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79화 (179/350)

179화

금동이는 불만이 많다.

원래 금동이 정도의 소형 동물은 불만이라는 걸 가질 정도의 지능을 갖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지금까지도 금동이가 보통 동물 이상의 지능을 가진 영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마도.

금태양 또한 금동이가 영물임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모르고 있다. 지능이 높지 않아도 욕망은 존재한다. 고로 지능이 높은 존재에게도 욕망이 있다.

그리고 지능이 높은 존재는 때와 상황에 따라 욕망을 참을 줄 안다.

냐아―!

그것이 금동이가 불만을 갖고 있는 이유다. 금동이는 너무 오래 욕망을 참았다.

그 욕망이라는 것은 기실 간단하다. 지능이 있지만 금동이의 욕구는 그리 높은 층위의 것이 아니어서, 좋아하는 인간의 곁에 붙어있으면 그만이다. 인간이 자신을 쓰다듬거나 친애의 행위를 하는 것도 좋고 인간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방해를 하는 것도 좋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인간은 ‘따끔이’다. 금동이는 금태양을 따끔이라고 부른다. 물론 금태양은 금동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소리는 그냥 냐, 라든가 냐아! 정도로 들릴 뿐이다.

금태양이 모르는 것은 자신이 금동이에게 침을 놓을 때 따끔해서 ‘따끔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아니다.

금동이는 많이 참았다.

태양의원 본원에서는 따끔이가 바쁘니까 너무 놀아달라고 칭얼대지 않았고, 이곳에 따라와서는 강당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따끔이의 부탁도 들어주었다. 거기에 이상한 침입자도 물리쳤고(?) 따끔이의 친구 새침이(항상 그를 보며 새침하게 삐죽거리는 귀신에게 금동이가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새침이는 금태양과 달리 그 이름을 알아듣는다.)의 말을 들어 기세를 참기도 했다.

금동이가 생각하기에도 금동이는 참 대견했다. 상을 받아 마땅했다.

금태양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산에서 내려가면 상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금동이는 따끔이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다. 따끔이는 항상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따끔이가 자기를 두고 그냥 나가버렸다.

이번엔 같이 놀아주기로 해놓고!

물론 그 상이라는 건 금동이 혼자의 생각이었고 금태양은 그저 돌아오는 길에 금동이 몫으로 신선한 고기라도 한 근 사와야겠다 생각을 했으니 동상이몽이었지만, 어쨌든 금동이는 화가 났다.

그래서 따라가지도 않고 융중다원에 늘어져서 혼자 야옹거리며 투덜거렸다. 따끔이는 바보고 따끔이는 생각이 없다. 그렇게 크면 생각도 크게 해야 하는데 작은 금동이 마음도 모른다. 역시 따끔이는 바보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하늘에 융중다원 사람들이 띄운 연등이 뜨고 달이 어슴푸레 떠오를 때까지도 실컷 욕을 하다가, 갑자기 털이 쭈뼛 섰다.

다시금 말하지만 금동이는 영물이다. 아직 성체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 일대의 영물들을 발아래 둘 만큼 급이 다른 영물.

그런 영물의 감은 금동이가 그 느낌을 무어라 인식하기도 전에 네 발을 내달리게 했다. 반 각을 쏜살같이 달려 관자재암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야 금동이는 그 감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불길함이었다.

냐아!

중원에서도 한참이나 가야 도달할 수 있는 운남. 그곳에서도 밀림과 수풀을 지나 독충과 독물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한 이들만이 도착할 수 있다는 미지의 땅.

그곳의 지배자로 태어난 짐승은 자신의 불길함을 그러모아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포효를 내질렀다.

산이 울렸다.

모든 산의 짐승들이 왕의 포효에 저마다의 울음소리로 응답했다. 그리고 달렸다. 왕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원래 짐승들은 인간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특히나 칼 든 무림인은 더더욱 기피 대상이었다. 영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저자들은 오히려 영물이라면 눈에 불을 밝히고 찾아다녀 도살을 즐기는 자들이다.

때문에 짐승들은 부정한 기운이 득시글거리는 관자재암에서 멀리 대피해 있었다. 왕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이 일대의 피 냄새가 지워질 때까지 얼씬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달렸다.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을 억누르고 앞서 달리는 왕을 따라, 평소였다면 피해 다니기 급급했을 무림인들의 검 앞에 뛰어들었다.

