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88화 (188/350)

188화

“모용을이라 했던가? 모용가주의 서자라는.”

“예. 자신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불쑥 사라지거나 난데없이 피를 묻히고 오는 일이 있었다 합니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군주께서 습격을 당하신 날과 일치하는 날이 있었고, 그들의 숙소에서 군주의 패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허어…… 모용가의 공자가.”

“혈교와 같은 곳은 유력가의 인물을 포섭해 세력을 늘리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변방에 위치해 있지만 모용가는 당당한 정파의 일원.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일 거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어린 아기들을 납치하고 그 산모를 죽이고, 거기에 붙잡힌 자들을 구출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죽여 정체를 은폐하기 위해 얼굴을 녹이다니요. 그런 사특한 자들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승려들의 말을 듣던 방장은 침음을 삼키다가 석장으로 가볍게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승려들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우선 자신을 혈교의 무인이라 칭한 자, 그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모용세가에 사람을 보내세. 모용가는 이 일의 전말에 대해 들을 자격이 있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의 의혹도 전달하면 되겠지.”

모용갑과 모용세가의 무사들이 혈사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할 수 없었기에, 소림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정도였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은 알겠네. 그대들 마음에 쌓인 분을 풀어낼 곳 또한 필요하겠지. 허나 성급함은 그 어느 경우에도 옳은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 모습을 드러낼 것이야. 아미타불.”

답답하고 고루하지만 결국 그 말이 옳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현재 소림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고 혈기왕성한 삼대제자가 없었기에 모두들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다음은―.”

“방장 스님. 다른 안건도 급함을 알지만, 우선 소승의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현금이 한 발짝 나서며 입을 열었다. 묵묵히 소림의 길을 따라 걸을 뿐 자신의 의지나 주체적인 주장을 내보인 적이 없던 그가 나서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현금, 무슨 일이더냐?”

“이번 일로 인해 숭산과 소림의 사찰은 물론, 명예 또한 추락했음을 다들 아실 겁니다.”

“그렇지. 허나 모든 것은 차고지는 법―.”

“허나 인세에는 보다 빨리 차고 덜 느리게 지는 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소승이 정도는 아니나 지름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렸다.

현금이 금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비록 집안과 연을 끊은 것처럼 행동하던 현금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신들보다 나은 계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원래대로라면 그들의 세속적인 면을 꾸짖고 넘어가야 했겠지만, 방장은 그저 쓴웃음을 머금으며 수염만 쓰다듬었다.

그렇다.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었다면 사실 장문인 자리 같은 것은 맡지 않았을 것이다. 산속 깊숙이에서 홀로 수련을 하다가 열반에 들었겠지.

“그것이 무엇이더냐?”

“현 소림의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새 시작을 여는 동량입니다. 소승은 한 명의 제자를 소림의 품에 받아들이기를 청합니다.”

“제자라?”

정도가 아닌 지름길을 권하겠다더니, 갑자기 정도 중에서도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을 말하는 현금이었다.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것은 문파를 일으키는 가장 근본이 되는 일.

허나 최소 십 년은 내다보아야 할 대계가 아니던가?

“지금부터 어린 동자승을 키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훌륭한 실력을 가진 자를 받아들이자는 뜻입니다.”

그의 말에 모든 소림승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소림 방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금, 그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소림의 현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어차피 연등회전의 승자에게 대리인을 맡길 예정이 아니었습니까? 그것과 어디가 다릅니까? 그를 위해 이 현금이 함께 연등회전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만들어진 승자를 대리인으로 세우는 것보다 제대로 제자를 들이는 것이 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크흠, 방장이 헛기침을 삼켰다.

그 일은 소수만이 공유하고 있는 비사였다. 암암리에 눈치를 챈 자가 있을지는 모르나 이렇게 많은 제자가 있는 곳에서 할 얘긴 아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소림은 물론이고 그 어느 문파가 나이가 찬 이를 제자로 받더냐? 자질을 가려 뽑은 아이에게 규율과 법도를 가르치고, 자파의 정신을 함양했다 여겨질 때에나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아니더냐. 아니 된다.”

