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무슨 근거로 그런 의심을 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내 친모가 둘째 형님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 친모를 아버지가 데려와 취했다……라고 해도 충분히 막장이지만, 사실 내 친아버지가 둘째 형님이었다고 해도 막장이군.
다른 사람이 이런 의혹을 제기했다면 콧방귀를 뀌고 넘겼겠지만 상대는 하오문주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러진 않을 거다.
“당신도 내 친부가 둘째 형님이라고 믿는 건가?”
“아아, 거기까지 알고 있으십니까? 하긴, 소림을 거쳐 이곳으로 오신 거니 어떻게든 들을 기회가 있었겠군요. 그래요. 당신의 친모는 둘째 도련님과 꽤나 각별한 사이였죠.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요. 그 아이를 보낸 게 나였으니.”
뭐라고?
“원래 하오문의 아이였습니다. 허나 마음이 여려 기녀 일은 못 할 거 같기에 금가장으로 보냈더니 둘째 도련님과 사랑에 빠졌지요. 허나 둘째 도련님은 소림으로 출가할 몸. 장주는 두 사람을 위해 그 아이를 금가장으로 데려갔지요. 몇 달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금가장에서 아이를 낳다 죽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나도 아는 얘기였다.
“그 아이의 눈을 감겨준 것이 납니다. 어미 목숨을 잡아먹고 나온 갓난쟁이를 받은 것도 나지요. 하지만 그 갓난쟁이도 며칠 못 가 내 품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
[잠깐만요,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때 태어난 애가 죽었다고요? 당신은 여기 살아 있는데?]
“그리고 며칠 후, 장주가 그 아이와 사이에서 아들을 봤다며 이름을 태양이라 붙였다 했지요.”
말도 안 돼.
하오문주의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갑자기 그 애는, ‘나’는 어디서 튀어 나왔단 말인가?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던 갓난쟁이가 간신히 소생이라도 했나, 아니면 쌍생아라 뱃속에 산 아이가 남아 있었나. 별 생각을 다 했지요. 아니면 장주가 어디서 다른 자식을 봐선 바꿔치기라도 했나 했고요. 차라리 전자가 더 설득력 있죠. 장주는 항상 언니만 바라봤거든요. 지고지순한 사랑이었죠.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요.”
하오문주가 말한 언니란 아버지의 부인, 내 양어머니를 말하는 걸 거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본 적 없는 그분.
아버지는 그분과의 사이에서 내 일곱 형제를 봤다. 그만한 부자라면 첩이나 둘째 부인 정도는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차라리 죽었던 갓난쟁이가 다시 살아났다 믿는 게 더 설득력 있다는 하오문주의 말도 맞았다.
[게다가 하오문주잖아요. 보니까 당신 아버지를 짝사랑 했었나 본데. 당신 아버지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겠네요.]
“모든 가능성을 제하고 나면, 그래요. 막내 도련님 당신은 장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결론밖에 나오질 않아요. 허나 장주는 그 어떤 자식보다 당신을 귀애했죠.”
하오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말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누군데 장주의 아들로 자란 겁니까?”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오문주가 거짓을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내게 하오문을 넘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오문주가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씨 도둑질은 못 한다 했습니다. 당신 얼굴 그 어디를 봐도 장주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어요. 성품도 다르죠. 태양의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훨씬 큰 사업으로 키울 여지가 많은데 일일이 고용인에 대한 도리나 의리 따위를 지키고 있더군요. 장주의 핏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요. 최소한만 주고 더 큰 이득을 취했겠죠.”
“당신이 아버지에 대해 뭘 알아?”
나는 내 뺨에 손을 뻗는 하오문주의 손을 쳐냈다.
“아버지가 사업가였다는 건 나도 알아. 깨끗한 일로 돈을 모은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만 따지던 사람도 아니었어. 그럴 거였다면 뭐하러 금가장이 부리던 노예들을 다 풀어줬겠어?”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하오문주는 쓸쓸한 눈으로 손을 거두었다.
“여유가 생기니 일전의 부끄러운 일들과는 거리를 두고, 깨끗한 모습만을 유지하려 애를 썼죠. 그도 그렇네요. 당신을 아들로 삼고 난 후, 장주는 그 전과의 삶과 거리를 두었어요. ……나와 하오문도 그랬죠. 그 사람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 나였는데, 당신이 태어난 이후 우리는 철저히 외면당했어요.”
하오문주의 길고 짙은 속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뻗어 옆을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알지. 좀 전까지 그걸로 그 안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약을 빼돌린 자들을 처벌하는 걸 그 안에 들어가서 봤겠는가. 이곳에도 익히 훔쳐보는 구멍 같은 게 있으리라 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있어 그곳을 이용했다. 도박장도 아닌 곳에 왜 이런 게 있나 싶긴 했지만, 창고의 인원들을 감시하는 용도려나 했다.
“아뇨, 당신은 전혀 모르십니다. 장주는 그걸로 돈을 벌었습니다. 금 씨 전당포에 짐을 풀었으니 그곳에도 이런 구멍들과 비밀공간이 있음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뭐?”
슬슬 하오문주의 저 태도가 짜증 나기 시작한다. ‘나는 다 알아, 넌 모르지? 네가 아는 건 진짜가 아니었어. 난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라고 하는 것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한테 아버지 유산을 넘길 일 없으니 썩 꺼지라는 건가?”
“설마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장주의 아드님이 맞다 하면 얼마든지 넘길 용의가 있다고요. 진심입니다. 그렇게라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당신은 장주의 아들이 아니에요. 이걸 보고도 생각이 뻗치지 않잖습니까. 당신 아버지가 이걸로 어찌 돈을 벌었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잖아요.”
