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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32화 (132/350)

132화

북촌으로 돌아온 건 이른 새벽이었다.

저번부터 내가 어딜 오래 갔다가 돌아오면 잔치 분위기가 되어 버려서 말이지.

다들 환영해 주는 거야 기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일부러 밤새 마차를 달려 늦은 시각에 태양의원에 들어섰다.

일행 모두 피곤해했기에 다들 도착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한에서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나도 태양의원에 돌아오니 진짜 집에 돌아온 것 같아서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다녀온 일을 정리하고 상황을 살펴야 해서 몇 시간 자고 일어났다.

다들 잘 쉬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내 집무실 겸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금리가 퀭한 눈으로 문서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습니까.”

“뭐야, 벌써 일어났어?”

참고로 지금 시간은 묘시. 전생의 시간 기준으로 치자면 새벽 대여섯 시 정도 된다. 우리가 북촌에 들어선 게 한 시 정도였으니까―.

[조카님 안 잤어요. 오자마자 여기 틀어박혀서 문서 보고 있던데요.]

나 참.

어릴 때부터 금왕상단의 행수를 맡았으니 강행군 후에 며칠 밤을 새우는 정도야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들어가서 자.”

나는 금리의 손에 들린 문서를 잡아당겼다. 빼앗으려 한 거였지만 금리도 손에 힘을 주고 순순히 놓지 않았다.

“조금만 더 보면 됩니다.”

“자고 일어나서 봐도 돼.”

“빨리 태양의원의 현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겁니다. 전 그러기 위해서 태양의원의 총관이 됐습니다.”

“응, 알아. 근데 반나절 정도 자고 일어나서 한다고 해도 안 늦어. 제대로 안 자서 성급한 판단을 내리거나 숫자를 잘못 읽거나 하면 큰 오류를 범하는 거 알지?”

“그건 평범한 사람들 얘기겠지요. 저는 아닙니다.”

“오 년 전에 태영상단과 거래 때는 그랬잖아.”

과거 금리가 실수했던 얘기를 꺼내자 무표정하던 금리의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금건양은 어린 금리에게 금왕상단이 불리한 상황인 거래를 자주 맡겼는데, 금리는 지모를 발휘해 그 상황들을 유리하게 바꾸곤 했다.

물론 금리라고 완벽한 사람은 아닌지라 그중에서도 몇 번 실수가 있었는데, 태영상단과의 거래가 그랬다.

“어린 시절의 얘깁니다. 한 번 한 실수는 두 번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때 네가 한 실수는 조급함이었지?”

금리가 큰 실수를 해서 상단에 피해를 입혔던 건이라 나도 아버지에게 들어서 자세히 알고 있다. 그 일을 언급하자 금리가 문서를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자고 일어나서 천천히 읽어봐. 사람들도 만나보고. 문서화 된 게 많지 않다고 했지? 그만큼 태양의원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기왕이면 마을 사람들하고도 교류하고.”

“……알겠습니다.”

금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몸을 비틀거렸다. 내가 다급히 팔을 잡아 넘어지진 않았지만, 금리 스스로도 꽤 당황한 눈치였다.

“이러고서 무슨 밤을 새워서 문서를 본다고. 방에 데려다줄 테니 삼 일은 쉬어. 이 방에는 출입 금지야.”

금리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제 아버지한테 한 푼 돈 없이 쫓겨나 금왕공방의 총관으로 뛰어다니던 일이나 흑사방과의 교류를 유지하던 일, 거기에 흑시의 화재와 마지막에는 제 조부의 위패를 훔쳐오는 일까지 맡았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지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후훗.]

금리를 방에 데려다주려고 문을 여는데 홍령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나 했더니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창천이었다.

“내가 가지.”

“뭐야, 너도 안 잤어?”

[안 잤어요. 자려다가 조카님이 여기 와서 문서를 보기 시작하니까 자기도 그대로 수련하러 가더라고요. 두 시진에 한 번은 와서 확인해 보고요.]

이놈 봐라?

