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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51화 (151/350)

151화

모두들 말문을 잃은 채로 원장의 눈치를 봤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원장은 당황하다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러게나.”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백금을 주겠다고 했으니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겠지.

“그럼 전 뒷간 청소하러 가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네만, 사람을 써서 치우는 것은 안 될 일이야. 자네가 반야원에는 돈을 쓰는 대신 몸으로 봉사하겠다고 말했으니!”

[어휴, 치졸하기는.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긴 했지만 아주 쐐기를 박아두네요.]

알았다고 대충 끄덕여주고 나는 뒷간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종류의 일이라 준비는 충분했다.

가면은 한 번 쓰고 버려도 되는 가벼운 것에 수술할 때도 쓰는 얇은 천을 둘러 준비했고 옷도 낡은 걸 입었다. 손은 독을 다룰 때 쓰는 사천당가 특제 가죽장갑을 꼈다. 맹독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는 장갑이니 변독(便毒) 정도는 충분히 막아줄 거다.

“장비는 이 정도면 됐고.”

뒷간에 들어가기 전 점혈로 후각을 마비시켰다. 냄새만 나지 않아도 한결 수월한 일이다.

“여기에 당당이 준비해 준 약을 뿌리면―.”

변독을 중화시키는 약을 변소 구멍 아래 던지자 눈을 따갑게 하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냄새도 냄새지만 오래 묵은 변은 그 자체로 독기를 품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사실상 흙더미나 다름없지.”

그래도 엄청나게 많군.

[보나 마나 뻔하죠. 지게꾼 쓰는 돈마저 지들이 슬쩍 했을걸요?]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힘내요! 이것도 수련인 셈 치자고요!]

* * *

홍령의 말처럼 뒷간을 치우는 일은 일종의 수련이 되었다. 하루 종일 굉장한 무게의 짐을 계속 퍼 나르는 데 그 양이 내공을 쓰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양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이거…… 오늘 환자를 보기는 좀 무리겠는데요?]

그런데 그 양이 미친 듯이 많았다. 분명 후각을 점혈로 눌러 놨는데도 뒷간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지속적인 내공 소모로 뒷골이 당겨 왔지만 나는 묵묵히 일했다.

그냥 일만 하면 괜찮았는데, 반야원의 의원들이 꼭 한 번씩 뒷간을 써야겠다면서 맥을 끊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뒷간에 있다 나와선 속 시원한 표정으로 내 위아래를 훑어보곤 고소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크흠, 계속 수고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반나절은 버티셨구려?”

“그러게 말이야. 참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시고, 응?”

[반나절에 원장이 꽤 큰 걸 걸었나 봐요. 의원들이 다들 신나 있네요. 흥, 조금만 기다려라. 니들 다 죽상을 쓰게 만들어주지!]

홍령이 뒷간을 떠나는 의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나는 묵묵히 청소를 계속했다.

그렇게 뒷간을 치우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끝났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어서 환자를 보고 말고 할 여력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환자는 내일부터 보기로 하고 융중다원으로 돌아갔는데, 창천을 마주쳤다.

“그건 무슨 꼴이냐.”

“놈들이 시키더라고. 그래도 다 치웠어. 내일부터는 환자를 봐야지.”

“……자업자득이군.”

녀석이 작게 중얼거리고는 발을 옮겼다.

“뭐?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야!”

피곤한 탓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야 말았다. 녀석은 대꾸도 않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달려가서 하루 종일 쓴 똥삽으로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남지 않았다.

이튿날.

“밤새 비가 왔는데 지붕이 다 낡아서 병상이 다 젖었다네. 지붕을 좀 이어줘야겠어.”

셋째 날.

“우물이 말라서 치료를 할 때 쓸 깨끗한 물이 부족하네. 물을 길어와 우물 세 개를 다 채워주겠나? 아, 물을 끓일 장작도 필요하니 장작도 좀 해오게.”

넷째 날.

“음…… 무료배식을 해야 하는데 다들 바쁘구만. 삼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주겠나?”

