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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25화 (225/350)

225화

미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이미 죽은 지 일 년이 지난 사람을 살린다고?! 강시 같은 건가?”

“설마 그 정도로 하오문주가 넘어갔을 리가요!”

십이월 중 발이 빠른 두 노인이 보다 빠른 속도로 항아루를 향해 달려갔고 은 파파도 속도를 높였다. 나도 이를 악물고 그들을 따라갔다.

“허나 그 말을 꺼낸 상대가 상대라, 가만 좌시할 수는 없지요!”

“그게 누군데?!”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하오문주의 거래자는 혈교입니다!”

[혈교!]

한 번도 제대로 마주친 적 없지만 나와는 이런저런 일로 엮인 적이 많은 집단.

섬서사변의 배후로 추측되며, 무당이 있는 양양에서도 놈들이 퍼트린 고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모용갑! 그자도 혈교의 인물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말이 나왔었잖아요!]

그래. 그때 모용갑이 죽은 일도 이상했지.

갑자기 강력한 힘을 발휘하다가 그 힘에 취하더니, 이내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부터 폭발해 놈을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런 이상한 일을 하는 조직이니 또 수상쩍은 일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지.

[가요! 그런 놈들에게 불로불사의 약이라고 불리는 보주를 내어줘선 안 돼요!]

안 그래도 최대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고!

벌써 항아루의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오문도로 보이는 자들이 집을 이주하는 개미처럼 빠르게 항아루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먼저 달려간 십이월들은 두 방향으로 갈라져 달리더니, 이내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왼쪽이 파란색, 오른쪽이 빨간색이에요!]

“왼쪽입니다! 하오문주가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알았어!”

신호를 확인하자마자 급격하게 방향을 튼 후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건물들의 고저차가 너무 심해서 맨땅을 달리는 게 훨씬 나았다. 땅을 접어 달리듯 모래먼지를 가르며 내달리자 마침내 하오문주가 탄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쳇, 빠르군!”

추격을 눈치챈 하오문주가 품에서 웬 주머니를 꺼내 그 안의 것을 뿌렸다. 붉은 가루였다.

[잠깐만요, 저건 설마?!]

“도화입니다! 도련님, 숨을 참으십시오!”

은 파파가 고함을 질렀고 나는 그 즉시 얼굴의 혈 곳곳을 빠르게 짚었다. 코와 입으로 하는 호흡뿐 아니라 피부 곳곳의 구멍까지 꽉 맞물렸다.

은 파파는 품에서 특수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두건을 서둘러 뒤집어썼고 뒤따라오는 십이월들 또한 그랬다.

하오문주를 따르던 문도들도 비슷한 무언가를 뒤집어썼다. 이쪽이 수단을 무력화 할 수 있다는 걸 저쪽도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저 비싼 걸 바닥에 버리다시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오문주가 뭘 의도했는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어, 어어……! 기운이 난다, 뭐든지 할 수 있어……!”

“너, 너무 좋아……! 더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길바닥에 돌멩이처럼 흩어져 있던 거지들이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화를 흡입한 이들의 눈은 시뻘겋게 물들었으며 그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저자들을 막아라!”

하오문주의 말에 도화를 쫓던 시선들이 일순간 우리를 향했다.

“저놈들, 저놈들을 막으면―.”

“최고의 기분을 맛볼 수 있어……!”

거지들이 허리춤에서 팔뚝만 한 몽둥이 하나씩을 빼들었다. 개방 거지들의 무기인 타구봉이었다.

[맞아, 여긴 하오문의 본문인 동시에, 개방의 본타―!]

“가자! 저놈들을 때려잡아!”

“개 패듯이 패자!”

싸움 좀 해 본, 그리고 개방에서 수련을 받아본 삼류 거지들의 타구봉이 쓰나미와 같은 기세로 정신없이 쏟아졌다. 그 중간 중간 실력 있는 고수들의 타구봉이 내 검과 약점을 노리고 공세를 펼쳤다. 도화를 흡입한 탓인지 그 기세들이 도저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죽이면 안 돼! 은 파파, 죽이지 마!”

