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33화 (233/350)

233화

나는 항상 그런 게 불만이었다.

왜 인생은 모 아니면 도인가.

아니, 왜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두고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하나.

전생의 나는 내 양심과 도덕을 버리고 성공을 택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다 버리지도 못했다.

결국 양심의 마지막 끄트머리까지 베어내지 못해 마지막 순간에 양심을 택했고 같잖은 성공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왜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걸까.

어떻게든 기를 쓰고 악을 쓰며 끝으로 올라간 다음에 그제야 빛바랜 이상에 푼돈이나마 흘려주는 방식이 아니면 둘 다 가지는 건 불가능한 걸까?

사회의 자원을 빨아먹으며 사측의, 주주와 회장 일가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진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경영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생색내기용 자선사업 좀 하고 마는 게 아니라, 회사의 존재 자체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그런 사업.

다시 태어나 나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런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무너진 동굴이 아니라 어느 산등성이에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성이 보일 정도로 항주와 가까운 곳. 시간이 별로 없다더니 노 신선이 원래의 입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나를 보내준 모양이었다.

나의 손에는 삼생화가 핀 가지가 단단히 쥐여져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곧바로 항주 시내로 달려 들어가 사건이 있던 곳으로 달렸다.

며칠이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일대는 나름 정리가 되어 있었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거지들은 그 일대 밖으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을 찾아 헤맸다. 도개걸이나, 신생이나, 아니면―

“어? 자하신룡, 아니, 금 의원?!”

윤모, 무한 지부장이 있었다. 도개걸에게 내 정체를 들었는지, 가면이 없어도 나를 알아봤다.

“은 파파는? 내가 도개걸한테 맡겼던 노파, 어디로 옮겼지?”

“그 노파라면 다른 노친네들이 와서 자기들이 데려가겠다고, 아니, 그보다 그 꽃은 그거 아니요?!”

윤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걸 압니까?”

“사람 살리는 꽃, 그거 아뇨! 그거 방주가 합에 구걸을 해가지고 꽃잎 한 개 얻어왔을 때는 뭘 얻었다고 호들갑이냐고 했는데! 그때도 약에 절어서 구걸도 못 다니던 놈들이, 솥에 그 꽃잎 하나 넣고 끓인 물을 먹고 약을 다 끊었었다고!”

“마약 후유증을 치료했다고? 이걸로?”

“그렇다니까. 이야, 이게 몇 송이야? 이 정도면 항주 시내 거지들, 며칠 전에 앓던 놈들은 물론이요 약에 전 놈들까지 다 구하겠네! 이리 줘봐. 어서 끓여서 애들 나눠주게.”

윤모가 얼굴이 화색이 되어서 삼생화에 손을 뻗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손을 세게 쳐냈다.

“아이고, 내가 뭣도 모르고 손을 댈라 그랬네. 함부로 건드리면 부정 타고 그러는 거지? 아무렴, 약은 의원이 다뤄야지. 자자, 내가 저 폐허에서 거지솥은 겨우 파내왔으니까―.”

“아니, 이 약은 쓸 데가 있어.”

“응?”

“도련님!”

내가 윤모의 손을 쳐낸 순간, 저쪽에서 나를 발견한 노인이 헐레벌떡 내 앞으로 달려왔다. 십이월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건 설마! 세상에, 도련님이 삼생화를 구해오시다니! 아이고, 그 노친네가 아직 죽을 명이 아니구만. 어서 가시지요, 저희가 안가에 따로 데려다 놨습니다.”

“상태는 어때?”

“오늘내일 합니다. 곧이라도 숨이 깨꼬닥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어떻게 용케 버티더라니.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었구만요.”

십이월이 감격에 찬 얼굴을 하고 어서 가자며 나를 붙들었다.

그러나 또 다른 손이 나를 붙들었다. 윤모였다.

“지금 그거를, 살 만큼 산 노인네 살리는 데 쓰겠다고?”

