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38화 (138/350)

138화

잠깐만, 그 전에.

“밤이 늦었는데, 안 자고 거기서 뭐 해?”

내 말에 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신생과 아이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까부터 엿들으려고 문에 귀를 갖다 대느라 옹기종기 모여 있었거든요. 당신 말에 깜짝 놀라가지고 저래요.]

홍령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나는 맨 아래 깔린 아이를 일으켜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애들은 이미 잘 시간 아닌가요, 청화문주?”

“죄송해요! 애들이 너무 궁금하다고 해서 그만!”

[의원들이랑 청화문의 제자들이랑 많이 친해졌잖아요. 의원들이 입버릇처럼 용 의원 상태가 궁금하다 했으니 애들도 궁금할 만하죠.]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였지만, 의원들이 청화의 지도를 곧잘 따르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좀 의외였어요. 솔직히 어리잖아요. 본신의 무공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요. 그런데 무공 교습을 할 때는 노련미가 넘치더라고요.]

나이가 전부는 아니지.

청화는 나고 자라는 내내 제 아버지가 청화문을 이끌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아왔을 것이다.

문주의 딸이니 일찍부터 그 일을 도왔을 것이고, 그걸 감안한다면 청화의 경력은 최소 십 년이 넘는다.

괜히 공무원 집안 애들이 공무원 하고 의사 집안 애들이 의사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 것도 염두에 두고 청화를 고른 거였어요?]

당연하지. 설마 써먹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썼겠어?

용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체험담을 공유하게 하고, 나는 청화와 함께 애들을 방에 데려다주러 나섰다. 겸사겸사 의원들의 무공 교습에 대한 보고도 들어야 하고.

“이제 용 의원님도 교습에 오시겠네요! 그간 내공 수련에 집중하시느라 저와는 못 뵀으니까요. 내공을 증진시킨 상태에서 체술 수련에 임하면 어떨지, 벌써 기대가 돼요!”

“다른 분들의 습득력은 어떻습니까? 잘되고 있어요? 목표를 달성할 거 같나요?”

목표라 함은 당연히 청화에게 내걸었던 영단을 말한다. 한 명이라도 무공을 완벽하게 숙달하면 청화에게도 영단을 내주기로 했었는데, 처음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말이지.

“으음, 그게요. 사실 다들 나이가 있으셔서…… 머리로 이해하는 건 빠른데 아무래도 몸이 좀 안 따라주시는 거 같은?”

청화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속닥거렸다.

하긴, 제일 젊은 의원도 나보다 나이가 많다. 몸을 쓰는 건 나이를 무시 못 하지.

“그래도! 제가 기준이 어린 애들이랑, 무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 그렇지! 다들 꾸준히 수련해 오신 분들이라 나이 대에 비해서는 준수한 편이이라고나 할까 그렇달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청화가 갑자기 목청 높여 의원들의 성취가 연령대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지, 특히 몇몇 의원들은 어찌나 수련을 잘 따라오는지 열변을 토했다.

왜 그러나 봤더니 뒤에 졸졸 쫓아오던 애들 중 몇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

[쟤들이 걔들이죠? 의원들이 우리 애들도 좀 맡아달라고 한 애들?]

의원들 중 몇몇은 청화에게 며칠 배워보더니 대뜸 자기 자식을 청화에게 맡기기도 했다.

배워보니까 확실히 괜찮은 거지.

대단한 무공을 익히진 못해도 몸 쓰는 방법이나 호신술 정도 익혀두면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외에도 제약방이나 태양의원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자식들을 청화에게 맡겨서, 의원들을 가르치지 않는 낮에는 연무장이 거의 전생의 태권도 학원 분위기가 날 정도였다.

[하긴, 자식 앞에서 부모를 욕하긴 쉽지 않은 법이죠.]

욕은 아니고 진도가 느리다라는 얘기긴 했지만, 애들한테는 그런 사소한 게 중요하지.

더 중요한 건 그 애들 사이에 신생이 껴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안 내켜 하더니, 꽤 친해졌나 보네요?]

나는 흐뭇한 눈으로 애들과 속닥거리는 신생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게 어색해도, 상대 쪽에서 먼저 다가오면 뭐라도 반응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긍정적이고 선망 어린 태도로 다가오면 말이지.

