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66화 (166/350)

166화

금태양이 무사히 제왕절개 수술을 끝낸 후.

관자재암은 실종된 군주의 일로도 정신이 없는데 금태양마저 때마침(?) 없어져 그야말로 대혼란 상태였다.

“아니, 대체 어딜 간 거냐고오!”

“진정해, 사매. 그런다고 사라진 이가 오겠니. 오는 이는 언젠가 가기 마련이야.”

“사저야말로 갑자기 스님다운 얘기 하지 말라고요!”

“갑자기라니? 난 원래 스님인걸. 어차피 우리 둘이 꾸려오던 곳이야. 한 명이 들고 나는 것은 관계없이 우리의 수행은 정해져 있는 거지.”

“아우, 사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요! 벌써 환자들이 그 의원님 어디 갔냐고 찾는다니까요? 회음부 절개도 나 말고 그 의원님을 꼭 불러달라고 하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거지. 그보다 별일이 있는 건 아니면 좋겠구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양원이라고 당황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자신마저 호들갑을 떨면 안 그래도 정신없어 하는 자신의 사매가 폭주하기라도 할까 봐 참고 있는 것이다. 저 상태에 맞장구를 쳤다가 양진이 급발진하는 것을 한두 번 보았던가?

“안 되겠어요, 사저. 내가 찾으러 가봐야겠어.”

“가긴 어딜 가? 왜, 금 의원님이 위험에라도 처했을까 봐?”

“혹시 모르잖아요! 제갈 소저한테 들어보니까 어릴 때 엄청 아팠대요. 지금도 사람이 비리비리하잖아요.”

“비리비리해? 그 나이 대 청년이면 그 정도 호리호리하지. 게다가 점혈도 할 줄 아는 걸 보면 무공도 어느 정도 익힌 거 같던데. 무슨 사정이 있나 보지. 원래 자기 의원을 하던 사람이라며.”

“그래도요! 산신님한테 잘못 걸렸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 산신은 금태양이 아니라 금태양의 귀염둥이 금동이한테 이미 한 번 잘못 걸려서 된통 얻어맞은 후 그의 부하가 되어버렸지만, 그런 내막이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는 양진에게야 타당한 걱정거리였다.

양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내 입가에는 사매를 놀리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산신님이라고 해도 우린 본 적도 없잖아. 양진 너, 그러다 환속하겠다?”

“에에? 그 사람 제 취향 아니거든요?!”

양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방방 뛰었다. 그 반응이 귀엽고 웃겨서 양원은 키득키득 웃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가 사저를 두고 어떻게 환속을 해요? 환속을 할 거면 사저나 해요. 나는 아미에 뼈를 묻을 거라고요. 아니지, 열반하면 사리가 나올 정도로 대승이 되어서 아미 제자들이 대대손손 이게 양진대사의 사리래! 엄청나게 크다! 라고 감탄하게 할 거라고요. ……사저? 왜 그렇게 굳었어요?”

“뒤, 뒤…….”

양원이 겨우 입술을 달싹여 소리를 냈다. 뒤? 양진이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숭산의 주인, 회색 털과 검은 무늬, 달보다 번쩍이는 안광을 빛내는 흑호가 있었다.

“괜찮다. 사람을 해치지는 않을 게야.”

바짝 얼어붙은 양원과 양진 뒤에서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렸다. 추명스님?! 양진과 양원이 다급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아미에서 무공수위로 치면 그렇게 쳐지지 않는 그들도 이렇게 한 순간에 쫄았는데, 일대제자중에서도 한미한 실력을 가진 추명스님이라니!

“가만들 있거라.”

헌데 그들의 앞으로 나서는 추명스님의 목소리는 어딘가 전과 달랐다. 깊이와 울림에 있어 차이가 현저했다. 추명스님이 석장으로 바닥을 짚을 때마다 쇠고리가 짤랑 하는 소리가 더없이 청아하게 들렸다. 마침내 추명스님이 흑호의 앞에 섰다.

