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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68화 (168/350)

168화

“그렇군. 하긴, 나 또한 필사의 상황에서 나도 아기들도 전부 죽을 거 같아 금 의원에게 맡겼으니, 그런 상황이라면 산모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내 정왕부로 돌아가 금 의원에게 큰 상을 내리고 다른 이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

군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위기의 산모가 유일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군주가 그렇게 말하는 데 이에 흠을 잡을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공은도 입술을 깨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렴, 아까처럼 장본인이 없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 자리에서, 하물며 자신이 직접 부탁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남녀가 유별하네 어쩌네를 입에 올렸다간 군주를 욕보인 것이냐며 바로 처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관자재암으로 돌아온 날, 밤을 새우며 성심성의껏 나를 돌봐준 두 아미승에게도 감사를 표하네. 이쪽이 양원, 이쪽이 양진 스님이었지? 공은, 이들의 공로 또한 아미산에 잘 전해주시길 바라네. 왕실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네.”

“아, 알겠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왕부의 시녀와 하인들은 어서 셋이나 되는 아기님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고, 양원과 양진은 본산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일에 들떴다.

나도 군주의 말로 인한 파급력을 예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한 건 공은 하나뿐이었다.

* * *

.

이후 상황은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고귀한 친왕의 따님이 제왕절개로 세쌍둥이를 순산했다는 소문에 관자재암에 온 임신부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보통 여인들보다는 그래도 좀 있는 집 여인들이 이에 관심을 보였고, 또 다른 산모가 제왕절개로 출산에 성공하자 자신도 수술을 받겠다는 문의가 쏟아졌다.

[역시 이름이 좋다니까요. 제왕절개, 멋지잖아요? 내가 낳은 자식이 왕이 될 것만 같고요.]

군주도 그 얘기를 하긴 하더만. 왕의 핏줄을 낳게 한 수술이라 제왕절개라 이름 붙였냐고 말이지.

전생에서 그냥 그렇게 불러서 궁금해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왕이 그렇게 태어나기라도 했나?

어쨌든, 쏟아지는 문의 속에서도 나는 모든 산모를 제왕절개로 수술하지 않았다.

군주의 경우엔 삼살이 꽃이 있었으니까 망정이지. 수술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면 안 하니만 못하다.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 자연분만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에 나섰다. 지금까지 총 다섯 건이 안 되는데, 다행히 대부분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한 번 위험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 산모는 지금 회복세에 들어섰으니까.

“금 의원님, 바쁜가요?”

“아뇨. 그렇게 안 바쁩니다. 솔직히 한가하네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한가했다.

군주가 소림에 할 보시의 절반을 관자재암에 시주해서 갑자기 관자재암이 부자가 됐거든.

물론 나머지 절반은 내가 받았고.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당황하더니 추명 스님이 또 산파를 잔뜩 고용해 와서 일이 많이 줄었다.

그뿐인가?

내게 계속 태클을 걸던 공은 스님도 군주의 명으로 관자재암에서 환자를 보기 시작한 덕분에 정말 여유로워졌다.

일전에 3교대로 환자를 보던 거에 비하면 잘 시간도 넉넉하고. 이 정도면 태양의원 본원 정도의 느낌이랄까?

“잘됐네요. 소림에 좀 다녀와요.”

“소림에요?”

[아니, 아무리 편해져도 그렇지. 심부름 정도 보낼 사람이야 차고 넘치는데, 당신 같은 고오급 인력을 이렇게 부린다고요?]

글쎄다. 그런 간단한 일은 아닐 거 같은데.

양진도 아니고 양원이다. 양진은 나를 편하게 여기지만 양원은 아직까지 적당한 거리와 예의를 차리며 나를 대하고 있다. 그런 양원이 나에게 시답잖은 심부름을 시킬 리가.

“소림 방장께서 당신을 부르셨어요. 군주의 일로 얘기를 나누고자 하시더군요.”

거봐. 그런 얘기 아니었잖아.

“군주가 소림에 할 보시를 관자재암에 해서 꽤 화가 많이 나셨나 보군요.”

