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40화 (140/350)

140화

“이대로 가다간 삼 일 안에 재고가 동날 게야. 평소처럼 약재가 들어와도 이 환자를 다 소화하진 못하네. 대체 어디 처박혀 있다가 이리 우르르 튀어 나온 게야? 바퀴벌레들도 아니고.”

제약방의 장 의원이 구름처럼 몰려든 환자를 보며 혀를 찼다.

평소였으면 환자한테 바퀴벌레가 뭐냐고 한 소리를 했을 홍령마저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거기에 더해,

“중간상들마저 더 이상 약재 공급이 어렵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거래량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물건을 팔아주던 중간상들이 거래를 중단했다. 지정 처방에 쓰이는 약재뿐 아니라 모든 약재의 거래를 중단한 거다.

“총관, 무한에 주문한 약재는?”

“금왕표국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한 번 더 연통을 보낼까요?”

“특송을 쓴다고 해. 당장 부족하고 급한 거부터. 특송 세 명이면 급한 불은 끄겠지.”

특송은 표마차로 물건을 나르는 게 아니라 신법이 뛰어난 무인을 통해 인편으로 물건을 나르는 거다. 그만큼 비싸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뭣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다.

“무한에 추가로 주문을 넣어. 지정 처방용 약재는 구해올 수 있다면 돈을 두 배로 주겠다고 해. 지속적으로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것도 반드시 피력하고.”

“알겠습니다.”

지정 처방용 약재 거래를 한 번에 끊는 게 아니라 조금씩 줄이더라니.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큰 곤란을 겪을 뻔했다.

“헌데 삼촌, 정말 저들이 정말 다 환자들입니까?”

“의심스러운 상황인 건 아는데, 진짜 환자가 맞아. 그러니까 더 머리가 아픈 거지.”

무당이 우리를 곤란에 빠트리려고 가짜 환자를 보내 지정 처방을 요구하는 시나리오는 염두에 뒀다.

하지만 우리 앞에 닥친 건 벌 떼처럼 많은 진짜 환자였다.

그것도 하나같이 하루 이틀 아픈 게 아니어서 약 달이는 냄새만 맡아도 평소에 먹던 약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한 환자들 말이다.

“어때요, 점주? 진짜 무당이 돈이라도 찔러줬어요?”

“그게 말입니다. 일단 무당이 환자들에게 돈을 주고 태양의원으로 가라고 한 건 사실입니다만. 마냥 그들이 우리를 음해한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북촌의 이름 없는 객잔의 주인, 이제는 태양객잔으로 이름을 바꾼 객잔의 주인이자 하오문의 문도인 이가 난감한 얼굴로 내가 조사를 부탁한 내용을 풀어놓았다.

“무당과 태청의문이 태양의원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맡고 있던 환자들에게 금 의원님의 명성을 들어보았냐면서, 그곳에 가면 탁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돈까지 쥐여 주며 방문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당의 지정처방을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났다면서요. 호북 전체, 무당의 영역에 있는 모든 의원들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미쳤나?! 그 새끼들 돌은 거 아니에요?!]

참다 못 한 홍령이 쌍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압박을 가해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이야.

이 일의 주모자는 청운진인이겠지.

그가 세운 시나리오가 머리에 그려진다.

처음에는 태양의원을 극찬하며 호북 일대의 환자들을 전부 태양의원으로 보낸다. 이제 막 체계를 잡기 시작한 태양의원은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분명 틈새가 생길 거고, 그 틈새는 곧 실수가 된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실수.

태양의원에 대해 완벽한 이미지를 그리고 왔던 환자들은 극단적인 실망을 경험할 거고 이는 곧 나쁜 소문, 그것도 근거 있는 소문이 된다.

무당의가 주축이 되어 태양의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선전했지만, 그즈음엔 사실 태양의원은 무당의가 아니며 자신들과 관련 없는, 무자격자나 다름없는 이들이라고 발을 뺀다.

다윗에 열광했던 이들은 구관이 명관, 썩어도 준치라며 결국 무당과 같은 골리앗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태양의원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다…….

“괜찮네.”

실제로 지금까지는 청운진인의 노림수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약재도 약재지만 규모에 비해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환자가 쏟아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의원들의 컨디션과 진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여태까지의 영업시간과 휴식, 휴일을 보장했더니 밤새도록 환자들의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

한 번은 창천이 나가서 적당히 하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라고 위협도 가했지만 오히려 환자들의 반감만 커졌다.

태양의원의 의원들은 쉬는 시간에 산책을 할 수도 없었고 점심시간에는 암구호를 주고받으며 식사시간을 가져야 했으며 마을에 볼 일을 보러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의원들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아예 집단심리가 되어버린 환자들의 불만은 단순히 진상 관리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견디다 못한 의원들이 차라리 자신들이 야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근무 시간을 확충했더니 우려했던 대로 의원들의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황이라 무공과 내공심법 수련마저 중단해야 했기에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총관, 보조인력 현황은?”

“현장에 투입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새로이 고용한 보조 의원이 열다섯 명 간호사가 스무 명, 간병인이 오십 명입니다.”

“병실과 식사 준비는?”

“태양객잔이 전 객실을 병실로 제공하고 식사 또한 우리 태양의원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북촌객잔도 절반의 객실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식재료는 근처에서 있는 대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곡식은 지현께서 현청에 보관 중인 곡물 일부를 저렴하게 팔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좋아. 바로 시작해.”

전부터 준비해왔던 인력들이 대거 보충되었고, 환자들이 병상에 수용되기 시작했다.