다섯째 날.

“식사 준비랑 물 준비랑, 아! 깨끗한 천이 부족하니 전부 삶아 널어주고, 며칠간 쌓인 뒷간도 치워주게나. 그리고 또, 또…… 그러니까…….”

나는 그들이 요구한 일을 전부 해냈다.

첫날에는 뒷간을 치우는 데 하루를 전부 썼지만 둘째 날부터는 시간 분배에 요령이 생겨서 오후부터는 환자를 볼 시간도 만들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아주 넉넉한 건 아니어서, 셋째 날부터는 내 짐을 가져와 환자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잠을 자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날렸다.

닷새쯤 되자 내가 원하는 만큼 환자를 볼 여유가 생겼다.

“의원 아저씨, 나 여기가 아파. 여기!”

“그래. 가만히 있으면 아저씨가 안 아프게 해줄게. 어디 보자.”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환자들도 이제 내 주변에 모였다. 의원의 눈치를 보다가 다른 이들이 치료를 받고 나아지는 걸 보자 하나둘 다가온 것이다.

“근데 아저씨. 왜 가면 써? 어디 흉터 있어? 아니면 곰보야?”

“얘는, 의원님께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곰보라니,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저기 있는 아저씨들이. 의원님이 밥 먹을 때랑 잘 때도 가면을 안 벗는다고, 분명 뭐가 있을 거라 그랬어.”

아이가 가리킨 쪽에는 그 환자들이 있었다. 원장의 협박에 내가 약을 훔쳤다고 거짓말을 했던 환자들. 사실 그들은 의외로 제일 먼저 다가와 그땐 미안했다고 사과하고는 진료를 받았다.

“아니, 금 의원님.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냥 궁금하다 그 얘기지.”

“오해하지 마쇼, 금 의원. 우리끼리 그냥 밥 먹다 한 얘긴데 저 어린놈이―.”

지목당한 두 사람이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내저었다.

내가 그들에게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내 가면을 잡았다.

“악! 아파! 엄마, 아파!”

“아이고, 애야!”

“미, 미안합니다. 반사적으로 그만―.”

젠장, 실수다. 가면을 붙든 아이의 손을 잡고 그대로 꺾어버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가면이라서…….

[다칠 정도로 꺾은 건 아니잖아요. 그냥 방어를 한 것뿐인데요. 애초에 애가 잘못을 한 거죠. 멋대로 남의 가면을 벗기려 하다니.]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보자. 다치진 않았을 거야.”

“아, 아뇨. 우리 애는 다른 의원님에게 보일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자, 어서 가자.”

손목이 꺾인 아이는 어미의 손에 붙들려 반야원을 떠났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죽여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의원, 착한 줄만 알았는데 보통내기가 아니네. 함부로 하면 안 되겠어.”

“자네도 조심해. 잘 때 한번 벗겨보려고 하지 않았나? 어린애니까 저 정도로 끝났지 자네가 했다간 허리가 부러질걸.”

“그래도 너무 심하다. 어린애가 장난 한 번 친 건데 그걸 팔을 꺾어버리네…….”

[이 사람들이? 여태 치료해줬더니 고마운 줄을 모르고!]

홍령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환자를 볼 준비를 했다. 이 정도로 흔들려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차례를 기다리던 환자는 긴장했는지 조금 뻣뻣할 뿐 내 진료를 거부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진료해서야 명의로 소문나기는 힘들겠는데요. 지금부터 전략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요? 내가 좀 생각해본 게 있는데, 침과 뜸, 그리고 약을 하나도 안 쓰고 치료를 하는 거예요.]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긴 하지만, 침과 뜸, 약을 안 쓰고 어떻게 치료를 해?

[기 치료를 하는 거죠. 격체전력과 점혈만 써서 치료를 하는 거예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법 신기해 보일걸요?]

솔깃하긴 한데, 그거 엄청 위험한 방법이잖아?

