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제가 있습니다.”
나는 품 안에서 휴대용 수술도구를 꺼냈다. 잘 드는 메스와 가위, 실처럼 가느다란 바늘, 그리고 녹는 실과 제거해야 하는 실 두 종류에 소독용 고도주까지. 척척 꺼내놓는 내 모습에 양진은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도구도 도구지만 뭣보다 그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잠깐만, 제가 있다는 게 도구를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얘긴가요?”
“여기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듯하지만 호북 일대에서 저 금태양 하면 봉합과 수술로 알아줍니다. 통째로 잘려나간 팔을 완벽하게 붙이기도 했죠.”
“그런 소문은 들어봤는데, 정말 사실이라고요?”
“입증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사이 산모가 위험할 거 같습니다. 결정을 하셔야 될 겁니다. 아이 머리 크기가 커 열상이 깊을 겁니다. 과다출혈로 산모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 이상 늦어지면 내부 파열이 있을 수도…….”
“그렇지만 환자의 몸에 어찌 칼을…….”
“산모에게는 점혈로 피를 멎게 하는 방법도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크게 찢어질수록 출혈은 심할 겁니다. 수술 자체는 아주 간단합니다. 절개도 작게 하는 편이고요.”
양진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 시도해보는 건 다 그렇다. 장본인인 산모조차도 하겠다 말을 하지 못했다.
“아, 갑자기 배가, 아악……! 진, 진통은 아닌데……!”
“피! 피가 나와, 스님!
산파가 기겁을 했다. 아기 머리가 살짝 나올락 말락 한 사이로 시뻘건 피가 흘렀다.
“내부에 열상이 생긴 거 같습니다. 아이가 너무 오래 나오지 못해 그런 거 같아요.”
“윽…… 칼을 대도 괜찮으니까 사람 살, 으읏.…….”
“이봐요, 애엄마! 정신 차려요!”
산파가 산모의 뺨을 때렸다. 산모의 정신이 흐려지는 거 같았다. 흘러나오는 피는 적지만 내부 출혈이 적지 않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옆에서 도와주십시오. 피만 닦아주시면 될 겁니다.”
산모의 허락을 받았으니 거리낄 것 없다.
나는 서둘러 비누로 손을 빡빡 씻고 온 후, 평소보다 수술도구를 꼼꼼하게 소독했다. 보통은 내공만 불어넣어 날리지만 산모는 보통상태보다 면역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취약한 건 상식이니까, 고도주 소독에 내공 소독까지 이중으로 소독을 마쳤다.
“검기를 쓸 수 있나요?!”
“네. 시험해본 결과 내공을 불어넣었을 때 소독 효과가 월등합니다. 아무나 쓸 수 없는 방법인 게 좀 아쉽지만.”
절개할 부위도 꼼꼼히 닦고 길이를 가늠했다. 드러난 아이의 머리 크기로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 절개할지 결정하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윽, 흐윽……!”
“조금만 참으세요.”
해당 부위에 진통 침을 놓았지만 강하게 놓을 수가 없어서 산모가 신음을 흘렸다. 내공을 약간 불어넣어 빠르게 절개한 후 절개 부위의 피를 닦아내니,
“진통, 진통이 와요! 악!”
“나온다, 나와! 나랑 자리 바꿔요!”
아이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양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산파는 산모가 정신을 놓지 않게 계속 말을 걸면서 무언가의 리듬에 따라 “힘 줘! 아니야, 기다려. 지금!” 하며 출산을 지도했다.
“머리 나왔어요!”
“좋아, 애엄마! 이제 힘 빼. 쭉 빼!”
산파가 산모의 몸을 이완시키는 동안 양진이 아이의 어깨부터 몸까지를 살살 빼내기 시작했다. 절개로 인해 너비가 확보된 덕분인지 아이는 수월하게 나왔다.
“나왔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가 바로 탯줄을 묶고 잘랐다.
“자, 자. 울어라 울어.”
양진이 아이의 엉덩이를 무심히 툭툭 두드리자 피와 양수에 젖은 아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울었다.
“응애!”
“아따, 녀석. 울음소리 한번 우렁차네.”
