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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02화 (202/350)

202화

“돌팔이라고?”

고깝긴 해도 계속 존대를 써오던 신생이 존대를 버렸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거 같은 기세. 아니, 진짜 사람을 죽여 본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눈빛.

“다시 한번 말해봐. 방금 뭐라고 했어?”

말 한 마디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내 제자가 아닌 신생은 이런 아이구나.

“돌. 팔. 이.”

“야!”

“내가 틀린 말 했나? 제자랍시고 뻐기는 게 침 하나 못 놓는 얼간이면 스승이 돌팔이인 거지. 안 그래?”

“이게―!”

소년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거친 목소리와 함께 곧바로 발차기가 날카롭게 내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제 자리에서 도약해서 이 정도 높이가 나온다고?

과연 개방 방주가 문파의 사활을 걸고 키운 제자답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도 못 피할 내가 아니지.

가볍게 턱을 제치는 것으로 신생의 발끝을 피해내자, 착지한 소년의 눈이 흔들렸다.

“어설프네. 대가리를 깔 거면 작정을 하고 턱을 후려쳤어야지.”

귀엽긴. 나는 늘 하던 버릇처럼 신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익, 이 손 치워!”

“어이쿠, 손이 맵네. 아, 밥 다 됐으면 그거 받아 가면 되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틈 새로 무슨 일이 있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신생이 쳐낸 손을 아픈 척 과장되게 흔들면서 쟁반을 받아들었다.

“또 보자, 돌팔이의 제자 소년.”

신생은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아까처럼 함부로 달려들진 않았다. 내가 자기보다 위라는 걸 확실히 인지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도발해두면, 기회가 왔을 때 신생이 주저하진 않겠어요.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재주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기왕이면 그 기회가 빨리 온다면 좋겠는데. 몰래 저 안에 잠입해서 누구 팔 하나 삐끗하게 만들어둘까?

[와, 생각하는 거 봐. 행동이 사람을 만든다고, 어떻게 그 며칠 만에 사람이 놈팡이가 다 됐어요?]

놈팡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솔직히 그렇잖아요? 금태양으로서의 당신에 비하면 김진으로서 당신은 좀…….]

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배가 멈춘 거 같은데?]

내가 사납게 눈을 부라리자 홍령이 말을 돌렸다.

……방금 내가 그 정도로 놈팡이스러웠나? 홍령이 말을 돌릴 정도로?

[밖에 웬 배가 몇 척 와 있어요. 유람선이랑 다리를 놓았는데요? 수적들인가?]

수적이라고?

나는 쟁반을 든 채로 선실 밖으로 나왔다.

과연, 산적들 못지않게 꼬질꼬질한 옷을 걸치고 얼굴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칼자국을 낸 사내들이 건너편 배에 와글와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이 유람선에 걸친 사다리를 통해 건너왔다.

건너편 배에는 청수재라는 깃발이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수적이네요. 청수채면 장강칠십이채 중에서는 그래도 중간쯤 되는 수채예요. 아니다, 나 살아있을 땐 그쯤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부자가 망해도 삼 대는 간다잖아.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산적은 몇 번 봤어도 수적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래도 확실히 수적은 다들 얄쌍하게들 생겼네. 하긴, 너무 우락부락하면 수영을 하긴 좀 힘들겠지.

모피를 걸친 사람도 없네. 산적들은 대체로 모피잖아.

[모피는 물 먹으면 천보다 세 배는 무겁다고요. 절대 피해야죠.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게 나을걸요?]

나와 홍령이 시답잖은 만담을 하고 있는 사이 선장과 청수채주가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이오, 선장. 잘 지내셨나?”

“저희야 잘 지냈지요, 채주. 헌데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이리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누가 보면 크게 사냥을 나가는 줄 알겠습니다.”

“사냥은 무슨. 너무 떨지 말고, 선장. 지난달 낸 통행세는 아직 이 사람 품에 있소이다.”

“하하, 그렇지요? 저는 또 제가 깜빡하고 세를 안 드린 줄 알았지 뭡니까. 오늘은 그래, 밥 좀 자시러 오셨습니까? 저희 배가 밥맛이 좀 좋지요?”