“천 년 전의 소림은 이리 웅장했겠습니까? 언젠가 지금의 결정이 소림의 이름처럼 당연해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오늘따라 답지 않게 집요하구나.”

“저는 소림의 일에는 항상 같았습니다.”

방장은 난처하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미 다른 이들은 현금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된 듯 보였다.

평소라면 턱도 없는 말이다. 허나 섬서사변을 지원하는 세월 동안 그들도 속에 쌓인 것이 있었을 거다.

소림처럼 이름난 문파가 비밀리에 하는 일이 있어 제자를 키울 여력도 없다니. 다른 문파와 비교하면 엄청난 박탈감에 시달릴 일이다.

제아무리 욕심을 비우는 수련을 한다지만, 자신의 것을 후대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아니던가?

허나 모든 것이 대의를 위함이라는 신념과 수행으로 다스려오던 마음이 화재를 계기로 결국 겉으로 드러난 것.

“제자로 청하고자 하는 이가 누구더냐?”

이마저 꺾어버리면 마음에 허망함이 들 뿐이다. 방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현금 네가 권하는 자라고는 하나, 전례가 없던 일인 만큼, 그 실력과 인품이 소림의 이름에 하나 부끄러움이 없는 자여야 할 것이다.”

방장은 적당히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두며 말했다.

설마하니 현금이 되도 않는 인물을 천거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집보다 더 집처럼 여겨온 소림이 불탄 데 눈이 뒤집혀서 인품은 따지지 않고 실력만 뛰어난 자를 제자로 들이자고 하는 것일지도.

“염려 마십시오. 이미 방장께서도 아는 자입니다.”

“십수의 창천검을 말하는 것이렷다.”

창천이라면 이미 소림의 대리인으로 삼고자 좌수검과 논의한 바 있는 인재였다.

그 실력이 또래에 견줄 자가 드물고, 타인의 마음을 살 만한 사연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으로 하여금 눈이 가는 외모를 갖고 있다.

지나치게 세속적인 기준이었지만 제자도 아니고 대리인을 내보내는 일이니 그 효과를 극대화할 만한 인물이어야 했다.

인품이 확실치는 않지만 그 부분은 방장 자신을 포함해 다른 이대제자들이 물심양면 이끌어주면 될 터.

누구 하나의 제자가 된다기보단 상징적인 제자가 되는 것이니 모두를 스승 삼아 배우게 하면 될 테다.

그렇게 방장이 창천을 교화(?)할 방향을 마음으로 정하는 사이, 현금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자는 아닙니다.”

“아니다?”

“실력은 나쁘지 않지만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닙니까. 납득이 갈 만큼 확실한 자여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중에 그런 자가 있더냐?”

“자하신룡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몇몇 승려들이 옳다구나, 하며 손뼉을 쳤다.

자하신룡.

그는 최근 이 부근에 모습을 드러낸 청년 무인이었다.

홀연 나타난 그는 가타부타 설명도 듣지 않고 화재를 진압하는 데 나섰다.

그의 검이 한 번 호선을 그릴 때마다 불타던 가지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자줏빛 검기가 넘실거리면 화재가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마른 덤불이나 오래된 고목들이 사라졌다.

사실 그것만으로 젊은 무인이 큰 화제가 될 리는 없다.

진정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틀 전 있었던 황산채 사건이다.

황산채는 녹림칠십이채 중 하나로, 그 전에는 소림의 이름에 눌려 작은 규모만을 유지하던 산채였다. 그러나 소림의 위세가 줄어들면서 자연 황산채의 영역도 늘어났다. 녹림칠십이채의 말석에서 녹림채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으로는 올라간 거다.

