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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06화 (206/350)

206화

예상치 않게 부채주의 팔을 붙이게 된 탓에 꽤 시간이 걸렸다. 청수채에서 나룻배 하나를 타고 다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한참을 노 저어 나가자 저 멀리 유람선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제야 왔어요! 좋은 구경 다 놓쳤네! 세상에, 신생이 숨 멎기 전의 환자를 어떻게 살렸는 줄 알아요? 그 다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하나하나 대처를 해가지고, 하아, 내가 정말 대견해가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니까요?]

나룻배를 대고 위로 올라오자마자 내 기척을 알아차린 홍령이 쪼르르 날아와서 새처럼 조잘댔다. 제대로 된 정보보다는 개인적인 감상이 대부분인 말이었지만, 어쨌든 신생이 침착하게 잘 해냈다는 건 확실히 알겠군.

[하아, 처음 거지로 만났을 때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믿어져요? 그 고사리 같은 손이 처음 침을 쥐었을 때가 엊그제였다고요. 그런데 일 년도 안 되어서 벌써 어엿한 의원 노릇을 했다고요. 세상에, 이걸 나 혼자 보다니. 당신도 같이 봤어야 했는데. 아이고!]

지금 가서 보면 되지. 결과만 봐도 그 과정이 눈에 보이는 일이 있지 않던가.

신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자리를 비켰지만 그 결과는 당연히 내 눈으로 직접 볼 생각이다.

제자가 첫걸음을 한 순간을 보지 못한다면 스승으로서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는가?

[환자들은 선실에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갔던 일은 어떻게 된 거예요? 한 몫 쓸어오겠다더니, 빈손인데?]

가져오긴 뭘 가져와. 지들 먹고 죽을 것도 없어 보이더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선실 계단을 올랐다. 제 집 같던 수채를 약탈하던 놈들의 손에도 시답잖은 물건들뿐이었다. 쓸 돈은 다른 방향으로 장만하는 수밖에.

[어휴, 그럼 괜히 거기까지 왔다 갔다 했네요. 그럴 시간에 신생 하는 거 봤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게. 그래도 사람은 좀 챙겼으니까.

[사람이요?]

나는 청수채에 갔던 얘기를 홍령에게 설명했다.

[청수채 채주가 됐다고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예요?]

채주는 아니고, 글쎄다, 두목?

[두목이나 채주나 그게 그거죠.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그러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나 참, 수적들 창고 털러 간다더니 왜 갑자기 그 사람들 두목이 되어 왔대?]

귀신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혀를 찼다. 내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얘긴데 귀신이라고 오죽할까.

오죽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채주 되어 달라는 소리 듣자마자 내가 그 사람들 정수리부터 쪼갰겠냐고. ……그래도 전이었으면 일단 말로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을 텐데, 몸부터 나가다니. 며칠 놈팡이 행세를 한 거뿐인데 진짜 놈팡이가 다 됐다니까?

[어휴, 걱정 마요. 그런 개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아직 보통 사람이니까요. 결론적으론 그들 말도 들어준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내가 잘라낸 팔도 붙여주고.

솔직히 그냥 놔둬도 상관은 없는데, 몸 쓰는 일 시키려면 아무래도 사지가 멀쩡한 편이 좀 낫잖아?

[당신이 팔 잘라놓고 그걸 또 붙여줬어요?]

청수채 수적들과 관한 모든 일들이 다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진짜 무림인들은 이런 건 아무렇지 않나?

내가 계속 찝찝해하자 홍령이 위로하듯 말했다.

[뭐, 애초에 팔을 안 잘랐으면 좋았을 거고, 그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아래 둘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요. 모든 일이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방식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들을 같은 태도로 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 사람들은 태양의원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라요. 수적이죠.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배에 탄 사람들이 더 피해를 봤을 거예요.]

그건 그랬겠지.

[좀 상황이 웃기긴 하지만, 그 정도면 당신답게 일 처리를 했다고 봐요. 괜한 거 그만 신경 쓰고 어서 신생이나 보러 가요.]

그래, 내 제자 번듯한 의원 노릇 하는 거나 보러 가자.

그런데 여긴 내 선실 아냐?

홍령이 이끄는 대로 따라왔는데 어느새 최상층까지 와 있었다.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이어져 있는 최상층 특실.

금왕전장의 전표를 날려주고 전세를 낸 곳인데, 왜 여길?

“이제야 오셨구만요, 도련님.”

특실의 문을 열자 은 파파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았다. 나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문간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은 파파 뒤로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 간격을 두고 누워 있는 사람들. 다들 어디 하나쯤은 천으로 칭칭 감고 있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거나 창백한 얼굴로 잠이 들어 있다. 멀쩡한 사람들은 정신없는 표정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피에 젖은 천과 죽, 그리고 약 따위를 날랐다.

[엄청나죠? 태양의원 같지 않아요?]

그러게.

“여기 금창약 좀 더 주세요! 이거 천은 빨아주시고, 새 거 없나요? 깨끗한 거! 거기,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기 빨리 꿰매고 갈게요!”

그리고 그 가운데 신생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급한 봉합은 아까 끝냈어요. 위급한 환자들 중 팔 할은 살린 거 같아요. 나머지는 손 쓸 도리가 없던 사람들이고요. 그 사람들은 당신이 있었어도 죽었을 거예요.]

팔 할이라.

열 명 중 여덟 명은 살리고, 두 명은 살리지 못했단 뜻이다.

그럼에도 신생은 누군가가 죽은 일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의연하게 치료를 하고 있었다.