선장이 너스레를 떨며 품 안에서 전낭을 하나 꺼내 쥐여 주었다. 태도가 익숙한 걸 보니, 통행세를 받고도 가끔 용돈이나 한 번 더 챙겨달라며 진상짓을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헌데 채주는 전낭을 다시 선장에게 돌려주었다. 선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제가 착각을 했나봅디다. 이 전낭이 아니고 이것이구만요.”

선장이 다시 품에 손을 넣어 아까보다 더 큰 전낭을 내밀었다.

허나 채주는 그것도 다시 선장 쪽으로 밀어냈다.

“허허, 채주. 제가 채주를 섭섭하게 한 게 있습니까? 말씀을 해보시지요.”

그쯤 되자 선장의 말이 살짝 떨렸다. 보통처럼 돈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예감이 든 모양이었다. 사실 저 너머에 대기하고 있는 수적들의 숫자며 패용하고 있는 병장기들만 봐도 그들이 그냥 마실 나온 게 아님은 확실했다.

“딱히 선장이 잘못한 건 없소. 그렇다고 뭐 이 배를 홀랑 집어삼키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함께 거래해 온 세월이 있는데.”

“하하, 그렇지요?”

“우리는 그냥 딱 한 사람만 내어주면 돼.”

“……사람이라 하시면?”

“이 배에 항아라는 놈이 하나 탔다는데. 그놈 하나만 내어주면 우린 조용히 물러갈 거니까 너무 염려 마시오.”

미친.

갑자기 항아는 왜?

[왜긴 왜겠어요, 도망쳤다잖아요?]

그러니까. 기루에서 도망쳤다면서, 왜 청수채가 항아를 찾으러 온 거냐고.

[기루에서 현상금을 걸었나 보죠. 솔직히 그 정도 미모면 기루 하나쯤은 휘청휘청하게 만들 거 같던데요.]

이제야 항주로 출발하는 마당에 이게 웬…….

내 뒷골이 뻣뻣하게 당겨오는 동안 선장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항아라니요. 그런 이름의 승객은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저희 배, 보통 삯으로는 뱃전에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요. 그만큼 한 명 한 명 다 꼼꼼하게 명단을 관리하고요.”

“있을 텐데? 분명 여기 타는 거 봤댔어. 이보게, 선장. 날 속일 생각은 마시오. 명단에 없을 수는 있지. 지 쫓는 사람이 있는 걸 뻔히 알 텐데 가명도 안 썼을까 봐. 하지만 눈 돌아갈 정도로 예쁜 사내새끼인데, 그런 놈이 탄 걸 모를 수가 있나?”

“아이고, 그렇게 예쁜 사내면 더더욱 모릅니다. 진짜 모릅니다.”

“이 사람 봐. 우리가 한두 해 거래를 한 게 아닌데 날 두고 거짓말은?”

“진짜 모릅니다!”

“아, 이거 안 되겠네. 야들아!”

“네!”

“뒤져!”

채주의 외침에 수적들이 우르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칼을 뽑아들진 않았지만 그 숫자만으로도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선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선 내게도 서너 명의 수적들이 다가왔다. 쟁반을 들고 있었더니 내가 배에서 일하는 하인인 줄 안 모양이다. 놈들은 거칠게 윽박지르며 위협적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야, 비켜!”

“넌 뭔데? 뭐 돼?”

“뭔데? 뭐 돼? 하, 채주님이 피는 보지 말라 그랬는데.”

“본보기로 하나쯤 베어도 되지 않아?”

“그래,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세 명의 수적이 동시에 공세를 펼쳤다. 두 놈이 각각 손발을 내질렀고 한 놈은 등에 찬 거대한 박도를 뽑아들어 휘둘렀다.

“어딜!”

쏟아진 공격을 무산시키는 것은 제자리에서 높이 훌쩍 뛰어오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보통 하인이 아니다!”

“무림인이야!”

손발을 내질렀던 나머지 두 놈도 차례로 박도를 뽑았고 한 놈은 내가 착지할 자리를 향해 박도를 집어던졌다.

탁, 탁, 탁!