병상에 눕힌다고 환자들이 전부 낫는 건 아니다. 그건 환자들을 체계 안에 넣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밥 나갑니다!”

“고기 모자라신 분!”

“채소도 골고루 드셔주셔야 해요. 배식은 다 드세요!”

밥을 잘 먹이고.

“술시가 끝나갑니다! 해시에는 주무셔야 해요! 잠이 안 오시는 분은 말씀해주세요!”

“춥거나 더우신 분! 얼음 베개나 데운 이불을 드립니다!”

잘 재우고.

“기상! 아침입니다, 일어나세요! 연무장에서 아침 체조 시작합니다!”

몸을 충분히 움직이게 한다.

전생에 의사의 처방 중 가장 따르기 힘든 것이 “일은 적당히 하고, 골고루 잘 먹고 적당히 움직이고 충분히 주무세요.”라는 농담이 있었다.

그게 안 되니까 약을 처방 받고 주사를 맞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

그건 절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약 드실 시간입니다!”

“어르신, 어르신은 이따가 저녁 드시고! 지금이 아니에요, 이따 드릴게요!”

“자, 확인해보세요. 원래 드시던 그 약 맞죠? 태청의문 지정 처방 맞다니까요. 그죠? 아이, 잘 드신다. 쭉쭉!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환자를 증상별로 분류해 약을 개개인에게 처방하는 대신 대량으로 제조함으로써 원재료의 낭비를 막고, 약을 적정 용량만큼 제때 복용을 지도함으로서 오용, 남용을 차단한다.

“침 맞으실 분들 증상 기록지 들고 대기해주세요!”

“다음 환자분! 세 분 들어오세요! 한 분씩 의원님들 앞에 대기해주세요!”

의원들마다 전담 분야를 나누어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듯 환자들의 치료를 진행한다.

처음에는 이게 뭐냐며, 한 명의 의원이 진단부터 치료, 간호까지 전담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항의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거부할 경우 바로 맨 뒷 순위로 밀려난다는 사실에 내 정책을 받아들였다.

규모의 경제로 원가를 많이 낮췄지만 그래도 이전의 진료에 비해 구성이 많이 늘어나 진료비도 비쌌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격에 대해서는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무당이 최고의 의원이라고 홍보해준 덕이네요. 그거 하나는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여전히 운영은 빡빡했다.

수용 인원을 늘려도 한계는 분명했고 환자는 계속해서 물 밀 듯이 밀려왔다. 갑자기 확충한 인원 때문에 손발이 안 맞아 실수가 생겼고 소통이 꼬이기도 했다. 아무리 태양의원이 마을을 먹여 살린다지만, 마을이 통째로 의원이 됐다며 투덜거리는 이도 있었다.

그러한 잡음 속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군. 약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몸이 가볍지?”

“지정 처방을 먹은 아침에는 상태가 썩 좋아지지 않는 거 같은데, 여기 태양의원의 처방을 먹은 밤에는 잠도 잘 자요.”

“이 약이 이렇게 비쌌다고요? 근데 태양의원에서 처방한 건 왜 이렇게 싼데요?! 효과는 비슷한 거 같은데?”

보통의 상품이나 서비스라면 마음에 들어도 불만족스러운 척을 할 수 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변화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아프지 않고 몸이 편하면 여유가 생긴다. 그간 태양의원의 행사에 온통 불만만을 내뱉던 환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 슬슬 두 객잔에 설치한 임시 병상은 철수해도 될 거 같습니다. 남은 환자들은 태양의원 내의 병상만으로도 수용 가능합니다.”

몰려오던 환자들도 끝이 보였다. 그만큼이나 빠르게 회복해 의원을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의원들은 여유를 찾았다. 비상 근무체제를 다시 평시 근무체제로 돌리자 진료 품질이 회복되었다.

고생한 의원들에게는 돌아가면서 휴가를 주고 영단도 지급했다. 내공증진과 더불어 갑자기 터진 사태에 대한 피로감도 빠르게 회복시켜줄 거다.

“급하게 충원시킨 인원의 숙련도가 단기간에 향상되었습니다. 적당히 조를 나누어 분원으로 배속하겠습니다. 그리고 무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총 세 개의 상단이 태양의원과 정기적 약재 공급 계약을 맺고 싶다고 의향을 비쳐왔습니다.”

“거리가 머니까 한 곳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효율을 따져 가장 저렴한 곳을 고르지 말고, 분산투자 하듯 적절히 비중을 나눠 구매하는 쪽으로 진행하자. 이번 일로 투자한 이상 벌었으니까 그런 데서 인색할 필요 없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왕 씨가 온 걸까요?]

급한 불을 끄고 금리의 보고를 들으며 향후 대응을 논의한 후 손님을 맞았다.

내가 기다리던 손님은 왕 씨였다.

왕 씨는 의원을 연 초창기 내게 허풍으로 사기를 치려고 했던 일대의 이름난 호사가였는데, 나와 인연을 맺은 후 제약방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탄산활명탕을 판매하는 중간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지금이야 왕 씨 외에도 탄산활명탕을 가져가 팔겠다는 이들이 많고 내건 조건도 좋았지만, 왕 씨의 판매 수완이 훌륭해 여전히 가장 많은 물량을 독점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이번에 왕 씨가 제약방에 물건을 가지러 들르면 나를 한번 보러 오라고 했는데, 그거 때문일까?

그러나 나를 찾아온 손님은 왕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한 의원님!”

“금 의원, 오랜만일세. 잘 지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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