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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34화 (234/350)

234화

우리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긴 이야기를 하기엔 은 파파의 기력이 온전치 않았다. 생명의 징후는 확실히 돌아왔지만 정상적으로 거동하려면 한동안 요양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정말 죽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던 것이다.

“진짜 거기라고? 서안?”

은 파파가 삼생화를 발견한 곳, 그곳은 서안이었다.

서안은 섬서의 성도(城都)다.

산 사람도 그 안에 발을 들이면 생기를 빼앗긴다는데, 거기서 생기의 집합체인 삼생화가 발견됐다고?

“쇤네가 도련님께 거짓을 말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허나 그런 이유에서라면, 그곳은 너무 멉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 꺾어온 이후 다시 피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수많은 거지들의 목숨 대신 살았다는 사실을 안 은 파파가 어두운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확실히 섬서는 너무 멀다.

그 사이, 회복할 여지가 없는 거지들은 목숨을 잃을 거다.

정말 이렇게 끝인가?

결국 또 나의 선택은 후회만을 반복할 뿐인가?

머리가 아팠다.

이럴 때면 용기를 잃지 말라고,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던 홍령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

하다못해 정말 방법이 없다면 함께 마음의 아픔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목숨을 제대로 간수하질 않아 도련님의 어깨에 또 무거운 짐을 얹게 되었군요. 이 죄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아냐. 아직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은 파파를 두고 안가를 나섰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안 될 거라고 지레짐작한 채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하여 둘 다를 살려 보겠다라. 욕심이 많구나. 참으로 욕심이 많아. ……하긴, 인간은 욕심을 가진 존재이지. 고리타분한 유학자들은 짐승과 구분되는 인간의 본성이 도덕에 있다고 하지만, 그 또한 도덕에 대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연스러움이란 그 복잡한 욕심에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 너는 인간이구나. 살고자 하는 인간.”

은 파파를 살리겠다고, 그에게 다른 삼생화의 행방을 물어 이번 일에 피해를 입은 다른 이들까지 살리겠다는 나의 말에 노 신선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일전에 했던 네 말이 옳다. 살고자 하는 자에게 삶이 있겠지. 함께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자들 또한 살아갈 수 있겠지. 이제야 알겠구나. 어찌 그 지독한 죽음의 운명 속에서도 네가 살아갈 수 있는지. 다 죽은 넋들이 너를 위해 자신의 혼을 소멸하면서 너를 살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렇게 말하며, 노 신선은 내게 삼생화를 건넸다. 가지를 꺾은 것이 아니라, 뿌리째 파내어 내게 건넸다.

“어디 한번 해보려무나. 용을 쓰고 기를 써서 살아 보거라.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욕심대로 살아가거라.”

상대는 신선이다.

아무 의미 없이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금태양!!!!”

목적한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데 저쪽에서 시커먼 인영이 나를 발견하고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하며, 가면을 쓰지 않은 나의 정체를 정확히 인지하고 달려오는 모양새. 얼굴을 인식하기엔 아직 먼 거리였음에도 상대를 짐작하기엔 어렵지 않았다.

개방 방주 도개걸이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지만 도개걸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을 놀려 나를 따라잡았다.

“윤모 놈한테 들었다! 너 이놈 자식!”

곧바로 공격이 날아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도개걸은 나에게 손속을 펼치지 않았다. 의외였다. 다짜고짜 거지들에게 삼생화를 주지 않은 대가를 치르라며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대신 나와 속도를 같이 하고 달리며 물었다.

“어째서지?”

눈은 분노의 불길이 일렁였다. 허나 그것을 꾹꾹 참고 묻는 말에는 차가운 이성이 번뜩였다.

“난 네놈을 꽤 안다고 생각한다! 제자를 잃고 너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아내려 했지. 그 노파, 정반합의 회주라는 노인네는 네게 가족 같은 존재랬지? 그렇다고 해서 네놈이 별 고민 없이 수많은 목숨을 두고 친지를 선택할 놈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내 정보에 따르면 넌 그런 놈이고, 심지어 금가 그놈 새끼도 아니라고 하니까!”