윤모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무한지부장은 꽁으로 된 게 아니라는 듯 쉽게 뿌려쳐지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이거면 이 동네 거지를 다 살릴 수도 있는데! 이봐, 금 의원. 그거 정말 다 들고 갈 생각인가? 노인네 하나 살리는 데 그게 다 필요할 리가 없지 않나?”

“이건 또 뭔가? 그 손 저리 치우게!”

십이월이 윤모의 말에 발끈했다. 살기를 담은 손날이 나를 붙잡은 윤모의 팔을 내려쳤고 윤모는 그대로 그 공격을 버텼다.

“윽!”

“어쭈, 이거 보게?”

날 붙잡은 팔 쪽에서 뼈가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윤모는 나를 놓지 않겠다는 듯 내 소매를 더욱 꽉 붙잡았다. 성난 십이월이 눈썹을 치켜떴다. 더 냅두면 큰 싸움이 되겠다 싶어 내가 윤모의 팔을 떼어냈다.

“미안합니다. 당장은 은 파파를 살려야 합니다. 나이가 많고 생기를 많이 소모해서, 이걸 전부 써도 겨우 일어날 겁니다.”

확실히 미안한 일이라 말투도 절로 공손하게 돌아왔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붙든 윤모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냈다. 대놓고 뿌리칠 때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더니 하나하나 떼어내자 손이 떨어졌다.

“하나만, 딱 하나만 줍쇼. 꽃 하나를 통째로 달라곤 안 하겠습니다, 꽃잎 하나만 주십쇼!”

그러더니 이내 내 앞에 넙쭉 엎드렸다. 흙바닥이고 뭐고 상관도 안 하는 모양이었다. 거지가 그런 것을 신경 쓸까 싶지만, 거지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무한지부장쯤 되면 직접 흙을 묻혀가면서 무릎 꿇고 구걸을 하는 일 같은 건 없을 텐데.

“금 의원, 제발. 금가 형제들 중에서는 제일 품성이 좋다고 소문난 금 의원이 아니요? 일전에 무한에서 벌인 큰 잔치로 우리 거지들이 다들 소리 높여 금 의원 이름을 칭찬했는데, 금 의원이 데려간 신생 그 아이도 원래는 거지였는데! 제발, 제발 내가 이리 빕니다. 잎 하나만 떼어주시오, 제발……!”

“도련님, 이런 거지는 상관 말고 가시지요!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금 의원! 내가 이렇게 빌겠소이다! 가면 안 됩니다, 가면!”

윤모는 아예 내 앞에 바짝 엎드려 내 바짓자락을 잡았다.

“미안합니다.”

나는 그 손을 다시 떼어냈다. 그리고 다시 붙잡지 못하게 서둘러 달렸다.

“금 의원!”

뒤에서 윤모의 거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잡아! 저거 잡아!” 하는 외침이 뒤따랐다. 몇몇 거지들이 거리에서 튀어나와 나와 십이월의 뒤를 따라 달렸다.

“저, 거지새끼들이!”

십이월이 품에서 신호탄을 하나 꺼내 터트렸다. 하늘 위로 기묘한 푸른빛이 피어올라 터졌다.

“다른 노인네가 달려와 안내드릴 겝니다. 북서쪽으로 쭉 가십쇼! 저 거지 놈들은 이 노친네가 맡겠습니다!”

나는 북쪽으로 달렸다. 거지들도 나를 쫓아 달렸다.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도 삼생화는 그 모양이 망가지거나 흐트러지는 일 없이, 거친 바람 속에도 고고했다.

아등바등하는 인간들을 비웃는 것처럼.

“금태양! 너만큼은, 너만큼은 다른 줄 알았는데! 너도 똑같아! 금왕 그 새끼 자식이다, 아주 똑 닮았다!”

십이월의 방해에도 끝없이 쫓아오던 윤모가 결국 십이월의 손속에 다리를 다쳐 지붕에서 미끄러지면서 악을 써대는 소리가 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도련님! 이쪽!”

북서쪽으로 달리다 갑자기 튀어나온 또 다른 십이월이 나를 붙잡더니 휙 골목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위장된 문을 열어 나를 그곳으로 집어넣고 문을 닫았다.

