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07화 (207/350)

207화

“에구머니나. 그 둘이 관계가 있습니까요?”

“모른 척은. 이미 다 조사해보고 왔다고.”

출발 전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주로 항주, 그리고 떠도는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소문을 중심으로.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조사가 쉽진 않았어. 이상할 정도로 항주 관련해서 정보를 얻기가 힘들더라고. 원하는 건 등급이 안 된다느니, 돈을 얼마를 내도 안 된다느니. 그런 식이었지.”

보물을 찾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과 정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은 중요하다.

누군가 먼저 선수를 치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도 쓸모가 없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항주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으나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한 것은 낭비 중 낭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 시간 낭비를 한 건 아니었지. 정보를 못 준다는 것도 엄연히 정보 아니겠어?”

은 파파가 빙긋 웃어 보였다. 좋아. 정답이었군.

“그래, 어떤 것을 얻으셨습니까?”

“확실한 건 없어. 문자 그대로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못 준다는 정보들이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다고 생각해보면 제법 그럴싸한 가설이 나오더라고.”

전생, 내가 본부장 밑에서 구를 때 나의 주요한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작은 정보들을 모아 연관성을 찾아내고 그럴싸한 가설을 제시하는 것. 본부장이 나한테 맡겼다기보단 나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내 존재가치를 증명한 것에 가깝지만.

그 가설들의 적중률이 높았기에,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발탁됐던 나는 조금씩 더 중요한 일들을 맡기 시작했었다…….

“바로 움직이지 않고 정보부터 모았던 이유는 하나였어. 항주라는 장소가 뜬금없었거든. 다른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숨겨진 유산이 발견될 만한 곳으로는 말이야.”

아버지는 항주에 연고가 없다. 젊은 시절엔 가업으로 행상을 하다가 어느 날 무한에 터를 잡고 금왕상단을 꾸렸고, 상단이 제법 규모를 갖추었을 즈음 반도와의 홍삼 거래로 지금의 금가장을 만들었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역사다.

내가 알고 있는 걸로만 치자면 아버지는 항주와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나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자매들, 그리고 세상에 숨긴 것이 너무나 많았던 아버지다.

“어릴 땐 그 생각을 못 했지만, 내가 사업을 하니까 알겠더라고. 아버지는 보따리 들고 다니며 장사하는 행상이었다면서. 그런 행상이 갑자기 무한 땅에 자리를 잡고 상단을 갖출 정도로 많은 돈은 어디서 났을까? 심지어 아버지는 처음부터 곡물 수매를 시작했잖아?”

내가 처음 의원을 한다고 했을 때, 무한을 아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아니다. 조건이 여러모로 나빠서 바로 선택지에서 제외시켰던 것뿐이지.

그 나쁜 조건에는 지나치게 비싼 지대도 포함이었다. 전생의 서울보다 어마어마한 땅값, 건물값을 어찌 감당할까?

근데 그걸 행상으로 살던 아버지가 대뜸 해버렸단다.

거기에 그걸 기반으로 곡물 수매까지.

곡물 수매는 한두 푼으로 가능한 장사가 아니다.

풍년에 미리 대량으로 사들일 돈이 있어야 하고, 곡식을 나르는 배, 수레 등의 유통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수매한 곡식을 잘 보관할 수 있는 대규모 창고와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자칫 이듬해 곡물 가격이 더 떨어지기라도 하면 막심한 손해를 보는 것이 바로 곡물 장사다.

정말 운이 좋아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막대한 초기자본, 하필 무연고 지역인 무한에 자리를 잡은 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막대한 돈과 인맥이 받쳐줘야 하는 곡물 장사에 뛰어든 일까지.

신화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성공 앞에 그 자세한 사항들은 그림자처럼 묻혀 있다.

“하오문에서 모든 정보제공을 거부한 건 아냐. 딱 하나 얻은 정보가 있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홀홀.”

“아버지가 항주 출신이라는 거. 그리고 처음부터 행상이 아니라, 가업으로 전당포를 했었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인을 해주더라고.”

