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05화 (205/350)

205화

팍! 팍! 팍!

“억!”

“크억!”

“컥!”

두개골을 울리는 맑은 소리. 그리고 곧바로 튀어나오는 비명들.

칼집으로 부채주부터 그 옆에서 목소리를 높인 놈들까지 정수리를 한 대씩 내려치고 나서 물었다.

“무슨 개소리들이야?”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으니까 손이 먼저 나가는구나.

“대, 대협께서 청수채를 쓰러트리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다음 채주가 되어 우리를 책임지셔야 하는 겁니다.”

당황해서 손이 나간 거라 힘 조절도 못 하게 꽤 세게 정수리를 때렸는데, 머리를 맞기 전보다 더 또렷하게 자기주장을 해대는 부채주였다.

“장강수로칠십이채 전통 같은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채주를 벤 건 내가 아닌데.”

채주를 벤 건 현건이다. 지금 내 상황도 어이없긴 하지만, 이놈들이 현건에게 채주가 되어 달라고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처구니없긴 하겠군. 녀석은 그냥 무림인도 아니고 무당의 대제자니까.

“하지만 저희들을 풀 베듯 베어버린 건 대협이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그자는 갑자기 튀어나와서 채주를 상대했을 뿐이고요. 하물며 채주를 상대하라고 다시 보낸 것도 대협이시고요! 제가 봤습니다!”

“저희를 책임지실 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대협입니다! 제발, 청수채의 채주가 되어 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희는 다른 수채에 먹혀서 노비 꼴을 면치 못할 겁니다!”

골 때리네.

날 놀리는 게 아니라 이자들은 진심으로 내가 채주 자리를 맡기를 바라고 있다.

강한 자라면 그게 좀 전까지 제 동료들에게 칼을 들이민 자라도 괜찮다는 건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지만…….

“내가 채주가 된다는 건, 내 말은 무조건 따른다 그런 건가?”

“그렇습니다!”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구태여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걸 극히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기보단, 누군가의 명령과 규칙에 따르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 그게 설령 남들이 보기엔 비합리적인 일이라도 말이지.

낯설군.

태양의원에서라면 허드렛일 하는 하인으로도 뽑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의원들부터 제약방의 약제사, 간병인, 그 외의 일손들까지, 기존의 구태의연한 관습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발전을 꿈꾸고 항상 개선을 논의하는 사람들로만 꾸려왔으니까.

내가 꼭 선호해서라기보단,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환경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더 발전할 수 있는 규모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런 이들이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수채를 정리하고 산으로 들어가자고 해도 할 건가?”

“예!”

“당장 하겠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머리 깎고 중이 되라고 해도 할 거고?”

“……예!”

“가능할 겁니다!”

“아, 아마도……! 됩니다! 네!”

“기루에 가서 웃음을 팔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해오라고 해도?”

그제야 수적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럼에도 다들 작게나마 고개는 끄덕였다. 수적들이 가장 자존심 상할 일을 제시했는데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정말 이들은 진심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챙긴 게 부실해서 좀 아쉽긴 했지.

이제 태양의원도 규모가 제법 커졌다.

규모가 커지면 자연 잡음과 마찰이 생기고, 때론 정석으로 돌파할 수 없는 궂은일이 생기는 법.

그럴 때를 대비해서 사람을 좀 챙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부채주.”

“예, 채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채주라고 부르지는 말고.”

“그, 그치만 채주는 채주인데…….”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면서? 채주라고 부르지 말라면 부르지 마.”

“예, 옙! 그러면…… 두목!”

“…….”

“두목도 안 됩니까……? 그럼 뭐라고 해야…….”

“……맘대로 불러라. 채주는 말고.”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긴 싫고, 대협 같은 걸로 부르는 건 더 민망하고.

“예, 두목!”

“두목!”

“두목 만세! 만세!”

