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이 사람, 말이 더 많아진 거 같지 않아요? 원래도 말이 많긴 했는데 정말 수다쟁이가 다 됐네요.]
원래도 말이 많긴 했지. 지금은 제약방의 약을 중간 거래하는 당당한 상인이 됐음에도 저를 호사가라 소개하는 걸 보라고. 장사가 잘되고 있어서 더 신이 난 것도 있겠지만.
[그렇긴 한데…… 하긴, 일이 잘되는 데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신뢰할 수 있죠.]
“천하백대명의라면 모를까, 천하백대의원 정도는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요새 또 한 건 하셨더만요. 호북 일대에서 태양의원의 명성이 하늘을 찔러서 이 사람 귀가 따가워 죽을 지경이었수다. 덕분에 우리가 장사하는 약도 아주 잘나갔지요. 갑자기 웬 난리인가 궁금해서 좀 알아봤더니, 무당이 수작을 부리다가 제 꾀에 넘어갔다지?”
“그게 벌써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까?”
무당이 우리에게 가한 제재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우리가 그 위기를 극복할 경우, 그 수많은 환자를, 태청의문 지정 처방 없이 치료한 일이 우리에게 극도의 호재가 될 거라는 점이었다.
[해낼 거라고 생각도 못 했겠죠. 지금까지 그 정도면 다 무너졌을 테니까요. 이게 다 천재 홍령 님 덕분 아니겠어요, 오호홋!]
그래, 다 네 덕분이야.
[뭐, 뭐예요?! 당신이 머쓱해할까 봐 일부러 허풍 좀 떨었더니, 이렇게 빼면 내가 뭐가 돼요?]
뭐가 되긴. 천재 홍령 님이 되는 거지?
[놀리지 마요! 이번 일은 당신이 지휘해서 잘된 거잖아요! 흥!]
천재라고 인정을 해줘도 불만이야? 하여간 귀신은 어렵다니깐.
“그 정도면 천하백대의원 정도는 충분하지. 우리 수다회 사람들은 말입니다, 재밌으면 일단 말을 하고 보거든! 요새 친구들 만나면 아주 태양의원 얘기로 얘깃거리가 마를 날이 없어요. 천하백대명의? 그거야 조만간 있을 연등회에서 금 의원님이 또 위명을 날려줄 거 아닌가!”
“연등회요?”
“뭔가, 요 반응은? 금 의원, 설마 연등회가 뭔지 모르시는 거요?”
“알긴 압니다. 불교 쪽에서 연등을 걸고 법회 같은 걸 하는 거 아닙니까?”
[무림에서는 불교 문파인 소림과 아미의 합동 연등회가 유명하죠.]
전생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이나 정월대보름이면 근처에 유명한 절이 있는 곳은 거리가 온통 연등으로 장식되곤 했다. 연꽃 모양 외에도 다양한 등을 장식해 지역 축제화 하는 데 성공한 곳도 많았고.
“아닌데, 모르는 거 같은데? 혹시 초대장을 못 받으셨나?”
“초대장이라면, 소림에서 보내는 겁니까?”
“소림에선 의맹으로 초대장을 보내고, 각 정회원들이 제 지역에 초대장을 뿌리지요. 아, 그렇군? 무당이 금 의원님께 보내는 초대장을 뺐구만!”
헛웃음이 나왔다. 앞에선 대놓고 압박을 하면서 뒤에서는 다른 기회를 뺏고 있었다니. 악랄하기 짝이 없다.
“지금으로도 천하백대의원은 무리가 없고, 천하백대명의도 운이 좋으면 이름을 올릴 거요. 그래도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야 연등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참석하시는 게 좋겠지. 내 다른 길이 있나 알아봄세.”
왕 씨는 그렇게 말하곤 제약방의 물건을 실어 떠났다. 그리고 나는 연등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소림에서 열리는 연등회는 천하 사람이 다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부처님께 기원을 드려 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 특히 많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부터 아픈 걸 낫고자 하는 이들까지 말입니다. 원래도 소림은 반야원이라고 무료로 치료를 하는 의원을 운영하는데, 연등회 기간에는 의맹 의원들의 자원을 받아 대규모로 환자를 받는답니다. 동원되는 의원만 천 명이라니 엄청나지요.”
