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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83화 (183/350)

183화

[잠깐만, 방금……!]

그 움직임에 홍령이 놀랐고, 내내 곁을 지키던 금동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금태양이 움찔거렸던 손 옆으로 다가가 가만히 그 떨림을 지켜보았다. 이제야 일어나는 거냐고, 게으름뱅이라고 마구 탓하며 손가락을 핥고 싶었지만, 금태양이 완전히 눈을 뜨기 전까지는 꾹 참아야 했다.

몸의 떨림이 전신으로 퍼졌다. 그러더니 이내 금태양의 몸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군가 그의 몸을 낚아채 들어 올리듯 힘없이 축 늘어져 떠오르던 몸은 조금씩 기운을 되찾는 것처럼 몸을 곧추세웠다.

[설마, 말도 안 돼.]

홍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제 입을 감쌌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확실히 ‘그것’이었다. 홍령도 겪어보지 못했고, 그저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금태양의 몸에서 짙은 자줏빛 기운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허공에 바르게 섰던 몸이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꺼풀이 반개했다. 시선은 시공 저 너머의 것을 보듯 갈피가 없었지만 분명 생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가 깊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호흡 한 번을 가다듬을 때마다 자줏빛 진기가 가볍게 요동치며 그의 몸을 들락거렸다. 눈과 코, 귀에서 시커먼 진액이 흐르다 이내 진기에 의해 타올라 사라졌다. 우둑, 우두둑― 뼈 맞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금태양의 몸 어디에도 부러진 곳이 없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내공 화후가 일정 경지 이상에 올랐을 때, 혹은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일어나는 환골탈태의 현상이라는 것을 홍령은 알았다.

―지켜야 해.

이 과정을 거친 이는 체내의 불순물을 배출하고 마치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이 강건한 몸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이 과정 하에서는 그 누구보다 약해진다. 잉태의 과정 또한 그렇지 않던가?

지금 외부에서 어떤 방해가 가해진다면 그 여파는 단순히 운기조식 중 방해를 받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터.

[이번에는, 반드시―]

홍령은 어떠한 각오를 다졌다. 사실 금태양의 몸에만 깃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빙의하는 것은 실로 쉽고 큰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이라 그런 것이고, 타인에게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해본 적은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단, 그 경우 자신은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먀아―

굳은 표정의 홍령에게 금동이가 작게 울어 보였다. 자기도 있다는 듯,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홍령을 향한 친애와 굳은 결의를 다짐한 눈빛을 한 금동이였다.

홍령은 일정 거리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이 사려 깊은 작은 짐승의 울음에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먀―

스산한 느낌뿐일 홍령의 손길에도 금동이는 좋은 듯 갸르릉거렸다. 그리고는 손톱만큼 열린 문틈을 힐끔 보았다.

그 문틈은 금동이가 고개를 돌림과 거의 동시에 소리 없이 닫혔다.

[그래, 저 사람도 있으니까.]

저 사람을 완벽히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누워 있던 금태양에게 이변이 일어나자마자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는 멀리 떠나지 않고 문 밖에 호법처럼 자리했다. 무승 현금. 소림 제일의 실력자라 알려진 이 이대제자가 지키고 있는 한 소림 방장이라 할지라도 이 문을 함부로 열 수는 없을 것이다.

내내 금태양에게는 무심하던 그가 어째서 기다렸다는 듯 달려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글쎄, 아무리 관심이 없던 동생이라도 죽은 듯 누워 있으니 잊고 있던 혈육의 정이 떠오른 것인지.

홍령도 그의 행동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사실 더더욱 확신이 없는 것은 현금 그 자신이었다.

‘부디 무사해라, 태양아. ……어쩌면 내 아들일지도 모르는 아이야.’

혼란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 표정으로 현금은 기감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예전에는 추궁과혈조차 받을 수 없는 몸이라 들었는데, 어찌 이를 버텼다. 하물며 그 기를 받아들여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친다.

자신은 금태양에게 형으로서도, 어쩌면 아버지로서도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애써 그 존재를 무시하려 한 결과는 이렇다.

그날 은 파파에게 맞은 뺨이 아직도 얼얼했다. 어찌 사람이 그러냐며, 아무리 그래도 혈육의 정으로 조금은 신경을 쓸 줄 알았다던 일갈이 귀에 어른거렸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금태양이 환골탈태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노라고.

생에 유일한 사랑이었던 여인의 아들을 지키겠노라고.

무승 현금은 그리 다짐하며, 부처를 지키는 나한의 얼굴을 하곤 굳건히 섰다.

* * *

결론만 말하자면, 그날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백귀단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그 목적 이전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한 가지,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는 기본 전제를 지키는 데 실패했고, 소림과 무인들은 백귀단의 목적을 저지했지만 이들을 추적해 전부 죽이거나 생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백귀단은 일부 아기들을 확보하고 그 산모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고, 소림은 백귀단 중 일부를 생포했다. 그러니 누가 완벽히 패자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럼에도 굳이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면, 그날의 승자는 소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섯 중 한 놈이 죽었다?”