내가 알던 도개걸은 불같은 사람이었다. 과거의 복수에 대한 불같은 열망으로 제자를 혹독하게 키웠고 자신을 막아서는 자에게는 거침없이 타구봉을 꺼내들었다.

그랬던 그가 내게 그 분노를 억누르고 이유를 묻는다.

섬서사변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도 그는 이처럼 차분하고 이성적인, 정제된 분노를 보여주었지.

이래서 이 사람이 개방의 방주구나.

“좌수검이 삼생화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이해하고, 납득하고, 필요하다면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당장 눈앞의 마시멜로에 눈이 멀어 꼴딱 삼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기다려 더 큰 보상을 손에 넣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가 본질적으로 거지라는 걸 생각한다면, 그게 얼마나 얻기 어려운 자질일지.

“―그게 그렇게 된 거냐?! 미친, 세상일 하곤!”

나는 선계에서 삼생화를 가져오게 된 일과 은 파파로부터 들은 얘기를 짧게 요약해 전했다. 선계에 관한 얘기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삼생화라는 증거가 손에 있는 탓인지 그 부분은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

“근데, 네놈은 다 죽어가지 않았냐? 그런 게 있었는데 왜?”

그 부분은 나도 궁금했다. 내 체질에 삼생화는 특효약이니까. 은 파파는 왜 삼생화를 내게 주지 않고 정반합에 주었을까?

“그걸 손에 넣은 게 최근이니까!”

그땐 이미 내가 상태를 제법 회복했던 거다. 더 이상 삼생화가 필요치 않았던 거지. 미리 발견했다면 내 인생이 한참이나 달라졌겠지만―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게야? 설마 섬서까지 가려고? 에이, 지금 갔다와 봤자 상태 안 좋은 놈들은 다 뒈질 게 뻔해! 소용없는 짓이야!”

도개걸 또한 나처럼 좌절하듯 내뱉었다. 신생처럼 원래 갖고 있던 내공의 수위가 높거나 나이가 어린 거지들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회복하면 선천진기가 흘러나와 살아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거지는 나이 들고 병들었다.

심지어 그날로부터 삼 일의 시간이 흐른 후다. 이미 많은 수의 거지가 죽었고, 죽어가고 있다.

“아니, 다 왔어!”

나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발에 밟혀 파삭 부서졌다.

“여기 오려고 한 거라고? 죄다 무너진 전포거리는 왜? 으윽, 아직도 기가 빨리는 거 같군.”

도개걸이 내 옆에 뛰어내려선 얼굴을 찌푸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시작이었던 금 씨 전당포, 그곳은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다. 전포거리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마물로 변한 하오문주가 폭주라도 한 것인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던 길가 여기저기에 피어있던 잡초들은 형체도 없이 재가 되어 있었다. 타버린 것이 아니다. 생기를 빨려버린 거다. 건물을 지탱하던 목재들도, 목재인 상태에서 이미 죽었다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손만 갖다 대도 파삭 부서질 정도가 되었다. 땅은 척 봐도 윤기가 없었다. 그 무엇을 심어도 자라지 않을 거 같은 땅.

도개걸의 말처럼, 이제 생기를 빼앗는 마물은 사라졌지만 이 땅에 있는 거 자체로 시들시들 말라가 버릴 것만 같다.

나는 그 파삭한 땅에 검 홍령을 뽑아들어 땅을 팠다.

“뭐 하는 거냐? ……설마?”

그 설마다.

적당히 땅을 판 후, 나는 꽃을 떼고 가지만 남은 삼생화를 구멍에 심었다.

“그게 설마…… 여기서 자랄라고?”

내 추측이 맞는다면, 아마.

아니, 자라야 한다.

그래야 한다.

