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67화 (167/350)

167화

금태양이 군주와 세 아이를 데리고 돌아온 다음 날.

군주를 찾기 위해 각지로 퍼졌던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관자재암을 찾았다. 군주와 같이 실종되었던 정왕부의 사람들도 함께였다.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있을까 관자재암을 찾았던 그들은 오자마자 놀라운 소식과 마주했다.

“군주께서 돌아오셨다고요? 출산도 마치셨고요?”

“아기님이 셋이라니 이보다 더한 홍복이 있을 수가…… 아아, 이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의 자비로군요!”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시녀와 하인들이 감격하며 손을 모아 불호를 외는데 양진이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이건 다 금 의원님 덕분이라고요.”

“금 의원?”

“그게 누굽니까, 양진 스님?”

다들 금태양을 몰랐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관자재암을 도와주고 군주와 아기님들도 그 엄청난 위험 속에서 구해온 사람인데. 이들이 금태양을 모른다는 게 괜히 속상하고 화가 난 양진은 그들에게 금태양이 누군지 제대로 알려주기로 했다.

“존함은 금태양, 호북에서 알아주는 태양의원의 의원님이에요. 연등회를 맞아 우리 관자재암을 도우러 와주셨는데, 군주께서 실종되셨다는 말에 발 벗고 찾으러 다녔죠. 그 결과 군주님을 찾고 출산도 도왔다고요.”

“출산을 도와요?”

“이름으로 봐서는 남자인 듯한데…….”

“금 의원님 아니었으면 아기님도 군주님도 다 비명에 가실 뻔했다니까요? 그때 우리가 있었어도 별 도움이 안 됐을 거예요. 하지만 금 의원님이 신 기술인 제왕절개로 모두를 구했죠.”

양진은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기존의 방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추구해 사람을 구하는 금태양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고, 그가 그 의술을 펼치고 있는 곳이 이 관자재암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때 한 아미승이 입을 열었다.

“제왕절개가 무엇이더냐? 설명해 보거라.”

입을 연 아미승은 양진도, 양원도,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추명스님도 아니었다.

법명은 공은. 양진보다 배분이 높은 아미의 이대제자로, 정왕부의 초청을 받아 군주의 주치의가 된 이였다. 왕부에서 모셔갈 만큼 의술 실력이 대단했으며 무예 또한 이에 뒤지지 않았다.

귀한 여인의 주치의가 된다는 것은 제법 영광스러운 일이라 공은을 존경하는 삼대제자가 많았지만, 양진은 이 사고가 불편했다.

“왜 말을 하지 못하느냐. 제왕절개가 무엇이냐는데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왕절개는 바로 이곳, 아기 방이 있는 곳을 가로로 절개해 아기를 꺼내는 방법이라 알고 있습니다.”

“뭐, 뭐라?!”

“허면 그자가 군주의 아랫배에 칼을―.”

시녀들과 하인들이 어두운 안색으로 쑥덕거렸다. 이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었다. 양진과 양원도 처음 군주의 배에 칼을 댔다는 소리에는 얼마나 기절할 듯이 놀랐던가?

“양원, 그리고 양진.”

“예, 공은 사고.”

“제아무리 불도에 들었다 해도 세간에 남녀가 유별함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외간남자가 감히 군주의 살갗에 손을 대고 상처를 내는 것을, 너희들은 그냥 두고 봤다는 말이냐? 군주의 명예에 어떤 흠집이 날지 알면서도?”

공은의 말은 마치 잘 벼린 칼날 같았다. 양진은 억울해했지만 양원이 항변을 말렸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봤자 공은의 말에 근거만 더해주는 꼴이었다.

반면 공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무공과 의술 두 방면에 있어서 인정받고 있던 공은에게 이번 사건은 큰 위기였다.

정체불명의 습격자들로부터 군주를 지키지 못했고 자신만 겨우 살아 도망친 걸로도 모자라, 행방불명되었던 군주는 남의 손에 도움을 받아 출산을 마쳤다. 하물며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장담했던 것처럼 둘이 아니라 세쌍둥이였다.

이 일이 정왕부에 알려진다면 자신은 주치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공은이 주치의를 맡고 있기에 정왕부는 꾸준히 아미파에 시주를 해왔고, 이는 공은이 아미 본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권력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이에게 이를 놓는다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아직 공은에게 기회가 있었다. 다른 자에게 더 큰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자신의 죄는 흐지부지될 것이다.

하물며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녀가 유별한데 감히 군주의 몸에 손을 댄 자라. 물어뜯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상대가 없다.

“아이가 셋이라. 내 일전에 진맥한 바로는 분명 쌍생아였는데. 혹 그자가 제 자식을 데려다 군주의 자식이라 하는 건 아니더냐?”

“말도 안 됩니다!”

“너희도 그 자리에 없었다는 거 같은데, 어찌 말이 안 되지? 과거 진나라의 여불위도 제 아이를 밴 여인을 왕에게 상납하여 제 자식을 황제로 만든 고사가 있지 않느냐?”

“지금 일과 그 고사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관계가 없다? 난 그리 생각되지 않는구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고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열 길 물 속보다 어려운 법이지. 너희는 그 사내를 제법 믿고 있는 듯한데, 혹여 비구니의 신분으로 그 사내와 사통이라도 한 것이냐?”