새벽에 수련할 거면 짬짬이 의원 순찰 좀 돌라고 그렇게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잘됐죠. 그렇지 않아요?]

잘되긴 뭐가 잘돼! 야심한 밤에 과년한 처자 혼자 있는 방 앞을 주기적으로 어슬렁거리다니!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너도 가서 잠이나 자라. 눈 밑 시커멓다.”

“나는 강하다.”

“너 지금 낯이 말이 아니라니까? 그러고 다니면 여자들이 싫어한다?”

“!”

창천은 급하게 몸을 돌려 두 눈을 비볐다. 그런다고 다크서클이 가려지겠냐?

“저는 알아서 방으로 가보겠습니다.”

“금 소저!”

“내가 데려다줄게, 가자.”

“촌각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금리는 내 손에서 팔을 빼더니 제게 주어진 방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창천 녀석이 닭 쫓던 개처럼 멍한 얼굴로 금리가 가는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걸 보며 혀를 차다가, 나도 볼일을 보러 걸음을 옮겼다.

“뭔가 많이 바뀌었는데?”

일부러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건,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때 북촌을 한번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내게 인사한다고 모여들면 제대로 둘러보기 힘드니까 말이지.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네요.]

그들은 어깨에 망태기 하나씩을 둘러메고 산길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향해 꾸벅 인사들을 하고 지나가는 걸 보니 나를 태양의원의 의원 중 하나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약초꾼들인가 봐요. 어? 저기에 저런 건물이 있었어요?]

홍령이 말한 건 이 층짜리 객잔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집을 비우고 떠나서 아무도 살지 않는 흉가 같은 거였는데, 수리를 했는지 제법 멀끔한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북촌객잔이라.”

[객잔 주인이 분점을 낸 걸까요?]

이곳 북촌에는 원래 객잔이 하나였다. 내가 태양의원을 세우기도 전부터 있었고 최근엔 객잔 일도 바빠졌는데 객잔주인이 하오문도가 되기까지 해서 두 배로 바쁜 그 객잔 말이다.

참고로 그 객잔엔 이름이 없었다. 어차피 동네에 객잔이라곤 하나인데 뭐 하러 이름을 붙일까.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기존 객잔 건물 규모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분점을 낸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와 내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의원님! 새벽같이 오셔서 새벽같이 의원을 나가셨다고 해서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번 경우에 온 건 호랑이가 아니라 객잔 주인, 그러니까 눈앞의 북촌객잔이 아니라 이름 없는 객잔을 운영하던 하오문도 객잔 주인이지만.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무한에 다녀온 사이에 뭐가 좀 많이 바뀐 거 같아서.”

새벽에 마을에 들어왔지만 뭔가 변했다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당장 이 낡은 건물이 객잔으로 탈바꿈한 것도 그렇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빠져나가 폐가가 되었던 곳들을 고쳐서 살고 있는 흔적이 보였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를 찾아주셨어야지요.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일단 저희 객잔으로 가시지요. 저 객잔 놈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마시고요!”

객잔주인이 나를 본인의 객잔 쪽으로 떠밀었다. 가면서 침도 퉤! 하고 소리 나게 뱉어버리는 걸 보니, 일단 분점을 낸 건 아닌가 보군.

[새 객잔이 생긴 거뿐 아니라, 여기도 많이 발전했네요?]

기존에 있던 이 객잔은 시골에 있는 만큼 규모가 작았다. 헌데 지금 보니, 객잔 건물 옆으로 크게 새 건물을 올리고 있었고, 마구간이며 수레를 보관하는 곳과 임시로 물건을 맡기는 창고까지 못 보던 것들이 생겨 있었다.

심지어 나를 안내한 곳은 기존 객잔의 이 층, 그러니까 예전에는 숙박시설이었는데, 이곳을 깔끔하게 개조해서 식사나 차를 마시면서 사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요새 객잔 사정이 괜찮은가 봐요?”

