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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38화 (238/350)

238화

은 파파의 설명을 듣고 보니 왜 그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지 알겠군.

그 자신이 의도한 건 아니라도 혈교의 술법에 대한 이해가 높을 거고, 진법에 깊이 관여한 만큼 섬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홍령이 갑자기 사라진 일에 대해서도 뭔가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관에서 나오질 않는다면 아무 쓸모 없는 거잖아? 그림의 떡인걸.]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살아 있다면 언젠가 폐관을 깨고 나올 수도 있을 겝니다. 허나 죽었다면 가능성을 논하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겠지요.]

[그건 그런데…… 대체 나한테 말을 안 한 게 얼마나 많은 거야?]

[그 또한 가능성을 논하기 우스운 일 아니겠습니까? 쇤네가 말하지 않은 것은 쇤네가 살아온 삶만큼 많을 겝니다요, 홀홀.]

[끄응, 틀린 말은 아니군.]

[도련님, 원래 정보라는 것은 그저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무 가치 없는 정보도 상황에 따라선 금보다도 더 귀해지기 마련이지요. 적재적소를 아는 것, 그리하여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정보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오문의 초대문주 아니랄까 봐.

그렇다고 그게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잠깐만, 틀린 말도 아니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한 거 같은데.

……이래서 묘하게 당하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맞는 소리를 하고 그게 전부 나에게 유리한 건데 괜히 얄밉다고 해야 하나.

“홀홀, 찻물이 떨어졌군요.”

“아, 제가 다녀 오겠―.”

“기를 빨려서 실신했던 애가 무슨 심부름을 해. 현건 소협?”

“예, 예?”

“나가서 뜨거운 물 좀 갖다 달라고 해.”

“아, 제가.”

“여기 어린애가 요 며칠 무슨 상태였는지는 제일 잘 알 테고, 여기 있는 노부인께서도 죽다 살아난 몸이거든.”

나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사실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현건에게는 죽다 살아나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보이겠지.

납득했는지 현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찻주전자를 들고 방을 나섰다. 녀석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지다가 이내 사라지고, 웬만해선 우리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겠다 싶을 때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하란 말이지?”

“현명하십니다, 홀홀.”

“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된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신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정보는 적재적소에 배치했을 때 가장 비싸진다. 그리고 ‘비밀’ 또한 그러한 정보의 속성을 닮아있다.

은 파파는 아까 의도적으로 현건 앞에서 얘기를 끊고 나와만 대화했다. 전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쯤은 현건도 눈치를 챘을 거다. 우리끼리 무슨 얘기를 했을지 매우 궁금해하겠지.

그러나 동시에 현건 또한 말을 아꼈다. 은 파파가 말을 끊었을 때 무척 당황한 눈치였는데, 자신이 생각 없이 흘린 말이 무당에게 어떤 타격으로 돌아갈지 걱정하는 듯 보였다.

녀석이 무당에 실망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당을 아주 버릴 정도는 아닌 거다.

부모에게 실망하고, 그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적에게 손을 들어줄 수는 있어도, 부모가 피를 흘리며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 현건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더 캐려 들어봤자 비싼 값을 치러야 할 뿐이다.

“때를 잘 봐야 할 겝니다. 정직하고 다소 순수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살살 긁어서 가격을 잘 깎아봐야지.”

팔 때는 비싸게, 살 때는 최대한 저렴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일과 정보를 다루는 일도 별로 다르지 않다.

당분간 현건 저 녀석을 달고 다닐 이유가 생겼군.

“끓인 물과 찻잎을 새로 가져왔습니다. 제가 한 번 내리도록 하지요.”

현건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다상에 앉아 신중하게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흔들린 심기를 바로잡으려는 것인지 그 자세가 한없이 바르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면 아까 하던 얘기를 다시 마저 해보자고.”

무당에서 가출한 대제자. 아직 돌아갈 마음은 없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닌 듯했다.