산파가 아이를 받아들어 따뜻한 물에 아이를 씻기러 갔고, 나와 양진은 뒤이어 나올 태반과 혈액을 깨끗이 처리했다.
“거의 다 끝났어요. 힘내요.”
마지막으로 내가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일만 남았다. 봉합 부위 자체는 작지만 예민한 부위니까, 근처의 다른 근육이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신경을 써서 봉합해나갔다.
“끄, 끝났나요?”
“예.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아아,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봉합이 끝나고 때마침 산파가 잘 씻긴 아이를 포대기에 싸 데리고 왔다. 산모는 기진맥진한 채로 아이를 안았는데, 피식 웃는 표정이 ‘날 괴롭힌 게 네 녀석이었구나’ 하는 얼굴이었다.
“진짜 머리가 크네. 하마터면 진짜 애 낳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어.”
“안 죽으셨잖아요. 애가 듣습니다.”
“그야 남자 의원님 덕분이죠. 어디, 한번 안아보시겠어요?”
“예? 제가요?”
“의원님 덕분에 낳았으니까요. 그래서 의원님은 성함 함자가 어떻게 되세요?”
“금태양입니다.”
이름을 말하며 산모가 건넨 아이를 받아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 애는 아니지만, 내가 조력해서 세상에 나온 첫 아이가 아닌가.
……약간, 감격스러운데.
[모든 과정을 나 없이 혼자 다 한 수술이잖아요. 의미가 깊을 만하죠.]
그렇다. 보통 수술 때 내가 개입하는 일은 적었다. 그만한 기술이 안 됐으니까. 빙의가 귀신으로선 제법 귀기를 소모하는 일이라, 수술이 길어지면 휴식을 위해 복잡하지 않은 일들은 내가 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한 건 처음이다.
“녀석, 진짜 머리가 크네. 엄청 똑똑할 모양인데?”
“그런가요?”
“머리가 크면 머리가 좋다는 말이 있죠. 엄청 똑똑하고 건강할 겁니다. 부처님의 자비 아래서 태어났잖아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네요. 남자 의원님이라 그런가 여자 맘에 쏙 드는 말만 해주네.”
“그래서, 이름은 뭐로 할 거야? 밖에 가서 기록해야 하는데.”
산파가 물었다. 산모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미리 정해놓은 이름이 없는 건가?
“혹시 의원님, 괜찮으시다면 의원님의 이름을 따도 될까요?”
“제 이름을요?!”
“안 될까요?”
“아니 그, 됩니다. 네.”
나에게도 제법 의미가 있는 아기인데 내 이름까지 따다니…….
“성은 뭔가요?”
“헤헤, 딱히 없어요. 그냥 태양이라고 부르려고요.”
“태양이라…….”
나는 아기를 내 시선까지 살짝 들어 올리고 눈을 맞추었다. 갓 태어났을 때는 낯선 세상이 두려운지 빼액 빽 울어댔는데, 지금은 좀 진정한 기색이었다. 작고 까만 눈이 호기심을 가득 담고 나를 응시했다.
“이 녀석, 태양아. 다른 건 바랄 거 없고 건강해라. 나처럼 아프지 말고. 아파도 나한테 찾아오면 얼마든지 치료해주겠지만, 그보다는 의원 한 번 볼 일 없을 정도로 건강해야 해. 알았지?”
천형의 병을 가진 사람의 이름을 덥썩 주어도 될까 싶지만, 이름을 가져간다고 체질까지 가져가는 건 아닐 테니까.
나는 아이의 눈을 보며 건강하라고 몇 번을 빌어준 후 다시 산모에게 아기를 안겼다.
[뭔가 좀 이상한데. 아기한테는 분명 덕담인데요, 의원으로서 묘한 기분이 드는 거 있죠. 안 그래요? 의원 한 번 볼 일 없이 건강 하라니. 의원이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그렇다고 꼬박꼬박 의원을 볼 정도로만 건강해라, 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그렇긴 한데…… 아무튼 미묘한 덕담이네요.]