“쓰읍.”

양진은 봤다. 추명스님이 아이에게 경고를 하듯 소리를 내자 흑호가 움찔하며 반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을.

지금 이게 꿈인가 생신가? 사실 추명스님이 자신들에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사실 추명스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분장을 했다던가?

“감히 영물도 되다 만 것이 부처님의 도량에서 사람을 겁 주느뇨?”

다시 한번 추명스님이 석장을 힘주어 바닥을 찍자 쇠고리 소리가 위협적으로 울렸다. 흑호는 작게 깨갱 소리를 내며 머리를 낮췄다. 숭산 일대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흑호에게는 더없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긴, 그렇게 치자면 이 나이 들 대로 나이든 인간 고수에게 머리를 숙이는 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며칠 전 만난, 그 조그만 영물의 기세에 무릎을 꿇은 후 고 녀석이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야 하는 신세가 된 거에 비하면 낫다. 아무렴, 낫고 말고.

어쩌다 제 신세가 이렇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소림 방장도 자신을 만나면 불호를 외우며 존중을 해 주었는데, 요 며칠 숭산 산신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어쨌든 흑호는 자신의 작은 대장의 명령을 따라야 했기에 고개를 숙이고 엉금엉금 인간에게로 다가갔다.

“히익, 추명스님!”

“흐음. 사람을 업고 있구나. 숭산의 산신은 그저 힘으로 일대를 지배하여 강한 짐승일 뿐 영물이라 불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더니. 이제 덕을 쌓아 제대로 영물이 되려나 보구나.”

그, 그런 건 아닌데. 흑호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게 덕을 쌓는 건가? 이렇게 인간들을 도와주다 보면 그 쪼고만 한 대장처럼, 그 작은 몸집에서 자신을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들어 버리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품게 되는 건가?

“여 와서 도와라. 사람이 있구나. 산속에서 쓰러진 이를 구해온 모양이다.”

“예, 예!”

숭산 산신의 등장에 한 번 놀라고 추명스님의 진면모(?)에 두 번 놀란 양원과 양진은 흑호의 눈치를 보며 그 등에 실린 사람을 부축하러 갔다가 세 번 놀랐다.

“이 옷차림은, 설마…….”

“하지만 군주께서 왜 흑호의 등에…… 아니, 분명 만삭이시라고 했는데?!”

양진과 양원이 불길한 눈빛을 교환했다. 만삭의 산모가 실종이 되었는데 빈 배로 호랑이의 등에 실려 등장했다. 어디선가 출산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운명은…….

두 아미승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스쳤다. 차라리 이 여인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군주가 아니라 다른 귀한 집 여식이었으면. 그러나 허리춤에 매여 있는 정왕부의 표식에 두 아미승은 아연실색했다.

“아미타불…….”

“하아, 어쩌다 이런 일이…….”

“무슨 일 말입니까?”

그때 흑호가 나타났던 수풀 뒤로 한 사람의 인영이 비쳤다. 금태양이었다.

“금 의원!”

“어딜 갔다가 이제 와요?!?”

양진이 헐레벌떡 금태양에게 뛰어갔다. 그러나 금태양은 대수롭지 않게 양진에게 자신의 품에 들린 포대기 세 개를 내밀었다.

“좀 받으세요. 셋이나 되어서 무거워 혼났네.”

“예? 셋이요? 아니, 이 포대기는……?”

“군주가 낳은 세쌍둥이입니다.”

양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어찌나 험한 상상까지 했던가. 헌데 실종된 군주가 돌아오고(비록 산신의 등에 실려 와 아미승들을 겁먹게 했지만) 금태양도 돌아왔는데 그 품에 군주가 낳은 세 아이까지!

“세상에나,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금태양이 세 아이를 양진에게 넘겨주었다.