하필 상대가 또 거지였다. 정반합과의 문제도 있고, 당장 개방 본타에서 거지들을 학살했다가 그 뒷수습을 어떻게 하냐고!

[조심해요!]

홍령의 경고성에 내 후두부로 내려치는 타구봉 하나를 겨우 피했다. 갈수록 거지들의 포위망이 좁혀져 왔다. 이들 중 제일 실력이 좋은 이도 개개인으로 상대한다면 단숨에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다수가 하나를 둘러싸고 두들겨 패는 구도에 익숙한 거지들이라 그런지 쉽게 승기를 잡거나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상대를 꺾는 수단이 팔다리를 베거나 검면으로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키는 등의 소극적인 수단뿐이어서 더 그랬다.

“젠장, 하오문주가!”

기백이 넘는 거지 떼에 둘러싸인 사이 하오문주의 마차가 다시 멀어졌다.

“도련님, 가십시오!”

은 파파의 목소리와 함께 거지 떼의 단말마가 거리를 울렸다.

“죽이지 말라니까!”

“지금은 도리가 없습니다! 이 노구가 다 짊어질 테니, 어서요!”

은 파파는 자기를 둘러싼 거지들을 헤집고 빠져나오더니, 아예 내 옆으로 끼어들어 와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도화에 눈이 먼 거지들은 유람선에서 청수채 채주가 그랬듯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덤벼들었다.

[가요! 은 파파 말대로 지금은 그거밖에 방도가 없어요! 이런 짓까지 하면서 도주하는데, 놓쳤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홍령의 말이 맞다. 은 파파의 칼에 맞아 쓰러지는 거지의 뒤통수를 밟으며 뛰어올라 그대로 거지 떼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 어디로 방향을 꺾었는지 하오문주의 마차는 보이질 않았다.

[내가 찾아볼게요!]

홍령이 하늘 높이 몸을 띄웠지만 그렇다고 인공위성처럼 상대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다시 건물 위로 올라갔다. 건물 높이가 들쭉날쭉해서 쉬이 작은 마차를 찾을 수는 없지만―

보인다, 낡디낡은 객잔.

개방의 본타인 낡은 객잔에서 도개걸을 비롯한 거지들이 방금의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허둥지둥하며 서둘러 골목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여기다! 본좌가 더러운 거지들을 척살했다!”

내공을 담아 사자후를 외치듯 일갈을 질렀다. 나를 발견한 도개걸이 눈에 불을 켜고 날 듯 달려왔다.

“웬 놈이 감히 이 개방의 앞마당에서―, 잠깐, 네놈? 네놈이?!”

“급하게 부르느라 그랬어. 지금 그 거지들 정상 아냐. 하오문주가 도화를 뿌렸어.”

“뭬야? 그 계집이 마약을 팔다 돌았나!”

“그 거지들 눈에 뵈는 거 없어. 하오문주 말만 따라. 지금 보주를 들고 튀었는데 혈교에 넘길 예정이래.”

“―뭐, 혈교?!”

“그러니까 빨리. 정보 받았을 거 아냐? 하오문주의 마차, 어느 방향으로 갔어?”

“저기 저쪽, 서쪽!”

도개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개걸이 “같이 가자, 이놈아! 야, 다 서문으로 가!” 하고 외치곤 나를 뒤따라 왔다.

해가 지고 있었고 서문으로 향하는 이들은 적었다. 해가 진 후 시신을 성 밖으로 나르려는지 여기저기 운구차가 길가에 서 있었다. 그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길거리를 화려한 하오문주의 마차가 속도를 내며 달려갔다.

“놓칠 거 같으냐!”

마부가 어찌나 말을 재촉했는지 마차를 끄는 말은 피투성이가 된 채 달리고 있었다. 하오문도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지만 거지들처럼 떼거지로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서너 명이 어설픈 합격으로 덤벼드는 걸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문을 나가기 전에 잡아야 했다. 성을 나가면 어느 방향으로든 향할 수 있다. 행방이 묘연해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방주, 이것들 맡아!”