그 사실로 아버지의 유산이 항주에 남아 있는 이유는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실 하오문에서만 정보를 얻은 건 아냐. 거기서 나오자마자 개방을 찾아갔거든. 거기선 생각보다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어. 마침 소림에 와 있던 거지가 그 당시 항주에 살았던 거지였더라고.”

“그렇지요, 거지가 많은 동네지요. 홀홀.”

은 파파의 눈이 과거를 그리듯 아련히 잠겼다. 그리고 내가 뒤이어 할 얘기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거지가 그러더군. 항주를 마약의 도시로 만든 시발점이 바로 그 금 씨 전당포라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떨어지며 나는 물소리와 배의 삐걱거림, 바람 소리 따위가 지나가고, 은 파파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비밀이 비밀인 데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요. 굳이 그 문을 열어야겠습니까?”

“은 파파야말로 입장을 정확히 정하는 건 어때? 내가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 다른 형제들이 아닌 내가 그 유산을 이어받길 원한 건 은 파파잖아.”

“글쎄요. 바라지만 바라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노인네의 심경은 참으로 복잡한 거랍니다, 도련님.”

나 참. 뭐 어쩌자는 건지.

내 손으로 유산을 손에 넣어야 하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도움 정도는 줘도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물려받을 유산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아버지가 어떻게 돈을 벌고 축적해놨는지, 그게 어떻게 불로불사의 약과 이어지는지…….

은 파파가 입만 열면 대부분의 것이 해결되고 내가 할 일이 명확히 정리가 될 텐데, 여행하는 내내 은 파파는 무엇 하나 확실하게 대답해주질 않는다.

[난 알 거 같은데요. 은 파파가 이러는 이유요.]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홍령이 끼어들었다.

[좋은 얘기라면 얼마든지 들려주겠지만, 척 들어만 봐도 나쁜 얘기잖아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제 좋은 면만 봐주길 바라서 나쁜 부분을 숨기는 사람이 있고, 또, 자기의 치부까지 전부 보여주고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 어느 한쪽으로 확 쏠리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그렇게 말하니 또 이해가 가긴 한다만.

“사실 쇤네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말이지요.”

“아버지는, 사실 그 유산을 나는 물론이고 금가장에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게 맞지?”

“예. 장주는 자식들이 자신의 과거를 영영 모르고 살기를 바랐습죠. 뭐, 큰 도련님이야 항주에서 어린 시절을 났으니 아주 모르진 않습니다만, 그리 자세히는 모르지요.”

“그러면 은 파파는 아버지의 명을 거스르고 있는 거네?”

은 파파는 빙긋 웃었다.

“그런 셈이지요, 홀홀. 헌데 어쩝니까. 나는 살았고 그이는 먼저 저승에 간 것을. 도련님, 살다 보면 말입니다, 끝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 이길 수 있고 그런 일이 있는 법입니다. 홀홀. 허니 유산에 관해서는 내가 장주를 이긴 게지요.”

그러고는 품을 뒤지더니, 한 홉 들이 술병을 꺼내 마개를 따고 한 입을 마셨다. 크으―, 한 모금에 끓는 소리가 거친 걸 보니 어지간히도 독한 독주인 모양이다.

“나는 다 내려놓고 편해지고 싶습니다, 도련님. 오래 살았어요. 오래 살았고, 너무 많은 짐을 짊어졌지요. 장주는 제 짐마저 내 어깨에 올려놓고 가버렸습니다. 고약하기도 해라. 술 맛이 참으로 고약합니다요.”

“나도 한 모금 줘.”

손을 내밀자 은 파파가 술병을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요, 도련님?”

“이제 나도 술 정도는 마실 수 있거든?”

“달콤하지만은 않을 겝니다.”

“그럼 나 말고 누굴 줄 건데. 그럴 순 없잖아.”

나는 은 파파의 손에 들린 술병을 낚아채듯 빼앗아 내 입에 털어 넣었다. 혀끝에 닿는 순간부터 화끈한 맛이 목구멍과 기도를 불태우듯 넘어갔다. 머리까지 한 번에 열기가 치솟는 듯했다.