부채주의 선창에 다른 수적들까지 동참했다. 정처가 정해지니 묘하게 불안감이 가신 모습들이었다.

과거 저런 식으로 내게 방심을 유도했다가 뒤통수를 쳤던 비적들도 있었으니 아주 마음을 놓진 않겠지만…….

“그만하고, 앞으로 내가 시키는 일을 하려면 그 팔로는 조금 힘들 텐데. 어디 보자…… 이건 단면이 너무 거칠고, 이건 길이가 너무 짧고, 이건 너무 더럽고…… 좋아, 이 정도면 되겠군.”

“그건 뭐 하시려고……?”

내가 집어든 것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잘려나간 팔이었다.

지금 상황이 좀 어처구니없어서 그렇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아침나절까지 한솥밥을 먹던 수적들이 서로를 해하던 살육의 장이었다.

머리가 잘린 시신과 주인 잃은 사지가 피 웅덩이에 뒤엉켜 널브러져 있는 모양을 보면 녀석들이 내게 채주를 맡아달라고 매달리는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고…….

“거기 누워봐.”

“예? 예!”

내 말은 그냥 토 달지 않고 따르기로 했는지 부채주가 내가 가리킨 자리에 누웠다. 아마 채주의 침상이었을 곳이라 그나마 이 난장판 속에서 깨끗한 편이었다.

“너, 가서 물 좀 끓이고, 넌 아까 무명천 있던 거 가져와.”

그리고 나는 품에서 휴대용 침통을 꺼냈다.

“원래 수술은 이 침으로 하는 거 아닌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두 개의 침을 꺼내 들고 한쪽에 바늘귀를 뚫었다. 말은 쉽지만 가느다란 바늘에 내공을 집중해 다른 바늘에 실이 통과할 만한 작은 구멍을 뚫는 일이었다. 그리고 수적이 가져온 무명천을 잘라 실을 꿰었다.

“잘 붙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지. 점혈해서 아프진 않겠다만 함부로 움직이면 귀찮아지니까 가만히 있도록.”

원래 수술을 할 땐 금왕공방이 만든 다양한 보조도구를 사용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거지.

손에 익은 루틴이 빠르게 진행됐다.

부채주의 혈 일부를 짚어 마취하고 검기를 불어넣은 태양보도로 단면을 잘라 정리한 후, 들고 다니기 편하게 가공한 야명주 목걸이로 가볍게 소독처리, 그리고 주운 팔의 길이를 맞춘 후 인대와 힘줄, 근육, 마지막으로 피부에 이르기까지 봉합을 해나갔다.

수적들은 처음에는 웅성거리더니 이내 나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입을 다물고 긴장한 눈으로 내가 시키는 일만 착착 처리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실을 묶어 봉합을 마무리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한 수술이 아니고, 뭣보다 원래 쓰던 팔이 아니라 거부반응이 생길 확률이 높겠지만, 운이 좋다면 전처럼 팔을 쓸 수 있을 거다. 아, 가만히 있어. 신경이 바로 붙는 줄 아나. 며칠은 요양해.”

“……며칠 요양하면 이게 제 팔이 되어 다시 움직인단 말입니까?”

“그렇대도.”

거부반응이 일어날 확률이 높긴 하지만, 지금 다시 배로 돌아가 녀석의 팔을 찾아 붙이는 건 시간상 요원한 일이니까.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해줄 만한 것도 아니고.

“와아…….”

“하루 이틀은 꼼짝 말고 요양하고, 거기 너, 네가 깨끗하게 세탁해 말린 천으로 수시로 갈아줘. 삼 일째부터는 운기행공을 하고. 기의 흐름이 원활하면 빨리 붙을 거다.”

지금까지 수술을 해본바, 운기행공이 수술 후 회복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

염증에 시달리던 사람도 운기행공을 마치고 나면 노폐물이 빠져 회복 속도가 빨라졌으니까.

