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어, 어? 당신은?!”
처음 반야원에 왔을 때 정문을 지키고 있었던 문지기가 정문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온 나를 보며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여, 여길 어디라고. 어서 물러나지 못해! 훠이! 훠이!”
문지기가 들고 있는 창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해 보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내 환자들이 머무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저 사람―.”
“그때 그 의원 아냐?”
“의원은 무슨, 전염병을 퍼트린 자 아닌가!”
“솔직히 그건 모르는 일이죠. 갑자기 몇몇이 억측을 부린 거잖아요. 병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도 금 의원님이 제일 성심성의껏 환자를 돌봐줬다고요.”
나를 알아본 이들이 쑥덕거리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아주 나를 나쁘게 보는 사람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내 편을 드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머뭇머뭇거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내 쪽으로 뛰어왔다.
“헉, 허억. 예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썩 나가지 못할까!”
고개를 돌려보니 반야원의 원장과 의원들이었다.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또 뒤에서 퍼질러 놀다가 왔는지 다들 의원용 덧옷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어휴, 뻔해라. 문지기가 한 말을 또 하고 있네요.]
홍령이 허공에 둥둥 떠선 턱을 괴곤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러면서도 눈이 반짝 빛나는 게,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비켜요, 비켜! 금 의원님, 왜 이제 왔어요?!”
그러나 내가 대처할 틈도 없이 저 멀리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이가 반야원 의원들을 튕겨내다시피 앞을 가로막았다. 관자재암의 아미승 양진스님이었다.
“몸은 괜찮은 거 맞고요? 어디 보자. 여기 칼 맞았다 그랬는데. 진짜 괜찮은 거예요? 소림승들이 숨넘어간 거나 다름없댔는데? 진짜 금 의원님 맞죠? 다른 사람이 가면 쓰고 금 의원님 행세 하는 거 아니고?”
양진은 내가 진짜 멀쩡한지 내 위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어지간히 걱정을 끼쳤군.
“진짜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환자들은요?”
“지금 환자들이 문제예요? 아니 환자들이 문제긴 한데, 여기는 나랑 사저가 꽉 잡았다고요. 금 의원님은 가서 요양이나 더 해요. 진짜 괜찮은 거 맞죠?”
“절 찾는 환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 맹세코 멀쩡하니 환자를 보여주세요.”
“어휴, 그 정도면 빨리나 오지. 다 죽어서 누워 있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이렇게 멀쩡한 사람을 두고 다 죽어간다고 하다니. 그 땡중들을 내가 아주 그냥―.”
“걱정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당연하죠! 내가 환자 보는 내내 부처님 관세음보살님께 얼마나 빌었는 줄 알아요?! 그대로 죽으면 꿈자리가 사나울 거 같으니까 꼭 살려달라고 밤마다 빌었다고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은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니라면서요?”
“아, 몰라요! 좀 대충 알아들어요! 환자, 저기 있어요!”
양진이 토라지듯 홱 고개를 돌리곤 방 하나를 가리켰다. 그 반응에 피식 웃고선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반야원장이 다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 꺼지라니까? 양진 스님, 관자재암에만 계셔서 뭘 모르시나 본데. 이 작자, 반야원에 끔찍한 전염병을 옮겼었다니까? 당장 쫓아줘야 해!”
“뭐래. 관자재암은 멀쩡했거든요? 빨리 들어가요. 당신 기다리는 사람이 한 수레예요.”
양진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반야원장의 말에 콧방귀를 뀌곤 내 등을 떠밀었다.
“여러분, 금 의원님이 왔어요!”
그 목소리에 방 여기저기서 문이 활짝 열렸다. 낯익은 여인들이 환한 낯을 하고는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금 의원님! 살아 계셨군요!”
“의원님, 우리 애 좀 봐주세요. 의원님 얼굴 보여주려고 안 가고 기다렸어요!”
“며칠 더 기다려도 안 오시면 태양의원이라는 곳에 가야 하나 했는데. 잘 오셨어요!”
관자재암에서 출산을 한 산모들이 방긋방긋 웃는 아기들을 품에 안고 나를 반겼다. 여기저기 다쳤거나 아픈 기색이 엿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융중다원의 환자들에 비해서는 얼굴이 밝았다.
“이제 거동을 해도 괜찮은 겁니까, 금 의원?”
“저 정말, 정말, 정말 괜찮습니다, 양원 스님.”
도대체 괜찮냐는 말을 몇 번째 듣는 건지. 양진이 호들갑을 떨었다면 양원은 정말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안부를 물었다.
물론 그때 내 상태가 죽음을 목전에 뒀던 상태는 맞다. 하지만 나는 심상에서 이십 년의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사실 그때의 일은 먼 과거의 일처럼 머릿속에서 흐려진 상태였다. 이들에게는 며칠 전의 일이라 생생하게 느껴질 테니 이리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소림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 줘서 멀쩡합니다. 다친 곳도 다 나았고, 한 시진 동안 뛰어다녀도 멀쩡하니까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소림이?”
“뭔가 특별한 비방을 써주신 거 같더라고요.”
소림 방장이 갖고 있던 삼생화를 썼다는 얘기는 홍령에게 들었다. 하지만 자세한 얘기를 퍼트리는 건 좀 그러니까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소림승 여덟이 내게 추궁과혈을 통해 진기를 나눠주었단 얘기도 가급적 비밀로 해달라는 둘째 형님의 말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건 문파 내부의 비밀 같은 거니까. 심상 속 화산에서 이십 년을 보냈더니 나도 전과 달리 무림의 일을 제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네요. 지금 소림엔 제대로 의술을 익힌 승려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런 의술을 갖고 왜 여기 반야원은 이 모양으로 방치하는지 의문이네요.”
