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사람이잖아. 좀 특이하긴 하지만.”
“예, 사람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불로불사의 약이랍니다.”
옛날이야기를 좀 할까요―. 은 파파는 그렇게 운을 띄웠다.
“항아의 피와 살이 인간을 젊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요. 그때까지만 해도 루주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지요. 뭐, 기루의 총책임자가 보통 사람이라니 도련님한테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사람의 피와 살을 문자 그대로 취하는 자는 아니었단 얘기지요. 헌데 어느 날 사고가 있었답니다.”
“사고? 무슨 사고?”
“항아의 미모에 반한 자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렸고, 그로 인해 항아가 피를 본 일이 있었지요. 가질 수 없으면 베어버리겠느니 하는 하찮은 심보였나 봅니다. 하필 독이 묻은 칼이라 루주가 급하게 중독된 피를 빨아 뱉어버렸다더군요.”
[으으, 그거 위험한데. 입 안에 상처가 있으면 오히려 처치를 하려다가 되레 죽을 수도 있다고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알아요. 얘기하는 걸 봐서는 오히려 반전이 있었겠죠. 다음날 루주가 젊어졌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 다음 날, 루주의 새하얗게 세었던 머리가 검게 돌아왔답디다. 그이는 머리가 좋았지요. 항아의 피가 젊음을 돌려준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로 말입니다.”
“거기에 루주라면 더더욱 그런 유혹에 약했겠군. 젊음과 미모가 일종의 힘이 될 수도 있는 곳이잖아.”
“양날의 검이지만, 뭐, 도련님 말도 아주 틀리진 않습니다. 홀홀.”
그 이후에 벌어졌다는 일은 내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미모와 건강을 되찾은 루주는 항아의 피를 뽑아 다양한 약재를 섞어 정제한 후 이를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에게 팔았다. 생피를 마신 것만큼 젊음의 효능을 가져다주진 못했지만, 도화는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젊음의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다른 마약에 비하면 중독성이나 부작용이 심하진 않다고 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고양감을 손쉽게 맛본 사람은 그 고취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거치고 항아루가 그렇게 대단한 세를 가진 기루는 아니던데.”
“예, 그렇습니다. 여전히 항주에 기루 하나만을 두고 있는, 규모로 치자면 중급 정도 될까요. 고급 기루는 아니지요.”
“그럼 맞네. 항아루 루주가 하오문주지?”
[당신, 또! 나한테 아무 설명도 안 해주고 혼자서 생각하기예요?! 나도 좀 알자고요!]
그 생각을 할 때 네가 내 곁에 없었잖아.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그 전엔 그냥 의혹이었고, 확신을 가진 건 청수채에 갔을 때라고.
[이잇! 그래요, 내가 또 잘못했죠! 귀신이 되어서 착 달라붙질 않은 게 잘못이지!]
“어째서 그리 생각하셨는지 쇤네에게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요?”
너무 화내지 마. 지금 설명해줄 테니까.
“무려 불로불사의 약이잖아. 그것도 실제로 효과가 있고, 청수채쯤 되는 수채의 채주가 수채 재산을 털어 사야 할 정도로 비싼 약이지. 그런 마약을 고작 항아루 규모의 중급 기루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최소한 뒷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해. 돈이나 권력, 힘이 있는 누군가가 도화를 차지하려고 들었을 테니까.”
[헐, 그러게요. 돈 때문이든, 불로불사를 위해서든 항아를 뺏으려 들었겠네요.]
“근데 항아루는 멀쩡하지. 뭐, 항아가 도망치긴 했지만 그 전까진 말이야. 돈과 권력, 그리고 무력까지. 최소한 하나 이상은 그러한 위협에 버틸 수 있다는 뜻이고, 어쩌면 그 셋 다일 수도 있어. 그 정도는 되어야 불로불사의 약을 지킬 수 있겠지.”
이 중원 무림에서 돈과 권력, 그리고 무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으려면 뭘 해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다.
“하오문이라면 가능하지. 얼핏 하찮아 보이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정보가 필요할 때면 손을 뻗는 문파잖아? 스스로를 지킬 무력과 돈은 물론, 각 대문파, 권력자들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을 거고, 그들의 비밀을 빌미로 자신들을, 불로불사의 약을 지킬 수도 있겠지.”
[다른 무엇보다 기루이기도 하고요. 하오문의 본거지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도화로 막대한 돈을 벌었을 텐데 항아루가 여전히 그 정도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 그 돈이 하오문이라는 문파로 들어간다고 하면 이상할 게 없지. 정보를 사고파는 문파 특성상 본거지가 눈에 띄어서 좋을 것도 없고. 이쯤 되면 아니라고 발뺌을 해도 의심을 해봐야 할 판 아냐?”
내 말에 은 파파가 눈을 느리게 끔뻑거렸다.
……뭐야, 틀렸나?
“틀렸으면 말을 해줘. 그래야 가설을 수정하지.”
“……아뇨. 정확히 맞습니다요. 고작 그 정도 사실을 가지고 거기까지 추론하셨다는 점에서 이 할미가 좀 놀랐을 뿐입지요. 홀홀…… 이리 영민하신 줄 알았으면 진작 장주에게 도련님 의견도 좀 물으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그때야 몸이 아파서 무슨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냐만은. 은 파파도 알지만 칭찬으로 하는 말이겠지.
[맞아요. 지금 당신은 보통 노파한테 칭찬을 받은 게 아니라고요. 은 파파는 금가장의 그림자잖아요, 안 그래요?]
그치.
