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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57화 (157/350)

157화

막대한 돈을 건네는 것으로 소림과 정반합의 만남은 끝났다. 소림은 바쁜 듯 자리를 떴다. 좌수검은 나와 함께 소림을 배웅했다.

“좌수검은 안 가십니까?”

“갈 걸세.”

하지만 그는 말만 그렇게 할 뿐 도통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도 관자재암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뭔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보며 가만히 있기만 하니…….

“저는 정반합이 가난한 집단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네요.”

할 수 없지. 내가 물꼬를 터서 할 말을 끌어내는 수밖엔.

“정반합은 만들어질 때부터 임무에 있어 빈곤함을 겪은 적은 없네. 의장이 항상 넉넉한 돈을 건넸지. 생활의 어려움이 대의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면 아버지 유산은 왜 노리는 겁니까? 복수인가요?”

나는 괜히 볼멘소리로 되물었다. 고인이 생전에 지은 죄가 있더라도 그걸 단죄하는 데는 적정한 선이 있는 법이다.

지도를 찾는다며 자식이 위패에 손을 대게 하는 짓을 시켰다면 복수로는 충분하지 않나?

“그대는 그 유산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 같군.”

“유산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게 뭔지 알 리가 없죠.”

“그렇군. ……의장은 말했네. 그 지도는 선도(仙界)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줄 거라고 말이야.”

“선계요?”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신선들의 세상이다.

나는 맥이 풀렸다.

단칼에 태산을 벨 수 있는 무공이라는 게 존재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선이나 선계라니. 너무 허무맹랑하잖아.

하지만 좌수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삼생화(三生華)는 각기 사람의 피와 살, 뼈를 살린다고 하지. 그것을 손에 넣는다면 우리는 섬서의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건 또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긴데.

전생의 고대신화에도 피살이풀, 살살이풀, 뼈살이풀에 대한 얘기가 있다.

저승차사들을 주연으로 한 히트작 영화도 원작이 된 웹툰에서 그 내용을 다뤘었지. 본부장이 그 영화에 투자해볼 생각이라며 원작을 훑어보라고 하기에 이틀 동안 밤을 새워 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중원무림에 환생을 한 데다 옆에 귀신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선계를 마냥 허무맹랑하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

안 그래, 홍령?

……

……

……

홍령?

[……아, 미안해요. 잠깐 뭘 좀 생각하느라. 뭐라고 했어요?]

수상한데.

전부터 홍령은 좌수검이 나타날 때면 잠깐씩 말문을 잊곤 했다. 저런 타입이 취향인가? 외팔이긴 해도 좌수검은 기본적으로 멋지다. 진중하고 남자다운 분위기가 흐르는 것은 물론, 세월의 풍파를 거친 얼굴도 그럭저럭 멋이 난다. 저런 사연 있는 얼굴 좋아하는 여자들이 꽤 된단 말이지.

[아, 그래요. 선계. 가능성은 있죠. 우리 화산도 선계에 드는 것을 목표로 도를 수련했는걸요. 도가문파라면 다들 그렇고, 대문파라면 하나쯤은 우화등선한 선사가 있죠.]

그게 실존하는 걸 누가 확인한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삼생화라니.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그 삼생화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방법이라면, 아버지가 그걸 찾아와 나에게 먹이지 않았을 리 없다.

“믿기 어려운 눈치군. 하지만 그곳은 분명 실존한다. 이게 바로 그 증거다.”

좌수검이 품에서 작은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각 붉은색, 연한 분홍색, 그리고 흰색으로 핀 꽃 세 송이를 꺼냈다. 작은 가지가 붙어 있긴 했지만 꽃들은 가지에 피어있는 것처럼 싱그럽고 생생했다. 매화를 닮은 듯도 했지만 그 꽃에서 풍기는 향은 어느 꽃에서 맡아본 향과도 달랐다. 그 향을 맡기만 해도 몸에 절로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설마, 이게 그 삼생화입니까?”

“소림으로부터 맹우의 증표로 받았다네. 어느 귀인의 보시로 받았다더군. 이 꽃의 꽃잎 하나가 섬서 사람 하나를 살렸다고 하니 그곳은 필시 존재한다.”

꿀꺽. 나도 침을 삼켰다.

이 향을 맡아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것은 약의 형태였지만, 맡기만 해도 머리가 개운해지고 활력이 도는 이 향은 분명 기억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심하게 아파 고비를 앞두고 있었을 때.

생사의 경계에 있었으니 곧바로 그 약의 향을 떠올리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먹은 약의 향은 이 작은 꽃송이의 향보다 훨씬 진하고 깊기도 했고.

그래, 이것이 아버지의 유산이다.

아버지가 날 위해 남긴…….

“이것은 그대에게 주지.”

좌수검이 꽃송이를 다시 챙기더니 비단 주머니를 내게 내밀었다.

“섬서의 사람들을 치료할 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당장 그곳에 갈 수가 없고, 소림도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만 이를 사용한다 하더군. 우리보다는 의원인 자네에게 더 큰 쓸모가 있겠지.”

그리고 좌수검은 내게 억지로 비단주머니를 쥐여주었다.

내가 그의 팔을 붙여주긴 했지만…….

“좌수검은 정말 저를 믿으시는군요.”

“……그렇다고 해두지. 이만 가보겠네.”

“저기, 잠시만요.”

어?

지금 이건 내가 아니었다. 조용히 있던 홍령이 갑자기 내게 억지로 빙의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내가 위험할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더 물을 것이라도?”

“이름이,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좌수검이잖아.

물론 본명이 있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도 이름은 버리고 좌수검이라고만 불러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홍령이 이런 적은 처음이고, 어쩐지 방해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에 나는 주도권을 뺏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휘소. 이제는 세상에서 잊힌 이름이지.”