“아이구, 뭘 그런 걸 물어보십니까. 이게 다 금 의원님 덕분이지요. 일단 들어가시지요. 제가 아주 고오급진 용정차를 구했는데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기존 객잔이 태양의원의 덕을 보는 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부상조하는 관계라고 할까? 그래도 이 정도로 확장을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될 줄이야.

[하오문의 정보로도 돈을 꽤 버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정보를 수집하려면 객잔이 더 활성화되어야 좋을 테니까요.]

그런 것도 있겠지. 그런데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지? 객잔 주인은 손수 다상을 준비했다. 고급 차라더니 정말 향이 좋았다. 거기에 무한에서나 볼법한 다과까지.

“먼 길 다녀오셔서 힘드시지요? 우선 드시지요.”

“그래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나 봐요?”

“그렇고말고요!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될 지경입니다. 심지어 다 좋은 얘기뿐이지요!”

“우선 건너편에 새로 생긴 객잔 얘기부터 해보시죠. 그 얘기를 하고 싶으신 듯하니.”

할 얘기가 많을 때는 일단 물꼬를 터보는 게 제일이다. 그러면 고구마 줄기 뽑히듯 하나하나 딸려 나올 테니까.

“그 객잔 말입니까? 하! 그놈들이 말이지요. 북촌에 사람이 몰리니까 어디선가 소문을 들었는지 폐가나 다름없는 걸 사서 북촌객잔이라고 떡하니 이름을 붙이지 뭡니까?”

“그렇게 사람이 늘었나요?”

“그러믄요! 무한에 가시기 전에 분원을 여기저기 내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출발 전에 분원의 기틀은 잡아두려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쓸 만한 의원들을 뽑고 태양의원의 방침을 가르치고 배치하고…… 그 뒤로 간간이 운영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크게 문제는 없었던 거 같은데.

[그게 북촌에 사람이 늘어난 거랑은 무슨 상관일까요? 분원은 분원이잖아요. 제법 거리가 있는데?]

“분원이 늘어나면서 태양의원의 이름이 널리 퍼졌습니다. 때문에 일부러 본원을 찾는 이들이 늘었어요.”

“혹시 분원의 솜씨가 부족해서 그렇답니까?”

“아닙니다! 분원도 이 정도인데, 본원은 어느 정도일까 싶어서들 오더군요. 특히 금 의원님의 치료를 기대하며 온 자들이 많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분원에서 쓰는 약들 중 일부는 본원의 제약방에서 제조해 보내지 않습니까?”

무한으로 가기 전 했던 조치 중 하나로, 장기목표를 위한 결정이었다.

지금 중원의 의원들은 의원 하나가 모든 분야에 통달해야 했다. 병의 진단부터 치료, 처방은 물론 간호와 연구까지 전부. 때문에 한 부분에 실력이 월등하거나 혹은 기준 이하일 경우 여러모로 손해를 본다.

전생의 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여러 분야를 분업화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기반에는 병원의 대형화와 대학병원 시스템 등이 있었지만. 한의사 혼자 운영하는 한의원이라도 접수와 기타 잡무 등을 처리하는 접수원이나 간호사는 갖추기 마련이었다. 제약 부분에서도 제품화된 한약을 사용하는 경향도 늘었고.

아무튼, 기왕 제약방을 만든 김에 태양의원에서 처방하는 약의 품질을 평준화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그래야 같은 이름을 쓰는 의미도 있지.

“제약방의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다섯 개의 분원에서 처방하는 약에, 일전의 탄산활명탕도 의원에 비치하고 판매해서 판매량이 더 늘었답니다. 그래서 장 의원님이 상당한 인력을 새로 고용하셨습니다.”

그것도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다. 사람을 쓴다는 건 곧 인건비가 늘어난다는 건데, 장 의원에게 제약방 전권을 맡겼다지만 그런 일까지 내 허락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헌데 북촌에는 마음에 드는 손재주를 가진 이들이 없다고, 분원에 홍보를 해서 사람을 대거 고용하셨지요. 때문에 북촌으로 가족까지 데리고 새로 터를 잡은 사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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