태양객잔의 점주는 하오문에서 연등회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가져왔고,
“반야원? 개방에도 초대장이 와서 몇 번 가긴 했는데, 개판이지.”
북촌객잔 근처에 거지천막을 치고 살면서 태양의원에 개방의 의술을 전수하는 거지는 아예 연등회에 의원으로 참가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땡중 놈들은 지들이 원래 반야원 주인이라고 완장을 차지, 각 의원들은 지들끼리 편을 먹어선 환자 볼 생각은 안 하고 누가 더 공이 많네 쌈질이나 해대지. 나? 나야 어떻게 하면 짬밥 더 처먹을까 생각밖에 안 했지, 깔깔!”
[확실히 정보를 두 갈래로 접할 수 있으니 좋네요. 결이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군요.]
그래. 이번에는 확실히 개방의 정보가 유용했다.
거지에게 술상을 차려주고 연등회에 대한 얘기를 사소한 부분까지 캐물었다.
말이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어서 하오문이나 금리를 통해 더블체크 해야겠지만, 이 정도면 술값은 받았다.
“꺼억, 잘 먹었수다! 맞아, 그리고 우리 방주가 그런 말을 하던데? 반반을 해줄 테니까 뭐 아는 거 있으면 연락하라대?”
“하하. 방주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요.”
“금 의원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도 했지. 그럴 때 뭐라고 말하라 했냐면,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하라던데? 큼큼, 외팔이 새끼는 네놈이 천하에 고결한 선인인 줄 안다만, 이 왕거지는 안 속는다. 삥땅도 안 치고 우리에게 넘겨줄 정도로 맹한 놈 아닌 거 아니까, 필요하면 연락해라. 라고 합디다.”
나는 그러냐며 웃고는 거지를 배웅했다.
[어휴, 사본 만들어 놓은 줄은 또 어떻게 알았대. 눈치가 귀신이네요.]
그 정도도 짐작 못 하면 개방 방주 자리는 내놔야지.
아버지의 위패 안에 있던 지도는 원본을 주고 똑같이 베껴 그린 것을 내가 가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지만 아직 알아낸 건 없다. 저쪽도 마찬가지인가 보군.
보물의 반을 나누겠다고 제시할 정도면 어지간히 실마리가 안 잡히는 모양이지?
[우리가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볼 여유는 벌었군요.]
그 부분은 그렇다 치고, 당장 닥친 문제는 연등회인데.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등회, 그곳에서 운영되는 반야원에서 의원으로서 이목을 휘어잡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명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연등회에 참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오문도 개방도 이에 대한 정보를 주진 못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화나요! 돈 한 푼 안 주는 자원봉사라 초대장도 남아돈다는데, 그거 한 장을 안 준다니!]
우리를 꾸욱 밟아버릴 작정이었으니 뭐라도 명성을 휘날릴 만한 기회는 안 주는 게 맞지.
개방에게 초대장을 빌어볼까 했지만 몇 년 전부터 도개걸이 그런 데 신경 쓸 여유 없다고 거절한 이후로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단다. 빌어먹으러 가긴 하지만 말이지.
[하여간 거지도 정작 써야 할 때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개방이 아니라도 초대장을 구할 방법은 있어.”
의맹의 회원이 천하에 무당과 소림, 그리고 개방만 있는 건 아니지.
“의맹의 초대장? 응, 집안에서 보냈음.”
당당이 집안에서 보낸 서찰과 함께 소림의 연등회 초대장을 꺼냈다.
[아! 당가도 의맹 소속이긴 하죠! 너무 멀어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예의상 초대장이 가긴 했겠군요!]
그렇지.
저번에 무한에서 사천으로 연통을 보낸 적도 있으니, 당당이 여기 있다는 걸 안다면 그쪽에서 초대장을 보냈을 거 같아서 물어봤는데 그게 정답이었다.
“계속 호북에 있을 거면 그거라도 가서 집안 면이라도 세우라고 하긴 했는데, 안 갈 거라 처박아둠! 왜, 너 감?”
“응, 가려고. 이거 내가 받아간다?”
