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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41화 (141/350)

141화

[설마 이번에도 은 파파는 아니겠죠?]

홍령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한 의원을 이모저모 훑어보았다.

“여기 태양의원의 의원들은 참 붙임성이 좋더군. 날 보자마자 무척 반겨주면서 자네를 만나러 왔냐 하던지. 나는 내가 알던 이를 못 알아보고 있나 했다네.”

한 의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진짜 한 의원이군.

양양에서 은 파파는 한 의원으로 분장해 양양 출장소의 지휘를 도왔다. 그때 한 의원에게 정을 붙인 의원들도 많지만 정작 진짜 한 의원은 그런 거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으니. 은 파파에 대해 설명하기 곤란해서 넘어갔는데, 이번에 제대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하려나.

“오랜만에 뵈니 반갑네요.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요. 혹 지현 어르신네에 무슨 일이라도?”

“그건 아니라네. 그저 태양의원에 한번 와보고 싶기도 했고. 와보니 아주 장관이더군.”

“그렇습니까?”

“환자들은 줄을 지어 서 있고, 약 짓는 연기는 저녁때 한 마을의 밥 짓는 연기만큼이나 올라가고, 문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은 밝고 활기차니 의원으로서 이보다 더한 장관이 어디 있겠는가? 내 양양에서도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어.”

한 의원이 빙긋이 웃었다. 허나 그의 얼굴에는 미소로도 가리지 못하는 깊은 수심이 엿보였다.

“혹시 의원 운영에 문제가 있으십니까?”

사실 어느 정도 짚이는 건 있었다.

이번에 무당으로부터 공격받은 건 태양의원 본원뿐이 아니다. 네 개의 분원도 환자가 몰려 꽤나 고생을 했다. 그나마 분원은 약간의 인력 보충과 근무시간 확대 등으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지정 처방의 재료가 부족한 등 조건은 같았기에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했다.

태양의원 본원과 분원에 제재를 가한 무당이, 나와 친한 의원들에게는 가만히 있었을까?

본보기로 누구 하나라도 처벌하려고 했겠지.

“부끄럽지만 그렇다네. 갑자기 환자가 줄어 확인해보았더니 나를 비롯해 김이박 세 의원들에 대해서도 안 좋은 소문이 돌더군.”

김이박 세 의원도 내게 호의적인 이들이다. 지난번 현청에 갔을 때도 다 같이 어울렸지.

“그래도 처음엔 별로 어렵지 않았다네. 알다시피 우리는 오래된 단골이 많지 않은가. 허나 약재 수급이 어려워지고, 거기에 태청의문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무당의 자격을 박탈하자 단골들마저 하나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네.”

약재 공급을 끊는 일은 우리도 당했으니 예상했는데, 무당의 자격을 박탈했다고?

“의맹의 준회원임은 변함없네. 허나 무당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무당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배상금을 내라고 하더군.”

한 의원이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 표정만으로도 무당이 얼마의 배상금을 불렀는지 짐작이 갔다.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그 자세한 내용은 뭐라고 합니까? 누명인 건 알겠지만 그래도 뭐라 갖다 붙인 거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우리도 억울해서 몇 번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극비라며 알려줄 수가 없다더군.”

[누명을 씌우는 데 그 누명조차 제대로 말을 안 한다고요? 이게 말이야 방구야!]

악의에 성의조차 없군.

이들이 무당의 횡포를 참아가며 무당의 자격을 유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당의 자격이 가져오는 신뢰와 이름값은 이 호북 일대에서는 무시할 수 없고, 이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품, 금전적 투자도 만만치 않다.

그걸 나랑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날려버린 거다.

대문파로서 자기들이 가진 신용과 신뢰가 있는데, 그걸 이렇게 덧없이.

“죄송합니다. 다 저 때문입니다.”

“금 의원이 그럴 필요는 없네. 그대를 탓할 거였다면 여기까지 오는 대신 태청의문에 달려가서 싹싹 빌면서 자네 욕을 하고 있었겠지.”

“그러니 더 제가 죄송하지요. 무당 대신 저와의 인연을 택해주신 거 아닙니까. 제가 뭐라도 도울 일이 있을까요?”

권력자의 압박 속에서 의리를 지킨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도 실질적인 생계의 위협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을 챙기지 않는다면 무당보다도 더한 놈이 되는 거다.

한 의원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염치없는 말인 건 아네만, 혹시 나도 태양의원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한 의원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귀가 시뻘갰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의 손주뻘 되는 젊은 의원에게 고개를 숙이고 저를 받아 달라 말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그게 아무리 실력을 인정하는 상대라고 해도 말이다.

괜히 아버지 금왕이 생각나 코가 시큰해졌다.

“다른 의원들처럼 태양의원의 일원이 되어도 좋고, 자네가 원한다면 집안 대대로 이어오던 의원의 간판을 내리고 그곳에 태양의원의 현판을 올려도 좋네. 허면 김이박 세 의원들도 함께 하기를 바랄게야. 세는 섭섭잖게 쳐줄 거라고 믿네.”

한 의원은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쇄신하려 들었지만 나는 따라 웃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김이박 세 의원도 현청 일대에서 이름이 있는 이들이고, 한 의원은 대대로 자기 지역에서 터줏대감을 자처해온 의원이다. 한 의원 그의 이름값만으로도 지현이 멀리서 초빙을 할 정도의 인물.

이들을 태양의원의 이름 아래 두는 것만이 정답일까?