[설마 당신, 그거 갖고 애를 타박할 생각은 아니죠? 아까 싸움을 생각해봐요. 내장이 다 튀어나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고요. 저 어린애가 혼자서 팔 할을 살린 거면 정말 대단한 거죠!]

나도 알아. 대단하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지.

[근데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해요? 두 명 죽은 걸로 트집 잡을 것처럼.]

트집이라니. 오히려 칭찬을 해줘야지.

두 명이 죽었는데도 기 안 죽고, 자기가 봐야 하는 환자들에게 집중하고 있잖아.

[그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안 당연해.

특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신생에게는.

나는 예전의 신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거지로 키워졌지만 거지로 살 수 없었던 아이. 가족처럼 자란 강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도망친 아이. 학대와 같은 성장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다 못해 자신의 내공까지 잊어버린 듯 살았던 아이.

신생이 내가 의원이다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던 건, 아마 그때의 일이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였을 거다.

[……자기는 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죽이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이제 괜찮아진 거 아니었어요?]

내공마저 없는 듯 사라지게 만들었던 트라우마다.

그렇게 한 번에 나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나와 의원들이 곁에 있을 땐 그래도 괜찮았다.

신생이 실수를 하면 우리가 지켜주고 감싸주고,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 줄 테니까.

하지만 혼자서는 그럴 수 없었던 거다.

일부러 환자를 피하지 못할 상황에 밀어 넣긴 했지만, 자신이 노력해도 죽은 환자들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고 주저앉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데요? 몸도 성한 사람이 환자들 나르는 거나 도와주지.”

찢어진 얼굴의 봉합을 마치고 몸을 돌려 내게 툴툴거리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다.

일견 약한 아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강한 마음을 가진 내 제자.

방금 마친 피부 봉합을 보니 그 실력 또한 꼼꼼하고 섬세해 내가 무어라 말을 얹을 부분이 없었다.

[의원의 일을 돕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수시로 바느질 연습을 하던 애니까요. 이 정도는 당연하죠!]

“잘했다.”

나는 신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원래도 대견한 일을 하면 이렇게 자주 머리를 쓰다듬어 줬던 터라 그만.

신생은 내 손을 치워내는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스승님……?”하고 작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내가 어색하게 손을 치우고 나서야 눈을 홉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흥. 이제 봤죠. 우리 스승님은 절대 돌팔이가 아니에요. 나도 가짜 제자가 아니고요.”

충분히 잘했으니 제 공을 먼저 앞세울 법도 한데, 내가 돌팔이가 아니라는 걸 먼저 주장한다.

“그래. 알고 있지. 금태양이 훌륭한 의원인 건. 근데 제자도 잘 키우는 줄은 몰랐네.”

“진짜 우리 스승님을 알아요?”

알다마다.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소문 정도는 들었지. 나같이 목 내놓고 사는 무림인이라면 그런 의원 이름은 알아두는 게 좋으니까.”

마음 같아선 고생했다, 내 제자야. 하고 싶지만 나는 좀 더 내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치료는 수술과 처치를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 배가 항주에 도착할 때까지 환자들을 무사히 돌보는 것까지가 신생이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 적어도 그 전까지는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게 자립에 도움이 되겠지.

“……김진 소협이라고 했죠. 아까 어디 다친 데 없어요? 내가 봐줄게요.”

이제 나에 대한 반감이 제법 희석됐는지 신생이 물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이나 잡고, 요 녀석이.

“악, 뭐 하는 거예요!”

아까처럼 대견하다는 듯 쓱쓱 머리를 쓰다듬는 게 아니라, 거칠게 머리를 헤집자 신생이 우와악 하며 내 손을 치워냈다.

“난 됐으니까 저기 다른 환자들이나 봐라. 내가 어디 다쳐 보이냐?”

“사람이 마음을 좋게 써줘도, 진짜!”

신생은 토라진 다람쥐 같은 얼굴을 하곤 다시 환자들 쪽으로 쫑쫑쫑 뛰어갔다. 정체를 밝히면 이런 틱틱대는 모습은 다신 못 볼 테니 실컷 즐겨놔야지.

환자들 사이를 다시 바쁘게 돌아다니는 신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참 뿌듯했다. 전생이었다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을 정도랄까. 잠깐 그 모습을 보다가 내 뒤에 시립해 있는 은 파파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방 내준 거, 은 파파야?”

“어차피 방도 남지 않습니까요, 홀홀.”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단 얘기도 몰라?”

“안 그래도 저승 가는 길 좀 곱게 가보려고 착한 일 좀 했지요. 제가 아무리 도련님 돈으로 인심을 좀 썼거니와, 참 갈수록 말이 험해집디다?”

“누가 가르쳤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나를 위해서 한 일이다. 김진으로서 나는 남들에게 호의나 아량을 베풀 수 없고, 은 파파도 신생이 내 제자인 걸 아니까 좀 더 편하게 환자를 볼 수 있게 해준 거겠지.

“우린 나가자. 여기선 쉴 수도 없겠군.”

“그러지요.”

나와 은 파파가 선실을 나서자 면사 두른 삿갓을 쓰고 구석에 앉아 있던 항아도 쪼르르 달려와 우리 뒤를 따랐다.

우리가 향한 곳은 처음 배 위에 올랐던 선미였다. 차를 마시는 다상은 아까의 싸움을 피했는지 멀쩡했다. 술은커녕 찻물 하나 없이 다상을 두고 마주 앉은 채, 나는 은 파파에게 물었다.

“아버지의 숨겨진 유산, 그거랑 항주의 마약이랑은 무슨 관계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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