“셋 다 건강합니다. 하나가 역아인 데다 조기 태반박리에, 쌍둥이인 줄만 알았는데 세쌍둥이라서 좀 위험할 뻔했지만, 잘됐어요.”

“자, 잠깐만요. 그 상황에서 셋 다 건강하게 태어났다고요?! 군주께서도 괜찮으시고?! 설마……?”

“그 설마입니다.”

금태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결과는 보다시피 최상이네요.”

“세상에, 세상에! 내가 아무리 책임진다고, 믿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양진은 호들갑을 떨었고 멀리서 군주를 방으로 옮기기 위해 부축하고 있던 양원도 화들짝 놀랐다.

귀족 여인, 그것도 왕의 따님에게 남자가 칼을 대다니.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내내 제왕절개만큼은 반대해오던 양원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들어보니 금태양이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최악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군주와 아기들은 두 분에게 맡길게요. 전 좀 쉬어도 될까요? 하암…….”

“쉬어요, 쉬어요! 우리가 알아서 다 할게요!”

두 아미승이 서둘러 군주와 아이들을 미리 준비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금태양의 수술방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기에 두 비구니는 자신들의 방을 군주를 위한 방으로 개조한 참이었다. 출산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지만 고생이 많았으니 몸조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게 분명했다.

“젊은이, 고생이 많았구료.”

“아, 아닙니다.”

아미승을 다 보낸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나이 든 노승, 추명스님이 금태양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남은 자루 하나는 이 늙은이가 들어드릴까? 꽤 무거워 보이는데.”

“아, 아닙니다. 이건 제가 들 수 있습니다.”

“흐음, 그러한가? 알았네. 들어가 쉬시게나. 수고가 많았어.”

추명스님은 금태양에게 불호를 외고는 돌아섰다. 금태양은 나이 든 비구니가 모서리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휴, 깊은숨을 내쉬었다.

[저 스님 뭐예요? 자루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금태양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루에 뭐가 들었는지 안다기보단, 묘하게 익숙한…….

[설마, 이번엔 은 파파가 저 스님으로 변장한 건?]

설득력 있는 의심이었지만 금태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알기로 은 파파는 민머리로 변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은 교묘하게 숨길 수 있어도 머리카락이 있는 사람이 민머리로 분장하는 건 까다롭다나? 조금만 손질을 덜 해도 티가 확 나서 그렇다고.

[하긴, 그도 그렇네요. 머리카락은 제법 부피가 있으니까요. 어쨌든,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

금태양은 서둘러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지친 기색의 금동이도 따라 들어오더니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 옆으로 금태양이 자루를 풀어 그 안의 내용물을 부었다.

눈이 부셨다.

[하, 우린 부자예요! 이미 부자지만 더 부자다! 킥킥, 그 동굴 안에 이렇게 많은 야명주가 있을 줄이야!]

삼 살이꽃 덕분에 출산 직후 군주를 데리고 올 수 있었지만, 이걸 캐느라 시간이 소요됐다. 눈앞에 주인 없는 귀물이 있는데 안 가져가는 건 아깝잖아?

“안 팔아. 중원 전역에서 이걸 제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난데, 이걸 왜 팔아?”

지금까지 야명주의 살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던 금태양이다. 여기에 더불어, 잘만 이용한다면 전생의 암과 같은 병에 방사선 치료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 동굴을 자주 찾던 흑호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냐―

드러누워 있던 금동이가 울었다. 괜찮으니까 걱정 말라는 듯했다. 사실 흑호는 금동이가 무서워서라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추명스님이 스치듯 흘린 말로 영물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고.

“그럼 이거는 잘 처리해서 보관해 놓고…… 일단 좀 쉬어볼까? 잠이 온다…….”

관자재암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던 탓에 피로가 몰려왔다. 금태양은 야명주에 내공을 불어넣어 일시적으로 발광을 멈추게 만든 후 잠을 청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