“이놈이 자꾸 아랫사람처럼 부려먹으려고 해!”

도개걸은 버럭 성질을 냈지만 내가 빠진 구멍을 바로 메우며 타구봉을 휘둘렀다.

“이 개 같은 하오문의 졸개들아! 네놈들 대가리를 시원하게 빠개는 날을 내 스무 해 전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뒤에서 두개골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들이 요란했고, 이어 쫓아온 개방의 정예들이 하오문도들과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리고―

“잡았, 다!”

마차의 끄트머리를 붙잡자 앞으로 달려가던 힘이 거칠게 저항했다. 손바닥이 까질 듯했지만 그대로 붙잡고 버텼다. 발바닥이 땅을 거칠게 긁으며 뿌연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히히힝―!

앞으로 달려가던 힘과 내가 붙든 힘이 동률을 이룬 그때, 말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마차가 뒤집어지며 굴렀다. 그 순간 안에서 한 명의 인영이 쏜살처럼 튀어나왔고, 나는 놓치지 않고 그 앞을 가로막았다.

[하오문주가 아니에요!]

마차가 뒤집히며 발생한 모래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눈앞의 상대를 분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월……!”

낯익은 얼굴이 좋지 않겠냐며, 은 파파의 얼굴을 쓰곤 나를 마중하러 나왔던 십이월 중 한 명이 서늘한 얼굴을 한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아직 얼굴의 절반에는 하오문주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사월은 거칠게 인피면구를 뜯어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목을 꺾으며 두둑 소리를 냈다.

“당신을 이곳으로 꼬여냈으니 이 노인네의 임무는 잘 마무리한 모양이구만요.”

“양동작전이었나……!”

“아무렴야, 그 정도는 기본이지요. 아마 항아는 지금쯤 그곳에 도착해 혈교의 인사들을 만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월의 표정은 참으로 무심했다.

“처음 날 환영하러 왔던 그 태도부터 거짓이었던 건가?”

“설마요. 제가 당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를 때, 그때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내 핏줄의 미래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은 아니어도, 적어도 남부끄럽지 않을 삶은 줄 거라고 믿었고요.”

“그런데 왜―.”

나는 주변을 살피며 계속해서 사월에게 말을 붙였다. 하오문주가 어디로 도주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 뭐라도 말을 붙이다보면 사소한 실마리라도 뱉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세월이라는 게 참 덧없습디다. 그 영민하던 사람들도 강산이 두어 번 변하니 다 잊어버렸나 보더군요. 내가 젊을 적에는 하오문 섬서지부를 맡았다는 사실이라든가, 혈교의 인사들을 적극 지원하는 일을 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지요.”

“……!”

“사실 우리 같은 이들에게야 혈교든 정파든 똑같습니다. 돈을 주고 이득이 되면 그만일 뿐, 옳고 그름 따위를 무엇 하러 따지겠습니까? 허나, 당신 같은 이는 따지지요. 정파라는 이름도 의맹이라는 권위도 아랑곳 않고 옳은 것을 따지지요.”

사월이 품에서 여섯 자루의 단검을 뽑았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단단히 낀 단검은 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스치기만 해도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 이 늙은이는 불쑥 겁이 난 겝니다. 내 핏줄을 챙겨주겠다 약조는 했지만 내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압니까? 저런 비밀도 결국은 들통이 나는데, 십이월들 다 아는 내 과거는?”

하지만 스치는 순간, 상처 안으로 부스러진 입자가 파고들어 살을 도려내지 않고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 모든 걸 알고도, 저 깨끗한 연못 같은 사람이 내 핏줄을 받아줄까? 그런 의심이 들어버린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한 동료를 비명에 가게 만든 사검, 사월이 그 검을 뽑고 자세를 낮췄다.

“도련님,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번 의심이 들면 결코 모든 것을 내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게 당신이 손에 넣고자 하는 그림자란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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