긴장이 풀려서 홍령과 가볍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강당 밖으로 나왔는데, 마찬가지로 진이 빠진 양진이 후처리를 마치고 따라 나왔다.
몸을 쥐어짜다시피 한 산모에 비할 바겠냐만은, 간단한 조력만 한 나도 손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데 사실상 분만 과정을 함께 한 양진은 어떻겠는가?
“그래도 상황에 비해 쉽게 해결됐어요. 촉진을 한 것도 아닌데 절개를 하자마자 아이가 나올 조짐이 보이다니. 연관성이 있는진 더 봐야겠지만 절개가 분만을 촉진한 게 맞다면 여러모로 활용할 수도 있겠어요.”
“모든 경우에 절개가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아이가 작고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면 오히려 열상이 적어 회복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그거야 상황에 따라 판단하면 되고요. ……그 기술, 나도 배울 수 있을까요? 아니, 기술 외에도 당신의 의술을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나도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대처를 할 수 있겠죠?”
“가르쳐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문제가 되진 않을까요?”
소림과 아미, 이 두 문파의 특징은 불교를 기반으로 한 무림문파라는 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림문파인데도 불살(不殺)을 내세운다는 특징이 있다. 뭐, 상황에 따라 살생을 하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날붙이를 다루는 일과 피를 보는 일을 꺼려 한다고 들었다. 날붙이 무기는 허가를 받은 이들만 수련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헌데 내 얘기를 양진은 다른 쪽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렇죠. 맞아, 호북에서 오셨다니까 무당의시죠? 으윽, 그쪽에서 문제 삼으면 안 되는데. 큰 일나는데.”
“큰일이요?”
“우리가 관자재암에 있으면서 다른 문파나 세가 사람들하고 여러모로 분란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스승님이 한 번만 더 문제가 있을 땐 저도 양원 사저도 같이 참회동에 넣어버린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무당에서 무당의의 기술이 아미로 넘어갔다고 시비를 걸면…… 으윽, 어떻게 몰래 안 되나? 하지만 분명 소문날 텐데!”
[하긴, 무당놈들은 자기네 의술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니까요. 수술의 자격의 문제도 있고요. 아미파에서 자파 제자의 수술에 대해 문제 삼을 거 같진 않지만, 무당이라면 그럴 수 있죠. 자기네 의술이 타 문파에 전수되는 거에 예민할 수 있죠.]
(양진에게 들리진 않겠지만) 홍령도 거들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라니요!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양원 사저도 그렇고, 자칫하면 그쪽도 무당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구요. 무당은 그런 거에 엄청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양진 스님은 배우고 싶으신 거잖습니까. 이 기술을 익히면 더 많은 산모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맞아요! 아까 당신이 수술하는 걸 보면서 내 머릿속으로 몇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는 줄 알아요? 열상이 너무 심해도 우리는 그저 약을 주고 고약을 발라주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에게 빌 수밖에 없는데, 제대로 배우면 금세 배울 거 같은 그 기술만 익히면 그럴 일이 없는 거잖아요.”
“그렇겠죠.”
“하아, 내가 웬만해선 참회동이 무서워서라도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갈 텐데. 당신은 연등회가 끝나면 갈 거잖아요? 아니, 물론 연등회 때가 제일 문제긴 해! 당신도 봤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여기 환경이 끔찍할 정도로 열악한 거! 차라리 집에서 낳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부처님의 도량이라고 다들 그 멀리서 꾸역꾸역 온다니까요? 죽으면 또 그건 그거대로 부처님의 뜻이라고 납득들을 해! 부처님은 그런 존재가 아닌데! 그렇다고 애도 산모도 죽었는데 거기 경전을 설법을 할 수도 없고!”
양진은 부르르 떨면서 그간의 울분을 다 쏟아냈다. 끝났나? 말이 끝난 양진은 씨익거리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러니까요, 살리고 싶다고요. 참회동 그까짓 거, 들어가지 뭐! 그쪽이 문젠데, 내가 비구니라 뭐 드릴 건 없지만요! 당신의 복된 삶을 기원하며 매일 삼천 배는 드릴 수 있거든요? 아미승의 삼천 배, 이거 돈 주고도 못 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