“그런 일이었다면 추명 스님이 가셨겠지요. 제왕절개에 대한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 봅니다. 말을 전하러 온 이도 꽤 궁금해 하더군요.”

“의외네요. 소림에서 그걸 궁금해할 줄이야.”

“어쨌든 소림도 중생구제에 힘쓰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요.”

하긴, 반야원이 그 모양 그 꼴이라 그렇지. 사실 소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의술을 제공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 않던가. 반야원을 찾는 산모들도 있으니 소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뭣보다 소림이 반응할 정도라면, 내 목표는 달성했다고 봐도 되겠지.

“제가 자릴 비워도 괜찮겠어요? 아무리 여유가 생겼다 해도 아예 빼는 건 좀 그런데.”

“우릴 뭘로 보는 겁니까. 당신이 없어도 나와 양진 둘이서 해냈던 일입니다. 끝나면 반쯤 죽어나가긴 했지만. 하여튼, 당신이 이삼일쯤 없다고 우리가 쓰러지고 그러지 않아요. 양진이 알면 어딜 가냐고, 안 된다고 할 테니 어서 가서 겸사겸사 좀 쉬다 와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군.

“좋습니다. 좀 쉬다 오지요.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다녀오시지요. 아미타불.”

* * *

산을 내려오자 시내는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붉은 연등을 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연등 외에도 각양각색의 등들이 집집마다 거리마다 매달려 있었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등에 붙이는 사람들과 아직도 등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등을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 등등.

지금까지는 연등회 준비만 하는 분위기였다면, 이제 정말 연등회가 시작된다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언제였죠? 오늘이 시작인가?]

그래. 연등회가 시작하는 날이 오늘이다.

북적북적한 시가지를 지나 다원에 도착하자 여기도 연등회 맞이로 장식이 한창이었다.

바로 소림으로 가도 되지만 사실 지금 내 상태가 꽤 꾀죄죄해서 말이지.

관자재암에서도 수시로 씻기는 했지만 끓인 물은 나보다는 환자들에게 먼저 써야 했고, 갈아입을 옷도 마땅찮았으니까.

지난번에야 소림 방장이 반야원을 찾아서 갑작스럽게 만난 거지만, 이번에는 방장으로부터 직접 초대를 받았으니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야 할 거 아닌가.

해서 다원으로 들어가 제갈다영이 우리에게 내준 거처로 향하는데, 앞에 지나가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재수탱이 갑놈!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어요?!]

그야 다원이니까, 차 마시러 왔나 보지.

저 성격에 주루가 아니라 다원을 찾았다는 게 좀 의외긴 하지만, 옆에 마찬가지로 때깔이 좋은 젊은이들이 여럿 같이 있는 걸 보니 초면에 무슨 모임이라도 갖나 보지.

처음 얼굴 보는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에서 술 마시긴 그렇고, 다원에서 적당히 차 한 잔 하다가 좀 친해지면 2차로 술집 가는 거고. 다 그렇지 뭐.

솔직히 거기까지였다면 나는 그들을 지나쳐 내 갈 길을 갔을 것이다.

헌데 그들 무리에 또 낯익은 얼굴 하나가 껴 있었다. 이번엔 모용갑처럼 한두 번 본 낯익은 얼굴이 아니라, 진짜 눈 감고 그려보라면 얼추 그릴 수도 있는 얼굴이었다.

[당당은 왜 저기 껴 있는 거죠?]

그러게 말이다.

그것도 저렇게 죽을상을 하고 말이지.

억지로 끌려가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얼굴은 거의 처형대에 끌려가는 죄수나 다름없다.

그들은 융중다원에서 가장 화려한 다실로 들어갔다.

실내라 궂은 날이나 비밀리에 얘기를 나누기에 좋지만, 한쪽 문을 다 열면 연못이 한눈에 들어와 경치를 즐기기도 좋은 곳이라고 제갈다영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던 곳이다.

언제든 와서 차를 마셔도 좋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론 여기 온 이후로 바빠서 그럴 시간은 못 냈지.

