좀 봐주지, 안 그래도 화딱지 나 죽겠는데 기분이 안 좋으시지요? 달래주면서 자리에 앉히긴커녕, 속 박박 긁으면서, 기분 안 좋은 건 내 알 바 아니고 빨리 할 일이나 처리하자, 너도 좋은 일 아니냐 하니까 분통이 터지시는 건 알겠는데.”
나는 내 잔을 비웠다. 술맛이 끝내줬다.
“그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랑은 거래 못 합니다. 방주 기분만 앞세우지 마세요. 개방의 방주라는 당신의 직함을, 그 위치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하세요.”
“……금가 새끼 네놈은 정말, 하.”
도개걸이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나름대로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시도였는지, 깊게 한숨을 몇 번 푹푹 내쉬고는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그래. 네 말처럼만 되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오히려 본타에서 다루는 정보의 질도 나아지겠지. 지금은 무공수련을 하고 싶거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놈들도 본타의 상황 때문에 발이 묶여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으니까.”
“방주씩이나 되는 분이 제자 키우기에 정신이 팔려서 관리를 소홀히 한 탓도 있겠죠.”
“넌 대체 나랑 대화를 하자는 거냐, 내 속만 긁겠다는 거냐?”
“당연히 대화죠. 개방의 일 말고도, 정반합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는데요. 뭐 하러 방주랑 척을 지겠어요?”
“끄응.”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계속 속을 긁어도 도개걸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내 쪽이 유리한 상황이라는 거지.
“그러면 반대로 묻자. 대체 왜 나랑 대화를 하려고 하는 거냐?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네 놈이 실질적인 하오문의 주인이 된 거 같던데, 뭐 하러 그걸 개방이랑 나누려고 해?”
“그렇게 할 수도 있긴 하죠. 하오문 분파에서 사람을 모집해서 하오문의 세만 늘려도 될 일긴 해요. 그치만 그렇게 하는 데도 시간은 필요하죠. 거기에 거지들이 언제까지 거지로 살겠어요?”
“그건 또 뭔 말이냐?”
“개방을 벗어나 산과 강, 바다로 흘러들어 산적이나 수적, 해적이 될 수도 있어요. 처지가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건 우리 사업에 해악을 미칠 거고, 그럴 바엔 아예 사업의 일부로 편입시켜 버리자는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안 해도 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봤을 때 우리에게 떡고물을 하나 얹어주는 게 네놈에게 더 유리하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당장 태양의원에 가 있는 개방의와 개방이 세운 객잔 등, 기존의 교류를 감안한 거기도 하고. 또 정반합의 활동과 유지에 있어서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도 있다. 눈앞의 이득만 보고 결정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납득이 안 돼. 속없는 소림 놈들쯤 되면 모를까. 네놈이 이러는 걸, 내가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두렵겠지.
남의 선의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자신이 타인의 선의를 받을 만큼의 자격이나 가치가 있는가, 그런 걸 의심하는 건 아닐 거다.
그는 거지니까. 밥을 얻기 위해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치고 허리를 굽히는 존재니까.
오히려 반대로, 달콤한 선의 속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지, 선의의 탈을 쓴 악의가 아닐까 걱정하는 거겠지.
전생에도 간호사나 경비원분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선물하는 이상한 사람들의 얘기가 심심찮게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았던가.
내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저 거지도 은 파파만큼 많은 일들을 겪어온 늙은 거지니까.
“정 찝찝하시면, 대가를 하나 치르시죠.”
“대가?”
“네, 대가요. 아무리 봐도 제게 이득이 없어 보여서, 뭔가 속는 게 아닌가 불안하신 거잖아요? 그럼 아예 값을 치르세요. 전 아버지 아들이고, 손님이 값을 치르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어드려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손에 쥔 거 하나 없는 거지에게 뭘 바라느냐?”
처음부터 뭔가를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정반합의 회주로 개방의 지지를 받으려면 그들에게 신의를 얻어야 하니까.
하지만 생각이 좀 달라졌다.
“사과하시죠.”
전과 달리 도개걸을 대할 때 떨림이나 두려움이 없던 신생이, 도개걸이 술독을 밀어 깨부쉈을 때 가늘게 몸을 떠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신생에게 사과하세요. 이전에 당신이 강한 제자를 키우겠다며 가했던 모든 잔인한 행동들에 대해서.”
“……!”
“방주께서 그리 하신다면, 저도 당신이 바라는 대로, 개방의 거지들에게 신생(新生)처럼 다시 시작할 기회, 새 삶을 살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