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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28화 (228/350)

228화

은 파파의 두 손에서 조각난 은사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 대상은 나, 그리고 마물이 되어버린 하오문주 둘 다였다.

“윽-!”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노인네가 무슨 내력이 이렇게 강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은침들이 내 옷과 피부 여기저기에 파고들었다. 검으로 급하게 쳐낸 것이 상당수였음에도 남은 침들이 나를 제압할 만큼 많았다.

[세상에, 이런 은침으로 변수와 허수, 실수를 따로 펼친다고요?!]

홍령이 그 수에 기겁을 하며 외쳤다. 내가 쳐낸 것은 화려한 허초, 나를 제압한 것이 실초였던 거다.

[검으로 하는 건 들어봤어도 암기를 이 정도로 뿌릴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말이 안 될 리가 있나. 당장 내가 당했는데.

“젠장, 이거 왜 이렇게 안 뽑혀?!”

하반신으로 쏘아진 은침들은 바닥과 나를 단단하게 묶었고 피부에 박힌 침 몇 개는 교묘하게 혈을 눌렀다. 혈과 혈 사이에 쏘아진 침이 마치 뜨개질을 하듯 정교하게 얽혀서, 내공으로 밀어내려고 해도 쉽사리 밀려나지 않았다.

특히 팔, 검을 쥐고 있는 손과 팔은 어찌나 섬세하게 침을 쏘아냈는지 이중 삼중으로 점혈을 얽었다. 점혈 자체는 약했지만 기의 흐름을 제대로 꼬아 놨다. 함부로 이걸 뚫었다간 혈도가 상한다.

“이 망할 할망구가, 진짜!”

허초를 맞고 실초를 막아냈어도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거다. 내가 그걸 막아내려 검을 휘두른 궤적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허초가 실초고 실초가 허초였다.

내가 어느 쪽을 선택했든 은 파파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거다.

둘 다 막지 않고 육탄전으로 은 파파를 막으려 했다면 더더욱 강한 주박에 걸렸겠지.

이중 삼중으로 덫을 깔아놓고 내 발목은 붙잡은 그림자는 그 사이 마물의 등 뒤로 쇄도했다.

앞뒤로 정신없이, 마물이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내달리자, 반짝이는 은사는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그물이 되어 있었다.

“미련과 아집만 남은 제자야, 이제 그 욕심을 끝낼 때다!”

은 파파의 손이 은사의 마지막 끈을 힘 있게 잡아당겼다.

저 은사의 위력은 항주로 오며 수채를 정리할 때도 본 적 있다.

아지랑이 같은 것이 허공에 반짝 흩날리더니 수십에 달하는 수적이 머리를 잃었다.

그때처럼, 마물의 기괴한 형태가 산산조각이 나 모든 것이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은 파파!”

은빛 실선들이 벼락처럼 반짝였다. 마물의 기괴한, 신체라 부르기도 애매한 덩어리들이 투둑, 툭 잘려나갔고 단면에서 지독히도 새빨간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 모든 것을 뒤집어쓰며 최후의 한 방을 날리기 위해 파고들었던 은 파파에게, 그 모든 살덩어리와 피가 눌어붙었다.

“흐억―!”

그 살점과 피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은 파파의 생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나이 들고 주름졌던 얼굴이 늙은 고목처럼 뻣뻣해지고 언제나 총기를 잃지 않았던 눈에 빛이 흐려졌다.

“안 돼!”

그 순간, 억지로 점혈을 끊어내자마자 은 파파를 둘러싼 살덩어리에 칼을 집어던지고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아 내달렸다.

[괜찮아요?!?]

어차피 나를 오랜 시간 잡아둘 점혈은 아니었다. 복잡함과 정교함만큼 지속시간은 찰나. 거의 끝날 즈음 억지로 뜯어냈기에 심하게 고통스럽진 않다.

그보단.

“가만 안 둬!”

은 파파를 구하는 일이 급했다.