“공은 사고!”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공은은 말에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양원과 양진은 본산에서도 내놓은 제자나 다름없었다. 무공의 성취나 의술 면에서 실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다지, 본산이 애지중지 챙겨야 할 정도는 아니다.

양진은 머리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씩씩거렸지만, 양원은 흥분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했다.

“당시 조기 태반박리에 아기님이 발부터 보였다고 합니다. 진통도 열두 시진이 넘었고요. 그때 보편적인 방법으로 분만을 했거나 이곳까지 모셔왔다면 감히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것이 그래도 말대꾸를 해. 내 이 일을 본산에 고할 것이다. 너희 둘의 방자함을 더 이상 보아줄 수가 없구나!”

“말대답을 한 것은 저뿐입니다. 사매는 그냥 두십시오.”

“사저! 그게 어떻게 말대답이에요? 있는 대로 말한 것뿐인데!”

“조용히 있으래도?”

“어떻게 조용히 있어요? 제가 감히 말하는데, 그때 공은 사고가 계셨어도 무리였을 겁니다. 금 의원님이니까 가능했던 거라고요!”

“이것들이 자숙하는 기색은 없고? 좋다, 금태양 그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들어나 보자꾸나. 데려오거라!”

공은이 언성을 높임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석장의 철고리가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냈고, 인자한 낯의 노스님이 발을 들였다.

“오면서 듣자 하니 말이 너무 심하구나.”

“추명스님!”

“스님!”

“오, 오셨습니까. 추명 사고.”

공은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퇴물 추명이 아닌가? 본산에서는 거의 언급도 안 되는 일대제자일 뿐이다. 그 말을 직접 증명이라도 하듯 공은은 살짝 일어나는 것 이상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래. 귀를 씻느라 조금 늦었다. 공은 네가 군주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있자니 귀를 씻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겠더구나.”

“사고, 그건―.”

“닥치거라.”

추명의 말에 공은이 몸을 떨었다. 순간적으로 공은에게 쏘아진 기세가 숨통을 옥죄었다.

“사, 사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 장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헛된 망상을 늘어놓는 것이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장로들은 네가 참된 수행자라 하여 본산 밖으로 나간다 한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을 거라고 하더만 그들의 말이 틀렸구나. 필시 본산으로 돌아간들 주위에 속세의 나쁜 때만 묻히게 될 것이 눈에 선하구나. 참회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파계에 이르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으리라.”

공은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삼대제자만도 실력이 못하다던 추명이 어찌 이런 기세를 뿜을 수 있는가? 아미파의 그 누구도 이만한 기세를 발출할 수는 없을 터인데―.

“하, 하지만 사고! 제가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맞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에 기초한 것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그러하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허면 직접 그 사실이라는 것을 들어보면 되겠지.”

추명이 석장을 가볍게 흔들었다. 쇠고리가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추명이 입을 열었다.

“안의 소란을 정리하는 일이 늦었습니다. 드시지요.”

* * *

나는 군주를 부축하고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가는지는 이미 다 들었기에 다시 상황파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건물이 낡으면 소리가 잘 샌다니까.

[저 사람이요. 저 비구니가 공은이에요.]

홍령이 복잡한 표정의 비구니를 지목했다. 어차피 이 안에 내가 아는 아미승이 셋이고, 모르는 아미승이 하나니 누가 공은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마마!”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마마.”

군주와 함께 들어가자 군주의 시녀들이 우르르 일어나 부축을 하려고 나섰다. 어차피 나도 남을 부축하는 게 익숙한 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군주를 넘겨주었다.

“군주 마마. 벌써 거동하시면 아니 될 텐데―.”

공은이 당황한 기색으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듯 눈동자가 어지럽게 빛났다.

공은이라는 비구니가 왜 저런 반응인지 이해는 간다.

원래도 출산 후 며칠은 못 움직이는 게 당연한데, 군주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칼로 배를 갈랐다지 않나? 그러면 더 못 움직여야 할 거 같은데 움직이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지.

“그러게 말이다. 공은이 힘들 거라 얘길 했는데, 생각보다 거동하기가 쉽구나. 이는 금 의원이 가지고 있던 귀한 약초 덕분이라고 했다.”

“맞습니다. 본래 제왕절개는 자연분만보다 회복이 느리나 귀한 몸이시고 또 위험에 처하신 상황이어서 제가 가진 신선초를 사용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것을 썼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당장 나도 삼살이 꽃을 다시 손에 넣을 길이 요원한 데다 어느 정도 신비감을 남겨놔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테니까.

“회복도 느린 데다 귀한 신선초를 사용해야 한다면 보통 산모들에게는 적용하기 힘들겠구나. 비록 몸에 칼을 대는 일이나 지독한 진통 중 점혈로 마취를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나와 있었다. 이리 편한 것을 나만 누리다니 아쉬운고로.”

“많은 경우 자연분만이 안전하고 장점이 많지만, 제왕절개를 해야 산모도 아기도 안전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몸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어 제한이 많았으니 다른 경우라면 적용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물론 나도 확답은 할 수 없다. 제왕절개는 내 생각보다 출혈이 컸다. 점혈로 가사상태에 빠트리는데 더 점혈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

하지만 당장은 이 수술법이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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