금가장에서 정보는 은 파파의 일이었다. 뒷세계의 일이란 항상 비밀스러운 사실들과 함께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아버지와 하오문은 무슨 사이야? 그리고 은 파파는?”
이것은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다.
은 파파는 무슨 식으로든 하오문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다.
“아니다. 질문이 잘못됐네. 아버지가 있고 그 다음에 하오문이 있는 거야, 아니면 원래 있던 하오문하고 아버지가 손을 잡았던 거야?”
있을 거다? 아니, 있다.
“그 전에도 기녀나 점소이들이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 같은 건 있었읍죠. 허나 그게 하오문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된 건, 어디 보자……. 대략 사십 년? 오십 년? 그쯤 되었을 겝니다. 정확한 햇수는 기억이 안 나는구만요. 도련님도 쇤네 나이쯤 되면 내 나이 세는 법도 까먹게 될 테니 이해하시지요.”
“아버지가 하오문을 만들었구나.”
“정확히는 돈을 댔지요.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장주는 그들과 사업을 했습니다.”
“마약 사업을? 하긴, 그러니까 하오문이 도화를 유통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버지와 마약 사업을 하면서 다져놓은 경로가 있으니까?”
“뭐, 그게 다는 아닙지요.”
은 파파의 표정은 회한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찝찝하게 다가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식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과거라 할 만한데. 도대체 마약사업 말고 뭐가 더 있단 말인가.
“달이 많이 기울었군요. 다음 보름이, 보자…… 서둘러야겠습니다요.”
갑자기 은 파파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매 해 두 번 정도. 항주에서 열리는 비밀 경매가 있습니다.”
“아버지 얘기 하다가 갑자기 웬 딴소리야?”
“장주의 유산을 얻고 싶으시다면서요. 그 경매의 주관이 바로 하오문입니다. 하오문이 도화를 팔기 전, 그 경매에서 나는 수익이 하오문을 움직였고 또한 금가장의 그림자를 움직이는 금력이었지요.”
은 파파는 더 이상 말을 흐리거나 감추지 않았다. 대신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도 사이가 삐걱거리긴 했습니다만, 장주 사후 하오문주는 금가장과의 관계를 제대로 끊어냈습니다. 때문에 쇤네가 부릴 수 있는 숫자도 많이 줄었고요.”
[정말 은 파파가 하오문하고 밀접한 관계인 게 맞군요.]
전에 그런 일도 있었지. 기억나? 정보에 접근하기가 불편하다고 하니까 대뜸 객잔주인을 하오문 문도로 만들어 버렸잖아.
[맞아, 그런 일도 있었죠! 진짜 보통 사이가 아닌 거네요? 하오문하고 좀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추측컨대, 은 파파는 아마 하오문…….
“도련님이 손에 넣고자 하는 유산, 그 진짜를 구경하시려면 경매가 열리기 전에 도착하시는 게 좋을겝니다. 무엇보다…… 항아야.”
“응?”
“너 늘 들고 다니던 보주는 어찌했느냐?”
“……!!! 내 보주! 언니가, 언니가 있는데!”
은 파파의 말에 항아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허둥거렸다. 어찌나 허둥대는지 그대로 배 너머 강물에 빠질 기세라 나는 서둘러 항아를 잡아 자리에 앉혔다.
[보주가 뭐기에 저러는 거죠?]
홍령이 궁금해하자마자 은 파파가 그 답을 알려주었다.
“이번에 장주의 유산이라 소문이 난 불로불사의 약은 항아가 아니라 그 보주일 겝니다. 처음 항아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갖고 있었고, 항시 손에서 떼지 않았지요. 척 봐도 엄청난 기운을 품은 구슬입니다요. 어쩌면 항아보다 보주가 지닌 힘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너무 혼란스러운데. 갑자기 접한 정보가 너무 많아.”
“홀홀. 가서 지체 없이 움직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만 알려 드린 겝니다.”
“가면 더 혼란스러운 일들이 있을 거란 얘기로 들리는데?”
“어찌하여 장주가 그 시절의 일을 한사코 숨기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시겠지요. 그런데도 가실 겝니까?”
“아직도 내게 확신이 필요해?”
“어쩌면 도련님은, 장주를 더 이상 아버지로서 사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가시겠습니까?”
그 말에 문득, 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삼촌이 금가장을 망칠 거라고 했습니다.”
“……망칠 거라고?”
“예. 삼촌이 할아버지를 욕되게 할 것이고, 금가장을 무너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경계하고, 견제하셨죠.”
다른 형제들은 항주에서 태어났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지만 큰 형님은 다르다. 전생으로 치면 미취학 아동의 시절을 항주에서 보낸 기억이 그에게 남아 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도 큰 형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과거가 가까이 다가온 것은, 은 파파의 의지도 있었지만 내 몸이 낫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여기까지 왔다.
큰 형님에게 미래를 아는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 될 것이다.
“세 번은 말 안 할 거야. 아버지의 유산, 그게 명이 됐든 암이 됐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또다시 내 의지를 시험하는 말은 하지 마.”
“……알겠습니다.”
“항주로 가자. 수적들의 배는 이 큰 유람선보다 날래고 빠르니, 그 배를 타고 경매 전에 도착하자고.”
“그러지요. 위층에 가서 짐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뭐 하러? 같이 가지.”
“이제는 짐을 들고 홀랑 내빼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손님도 맞으시고요. 다녀오지요. 항아를 잠시 부탁합니다요.”
은 파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조를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는지, 홍령이 저가 따라가 보겠다며 후다닥 그 뒤를 쫓았다.
“얘기가 끝나셨으면 저와 잠시 얘기를 나누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은 파파가 말한 손님이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