녀석이 가진 정보를 털려면 우선 내가 가는 길을 함께 가게 만들어야 한다.

강제로 끌고 다닐 생각은 없다.

녀석이 직접 날 따라다니고 싶게 만들 거다.

“하오문의 주력사업인 마약은 앞으로 의료 용도로 사용될 양만 수입한다. 대신 나머지 양은 수입처에서 거래할 수 있다는 약재로 채운다. 효능이 충분할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중원에서 나는 것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승산은 있어.”

“여기 무당의 대제자께서 필히 구해야 하는 것들을 일러주기도 하셨으니, 그 물건들을 중심으로 시범구매를 해보도록 하지요.”

은 파파가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조금은 민망해할 줄 알았는데, 현건은 그 정도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차를 우리는 데 집중했다.

그런 쪽으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군.

“한동안 재정이 많이 어렵겠습디다. 마약을 판매치 못하니 당장 수익도 문제고, 전날의 일이 퍼져 나가면 당분간 항주로 향락을 즐기러 오는 사람도 차츰 줄겠지요. 당장 남경에서는 벌써 소문이 퍼져 돈 많은 이들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은 파파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고쳤다.

“하지만 이편이 낫습니다. 전처럼 살아간다면 다들 한 주머니 차고 떵떵거리며 살기야 하겠지만, 그 돈을 죄다 다시 마약을 사는 데 쓰고 일찍 생기를 소진해 죽어버리겠지요. 아무렴요, 이편이 낫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삶이었습니다.”

“뭐래? 난 하오문을 가난하게 만들 생각 없는데?”

“예?”

이번에는 은 파파가 놀랐다.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진 것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 놀란 반응이었다.

“정직하게 산다고 꼭 가난하게 살란 법은 없잖아? 물론 전만큼 휘황찬란하게 살 수는 없겠지만, 보니까 딱히 사치를 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나는 다시 한번, 한 줌 핏물이 되어 사라졌던 하오문주의 방을 둘러보았다. 소박한 물건들을 잘 관리하고 길을 들여 오래도록 사용한 흔적이 가득한 방. 그 방의 주인이 바랐던 것은 가질 수 없는 한 남자의 마음뿐이었다. 아니, 사실 마음까지도 바라지 않았을지도.

결국 별다를 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잘만 하면 전보다 더 큰 돈을 벌 수도 있을걸?”

“으음, 쇤네는 잘 모르겠습니다요. 어찌 그게 마약보다 더 돈이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하오문이 이 일대에 이십 년 넘게 마약을 공급했잖아.”

“예, 그렇지요.”

“그 말은, 이십 년 동안 양산된 환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거라고.”

은 파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눈을 끔뻑끔뻑 떴다. 천하의 그림자도 돈 버는 일이 되니까 이해가 느린걸. 현건 또한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보며 눈을 굴렸다.

그때 신생이 답을 안 어린아이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저 알겠어요, 스승님의 심중을!”

“그래, 네가 한번 말해보렴.”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다시 약의 고객이 된다는 거죠? 더 이상 마약을 구할 수 없게 된다면 그걸 치료하는 약, 잠시라도 중독으로 인한 통증을 경감해주는 약을 찾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환자들이 마약만큼이나 약을 찾게 되겠죠! 효과는 마약을 복용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을 테지만 선택지는 그거뿐이니까요!”

“잘했다. 역시 내 제자야.”

내 제자, 그 말에 신생이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이 작은 도련님이 말하는 게, 치료약이 마약은 아니지만 마약만큼 팔리게 된다는 말이구만요?”

“그런 거지.”

“허면 다른 곳에서 마약을 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 일대에는 그게 못 들어오게 막는 게 하오문의 일이 되겠지. 거기에 내가 노리는 효과는 그걸로 끝이 아냐.”

나는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나의 구상을 늘어놓았다.