“뿌리가 있으니 심어서 잘만 하면 다시 꽃이 피기도 하겠다만, 그건 신선에게 받아온 거라며? 선계에서나 자란다는 게 인세에서 뿌리를 내리겠냐? 그것도 기가 충만한 곳도 아니고, 이렇게 기를 빨린 폐허에서?”

“은 파파가 섬서에서 발견했다고 했으니까. 그곳은 여기보다 더 폐허잖아.”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어쩌면.

“어? 야야, 지금 이거, 싹 나는 거냐?”

어쩌면 모든 기를 잃어버린 땅에도 우리가 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기운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어떤 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섬서의 그 땅은 아예 없어지는 게 맞을 테니까.

자연에 진공이 존재하기 어렵듯 기의 진공도 그러하다 생각한다면, 반대로 이 땅은 기가 없는 게 아니라 기 아닌 기,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그 기운이 가득 찬 걸 거다.

꽃망울이 움튼다.

“미친, 진짜 이게 된다고……? 금가야, 지금 내 눈이 삔 게 아니지? 꿈을 꾸는 게 아니지? 나 좀 꼬집어보면 안 되냐?”

나는 그를 꼬집는 대신 꽃이 피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꽃은 빠른 속도로 피어났다. 많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거지들의 생기를 회복할 정도로는 충분했다.

“야아, 금가야…… 이게 계속 이렇게 꽃을 피우면, 이제 너는 뭐 먹고 사냐?”

천천히, 그러나 자연의 속도보다는 훨씬 빠르게 피어나고 있는 꽃을 보며 도개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삼생화가 계속해서 이 자리에서 피어난다면 의원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거나 부족해서 생기는 게 병이라면 그 생기를 제대로 보충하고 균형을 맞춰줄 때 병은 저절로 낫는다. 의원이 필요하지 않은 거다. 어떤 의미에선 모든 의원들이 가장 바라고, 또 모든 의원들이 가장 바라지 않을 상황일 거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할걸.”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흙에 뿌리박힌 나무가 꽃에서 먼 곳부터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은 파파가 섬서에서 꺾었던 나무 또한 이러했다 들었다.

꺾은 가지를 다시 심어도 꽃이 피지는 않았다고.

단 한 번, 다시 꽃을 피운 건 선계에서 직접 가져온 가지라 가능했던 걸 거다.

“한 송이씩만 두고 나머지는 뜯어가. 가서 거지들을 구해. 좀 남는다면 피해를 본 다른 사람들도.”

“그, 그래. 알았다.”

도개걸은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삼생화를 종류별로 뜯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개방 본타 쪽으로 달려가려다가 멈췄다.

“고맙다, 잊지 않으마!”

그 말을 하곤 도개걸은 나를 쫓아왔을 때보다 더한 속도를 발휘하며 서둘러 뛰어갔다.

나는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진 도개걸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 송이씩 남긴 삼생화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걸로 개방의 도움은 확실하게 확보했다.

도개걸은 내가 정반합의 회주가 되는 걸 찬성하는 건 물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거다.

전이었다면 그런 일 따위 관여하지 않고 내 일, 의원을 운영하는 일에만 집중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내게 이유가 생겼다.

섬서사변의 주모자를 찾아내야 하는 이유가.

“……홍령을 찾아야지.”

한 송이씩 남았던 삼생화는 더더욱 만개하더니, 이내 꽃잎이 하나둘 떨어졌다.

꽃술이 크게 부풀며 열매의 형태가 되어갔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

열매가 빠르게 익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툭, 하고 터지더니, 흰 빛부터 엷은 분홍빛, 그리고 핏빛을 띠는 씨앗들을 드러냈다.

손으로 살살 훑어 씨앗을 받아내고 나자, 삼생화는 빠르게 시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시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고는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었다.

그 땅에서 작은 새싹이 피어올랐다.

삼생화가 아니라 그냥 잡초였다.

나는 그 잡초를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던 모든 것을 손에 넣었음에도, 예기치 않게 잃어버린 단 하나의 소중한 것 때문에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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