[좀 위험하긴 하죠. 살짝만 잘못 건드리면 환자가 폐인이 될 수도 있고, 내공이 부족하면 이쪽이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상태론 아무것도 안 될 거라고요. 위기는 곧 기회라고요!]

틀렸어. 위기가 기회를 담보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아주 잘 헤쳐나간 후 운이 좋다면 기회를 만날 뿐이지. 그 문장 하나로 얼마나 많은 회사 사장들이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실무자들을 지옥에 빠트렸는지, 원.

하지만 홍령의 말도 틀린 바는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두각을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한다. 원래는 저들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주면서 반야원의 실태를 살피고, 그중에서 기회를 찾아낼 생각이었는데…….

[내 의견도 좀 고려해보라니까요. 당신도 내공을 제법 쌓아서, 솔직히 말해서 쫌 위험하긴 하지만, 내가 보조해주면 하루에 한두 명 정도는 기 치료만으로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요!]

안 돼. 하루에 한두 명이라니. 효율이 아주 꽝이잖아.

홍령과 티격태격하면서 환자를 보다 보니 하루가 끝났다. 가면으로 인한 소동 때문에 환자들과 거리가 좀 멀어지긴 했지만, 환자와 의원 사이엔 약간의 긴장도 필요한 법이지. 그래야 서로 예의를 지키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는데, 뭔가 이상했다.

“으으…… 가려워…….”

“얼굴이 타는 거 같아…… 으윽…….”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환자들이 누운 병상 중 하나를 내어 잠자리로 삼았는데, 그 주변에서 앓는 소리들이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어디가 아프세요?”

자려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밝혔다. 앓는 소리들이 범상치가 않았다.

[저 사람 손! 얼굴을 긁지 못하게 해요!]

붉을 밝히자마자 홍령이 비명을 질렀다. 한 환자가 얼굴에서 피가 철철 흐르도록 얼굴을 긁고 있었다.

“안 됩니다, 긁으시면 안 돼요!”

“이거 놔! 가려워, 가려워 미치겠다고!”

환자의 두 팔을 붙들고 있는 사이, 나는 그의 상태를 빠르게 훑었다. 피에 젖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 여기저기에 수많은 수포와 고름이 잡혀 있었고 엄지손톱만 한 발진과 시커멓게 물든 반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 환자, 낮에 진료를 보지 않았어요? 이땐 이러지 않았었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에그머니나. 내 손이 왜 이래?!”

얼굴을 파 긁어내는 환자와 씨름을 하는 소란에 깬 환자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환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가려워도 긁지 말고, 제게 보여주세요! 다른 분들도 가렵지 않아도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찾아서 보여주세요!”

점혈로 환자를 기절시키고 다른 환자들을 살폈다. 얼굴 외에도 여기저기 수포와 고름이 잡힌 사람들이 많았다. 동전만 한 사마귀가 올라왔거나 피부 아래 딱딱한 게 만져지고, 검게 물든 부위에서는 통각은 물론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이런 증상들이 한 번에 나타나는 병 같은 건 없어요!]

지금 눈앞에 있잖아.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증상들이 동시에 여러 명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환자들을 두고 곧바로 지붕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원장의 방문을 거침없이 열어 재꼈다.

“뭐, 뭐냐! 아니, 금 의원?!”

마침 재미를 보려던 참인지, 원장은 반라의 상태로 기녀로 보이는 여인을 안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이 사람이 예의 없이! 이 밤중에 남의 방문을 함부로 열어! 금가장에서는 그렇게 자네를 가르치던가!”

“지금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나오십시오.”

“뭐라? 내 소림의 손님임을 감안해 자네에게 예의를 갖췄건만, 이 원장을 오라 가라 해?!”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다 나와!”

내공을 실어 외친 소리에 다른 방에서 잠들었던 반야원의 의원들마저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기어 나왔다.

“전염병입니다.”

나는 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씹어 먹듯 말했다.

“환자들 사이에 정체불명의 병이 번지고 있습니다. 당장 나와서 환자를 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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