“그럼 나도 가야겠네? 당가 초대장인데 당가 사람이 안 갈 순 없음!”
당당이 함께 간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면 당당 외에 누굴 데려가지?
[신생은 이번엔 두고 가죠. 기껏 애들하고 좀 친해졌는데 지금 떼어놓긴 좀 그렇잖아요. 저 나이 대 애들은 며칠만 안 보면 어색해진다고요. 신생이 당신이랑 떨어지려고 할지가 좀 걱정이지만.]
나랑 떨어져 지내는 법도 배워야지.
어딜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나도 아예 가는 게 아니라 잠깐 다녀오는 거다.
신생도 신생이지만 걸왕도 신생이랑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 그 나이 든 개에게 무한에서 북촌의 대장정에 이어 또 먼 거리를 가게 할 수도 없으니까.
그 얘기를 하면 신생도 납득하겠지.
[조카님은 당신 없는 동안 태양의원을 총괄해야 하니까 안 되고, 의원들을 데려갈 건가요?]
“……창천을 데려가자.”
[창천을요?]
“그 녀석, 흑심이 시커매. 나 없는 동안 내 조카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참나, 흑심은 시커머니까 흑심이죠. 조카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도 아닌데 너무 싸고도는 거 아니에요?]
“싸고돌다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어휴. 창천이 안 간다고 하려면 어쩌려고요?]
“그땐 하는 수 없지. 내가 녀석의 비밀을 리한테 알린다고 협박할 수밖에.”
[남궁세가의 혈족병이요? 그건 조카님도 알고 있잖아요. 태양의원의 일이기도 하니까. 잠깐만, 혹시 ‘그거’요?]
응, ‘그거’.
[그건 너무하지 않아요? 사적인 비밀이잖아요! 좋아하는 여자에게 접근하는 남자라면 너무 치명적이라고요!]
“내가 무조건 공개한대? 녀석이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릴 때 쓸 최후의 수단일 뿐이야.”
창천에게는 다행이게도, 녀석은 내가 협박 조건을 들이밀기 이전에 곧바로 소림 행을 수락했다.
“소림의 나한들과는 붙어보고 싶었다. 소림은 날붙이가 있는 병장기를 쓰는 대신 자신의 몸을 강화시켜 그들의 권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고 하지. 한 번도 천하제일인을 배출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백팔나한진은 인정하지 않는 무림인이 없다고 하더군.”
[맞아요. 소림은 외공이 유명해요. 금강불괴라고 들어봤어요? 도검불침의 금강지체에 수화불침의 불괴지체. 두 가지를 가진 거예요. 칼도 안 들고 물과 불에도 까딱없는 금강석처럼 강인한 몸을 가졌다는 거죠. 거기에 독도 안 들어요.]
그게 뭔데? 인체의 신비? 무공도 신기한데 이쪽은 더하네.
[대신 그 정도 되려면 외공을 극성으로 익혀야 하지만요. 내공심법보다도 익히고 발전시키는 데 오래 걸리고 그 과정은 정말 뼈를 깎는 수행이에요. 무인이라면 어느 정도 외공을 단련하긴 하지만 결국 중심이 되는 건 내공인데, 소림만큼 우직하게 외공 수련에 매진하는 곳도 없어요. 그야말로 정도 중의 정도죠.]
전생에도 맨손으로 벽돌을 깨거나 맨발로 작두를 타는 등(?) 기이한 재주를 뽐내는 차력사들이 있긴 했지만, 창천과 홍령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 같군.
[당신이 무림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한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소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 당신 둘째 형님이 소림의 무승이라면서요.]
둘째 형님, 금곤양.
사실 이름도 어색하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소림에 출가한 상태여서 집안에서도 법명으로 불렸거든.
[전부터 생각했는데, 당신 형제들 이름은 팔괘군요? 건곤감리(乾坤坎離) 진손간태(震巽艮兌) 순서네요?]
그렇지. 덕분에 많은 형제들 이름을 외우기는 쉬웠다.
이름은 그렇다 치고, 그래서 둘째 형님은 사실 가족 같은 느낌은 안 든단 말이지. 얼굴도 몇 번 본 적 없고. 어쩌다 명절에나 한 번 보는 사촌 형 같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