만지는 것만도 불쾌한 살점을 잡아 뜯고 살아 있는 것처럼 꿀렁이며 달라붙은 피를 물웅덩이를 헤치듯 마구 훔쳤다. 은 파파의 몸이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지려던 찰나, 마지막 살점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도, 도련―.”

“입 닥쳐! 내가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지! 그 목숨은 내게 맡긴다며, 그 또한 거짓이었나?”

“저는, 전…….”

“이 죄는 끝난 후에 묻겠어. 그때까지는 죽지 마! 죽을 거 같아도 살아! 죽어도 다시 살려낼 거니까, 내가 그러기 전에 이 악물고 살아 있어!”

은 파파가 흐릿하게 대답을 흘렸다. 때마침 저쪽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아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금태양……! 살아 있냐? 크……. 왜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도개걸? 마침 잘 왔다!”

나는 내 쪽을 향해 달려오는 도개걸에게 은 파파를 휙 집어던졌다. 아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도개걸은 곧바로 안정감 있게 은 파파를 받아들었다.

“데리고 멀리 도망가!”

“뭔데? 웬 노친네인데?!”

“정반합의 물주시다, 잘 모셔! 신생은 무사하지?”

“어? 회주?!”

도개걸이 이쪽으로 돌아왔다는 거 자체로 신생의 무사함은 확인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 정도 얘기해놨으면 은 파파도 도개걸이 알아서 챙기겠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은 파파가 잘라냈던 살과 피가 얼음처럼 녹아 바닥으로 사라지더니, 그걸 다시 흡수라도 한 것처럼 마물의 몸이 재생되었다.

그 상처를 신경 쓰느라 내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미친, 저런 게 가능해요?!]

원래도 당연한 건 아닌가 보군.

웬 판타지 영화 같은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여긴 무공이 있고 신선과 선계가 있는 곳이니, 저것도 흔한 일인가 했다.

“흔하진 않지만 적어도 가능한 일이긴 한 거겠지!”

검을 뽑았다. 화산의 검이 소리 내어 울었다.

화산 또한 도가문파요, 도문은 자연(自然)스러움을 추구해 그 자연을 담은 존재인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수련하는 곳이다.

그런 곳의 기운을 담아 벼려진 검이 자연을 거스르는 사특한 것을 만났을 때 검명을 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

덤불처럼 자란 매화의 잔가지처럼 빽빽한 적을 향해, 재생의 검이 거친 검로를 그린다.

으어어 으어어어―

마물의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내 검은 꺾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베지는 못했지만 목표한 것을 성실하게 베어냈다.

좀 전 은 파파의 수에서 배웠다. 허초이되 실초, 실초이되 허초이다.

만약 이 모든 수를 무시하고 나를 치려 한다면, 그 모든 것이 실초가 되어 내게 살을 내주게 되거나, 또는.

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

모든 것이 또한 허초가 되어 뼈를 뽑히게 될 거다.

검 홍령이 상대의 정수리부터 하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선을 일직선으로 곧게 그었다.

어어어어어째서어어어어―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던 마물이 다시 쩌억 쩍 달라붙었다. 하지만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달라붙는 동안은 재빠르고 힘 있게 움직이지 못했다. 나의 검을 간신히 막아내는 것이 전부.

하지만 나도 그 이상을 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말라비틀어지고 있는데, 왜 당신만 멀쩡하죠?!]

나도 그게 궁금해.

나라고 아주 이상이 없는 건 아니다.

몸 전체에서 기가 조금씩 빨려 나가는 것이, 기분이 아주 더럽다. 원인 모를 출혈에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 느낌? 기의 흐름도 원래 같지 않고 그 때문인지 검의 정교함도 힘도 덜하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땡볕에 말라비틀어진 지렁이같이 바닥에 눌어붙은 개방의 거지들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몸에 힘이 좀 없다고 못 움직일 정도로 온실 속 화초로 살진 않았어.