탁.

나는 다 마신 병을 다상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유산, 그건 내가 받겠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게 아버지가 남긴 거라면, 다른 누구에게 넘길 수는 없어.”

어차피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이름하에 불로불사의 약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이 일에 끼어들 것이고, 사정을 파헤치겠지.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말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거슬러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적어도 그 일을 남이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길이 아니겠는가.

“……그리 결심하셨다면야, 좋습니다.”

“그럼 이거에 대해서부터 말해봐.”

나는 품 안에서 작게 접힌 약 봉지, 청수채의 채주가 이걸 사느라 수채의 재산을 거덜 냈다는 그 마약을 꺼냈다.

“도화로군요.”

“어, 내 거!”

그때까지 은 파파의 옆에서, 우리가 무슨 얘길 하든 아랑곳 앉고 날아다니는 나방이나 구경하고 있던 항아가 쏜살같이 팔을 뻗었다.

“안 돼. 위험한 거야.”

“내 거, 내 거!”

하지만 항아는 끈질겼다. 내게 아예 달라붙어서 냄새를 킁킁 맡거나 집요하게 약 봉지를 빼앗으려 했다. 이제야 좀 얘기를 해보려 했더니, 얜 갑자기 왜 이래?!

“그냥 주십시오. 한번 본 이상 손에 넣기 전에는 안 떨어질겝니다.”

은 파파의 말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도화를 항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자 항아의 얼굴이 복사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내 거!”

그리고는, 그대로 약봉지를 뜯어 그 분홍빛 가루를 제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야! 은 파파!”

“내버려 두십시오. 괜찮을겝니다.”

“저게 뭔지 알잖아? 그래도 괜찮다고?!”

“예, 압니다. 헌데 어찌하겠습니까. 제 몸에서 난 걸 제가 돌려받겠다는데.”

“……뭐?”

그 사이 항아는 도화를 입에 다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제 자리에 앉아 기분이 좋은 듯 흥얼흥얼 몸을 흔들었다.

“내 피는 물이 되어라, 내 살은 산이 되어라, 땀은 시냇물이 되고 눈물은 대양이 되어라―.”

여전히 이상하게만 들리는 말소리는 내게는 정확한 뜻으로 번역되어 전해졌다. 아까 은 파파가 한 말, 그리고 이 노래.

어딘지 오싹한 기분이 든다.

“아니지? 설마, 그래도 그렇지.”

“무엇이 말입니까?”

“……사람의 피를 가공해서 마약으로 만들었다든가. 말도 안 돼.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홀홀, 그렇습니까?”

은 파파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색이 옅어진 눈동자 너머 내 얼굴은 반대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사람의 피에는 중독 물질이 존재하지 않아. 피를 섭취한다고 해도 비타민이나 철분 같은 영양소만 흡수될 뿐, 그뿐이야. 철분이 극도로 부족한 빈혈 환자라면 피를 필요로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사람의 피일 필요도 없거니와―.”

나는 당황해 전생의 지식까지 언급하며 횡설수설했다. 흡혈귀의 모티브가 된 병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단체로 그 병에 걸릴 정도가 아니고서야, 타인의 피를 마약처럼 복용할 리가 있나?

“도련님, 항아는 보통 사람이 아니올시다.”

그냥 봐도 그래 보이긴 한다. 현실 같지 않은 미모하며 괴이한 말이라든가.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사람의 피가 마약이 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꽤나 오래 전, 항아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디다. 어디서 선녀가 떨어졌나 할 정도로 곱고 예뻤는데 또 남아라 하니 참으로 기이했지요. 씻지 않아도 복숭아꽃 향기가 나고 동물들이 모여들며 죽은 나무엔 꽃이 피어 더욱 기이했더랍니다. 헌데 어느 날, 저를 지키다 다친 이를 붙들고 울어 그 눈물이 상처에 떨어졌는데 그 상처가 없는 듯 아물었다지요.”

은 파파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장주의 유산이라 알려진 불로불사의 약, 그게 바로 항아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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