“그렇군요, 휘소.”

홍령은 그 이름을 곱씹더니 내게 다시 주도권을 내주었다. 좌수검은 갑자기 이름을 묻더니 조용해진 나를 가만히 보다가 이만 가보겠다며 사라졌다. 홍령은 말이 없었다. 왜 그런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될 분위기인 거 같아 나는 내 방으로 가 관자재암에 갈 채비를 했다.

아마 생전의 깊은 인연이거나 했겠지. 하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거고.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묘했으니까 말이야.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고 하니 그중 한 사람일지도.

나는 홍령이 상념에 빠지게 내버려 두었다. 채비를 마치고 나가자 소림에서 나를 관자재암으로 안내해 줄 승려 하나가 나와 있었다.

“방장께서 시주께 이것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는 관자재암으로 가기 전 내게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서찰의 내용은 이랬다.

「천도하지 못한 넋이 시주의 곁에 머무르고 있구려. 시주와 여인의 인연이 깊어 보이고 귀신의 말소리로 미루어보아 그 넋이 생전의 원한으로 시주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 듯하나, 혹여 괴로움이 깊어질 때 이를 이용하시게나.」

소림 방장이 홍령을 알아차렸다고?

심지어 홍령이 말하는 내용을 듣기도 한 모양이었다.

뭐 실수한 거 없지?

[으음, 없을걸요?]

분명 어디 땡중 하나 없냐느니, 방장스님께 예쁜 쌍꺼풀을 만들어드리느니 하는 얘기를 했던 거 같긴 한데…….

[에이, 그 정도 가지고! 소림 방장쯤 되어서 그렇게 속이 좁을 리가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걸 보냈는걸.

서찰 안에는 아마도 소림방장이 직접 쓴 부적이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서찰의 말미에는 만약 홍령이 나를 괴롭게 할 경우 이 부적을 태우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면 제아무리 강하게 들러붙은 귀신이라도 강제로 천도하게 될 거라나.

[으으, 속 좁네. 속 좁아! 뭐 얼마나 심한 말을 했다고 귀신을 골로 보내는 부적을 써준대요? 불길하니까 빨리 찢어버려요!]

태우면 효과가 발휘된다는데, 찢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

[그, 그렇네요. 으으, 돌려주면 안 돼요?!]

소림방장이 준 선물을 돌려보내기도 좀 그렇잖아.

너무 겁먹지 마. 내가 널 없애버리기라도 하겠어? 나 못 믿어?

[……나 못 믿어? 라는 말, 그거 되게 믿음 안 가는 말인 거 알죠? 으악, 왜 챙기냐고요!]

이렇게 위험한 부적을 남의 손에 덥썩 맡길 수도 없잖아. 누가 나한테 붙여서 불을 붙이면 어떡해? 내가 챙기는 게 낫지.

[흑흑, 의술도 가르쳐주고 무공도 퍼주는데 이렇게 목줄을 매다니. 꺼이꺼이, 귀신 살려~]

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승려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내가 쓸 생각은 없지만 혹시 모르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면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지도? 무려 소림방장이 직접 만든 부적이니 어디 팔아도 될 거고.

[악하고 삿된 것의 주박에서 풀려나는 법술이니까 난 해당 안 될 거예요. 절대!]

덕분에 잠시 침잠해 있던 홍령도 활기가 돋았다. 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홍령과 잡담을 나누며 승려를 따라 산길을 올랐다.

관자재암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왜 괜히 여인들이 남자에게 질환을 보여야 하는 일을 감수하고 반야원으로 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임신한 여인들이 출산을 위해 이 길을 오른다고? 가능해?! 싶을 정도랄까. 어느새 따라온 금동이만이 산책을 해서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앞서 걸어갈 뿐, 나도 길잡이 스님도 내공을 실어도 벅찬 길에 어느새 말이 사라진 채였다.

“저곳이 바로 관자재암입니다.”

언덕 너머로 불전의 지붕이 보이는 곳에서 승려는 발을 멈췄다.

“이 이상은 금남의 구역입니다. 아미승의 허락을 받지 않는다면 소림의 승려라 할지라도 이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허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미타불.”

금남의 구역이라니. 그런 곳일수록 소림방장의 허락을 받았다고 아미승들에게 안내를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붙잡기도 전에 승려는 쌩하니 산 아래로 사라졌다. 사람이 없어 할 일이 많은 와중에 나를 안내해준 거니 이해는 가지만…….

하는 수 없지. 일단 가볼까?

언덕을 넘자 관자재암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寺)가 아닌 암(庵)이라 예상은 했지만 관자재암의 규모는 소박했다.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걸로 추정되는 불전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작은 암자가 딸려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주변을 둘러싼 담장 같은 것도 없었고, 불전 뒤에 뭔가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거 같긴 했지만 이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계십니까. 소림방장의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사람도 없었다. 연등회를 앞두고 반야원에도 점점 환자가 늘었으니 이곳에도 환자가 제법 있어야 맞았다. 헌데 아미승은커녕 환자도 보이질 않았다.

먁!

귀신도 어디로 가야 하나 헤매고 있을 때 금동이가 저만치 달려가더니 나를 향해 울었다. 불전의 뒤편, 내가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한 그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 이럴 땐 금동이 네가 최고구나.”

금동이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었는데 인기척이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금남의 구역, 혹시라도 나를 침입자로 오해할까 봐 나는 아까 소림방장이 꺼낸 편지를 꺼내들었다. 홍령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말미에 관자재암에 가 수고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뭐야, 이건?”

그리고 나타났다. 부루퉁한 표정의 승려는 소림의 승복과는 다른 복색을 하고 있었다. 아미의 여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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