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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37화 (237/350)

237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현건의 발언에 나도, 신생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현건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당의들 중 본문이 공급하는 약재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 다른 경로로 약재를 구하는 이들도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그 거래상 또한 무당의 속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취급하는 품목과 원가를 알려드리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너 무당에서 쫓겨났어?”

그런 게 아니고서야 도무지 이 상황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자파의 비리와 약점을 경쟁자에게 전부 알려주는 대제자라니. 그런 게 세상천지 어디 있냐고.

“홀홀. 어디 보자. 이제 보니, 이 청년이 무당에서 가출했다는 그 대제자로구만요.”

“가출?”

“노부인, 그 얘기는―.”

“상세한 정보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무당이 발칵 뒤집혔다더군요. 듣자 하니 이번 태양의원으로 빠져나간 무당의들을 찾아가 설득하라 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과한 손속이 있었다 하더이다.”

현건이 만류할 새도 없이 은 파파가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일 이후 대제자가 본산에서 큰 소란을 피우고 잠적했다지요. 항주에 와서 들은 소식이라 배에서는 미처 그 가출한 제자인지 몰랐구만요.”

어떻게 보면 나와 관련 있는 일이기도 하군.

무당에 불만이 있던 의원들이 태양의원 가맹으로 옮기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니까.

소림에 있을 때 받은 보고 중, 그런 일이 생길 조짐이 보여 급하게 금왕표국의 표사들을 고용해 파견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 의원님네 얘기에요! 의원 건물 반이 무너지고 환자들도 크게 다쳤댔어요. 표사 분들 중에 사망자도 꽤 나왔다고 들었는데…….”

리에게서 얘기를 들었는지 신생이 열변을 토하다가, “맞다! 스승님, 이거요!” 하며 짐을 뒤져 두꺼운 서찰을 건넸다.

“이걸 먼저 전했어야 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이 계속돼서. 총관님이 스승님께 전하라고 했던 보고예요.”

리가 쓴 보고서에도 그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여러 곳을 들쑤시는 대신, 제일 먼저 태양의원 가맹이 되어 무당에 불만을 가진 다른 의원들을 설득한 한 의원이 타깃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금왕표국의 표사들이 제때 도착하긴 했지만 무당 무인들의 손속이 거칠어 표사 몇 명이 사망했고, 싸움 도중 의원 건물 한쪽에서 벽력탄이 터지는 등, 싸움의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건물이 무너지는 일로 죽은 환자가 없고 한 의원과 그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걸까.

“무당이 미쳤군.”

그 전에도 의원들을 무당의라는 이름에 묶어두기 위해서 갖은 지저분한 짓을 쓰긴 했지만 이 정도로 본격적인 깡패짓을 하는 건 내가 알기론 처음이다.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왕표국의 손을 빌리고 있지만 그걸로는 한계에 봉착할 게 빤하다. 청화문의 청화를 통해 의원들에게 신변보호를 위한 호신술을 가르쳤지만 이 정도 싸움이 일어나면 무용지물일 뿐.

“태양의원의 그늘 아래 들어온 이들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겠는데…….”

무력이 가장 생각하기 쉬운 수단이지만, 이번에 손에 넣은 하오문과 십이월들은 당장 하오문의 피해를 수습하고 새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없을 거고. 개방이나 정반합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거다.

거기다 상대는 무당이다.

하오문의 무력은 그들에 비할 바가 못 될 거고, 같은 구파일방이어도 개방도 한 수 접어줘야 하는 상대.

다른 방법으로 무당의 손발을 묶는 수밖에 없겠군.

“미안합니다. 미력하나 나라도 사죄하겠습니다.”

현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황을 보아하니 이 녀석, 무당의 처사를 견디지 못하고 장문인과 한 판 붙고 뛰쳐나온 모양인데…….

현건, 무당의 삼대제자 중 대제자.

이 녀석으로 무당의 손발을 묶을 수 있을까?

“자세한 얘기나 좀 들어보지. 미안해서 우리에게 무당의 정보를 알려준 거 같은데, 왜 그렇게까지 해?”

“…….”

“그렇게 입만 다물면 뭐가 해결이 되나? 솔직히 궁금하기도 해. 갑자기 무당이 이런 일을 한 건 아니잖아. 그 전에도 비슷한 짓들을 저지르지 않았나? 이번에는 확실히 도가 지나쳤지만 그 전에도 충분히 치사하고 비겁한 짓을 많이 했고, 내가 알기론 너는 그 일들의 선두에 섰을 텐데.”

“그대의 말이 맞습니다. 그 많은 일들을 내가 무당의 이름으로 행했지요.”

“쌓인 게 폭발했나? 아니면 그 이상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근데 하긴 했잖아. 환자들이 있는 건물에 벽력탄 설치하고, 터트리고. 다 하고 나니까 이건 아닌데 싶었어?”

너무 몰아붙이나? 하지만 이 고지식한 인물을 흔들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그러면?”

“진인께서, 내가 아닌 다른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청운진인. 무당의의 산실인 태청의원의 장이자 나와도 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무당의 도사.

“그냥 한 명에게 부탁한 정도로 무당을 뛰쳐나온 건 아닐 거 같은데.”

“……나를 빼고, 모두를 불러 지시했습니다. 장문인도 알고 계셨던 사안이고요. 왜 그러셨냐 여쭈니, 너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할 거 같았다며, 그저 불의의 사고가 생겼다 여기길 바라셨다고. ……제가 벽력탄의 폭발과 그냥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구분도 못 할 바보도 아닌데.”

현건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두 주먹을 꾹 쥐곤 부들부들 떨었다.