아니, 사실 약간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는 아버지가 항주의 마약시대를 연 장본인이라는 걸 설명해주지 못하니까.
어떤 종류의 사업이든, 낯선 아이템의 시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노출도를 높여야 한다. 사람들이 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단 말이다.
물건을 무료로 푸는 것?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손해를 깔고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하책.
더 저렴한 미끼를 걸고 물고기를 낚는 것이 진짜 고수의 방식이다.
저렴한 걸 넘어서 공짜 미끼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 미끼가 바로 이 구멍이다.
[뭔데요? 난 하나도 감이 안 잡혀요. 무슨 얘길 하는 거예요?]
……감이 안 잡히는 편이 좋은 거다.
이 구멍들은 도박장에도 나 있었지만, 제일 중점 되어 있던 건 내가 짐을 푼 방이다.
침상이 있던 방.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훔쳐볼 수 있는 곳이 많은 기루.
아버지와 한패가 되어 성장한 하오문.
“……매춘을 몰래 엿볼 수 있게 만들어서 사람을 꼬였나? 그렇게 꼬여낸 사람들이 도박과 마약에 쉽게 노출되게 하고, 마약 같은 경우는 간접흡연을 통해 중독 증세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겠군. 매춘을 할 돈이 없는 자들에게서 소문이 퍼지게 만들어 점차 고객을 늘려갔을 테고. 초반에는 마약을 하면 일상에서도 활력이 돌았을 테니 활력을 돋우는 약 정도로 판매를 했겠지. 술에 적당히 섞어 나눠주며 중독을 유도했을 수도 있고.”
“!”
[뭐, 뭐, 뭐라고요?! 어떻게 사람이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할 수가, 아니 그런 걸 장사라고 부를 수 있어요?!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요! 사파나 흑도도 그렇게까지 파렴치하게 돈을 벌지는 않을 거라고요!]
홍령 같은 반응이 보통의 반응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구조를 짤 거라곤 생각도 못 하겠지.
“어, 어떻게. 그렇게 자세한 내용은 큰 도련님도 모를 텐데―.”
“이제야 의구심이 풀렸나?”
하오문주는 혼란스러워 보였고, 내 속은 더더욱 쓰렸다.
그녀의 말이 거짓이었다면, 나를 속이기 위한 블러핑이었다면 저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하오문주의 말은 진짜다.
내 친모라 알고 있던 여인은 둘째 형님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 또한 어머니의 뒤를 따라 곧 죽었다.
……나는 대체 누구지?
[당신은 또 뭐예요?! 진짜 당신 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해줬어요? 아니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얘기해줬을 리 없지.
금가장의 사업 중 지저분한 내용도 내 앞에서는 극구 말을 삼갔던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아예 잘라낸 과거에 대해서 티끌만큼이라도 티를 냈을까.
이건 전생의 기억에 기반한 거다.
“처음엔 객잔 시설이 없었다니 근처에 있는 다른 기루나 사창가에 구멍을 뚫었겠지. 그러다 알게 된 점소이나 기녀들과 손을 잡고 사업을 더 키워나갔을 거고. 성, 도박, 마약. 하나하나도 큰 사업이 될 수 있지만 셋이 함께할 때 그 규모는 엄청나질 테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할 테니, 전혀 연고가 없는 땅에서 곡물 수매업이라는 큰 장사를 시작하는 것도 가능했을 거고.”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지는 게 씁쓸하다. 아버지가 자신의 과거를 필사적으로 잘라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누구라도 자식에게만은 떳떳한 부모이고 싶은 거 아니겠는가.
“아, 아냐. 당신은 아니야. 당신이 장주의 아들이라면, 나는, 난―.”
하오문주는 무언가 울컥 올라온 표정을 지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내가 아버지 아들이 맞다면, 그녀는 두 번 버림받은 게 될 테니까. 고통스러운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고통은 아니었기에 나는 하오문주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괜찮아요?]
홍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냐라.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일들은 내가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에, 형제들의 막내이기 때문에, 금가장의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와 내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라고? 둘째 형님 아들도 아니고, 아예 남남일 수도 있다고?
당장 아버지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 말한 것도 내가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인데.
[그러지 말고 은 파파에게 물어봐요. 은 파파는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지.
하지만 은 파파가 내게 진실을 얘기해줄까?
아니, 은 파파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하오문주의 말대로라면 은 파파 또한 나를 스무 해 넘게 속여 온 건데.
“……우선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찾아봐야겠어.”
[어떻게요? 하오문은 하오문주가 아는 거 이상을 모를 테고, 십이월들도 은 파파랑 같을 텐데요.]
무림에서 정보를 다루는 게 하오문만 있는 게 아니잖아.
[아……!]
마침 내 눈앞에는 거지들이 발에 치이게 널려 있었다.
이곳은 항주. 개방의 본타.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테니, 방주인 도개걸도 분명 와 있을 거다.
“이봐.”
길에 널린 거지 중 제일 서열이 높아 보이는 거지를 불렀지만 놈은 나를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내가 품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 봉지 하나를 꺼내자 곧 눈빛이 달라졌다.
“금창약이다.”
태양의원에서는 은전 하나 값도 안 하는 금창약에 거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던진 금창약 봉지를 신줏단지처럼 받아들어 품에 쑥 넣었다. 이게 웬 횡재냐 싶으면서도, 갑자기 떨어진 떡고물에 당황한 눈치였다.
“무엇을 원하슈?”
“개방 본타로 안내해.”
개방, 그곳이라면 내가 원하는 걸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