청화에게 지도를 받는 애들은 전부 무공을 익히러 온 애들이고, 신생은 또래는 물론 개방 방주마저도 흠칫하게 할 기세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천재다.

청화의 제자들 사이에서 신생은 순식간에 아이돌이 됐다.

처음에는 그런 애들의 반응을 어색해하던 신생도 이제는 애들 사이에 껴서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쑥덕거리는 걸 보면 충분히 친해진 것도 같고…….

“아냐! 신생이 잘못 들었겠지!”

친해진 것도…….

“맞아, 신생 오빠가 뭘 모르나 본데! 우리 사부님 표정은 그게 아니라니깐?”

같고……?

“너 내 귀를 무시하는 거야? 너 나보다 세?”

얘들아, 친해진 거 맞지?

“둘만의 암호일 수도 있잖아. 가서 물어보자.”

투닥거리던 애들이 쪼르르 다가왔다. 침착하게 암호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던, 청화의 제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두 분 사귀어요?”

“……뭐?”

“그런 거 아니라니깐! 얘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청화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애들은 오히려 하나씩 나서서 입을 보탰다.

“나는 금 의원님이 우리 사부님 남편이 되어도 좋아요. 돈 많잖아. 우리 사부님 가난하거든요.”

“저는 반대에요! 누가 그랬는데, 금 의원님 얼굴이 못생겼댔어요!”

“야! 너 봤어? 우리 스승님 얼굴 봤어?! 누가 못생겼대! 누가 그랬어!”

“난 다르게 들었는데. 너무 미남이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댔어. 하지만 사람은 외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이죠. 그런 점에서 금 의원님은 합격이에요. 뭣보다 우리 사부님이―.”

청화가 다급하게 마지막으로 말하던 아이의 입을 손바닥으로 텁 소리 나게 막았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했다.

“금 의원님, 그런 거 아니에요! 애들이 그냥 하는 소리예요!”

왕! 왕앙!

냐아옹―!

우리의 소란을 들었는지 청화와 애들에게 내준 숙소 쪽에서 각각 늙은 개와 어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금동아, 그만해! 왕이 그만 괴롭혀!”

“야, 금동이 잡아!”

“애기야, 가만히 있어!”

애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그쪽으로 쏠렸다.

금동이는 치료를 위해 머무는 동안 누님보다 나를 더 잘 따르게 되어서, 누님이 섭섭하지만 내가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해 함께 본원으로 올라왔다.

문제는 금동이가 걸왕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건다는 점이랄까?

냐아아옹! 냐! 하악!

사람에게는 그렇게 순할 수가 없고 말도 잘 알아듣는 아인데. 유독 걸왕에게만 저렇게 시비란 말이지.

지금도 붙잡고 있는 애들한테는 발톱 하나 세우질 않는데 걸왕에게만 하악질 하는 거 보라고.

[내가 그랬잖아요. 서열싸움 하는 거라니까요.]

저렇게 어린 애가? 삼백 년을 산 영물을 상대로? 말도 안 돼.

[그런 거에 나이가 어딨어요. 날 때부터 짱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생물들이 있다고요. 걸왕이 무시하니까 더 열 받아서 저러는 걸걸요.]

홍령의 말대로 걸왕은 금동이의 도발이나 공격에 크게 대응하지 않았다. 좀 심하게 덤비면 앞발로 지긋이 눌러놨다가 진이 빠지면 놔주는 정도일까? 느긋한 대형견이 어린애 봐주면서 상대하는 느낌이지.

진짜로 걸왕이 나서면 금동이는 한방에 쪼그라들 거라고.

근데 잠깐만. 아까 짱이라고 한 거야?

[어때요, 내 언어 습득력이? 방금 적절한 자리에 잘 썼죠! 음하하하, 역시 난 천재라니까요?]

나 참.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더니. 귀신 앞에선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네.

미야아앙―! 냐앙!

걸왕과 대치하다가 애들에게 붙들린 금동이는 성질을 내며 아이들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역시 고양이는 액체라니까.

애들에게 생채기 하나 안 내고 그 많은 손을 빠져나온 금동이는 곧바로 내게 뛰어들어 안겼다.