모용갑은 불콰한 얼굴을 하곤 방금 들은 보고에 되물었다.

그가 불콰한 것은 술을 마셔서가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술 대신 선약을 담은 병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것은 이미 다 복용했고, 지금 물처럼 먹고 있는 것은 부하들의 것을 갈취한 것이다. 고작 술로는 이 더러운 기분을 걷어낼 수 없었으니까.

부하들은 이를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군가 더 이상 선약을 복용해선 안 된다고 큰마음을 먹고 충언을 했다가 정수리부터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큰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곤죽이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예. 입 안의 독단은 잡히자마자 제거된 것으로 보입니다. 죽은 한 명도 자결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젠장…….”

지금의 보고는 소림에게 붙잡힌 백귀단, 그러니까 모용세가의 비밀무사들에 관한 얘기였다. 소림이 힘겹게나마 판정승을 거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감출 것이 있는 이들은 항상 불리해진다.

“다행히 아직 우리 모용가에 대해서 입을 연 사람은 아무도 없―.”

“그럼 없어야지!”

쨍그랑!

모용갑이 빈 선약 호리병을 던졌다. 도자기로 된 호리병은 수하의 이마에 부딪쳐 산산 조각났다. 수하는 익숙한 일인 듯 떨어지는 피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둘째 도련님은 놈들에게 억류되어 계시지만 그뿐입니다. 다른 자들처럼 고문을 받진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날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계시답니다.”

금태양이 모용갑의 정체를 밝혔지만, 백귀단이 모용세가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란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 그놈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입이라도 벙끗할 리가 없지. 모용이라는 이름 외에 볼 것도 없는 놈이니까.”

그랬다. 그들이 중원을 벗어나지 않고 숭산 부근의 심처에 머무르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모용세가의 행사라는 사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간문제라는 것은 선약의 과다복용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모용갑도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붙잡힌 이들이 자결에 성공하고, 모용갑에 대한 일은 근거 없이 흐려지는 것이다.

허나 그들은 자결에 실패했고 모용갑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한 놈은 생사지경을 헤매고 있긴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벌써 삼 일의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미적거렸다간 소림의 포위망이 그들을 발견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지.”

모용갑은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실이 자연스럽게 비밀에 묻히지 않는다면, 직접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덮어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심처가 숭산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소림이 발아래 보이는 봉우리에 도달했다.

안 그래도 숫자가 적은 소림승들이 도주한 자들을 추격하러 떠났기에, 소림 일대는 되레 한산했다. 소림사 경내에만 일부의 승려들이 남아 혹시 모를 사태를 방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모용갑은 금태양이 찢어버린 두건 대신 새로운 흰 두건을 깊이 눌러썼다.

“저번엔 어처구니없이 일을 망쳤지만, 이번엔 안 돼. 다들 알지? 두 번째 기회는 없는 거야. 니들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버지가 일을 망친 네놈들을 가만두겠어?”

모용갑이 재밌다는 듯 이죽거렸다. 허나 그의 말이 맞았다. 한 번의 실패, 그것은 곧 죽음이다. 모용가주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고 그것이 실수나 나쁜 운으로 인한 것이라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예외지. 나는 두 번째, 세 번째까지도 기회를 줄 거야. 나는 모용세가의 차기 가주니까. 거기에 나는 한 번 정도는 내 수하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 수도 있거든. 표정들이 왜 그러지? 알아들은 거 맞지? 지금 네놈들이 잘해야 한다는 거야.”

실수를 수습하는 일은 성공으로 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 일을 잘 해내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 모용갑의 말에 두건을 뒤집어쓴 백귀단원들의 눈이 음울하게 빛났다.

“다시 한 번 목표를 짚고 넘어가자고. 첫째, 잡힌 놈들은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안 되면 죽인다. 어차피 모자란 놈들이니까. 둘째, 내 얼굴을 본 놈들은 다 죽인다. 특히 그 새끼, 목숨이 간당간당 하다는 그놈은 반드시 목을 친다. 그리고 셋째―, 하, 귀찮군.”

모용갑이 고개를 털었다. 계획 따위는 귀찮다는 듯 그가 진저리를 쳤다.

“알아서 해라. 가자.”

모용갑과 백귀단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불이야, 불!”

소림의 모든 것이 동시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영육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참으로 기묘한 감각을 안겨주었다.

하늘 위에 붕 떠 있던 내가 다시 바닥에 발을 딛는다. 중력에 구애받지 않던 내가 다시금 중력을 느낀다. 세상과 모든 사물을 느낀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금 이 모든 것의 일부가 된다.

그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기도 했다. 영혼으로서 약 이십 년을 살았지만 살아있는 것으로 더 긴 시간을 살았으니까.

하지만 물 먹은 솜을 어깨에 걸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에 비해서는 훨씬 가볍지만, 가상의 화산을 가볍게 오르내리던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들어요?!]

홍령이 내 앞에 있었다.

귀신으로서의 홍령이기도 했고 검 홍령이기도 했다.

온갖 감정이 뒤엉킨 표정의 홍령 그 아래, 이곳에 있을 리 없는 검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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