나와 함께 허공으로 날았던 음식과 반찬 그릇들을 손으로 쳐내자 그릇과 박도가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도자기로 된 그릇이 깨지고 누룽지탕을 담은 뜨거운 놋쇠 그릇은 그대로 뒤집어져 수적들 머리 위에 팔팔 끓는 누룽지탕을 세례로 퍼부었다.

“으악!”

“앗, 뜨거!”

타격감은 부족해도 화상만큼 사람을 순간적으로 움츠러들게 하는 게 없지.

그렇게 놈들이 움츠러든 찰나, 나는 쟁반을 세로로 쥐고 놈들의 정수리를 내려 까기 시작했다.

“이 몸이! 배가 고팠는데! 누룽지탕 기대했는데!!!”

배가 고픈 것도 사실이었고, 누룽지탕에서 홀릴 듯 맛있는 냄새가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약간의 분노를 담아 정수리를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금속으로 된 쟁반이 우그러졌고 놈들의 눈은 팽팽 돌았다.

“효도여행 한다고 나섰다가 시달리는 것도 서러운데! 니들이! 내 밥을 처먹어!!!”

[……당신이 집어던졌잖아요, 누룽지탕.]

홍령이 핀잔을 주거나 말거나 나는 요란하게 놈들의 머리를 깐 후 완전히 우그러진 쟁반을 높이 던졌다.

그리고 검을 뽑아들었다.

자색으로 일렁이는 검기가 한 자 넘도록 솟구쳤다.

그대로 허공을 휙 갈랐다.

서걱, 그리고 툭. 데구르르.

완전히 우그러져 하나의 덩어리가 된 철 쟁반이 반으로 깔끔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샌가 내게 향해 있던 모두의 시선이 데구르르 굴러다가 멈춘 쟁반이었던 고물덩어리로 향했다.

“다음은 누굴 베야 내가 맘 편하게 밥을 처먹을 수 있나?”

나는 채주를 노려보았다. 채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조금 갈등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결단을 내렸다.

“에라이, 족쳐! 족치고 올라가서 뒤져!”

“채, 채주! 이러지 마십―!”

“저리 비켜!”

채주가 선장을 거칠게 밀쳤고 배 위에 기어 올라온 수적들이 개미떼처럼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기어이 싸우겠다 이거지?”

오히려 난 좋지!

그간 은 파파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 시원하게 풀어보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선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의원이라는 직무에 따르는 품위 유지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이, 오직 무림인 김진으로서 검을 휘둘렀다.

수적들의 박도와 긴 갈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못 쓸 고철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놈들의 피가 바닥을 적셨고 팔이나 다리 등의 사지가 그 위를 뒹굴었다.

“죽여, 다 죽여!”

처음에는 피를 보지 않겠다던 놈들은 동료의 피를 보고 눈이 돌아가 거침없이 살수를 폈다. 그건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의 호위무사들, 그들도 수적들을 상대했고, 피를 흘렸고, 살점이 뜯겨나갔다.

누구 하나는 확실히 패해야 끝날 거 같던 그 상황.

“그만.”

정적이고 나직한, 그러나 경고임이 확실한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퍼져나갔다.

“이 이상 칼을 휘두른다면 채주의 목숨은 장담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 상황에 어딜 갔나 싶었더니, 어느새 현건이 그 특유의 무정한 눈을 하곤 채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으억, 컥―.”

“수적들을 물려라. 죽고 싶지 않으면.”

여태 수적들이 선실로 올라가지 못하게 열심히 막은 건 난데. 멋진 건 저 녀석이 혼자 다 하네.

그런데 이어진 채주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올라가! 난 신경 쓰지 말고!”

“예, 채주!”

“!”

세상에 어느 수적 채주가 제 목이 달려 있는데 자긴 신경 쓰지 말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하는가?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채주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현건이 제일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 당황함이 채주의 반격으로 이어졌다. 산적에 비하면 얄쌍한 몸이 틈을 놓치지 않고 빠져나와 현건에게 일격을 가했다.

“헉, 컥―!”

“저 멍청이가!”

다행히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놈이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채주가 목숨의 위협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었다. 그 덕에 수적들의 기세가 올랐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다 죽여라! 이참에 큰 건수도 하나 올려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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