나는 다시 검을 쥐고 파상공세를 이어갔다. 이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이보다 더 죽을 거 같은 상황 속에서도 나는 살았다. 내공을 충분히 갖추기 전에는 내 몸을 보통 사람들만큼 운신하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의원으로서 생활했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 강행군을 불사했고 내 모든 힘을 다해 사람을 살렸다.

최악의 상황에서 백 퍼센트, 아니, 200%를 쥐어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캬아악, 카야아아악!

놈은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기운을 잃고 쓰러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지 몇 번을 다시 덤볐다. 하지만 또 매번 동강이 나 회복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내게는 자신의 힘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마물의 앞을 가로막으며 이동을 방해했지만 놈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의 힘 그 이상을 쥐어짠다 해도 베스트 컨디션과는 차이가 있다. 놈은 내 방해를 뚫거나 혹은 제 살의 일부를 내어주며 이동했고, 다시 먹잇감을 찾았다.

“사, 살려……!”

“이상해, 눈앞이 흐려―.”

[당신에게 잃은 힘을 보충하는 거 같아요. 이래선 끝이 없겠어요!]

미치겠군.

물리적인 타격은 분명 효과가 있다. 내공을 담아 베어내거나 장력으로 파괴하는 것 또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끝없이 그 기를 보충하는 상대를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한히 체력이 차는 보스를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내가 가진 힘도 무한이 아닌데.

일격을 가할 수 있을 때마다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렸더니, 몇 번의 일전이 지나자 슬슬 힘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미미하긴 하지만 내 기운 또한 빼앗기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상대에게 말린다.

상대는 거대한 불길이었다. 있는 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몸집을 불린 화마.

이런 불을 끄려면 타버릴 것을 먼저 제거해버리는 방법이 가장 손쉽고 빠르지만―

그렇다고 놈에게 기를 흡수당할 사람들을 내가 죽일 수는 없다.

[머리, 머리를 공격당했을 때 가장 움직임이 느렸어요! 회복도요! 맞아, 그러고 나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사람으로 치자면 심장, 그리고 하초를 공격당했을 때도 그랬다.

전부 단전이 있는 곳이다.

[아……!]

머리는 상단전, 심장은 중단전, 하초 부근은 하단전.

인간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기를 받아들여 인간의 형태를 벗어난 괴물이지만, 결국 기가 고일 수 있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단전.

[세 개의 단전을 한 번에 파괴한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나는 거리를 두고 한 발짝 몸을 빼며 내 몸 상태를 가늠했다.

그냥 베거나 상처를 입히는 정도로는 안 된다.

분쇄기에 넣은 듯 완벽하게 파쇄해야 한다.

……전력을 다한다면, 한 곳 정도.

목숨을 포기할 정도라면 두 곳까지 가능할지도.

[잠깐만요!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런 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도망친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도 안 돼요! 그럴 바엔 차라리 도망쳐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해줄 거예요!]

누가 하겠어.

나를 제외하곤, 근처에만 와도 다 말라 비틀어져 버리는데.

왜 나만 괜찮은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웃기지 마요! 도망쳐요! 안 된다니까요!]

홍령이 강제로 내 몸에 빙의하려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안 그래도 힘을 아껴서 더 깊은 한 방을 날려야 하는 판에 괜한 데 힘쓰게 하지 말라고.

[이봐요! 금태양!]

신기하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네.

홍령.

내가 네 아들이긴 한가 봐.

[헛소리 말고요!!! 그럴 거면 내 아들 하지 마요! 그만둬요! 도망쳐요!]

홍령이 비명을 내질렀고, 나는 잠깐 몸을 안정시킨 기운을 모아서 다시 한번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저게 대체 뭐지. 당신은 아나.”

“모르겠는데요? 그치만 저기 있는 사람은 아는데요!”

저 너머, 내가 아는 얼굴들이 나와 비슷한 낯으로, 조금 힘들긴 하지만 죽을 만큼은 아닌 표정으로 나타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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