[아깝긴 하죠. 실력 있는 의원들이고, 각자 개성이 달라요. 그들의 방식을 선호하는 환자들도 있을 거고요. 오히려 태양의원의 이름을 달게 되면 떠날 환자들도 있을 거예요.]

서비스 품질의 균일화, 시스템의 획일화는 분명 장점이 많지만 개성을 죽인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상부상조하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떠십니까? 태양의원이라는 이름을 쓰되, 한 의원님 방식을 독자적으로 꾸려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떻게 말인가?”

“저희 태양의원이 기존의 태청의문이 하던 일을 하는 거지요. 무당의가 되는 대신, 태양의가 되는 거랄까요? 지금 한 의원님이 처한 상황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약재 조달이 불가능하고, 무당의 이름을 강탈당한 데다 나쁜 소문이 돌아 신뢰를 잃은 것. 이렇게 두 가지이지요?”

“그렇다네.”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우선 약재 조달을 책임져드리겠습니다. 무한의 약재상 세 곳과 대규모 약재 계약을 진행할 겁니다. 이 일대에서 나는 약재를 구입할 수가 없어 태청의문 지정 처방 등, 기존에 쓰던 처방 일부를 사용할 수 없겠지만,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처방을 공유해드릴 겁니다.”

내가 생각한 방식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그중에서도 전생의 국가사업인 ‘나들가게’ 모델의 소셜 프렌차이즈다.

“처방 외에도 다양한 태양의원의 방식을 공유드릴 겁니다. 간호사, 간병인 등 인력도 공유할 수 있고, 침구나 기타 의원에서 사용하는 물품도 보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저렴하게 공동구매 할 수 있겠죠.”

대형마트와 마트 브랜드 슈퍼, 편의점 등에 상권을 침해당한 기존의 슈퍼마켓들을 살리기 위해 진행했던 사업.

시설과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물건과 서비스의 품질을 상향평준화 시켜 동네 슈퍼의 개성에 나들가게라는 신뢰성 있는 브랜드를 입히는 일이었다.

“반드시 지켜주셔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웬만한 부분은 한 의원님께 자율권을 드릴 겁니다. 현판에는 태양이라는 이름만 새로 붙이시면 될 거 같네요. 종종 제가 출장도 가지요. 잃어버린 환자를 되찾는 데 제 명성이 그리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사업 자체는 성공한 부분도 있고 실패한 부분도 있지만,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해볼 만하다.

“그 외에 저희 태양의원 내의 연구회나 사례발표에도 참석하실 수 있고, 제약방에서 생산되는 상비약의 판매 권한도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게 공짜는 아닙니다. 제 이름을 빌려 가시는 대가로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겠지만 무당처럼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진 않을 겁니다.”

“금 의원, 호, 혹시, 이런 방식을 나 말고 다른 의원들이 하는 것도 가능한가?”

“그럼요. 충분한 실력과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어렵겠지만, 한 의원님 같은 분들이 더 계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 입장에서도 이런 가맹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규모가 커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그만큼 태양의원의 이름값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이전이었다면 직영하는 분원도 아니고 가맹점까지 관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내겐 실력 있는 총관이 있으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왜 미리 상의도 안 하고 일을 벌이냐고 잔소리하는 조카님 모습이 떠오르는데, 착각일까요?]

이 정도는 그 애 역량으로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고. 오히려 대 환영할걸?

……뭐, 핀잔 정도는 듣긴 하겠지.

“안 그래도 나처럼 무당이 지긋지긋하지만, 그렇다고 그 손을 놓자니 대책이 없어서 머뭇거리던 이들이 많네. 대대로 지역에서 의업을 하다가 무당의 압박 때문에 무당의가 된 이들이 많아. 내가 아는 이들만 서른이 넘는다네.”

“한 의원님이 생각하시기에 충분한 실력과 인품을 갖췄다면 추천해주세요. 심사와 더불어 서로가 상부상조할 수 있는지 확인을 거친 후 가맹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전생의 프랜차이즈 사업은 프랜차이즈 자체를 오래도록 운영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맹점 비만 받아서 몇 년 장사하다 멋모르는 사람에게 체인을 팔아 치고 빠지는 식으로 사업을 하는, 일명 꾼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가맹 의원을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우리만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 또한 태양의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만한 실력과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함께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의원을 선정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미리 말해주시면 좋았겠지만 그리 바쁘진 않으니 바로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거봐, 내가 그랬지. 내 조카는 이 정도는 한다니까?

한 의원이 가고 금리와 가맹사업에 대한 구상을 마친 후,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했다.

“이거 섭섭합니다, 금 의원님. 천하백대의원을 누가 뽑는가. 우리 수다회 아닙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음 곧장 호사가 중 호사가, 이 사람을 불렀어야지요!”

[어휴, 이 사람은 여전하네요.]

왕 씨는 내 용건을 듣더니 곧바로 너스레를 떨어댔다.

천하백대의원과 천하백대명의.

이 두 가지는 의맹이 아니라 바로 수다회에서 선정한다.

“수다회라는 건 말이야. 원래 어떤 차가 맛있는 차냐, 진짜 뛰어난 차는 어떤 차냐! 중원 각지에서 생산된 차를 마셔보고 그 우열을 가리는 호사가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요. 해서 뛰어날 수에 차 다를 썼지요. 원래 사람들이 순위 매기는 걸 좋아해서 온갖 데 순위를 매깁니다만 그중에서도 공신력 있는 순위가 따로 있고 특히 수다회의 순위를 알아주지. 이 순위에 표를 던질 수 있는 것은 수다회의 회원들뿐인데, 바로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친구들이 그 당당한 수다회 회원이라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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