마약은, 적정량만 제대로 사용하면 분명 훌륭한 약이다. 점혈을 할 수 없는 의원들에게는 훌륭한 마취약으로 기능할 수 있고, 의원을 찾아오기 힘든 경우 일시적으로 통증을 경감시켜주는 비상약으로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

전생에는 어떤 마약 성분이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치료 목적으로만 규제를 풀어달라는 여론이 강하게 일기도 했었지.

건강한 사람이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뇌가 극도의 쾌락을 느껴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 활력은 단순 기분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육체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전생에 스포츠 경기에서 도핑을 극도로 규제한 게 아니던가.

그러나 사람을 중독으로 이끄는 의존성, 익숙해질수록 늘어나는 양, 일상생활에서 그만한 활력을 자연스럽게 얻지 못하기 때문에 마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무력감, 뇌가 비자연적으로 과활성화됨으로써 몸이 상하는 폐해 등…….

지식과 충분한 경험, 자격이 있는 의원이 상태에 맞게 처방하지 않으면 인간은 쉽게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망가진다.

그런 이들에게 마약을 빼앗고 치료약을 처방한다.

반발이 있겠지만 대안이 없다면 이들은 치료약에 돈을 쓸 수밖에 없다.

마약이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라도 고통을 감소시키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말이야, 사람이 치료가 된다고. 꽤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어쨌든 상태는 나아질 거야. 반드시 의원의 진료와 처방을 받아야 치료약도 살 수 있게 만들 거니까, 침도 맞고 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겠지.”

“그렇겠지요?”

“뭐가 그렇겠지요야? 그러면 도시에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 활력이 도는 거라고. 이 좋은 항구를 두고 향락도시로만 기능한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돼.”

물건을 실어와도 제대로 일할 인력이 없다. 의지를 갖고 항주에 와도 마약중독자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장부를 훑어보니, 과거 항주의 항구를 이용하던 이들은 조금 불편해도 사람을 제대로 부릴 수 있는 다른 항구로 이동한 지 오래다. 남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주를 쓸 수밖에 없는 소수의 물량뿐.

“시간이 걸리기야 하겠지. 항구를 바꾸는 건 꽤나 큰일이니까. 하지만 그 기간 동안은 우리에게 약재를 판매하는 경로, 그리고 치료약을 판매하는 걸로 버틸 수 있을 거야.”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말씀대로만 진행이 된다면, 항주 자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부가적인 효과지. 일 순위 목표는, 하오문이 제 힘을 되찾는 거야.”

“하오문이요?”

“은 파파와 십이월들이 나에게 협력한 제일 큰 이유가 무엇인지, 벌써 잊었어? 마약에 중독된 하오문도들을 구제하기 위함이었잖아. 그런데 말야, 그게 무공 실력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건 은 파파가 더 잘 알지?”

“……!”

남용, 오용, 거기에 장기 복용시 몸에 큰 해악을 미치는 것이 바로 마약.

그게 무공 실력에는 악영향을 안 줄까?

그건 은 파파의 표정으로 답할 수 있겠다.

“하오문이 직접 마약을 수입하니, 문도는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양을 사들여 즐길 수 있었지. 일을 할 때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기녀들은 물론이고, 점소이들의 피해도 만만찮겠지.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을 거고. 그런데 하오문이 치료약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우리 아이들이 가장 먼저, 더 큰 효과를 누릴 수 있겠군요.”

“바로 그거야. 그래야 마약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난리를 칠 중독자들을 막아낼 수 있을 거고, 근처 다른 항구로 다른 놈들이 마약을 수입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 거고, 항주 외 마약중독의 피해를 겪고 있는 이 일대의 환자들에게도 치료약이 있다는 소문을 빨리 퍼트릴 수 있겠지.”

하오문의 정상화. 그 사업 기반의 정상화. 수익구조부터 구성원들의 건전성까지.

고구마 줄기를 잡아 뜯듯 일석 삼조의 효과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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