“뭐, 뭐야 이거!”

“어디서 짐승 새끼들이!”

십수 마리의 수사슴이 달려들어 백귀단이 휘두르는 검을 제 뿔로 쳐냈다. 암사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야와 행동을 교란했고 틈을 타 몸을 부딪쳐 몇몇을 넘어트렸다.

수십 마리의 토끼가 땅을 팠다. 그 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어서 금태양이 봤다면 전생의 드릴로 땅을 파나 제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바닥 곳곳을 헤집은 토끼들 때문에, 언덕이긴 하지만 제법 고르던 바닥에 숭숭 구멍이 났다.

백귀단의 무인들이 고작 그런 구멍에 빠질 정도로 실력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없던 애로사항이 생기는 것은 분명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저, 저건 뭐야!”

“호랑이?! 뭐가 저렇게 커?”

그리고 뒤늦게, 이 일대의 지배자 흑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싸움터에 뛰어들어 백귀단 하나를 물어 뜯었다.

“으악, 아악!”

도살당한 이들의 피에 젖어 있던 백귀단원의 옷이 이번에는 제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성인 팔뚝만 한 송곳니에 모든 뼈가 으스러지고 도저히 살 가망이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흑호는 백귀단원을 퉤 내뱉었다.

딱히 이 정도로 과한 살생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 흑호는 서열이 밀린 일로 인해 무척이나 예민한 상태였고, 백귀단원들은 그 분노를 풀기에 아주 적합한 존재였다.

허나 그 정도로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물이라고 해봤자, 상대는 영물이라면 세상의 끝까지 쫓아가 도살하고 그 피와 살, 내단을 섭취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다.

멀리서 숨어 부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아기 사슴들의 어미와 아비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숭산 일대의 토끼굴은 돌아올 주인이 시시각각 사라졌다.

흑호가 보통 영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백귀단원의 희생으로 알아차린 이들은 순식간에 합격진을 짜 흑호를 몰아갔다. 요녕은 척박한 곳이다. 곡식이 나지 않아 유목과 사냥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이 많은 요녕 땅 출신의 이들은 본능적으로 짐승을 잡는 법에 통달해 있었다.

“아씨, 이건 또 뭐야!”

그리고 그중 한 사람, 모용갑은 자신이 휘두른 검 앞으로 뛰어든 조그만 짐승에 버럭 신경질을 냈다.

저기서 백귀단원들에게 둘러싸여 피를 흘리고 있는 흑호라면 모를까, 쬐그만 고양이 새끼 하나가 자신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냐아―!!!!

털이 가시처럼 곤두선 금동이가 쓰러진 금태양 앞에 버티고 서 포효했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어찌 저런 소리가 나는가? 모용갑은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귀찮아서 빨리 멱을 따버리려고 했더니, 무슨 방해꾼이!”

하지만 모용갑은 쫄지 않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저 재수 없는 고양이 새끼를 반토막 낼 작정이었다. 보통 고양이가 아님은 알았지만 그래 봤자 짐승새끼가 아닌가? 그의 시조는 사냥꾼이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핏덩이 하나쯤은 문자 그대로 핏덩이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금동이는 짐승들 사이에서는 감히 재고 따지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높았지만 그것은 오직 짐승들 사이에서의 일이다. 어째서 영물들이 한낱 무림인들의 내단 공급처로 전락했는가? 그것은 그 격이 수련을 거쳐 자신의 격을 높인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탓이다.

금동이는 아직 어렸고 싸움에 대한 경험도 적었다. 창천과 당당이 수련하는 것을 구경해온 눈썰미와 타고난 재주로 어떻게든 상대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결국,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로 금동이는 저 멀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하씨, 별 게 다 방해를 하고 지랄이야.”

모용갑도 금동이를 상대하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았기에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다시 하려던 일을 했다. 원래 악당은 화근을 남겨두다가 큰 코를 다치기 마련이었지만 모용갑은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악당이 아니었고, 때문에 그는 금태양과 약속한 바와는 달리 그의 숨이 붙어 있음에도 그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챙―!

“아, 또! 이번엔 웬 놈이냐!”