“어이쿠.”

냐앙! 냐앙!

“그래, 그래. 속상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품에 안긴 금동이를 쓰다듬었다. 몇 번 쓰다듬어 주자 녀석은 언제 성을 냈냐는 듯 다시 눈을 감고 골골 소리를 내며 쓰다듬을 즐겼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금리였다. 뒤에 창천을 보디가드처럼 달고 이쪽으로 다가온 금리는 내 앞에 와 뭔가 얘기를 하려다가, 바로 옆에 있는 청화에게 눈을 돌려 가볍게 눈인사했다.

“우리 사부님의 연적!”

“아니라니까. 저분은 금 의원님의 조카라고.”

“조카여도 결혼할 수 있잖아? 뭣보다 너무 예뻐……. 우리 사부님이 졌어…….”

“전 그럼 들어가 볼게요! 얘들아, 가자!”

애들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청화가 당황하며 애들을 방 안으로 이끌었다. 청화와 아이들이 사라지고 금리는 탐탁잖은 눈으로 청화가 사라진 곳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삼촌은 더 좋은 조건의 여인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청화문이 아니라 웬만큼 지역을 주름잡는 문파는 물론 대문파의 제자도 가능합니다. 필요하시면 이 조카가 중매를 알아보겠습니다.”

너까지 왜 그러냐…….

“……아니, 아닙니다. 삼촌께서 마음에 두셨다면 그분이 좋은 분이겠지요. 저도 숙모 될 분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이 중원 무림이 아니라 갑자기 러브 시그널이라도 된 거야? 왜 이렇게 작대기를 이어주고 플래그를 망치지 못해서 안달들인데?!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조카님에게 창천은 안 된다! 결사반대! 이러면서.]

나는 입 밖으론 안 냈다고. 그리고 먼저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홍령 너거든?

[내가요? 언제요?]

이 귀신이 오리발을 내미네. 저번에 리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맞아, 청화를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사람, 은근 뒤 끝 있네.]

어휴, 내가 말을 말지.

“삼촌의 혼인은 의원의 사업적 측면에서도 중대사이니 꼭 총관인 제게는 사전에 말씀해주십시오.”

“진짜 그런 거 아냐. 그래서 왜 날 찾았는데? 나도 애들 데려다주고 널 보러 갈 생각이긴 했는데.”

[……정말 둘이 모종의 관계인가?]

창천의 전음. 러브 시그널은 이제 그만! 그만!!!

“천하백대의원에 대해서 얘길 좀 하려고. 뭔가 한 방이 더 필요할 거 같아서 너랑 의논을 좀 해보려고 했거든.”

재빨리 용건을 말하자 창천이 빠르게 안도의 기색을 보였다. 하이고, 내가 앓느니 죽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삼촌. 큰일 났습니다.”

얘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온다면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데?

[아까 혼담 얘기를 할 때도 조카님은 진지했어요.]

진짜 그만하라고 했다?

“둘이 할 얘기야?”

“가급적이면. 지금은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습니다. 회의실에 자료를 준비해뒀으니 가시죠.”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 창천은 우리가 회의실로 가는 것까지만 동행하고 자리를 떴다. 못내 아쉬워 보이긴 했지만.

“애초에 저 녀석이랑은 왜 같이 다녔던 거야?”

“삼촌을 찾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아냐 물었더니 안내를 해주겠다 했습니다.”

“끔찍한 오판이네. 저 녀석, 엄청난 길치야.”

“그렇더군요. 장원의 경비를 맡기는 데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금리의 안에서 창천의 점수가 깎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아니지, 나도 빨리 러브 시그널에서 벗어나자.

“그래, 뭐가 문젠데?”

내가 둘러본바 태양의원은 별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의원들은 순조롭게 무공을 익히고 수련을 하는 이들의 빈자리는 서로 협동하며 채우고 있으며 골치 아플 정도로 진상 환자도 없었다.

약재 두엄을 쓴 농사도 착착 진행되고 있고, 문제라면 아직도 재배할 약초 종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 정도인데.

“약초가 문제입니다. 앞으로 보름이면 태양의원이 보유한 약재가 바닥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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