익힌 내공심법의 질이나 그동안 쌓인 내공의 양, 순도 따위에 따라 그 효과도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어쨌든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수시로 이 약을 챙겨 먹고,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여기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예, 알겠습니다! 두목!”

“그놈의 두목 소리, 하아, 간다. 나오지 마.”

* * *

김진, 그러니까 금태양이 떠난 후 청수채는 정적에 휩싸였다.

금태양이 시킨 대로 물을 끓이고 수술 중 피에 젖은 천을 세탁하는 수적들 외에는 다들 눈만 끔뻑끔뻑 거리며 금태양이 사라진 자리와 팔이 붙은 채 누워 있는 부채주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니까요, 부채주. 팔이 없었는데요,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있다?”

한 사람으로 하여금 팔을 잃고 또 팔을 얻은 부채주도 얼이 나간 얼굴로 제게 붙은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팔을 자르고 다시 붙여준 사람은 거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했지만, 꼼꼼하게 소독을 하고 집요할 정도로 제 팔을 실로 꿰매던 그 눈빛과 표정을 생각하면 거부 반응이 뭐야, 당장이라도 팔을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 눈빛과 표정은 남달랐다.

수적들은 의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런 눈빛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확신을 가진 이들만이 그런 눈빛을 할 수 있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허풍이나 믿음이 아니라 차곡차곡 성공 경험을 쌓아왔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수적들은 금태양의 그러한 확신에 압도당했다.

“……우리, 왠지 엄청난 거물을 잡은 거 같지 않냐?”

“거물이라뇨, 부채주. 이제 우리 두목입니다?”

“그치? 우리 두목인 거지? 다른 것도 아니고 잘린 팔을 붙이는 사람이 이제 우리 두목인 거지?”

부채주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헤벌쭉 웃었다. 좀 전까지 선상에서 칼부림을 지휘하던 살벌한 수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수적들 중 그 누구도 그를 흉보거나 속으로 비웃지 않았다.

그들은 수적이다.

칼로 남을 위협해 재물을 갈취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요 직업이다.

수채의 세가 융성하고 거래처들이 크게 반항적인 의사가 없다면야 의외로 평탄하게 지내는 날이 많은 것이 이 수적의 삶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내놓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뿐일까.

물가에는 병이 많다. 사철 습한 하중도는 병을 옮기는 벌레, 곰팡이의 온상이다. 음식은 걸핏하면 상하거나 썩고 벌레를 먹는다.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날것으로 먹으면 배탈이 나니 익혀야 하는데, 녹림채는 주변에 널린 게 나무지만 수적들에게는 나무조차도 귀한 물건이다.

전염병이 돌아 수채 하나가 궤멸하고 식중독으로 채주와 부채주가 바뀌는 일이 한 해 걸러 생기는 곳이 장강수로칠십이채가 아니던가.

하물며 중원 일대의 의원들은 산적, 수적이라면 눈을 홉뜨고 보는 무림맹 소속 의맹의 의원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민간요법에 의존해 겨우 목숨을 부지해나가던 수적들에게 갑자기 바늘 하나로 팔을 붙이는 의원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두목으로.

“앞으로 두목 말은 무조건 따른다. 그게 무슨 일이라 하더라도.”

“옳습니다!”

“전 머리를 밀고 중이 되라도 되겠습니다. 까짓거 빡빡 밀죠!”

“전 거시기 자르고 여인네가 되라 해도 되겠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붙여 주겠지!”

푸하하하! 수적 하나의 너스레에 모두가 웃음보를 터트렸다.

금태양이 보여준 것이 압도적인 검뿐이었다면 수적들도 그가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다른 마음을 먹었을 거다.

하지만 금태양은 강함에 더불어 탁월한 의술을 갖췄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수적들 인생에 두 번 올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다들 그만 노닥거리고 이 난장판 좀 치워!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두목의 명령이 오길 기다린다!”

“예, 부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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