[뭘까요? 당당, 괜찮은 걸까요?]

전음이라도 보내볼 걸 그랬나. 거리가 멀어진 데다 실내로 들어가서 전음을 보내기가 애매했다. 홍령을 보내 무슨 상황인지 엿들을까도 했지만…….

나는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뒤 그들이 들어간 건물로 들어갔다.

그 자리에 합석할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뭐 하러.

대신 나는 복도를 살폈다.

그들이 들어간 방은 복도 끝에 위치했고, 그 중간에는 급이 좀 낮거나 하인들이 차를 준비하는 방이 존재했다.

나는 그중 한 방으로 들어갔다. 전부 비어 있어서 들어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있다면 대충 이쯤에 있겠지?

[뭘 찾는 거예요?]

뭐긴 뭐겠어. 비밀통로지.

아버지는 사업 얘기, 특히 비밀스러운 얘기를 할 땐 절대 주루나 다원 같은 곳에 가지 않았다. 그런 곳은 어디나 정보를 캐내려고 눈에 불을 켠 작자들이 있다나.

나도 하오문의 정보를 얻어 보니 아버지가 왜 그렇게 금가장 밖에서 비밀스러운 얘길 하는 데 조심했는지 알겠더라. 그냥 베갯머리나 기녀가 낀 술자리에서 들을 만한 얘기가 아닌 것도 많았거든.

그런 정보는 어떻게 얻느냐.

바로 이런 곳을 이용하는 거지.

수상한 곳을 툭툭 두드리며 다니던 중 한쪽 벽면에서 건너편이 빈 듯 텅텅 소리가 났다. 그곳을 살짝 힘주어 밀자 벽의 절반이 돌아가면서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통로가 나왔다.

[세상에. 진짜 이런 공간이 있다니.]

제갈세가잖아. 궁금한 게 있으면 절대 못 참는 핏줄인데, 이런 게 없을 리가 없지.

통로는 안으로 쭉 이어져 있었고 끝에는 벽에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밟아 천장으로 올라가자 조잡한 눈구멍 두 개가 보였다.

[머리 잘 썼네요. 흰 바탕에 검은 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벽지라 벽 너머에 사람이 있든 없든 티가 안 나겠어요.]

안쪽에서 본 홍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척도 잘 숨겼고. 좋아요. 가르친 보람이 있네요.]

그러면 이제 저 녀석들이 한 곳에 모여서 뭘 하는지, 일등석에서 감상해 볼까나?

“그래, 제갈 소저는 결국 안 오시나?”

“그러게 말입니다. 장소는 제공할 수 있지만 바빠서 올지 안 올지는 모른다더니. 제갈세가의 콧대가 언제부터 그렇게 높았는지.”

“높았는지!”

딱히 상석이 없는 자리배치였지만 누가 봐도 하석은 있었다. 바로 당당이었다. 당당은 제대로 다과상을 받지도 못한 채 무리에서 멀어져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남궁세가는 아예 연등회에 오질 않았고. 이 모용가가 오대세가에 직접 세가의 후기지수들끼리 친목을 다져보자 연락을 넣었건만. 봉문을 했다 하더라도 한 명쯤 슬쩍 빠져나와도 되는 거 아닌가? 남궁세가쯤 되면 모용가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건지. 과연 중원제일검답군.”

“원래 콧대 높기로 유명한 곳 아닙니까, 모용 공자. 그래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세가의 후기지수들끼리 모였으니 잊고 우애나 다져봅시다.”

“다져보자!”

모용갑의 말에 계속 대꾸를 해주는 이, 그리고 돌림노래처럼 그의 끝말을 따라 외치는 이. 이 둘은 얼굴이 분간이 어려웠다. 복색도 같고. 쌍둥이인가 보군. 나이는 나보다 좀 많으려나?

“알겠소이다, 당 공자. 오지 않은 이들 때문에 모여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을 수는 없지.”

아하. 알겠다.

저 쌍둥이, 당당의 형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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