금동이에 이어 두 번이나 살수를 가로막힌 모용갑이 거칠게 내뱉으며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린 존재에게 검을 날렸다.

그자는 승려였다. 머리를 깨끗하게 민 비구니가 달려든 모용갑을 가볍게 흘리고 뛰어올라 모용갑의 등을 걷어찼다.

“이 늙은이의 이름은 네까짓 어린놈에게 알려줄 만큼 가볍지 않단다, 홀홀홀.”

그와 동시에 날아온 수도(手刀)가 모용갑의 급소를 노렸지만 모용갑은 가까스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손날과 검이 맞닿았는데 귀를 찢을 거 같은 금속음이 울렸다. 그 손날에 담긴 힘은 더더욱 가공할 것이었다. 선단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다. 늙은 비구니가 말했듯 이 노인네는 감히 모용갑이 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미타불, 저자들을 모조리 제압하라!”

“산모들을 구해라!”

“갓난아이들이 잡혀 갔다고 합니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라!”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림이었다. 하물며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던 관자재암에 소림의 가세는 상황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모용갑은 추명스님의 얼굴을 한 은 파파가 제압하고 있었고 짐승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소림승들을 도와 백귀단을 몰아냈다. 절반의 소림승들이 도주하는 백귀단을 쫓아갔고 이내 아기들을 찾았다는 고함이 산을 울렸다.

“추명스님, 괜찮으십니까?”

혼자서 수 명의 백귀단을 상대하던 현금은 그들의 대장이 퇴각신호를 올리자 쫓아가기를 포기하고 관자재암의 추명에게로 향했다.

“나는 추명이 아니올시다, 둘째 도련님.”

더 이상 정체를 감출 필요가 없어진 은 파파는 그 앞에서 인피면구를 벗어던졌다. 현금은 조금 당황했지만 은 파파가 그런 이인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태양 도련님이 둘째 도련님과 함께이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 노구도 감이 많이 떨어졌나봅디다. 방장은 어디 있습니까.”

“이 늙은이를 찾은 게요? 아미타불.”

소림 방장과 은 파파는 이미 안면이 있었기에 은 파파는 거추장스러운 인사 따위는 집어던졌다. 지금 급한 것은 금태양의 생사였다.

“삼생화(三生華)를 주시게나, 방장. 도련님이 위급하시네.”

방장은 조금 놀라 눈을 치켜떴다. 삼생화를 방장이 갖고 있다는 것은 소림에서도 몇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만큼 귀물이 아닌가! 도대체 은 파파가 어찌 소림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좌수검에게 절반을 나누어 주고 절반을 가지고 있음을 압니다. 그 귀한 것을 두고 다닐 리는 없겠지요. 어서!”

허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은 파파가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금태양의 처참한 상태에 삼생화를 꺼냈을 것이 분명했다. 묻는 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방장은 품에서 꽃가지를 꺼냈다.

금태양의 입에 피살이, 살살이, 뼈살이 꽃을 넣고, 잘려나간 손과 손목을 붙여 또 꽃잎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일전에 금태양이 군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꽃들이 녹아 금태양의 몸에 스며들었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숨이 조금씩 돌아오고 피가 멎었다 잘려나간 손목뼈가 붙고 살이 차올랐다.

그러나 금태양은 눈을 뜨지 않았다.

모용갑에 의해 내동댕이쳐져 기절했던 금동이가 눈을 떴다. 금동이는 주변을 돌아보고, 금태양의 적이었던 것들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 자리에는 피와 시체, 그리고 황망한 표정의 인간들뿐이었다.

얼굴 털은 피에 젖고 부러진 한쪽 다리는 절뚝거리며, 금동이는 여전히 쓰러져 있는 금태양에게 다가갔다. 아까에 비해 생기가 돌았지만 주변 인간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동이는 따끔이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다. 그런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불만 같은 거 평생 안 가질 테니까, 단 하나의 욕심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냐아! 냐!

금동이는 누워 있는 따끔이의 귀에 대고 고막이 찢어져라 요란하게 울다가, 이내 흐르는 피를 핥아주기 시작했다.

냐……

그리고 따끔이의 뺨에 머리를 툭 대곤 마구 비벼댔다.

따끔이가 눈을 뜨고 제 이름을, 금동아―, 하고 불러주었으면.

금동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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