“어디 갔지?”

“갑자기 사라졌어! 찾아!”

거지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멀어져갔다.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곳으로 오면서도 길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던, 죽어가던 거지들이 너무 많았다.

윤모가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던 이유가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나는, 은 파파를 살려야 했다.

“안에 있습니다.”

누구도 내게 일이 어찌 되었냐 가타부타 묻지 않았다. 항아는, 보주는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들어간 동굴이 파괴된 걸 알고 있을 텐데 거기서 어떻게 몸 성히 살아 돌아온 건지. 손에 든 것은 대체 무엇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은 파파에게 안내했다.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

“은 파파, 나 왔어.”

골방의 침상에 누워 있는 은 파파는 마치 시체 같았다. 바짝 마른 거죽은 팬 곳마다 퀭해서 보기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마 이게 은 파파의 민낯이겠지.

친손자 같던 내게도 보여준 적 없는 진짜 얼굴 말이다.

맥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정말 최소한의 생명 유지 활동만 기능하고 있는 몸.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다.

그 일전이 아니었어도, 근시일 내에 은 파파는 유명을 달리했을 거다.

“어서 일어나. 물어볼 게 있어.”

나는 삼생화를 가지에서 송이째 떼어 은 파파의 바짝 마른 얼굴 위에 뿌렸다. 흰색, 분홍색, 그리고 붉은색의 꽃잎들이 바람에 벚꽃잎 흩날리듯 버석버석한 살갗에 후두둑 떨어져 곧 물처럼 변했다. 그리고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파르라니 깎은 은 파파의 민머리를, 그리고 숭숭 빠진 눈썹을 손으로 훑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혈을 짚고 맥을 짚었을 때 은 파파의 상태를 알았다. 온몸에 병이 퍼져 있었다.

독한 약으로 몸의 병세를 억눌러놓은 상태.

그리고 그 약의 독성으로 인해 온몸의 털이 빠져 아예 머리를 밀어버린 거겠지.

소림에서 만났을 때 의심하긴 했었다.

아미승으로 분했던 것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그 민머리가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피의 모공과 모공 속의 흰머리까지 구현하는 것은 이 시대의 분장 기술로는 너무나 까다로운 일이니까.

그래서 은 파파가 머리를 밀었음을 알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께 가는 여행을 제안했다.

기회가 된다면 은 파파의 맥을 짚고 그 병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병이 심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나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랐는데, 그렇게 시작한 여행길이 이렇게 되다니.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운명은 인간에게 치열하게 선택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선택을 요구하면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운명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으으…….”

은 파파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름진 눈이 뜨이고, 눈동자가 나를 알아보았다.

“도련, 님……?”

“그 목숨은 내 거랬지. 왜 또 멋대로 죽고 살고를 결정해? 죽고 싶어?”

나는 다소 장난스럽게 말하며 은 파파의 맥을 짚었다. 좋다, 살아났다. 죽을 때가 되었던 몸이라 여전히 맥이 지쳐 있었지만 생명의 고동이 느껴졌다. 충분한 요양을 거친다면 확실히 살아날 수 있다.

“쉬게 해주고 싶지만, 당장 물어봐야 할 게 있어. 대답할 수 있겠어?”

그걸 위해서, 수많은 목숨과 망가져 버린 삶을 되살릴 기회를 포기하고 은 파파를 선택한 거니까.

“은 파파는 알고 있지? 선계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삼생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

좌수검은 소림에게 삼생화를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하나가 더 있다며 내게도 그 꽃을 주었다.

회주인 은 파파가 아니라면, 누가 그것을 구해 소림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쓰라고 줄 수 있겠는가?

은 파파는 그것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 나이 든 그림자에게선 들어야 할 진실이 남아 있다.

“은 파파와 아버지가, 과거 섬서사변에서 거지들에게 지었던 죄를 갚을 때. 그게 바로 지금이야.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하면 그걸 구할 수 있지?”

나는 더 이상 운명이 내게 요구하는 선택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인생을,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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