양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기 좀 그렇죠?”
“그런 정도가 아니던데요. 전에 와봤을 때도 개판이었는데, 어휴. 열심히 치료를 해도 이에 진드기에 상처는 덧나고, 연기를 마셨던 사람들은 여기 와서 기침이 더 심해졌어요. 빨리들 낫게 해서 내보내야 해요. 여기 있으면 병을 더 키울 거예요.”
[항상 차분하던 양원 스님인데, 개판 같은 말을 할 줄도 아네요.]
그만큼 개판이란 얘기지.
내가 여기서 온갖 잡일을 했을 때도 느꼈지만, 여기 반야원은 의원들의 정신 상태부터 건물의 상태까지 답이 없다.
내게 잡일을 떠맡긴 이유도 보나 마나 뻔하다. 사람을 쓸 돈은 착복하고 싶은데, 자기들이 보기에도 도저히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니니까. 날 골탕 먹일 겸 자질구레한 일을 떠넘긴 거지.
“하여간 온 김에 환자 좀 봐줘요. 저 반야원 돌팔이들은 못 믿겠고, 우리가 잘 모르겠는 증상들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저분부터 살펴볼게요.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던데.”
“그래요. 끝나고 건넌방 아기도 한번 봐주어요. 발가락이 다 붙어 있거든요. 아이 엄마가 매일 울다 쓰러지는 게 일이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원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 의원님이 살아 돌아와서 천만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애가 환속도 못 해보고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 뻔했지 뭐예요.”
“네?”
“아니에요.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이 방 저 방 얼굴도 좀 비쳐주고요. 당신이 건재하다는 걸 알면 심적 충격을 받은 이들도 괜찮아질 거예요.”
“의원 얼굴 보는 게 무슨 영약도 아닌데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안답니다. 흉수들이 나타났을 때,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가 그들 앞을 가로막은 게 금 의원님이라는 걸요.”
양원의 말에, 방에 있던 환자들이 한 마디씩 작게 거들었다. “맞아요.” “저도 봤어요. 그 자리에 있었잖아요.” 작은 목소리들에는 나를 향한 신뢰와 호의가 담뿍 담겨 있었다.
“모두가 당신이 한 일을 기억해요. 기억하다 뿐일까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나는 말을 잊었다. 그렇다. 때론 누군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람은 기력을 얻기 마련이다.
“알겠습니다. 여기저기 얼굴 좀 비치고 올게요.”
나는 급한 환자들을 살피면서 방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양원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환한 얼굴로 반겼고, 그때마다 걱정과 염려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염려가 싫거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내게 감사를 표하는 거니까.
[신기하네요. 아까보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 나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컨디션이 좋아지는 이들이 있었다. 맥도 안정적이었고 신체 징후도 괜찮았다.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신의 났네, 신의 났어. 얼굴만 봐도 낫는다니. 중원일주 한 번이면 천하에 아픈 사람이 없겠는데요?]
그러면 정말 신의라 불릴 만하지.
하지만 이건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그런 거니까.
관자재암에서 옮겨온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 처치가 필요한 환자를 치료한 후엔, 원래 반야원에 있던 환자들이 나를 찾았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그만 사람들의 말에 흔들렸어요.”
“나는 아닌 줄 알았다고! 우리 애를 이렇게 뚝딱 고쳐준 의원님이 뭐? 전염병을 옮겨?”
“의원님이 해준 밥을 먹고 의원님과 함께 잠들어봤다면 그런 말을 못 하지요.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없어서 어휴.”
나의 결백을 믿고 있던 이들, 긴가민가했지만 분위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했던 자들, 그리고 그때 나를 쫓아내는 데 합류했지만 그 일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사람들까지.
“됐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깔끔하게 잘랐다. 내 말이 냉정하게 들렸는지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고, 제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사과는 받겠지만 그거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굳어졌던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펴졌다.
“아이구, 우리 의원님 마음이 풀리셨으면 나 허리 좀 봐줄 수 있습니까? 의원님 침이 참 잘 들었는데.”
“이보세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염치가 없으신 거 아니에요?”
“의원님이 괜찮다는데 뭐 어때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긴 했지만 나는 그중 상태가 나쁜 이들을 골라 차근차근 치료해갔다. 내가 있는 동안 증상이 호전되었던 사람들 중 다시 상태가 악화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너무 쉽게 봐주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당신을 몰아내던 사람들한텐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라고요.]
내가 사과한 이들을 치료해주자 홍령이 입을 댓 발 내밀었다. 나라고 그때 나를 보균자로 몰아갔던 사람들이 밉지 않았던 아니지만…… 돌아봐. 진짜들은 내 주변에 없다고.
진짜. 그날의 일에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아니 솔직히, 우리가 오해할 만했잖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게 잘못이지. 우리는 잘못 없어.”
“그런 얼굴을 감추고 있던 것부터가 잘못됐지. 안 그래?”
“그렇게 쫓겨났어도 진짜 의원이라면, 어? 잘못했다고 먼저 용서를 빌고 환자를 보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자기들만의 이상한 논리를 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내 곁에 먼저 와 힘겹게 말을 꺼내는 대신 멀리서 나를 째려보고만 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 오히려 사과해주기를 바라면서.
내 앞에 와 먼저 사과를 청한 이들은 그간 충분한 마음고생을 했을 거다.
용기를 내준 이들은 나도 환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저 멀리서 야비하게 제 기분만 생각하는 자들까지 내 환자로 받을 마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