말하자면 윗선이 현건을 해당 사건에서 배제했다는 건데…… 좀 이상하네. 그럴 거면 아예 보내질 말든가. 보내놓고 왜 혼자 모르게 만든 거지? 어차피 현건 정도의 실력이면 눈치챌 거 빤히 알 텐데.

“홀홀. 장문인 자리에서 내쳐졌구만요.”

“은 파파, 그게 무슨 소리야?”

“문파에서 대제자를 키우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차기 장문인으로 키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세대의 강함을 증명하는 검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때로는 과거에는 대제자가 이 둘의 재능을 동시에 겸비했어야 하나, 요새는 대제자의 자질에 따라 다른 역할은 남은 제자들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지요.”

아하. 그러니까 은 파파의 말대로라면 현건은 차기 장문인 자리에서 내쳐졌다기보단, 차기 무당의 검으로서 낙점당한 거군.

“특히나 무당 같은 곳에선, 전대도 그러했지만, 뛰어난 검수는 뒤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일 따윈 모르게 하고 고고한 무당의 도인으로 키우더군요. 허나 그것도 너무 모르니 여러모로 문제가 생겼는지 현 대에서는 이것저것 시키기도 해본 모양입니다.”

“하긴, 무당 제일의 검이 문파 내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일을 아무것도 모르면 그 또한 문파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많겠지.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나를 속였냐 하면서.”

“그렇지요. 수뇌부와 검이 대립하는 것만큼 문파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지요. 허나 이처럼 어느 정도 현실을 알게 해놓으면, 장차 그럴 일도 없거니와, 문파의 부족함에 수치를 느껴 검으로 그 부끄러움을 씻겠다 노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홀홀.”

“무당 수뇌부는 그런 계산을 했는데, 정작 그 결과는 당사자가 수치스러움을 검으로 씻지 못하고 아예 가출을 해버렸다 이거군. 겸사겸사 보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쪽으로 향한 거고?”

현건의 얼굴이 홍시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두 분의 말씀이 틀린 바가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신분을 숨긴 것 하며 함부로 드러나지 않게 움직였던 이유, 무당의 이름을 등에 업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한 것에 지금 무당의 약점을 술술 부는 것까지.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이해가 가는 이유였다.

“허면 소협이 무당검의 제자인 겐가? 아니지, 배분 차이가 있으니 제자보다는 사손쯤 되겠구먼.”

“노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만…… 스승님께선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불리길 원치 않으십니다.”

“홀홀, 그리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살아는 있는 모양이지. 폐관에 들어간 지 벌써 십수 해가 지났는데 영 소식이 없어서 그대로 천도한 걸, 무당이 다음 대 무당검이 나올 때까지 감추고 있나 했더니.”

“현건. 인상 좋은 할머니라고 속지 마. 무슨 말만 하면 그 안에서 정보를 캐낸다니까?”

“너무하십니다요, 도련님. 다 도련님을 위해 하는 일인데.”

내 말에 은 파파가 어린 소녀처럼 입을 삐죽거렸다. 동시에 현건은 무슨 얘기인지 갸웃하다가 한참 후에야 자신이 무당이 비밀리에 숨기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는 걸 깨닫고는 안 그래도 새빨간 얼굴이 아예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버렸다.

“뭘 당황하고 그래. 무당 곳간 사정까지 다 불었으면서.”

“하지만 그건 제 의사로 얘기한 거고―.”

“어차피 밝혀진 거, 뭐. 게다가 별로 대단한 비밀도 아닌 거 같은데?”

무당제일검이라 불리는 나이든 도인이 폐관에 들어간 지 오래됐는데, 그 사람이 죽었는데 무당이 살아 있는 척 한 거라면 대단한 비밀이겠지만, 살아 있는데 뭐가 비밀이란 말인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도련님.”

“뭔데 그렇게 또 비장하게 밑밥을 깔아? 아직 하오문 재정비 얘기도 덜 끝냈는데. 은 파파에겐 그 얘기가 더 급하지 않아?”

“전이었다면, 그러니까 도련님의 몸이 전처럼 아픈 상태였다면 하오문의 재정비 따위야, 이것에 비하면 전혀 급하지 않은 얘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비해 훨씬 건강해지셨으니 그리 급하지는 않지요. 그럼에도 중요한 얘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쯤 되자 나도 감이 잡히는 게 하나 있었다.

나의 건강에 관한 얘기요, 동시에 무당과 관련이 있는 얘기.

그 두 가지가 교집합을 이루는 건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설마. 현건의 사조라는 그 무당검이?”

“예. 그 사람이 바로 사대신의 중 하나, 무당신의입니다.”

사대신의.

아버지가 나의 치료를 위해서 초빙했다던 네 명 중, 단 한 명만이 그 초대를 수락했다.

당연히 그 한 명이 무당신의는 아니다.

“폐관에 들어간 탓에 초빙할 수 없었지만, 그야말로 도련님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여겼었지요.”

무언가 말을 더 할 것 같았는데 은 파파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전음이 이어졌다.

[섬서사변 당시, 혈교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진을 완성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흐름과 도술, 의술에 이해가 깊은 누군가가 참여했지요. 허나 그는 그 연구가 그런 방식으로 쓰일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디다. 자신을 속여 그런 일을 하게 했다고 화를 내곤 더 이상 문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폐관에 들어갔지요.]

정말이지, 그때 은 파파를 살리기로 하길 잘했지.

거지들을 선택했다면 이것 또한 모를 뻔했다.

[무당신의는 그 진법의 핵심을 꿰고 있을 겝니다. 그 때문에 도련님을 살릴 수 있을 거라 믿고 무당에 몇 번이나 요청을 넣었지만, 무당신의가 그 요청을 거절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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