덩치가 커졌으니 산적질의 규모도 못지않게 커졌다. 소림의 영역을 직접적으로 침범하진 않았지만 소림의 위세가 닿는 곳보다 황산채의 입김이 닿는 구역이 넓어져 민간의 피해가 적지 않았고, 때문에 소림승들에게는 발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존재가 바로 황산채였다.

“하룻밤 만에 황산채의 산적들을 토벌했다지요?”

“연등회를 구경하러 왔다가 소란에 놀라 도망치던 아녀자들을 백여 명이나 억류해두었다니. 아무리 산적이라도 도리를 모르는 것들입니다.”

“자하신룡이 나서 그들을 다 풀어주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미타불.”

“이번 불로 그들의 근거지 또한 적잖이 피해를 입었고, 자하신룡이 그 세를 확연히 줄어놓았으니 몇 년간은 그런 숭악한 일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대제자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드는, 아직 혈기가 왕성한 이들이 자하신룡의 활약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을 늘어놓았다. 현금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였다.

“방장. 자하신룡의 실력은 논할 바 없이 뛰어나며 그 성품 또한 거칠지 아니합니다. 아녀자들을 구하기 위해 검을 뽑았고 산적들 또한 과하게 덤비는 이들을 제외하곤 사지 한두 개 정도만 잘랐을 뿐,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정파 협객다운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소림에 필요한 것은 그러한 인재입니다.”

방장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젊은 승려들이 눈을 빛내며 현금의 말에 넘어가서가 아니었다. 그 또한 현금의 말에 설득이 된 탓이었다.

“현금의 말은 잘 알겠다. 허나, 그러한 자가 소림의 품에 들어오겠느냐? 젊은 협객이란 자고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법일진대.”

“허니 소림에서도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어주어야지요.”

“내어줄 것이라. 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너는 우리가 그에게 내어줄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우리 소림에게는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허락만 해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그를 소림의 품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지금껏 본 적 없었던 표정과 태도였다. 결국 방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전권을 주마. 자하신룡 김진, 그자를 소림의 품으로 데려오거라.”

“아미타불,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 * *

[엣취―!]

새벽 내내 온 산을 쏘다니다 돌아와서 이제 겨우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 홍령이 요란하게 재채기를 해댔다.

[뭐지, 감긴가? 아님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전자보다야 후자가 가능성이 있겠지. 귀신이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야.

[하긴 그건 그렇죠. 내가 감기에 걸리는 것보단 당신이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죠. 열은 없어요? 몸은 좀 어때요?]

괜찮다니까, 그만 좀 걱정해.

아닌 게 아니라, 환골탈태 후 내 몸은 건강 그 자체였다. 걸핏하면 골골대고 내공 한 번 쓰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했던 전과 달리 몸은 날아다녔고 내공을 쓰는 데도 막힘이 없었다.

홍령의 말로는 환골탈태를 한 거 치곤 아직도 몸에 불순물이 남았고, 격체전력으로 전해 받은 내공에 비해 몸에 잔류한 내공이 너무 적다고는 했지만…….

전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 격세지감이다!

전생의 방식으로 비교하자면, 성인 다섯 명에 짐까지 꽉꽉 채운 경차를 몰고 다니다가 아무것도 안 실은 신형 중형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랄까?

환골탈태에 격체전력으로 받은 내공을 따지자면 벤O나 아O디 성능이 나와야 한다는 거겠지만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한 번 죽었다 깨어났었잖아요. 심상의 화산에서 수십 년의 수련을 거쳤대도 현실에서 펼쳐내려면 적응이 필요한데, 아직 균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혼자 산적 소굴을 소탕하질 않나! 그때 나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욧!]

감기도 안 걸릴 귀신이 없는 간도 떨어지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지, 귀신이라고 하지만 간은 있을 수 있잖아?

[자꾸 딴소리 할래요?! 정말 어쩔 거예요? 진짜 은 파파 말처럼 이중생활을 할 거예요? 의원 금태양과 무인 김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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