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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31화 (131/350)

131화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아버지가 유산을 따로 숨겨두었다는 얘기는 풍문처럼 돌았지만 제대로 된 근거는 한 번도 제시된 적 없다.

금가장의 사업을 물려받은 형제들도 제대로 된 실마리는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지금까지 형제들이 그 얘기를 안 꺼냈을 리가 없지.

헌데 그 근거가 바로 아버지의 위패 안에 들어 있었단 말이다.

정반합은 그걸 알고 있었고.

대체 누가 그걸 정반합에게 알려주었을까?

“정반합의 의장. 솔직히 나도 그 인간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 확신도 없었고. 헌데 네 녀석이 진짜를 가져와 버렸으니 이제는 믿을 수밖에 됐지.”

정반합의 의장이라면, 일전에 도개걸이 돈줄이라고 비하했던 자다.

“네놈만큼이나 우리도 의장이 뭐 하는 놈인지 몰라. 궁금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정반합이 아무리 비밀조직이라지만, 대충 굴러가는 모양을 보니 점조직도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모이는 조직도 아니다.

그들은 뚜렷한 목표가 있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 정반합 자체를 감출 뿐 그 안의 구성원들끼리는 서로를 안다.

당장 도개걸만 봐도 개방 방주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잖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조직에서 정작 조직을 이끄는 의장의 신분이 비밀이라고?

“개방 방주도 모르는 신분이라니. 제가 감히 알아낼 수 있는 상대는 아니겠네요.”

“하여간 세상 놈들은 개방 하면 황제 속곳 색깔까지 다 아는 줄 안다니까.”

도개걸은 대수롭지 않게 투덜거렸지만 자존심이 상했음을 숨기진 않았다. 분명 의장의 정체를 캐려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놈은 우리 중 하나에게 일방적으로 의견을 전해. 돈도 주지. 섬서사변의 피해자들을 모아 정반합이라는 집단을 만든 것도 그놈이야. 정체는 모르지만 행동이 놈을 보여주지. 거기에 이번 같은 정보도 물어오니 찝찝해도 어찌할 수 있는 놈이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생각을 했다.

개방이 아니라 하오문이라면 정반합의 의장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개방과 하오문이 정보를 수집하는 영역은 전혀 다르다고 했으니까.

이번 무한에서의 일로 하오문에서 나의 평가도 높아졌을 거다. 전보다는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거다. 객잔 주인을 통해 알아볼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제 돌아갈 거라고? 아예 무한에 터를 잡지 그러냐. 그 후진 동네에 비하면 무한이 더 유리할 텐데.”

“출장소를 분원으로 전환할 생각이긴 하지만, 본원은 유지할 겁니다. 아, 가는 길에 걸왕을 데리고 갈 건데.”

“그래라. 어차피 그 개새끼는 내 말 따위 듣지도 않아. 지 멋대로 돌아다니지. 이번에도 떼어놓고 왔는데 불쑥 나타나고 말이야. 하여간 내 인생에 도움 되는 꼴을 못 봤다.”

“잘 돌보고, 수술을 통해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다면 사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거지 하나를 보내두마. 그쪽으로 연락해.”

도개걸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재를 떠났다. 나는 그가 금왕표국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품에서 다시 위패를 꺼냈다. 두 장의 종이가 함께 딸려 나왔다. 하나는 아버지가 내게 남긴 편지.

다른 하나는 위패에 들어 있던 지도의 사본이다.

[난 아직도 저자에게 틀리게 베낀 사본을 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령은 내가 정직하게 원본을 건넨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홍령이 말한 것처럼, 지도를 틀리게 베껴 그린 사본을 도개걸에게 주는 걸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부러 틀린 지도를 줬다는 걸 저들이 알았을 때 보복을 감당해야 할 걸 생각하면,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그래도요. 당신 아버지 편지를 보면, 그 유산은 당신을 위해 남긴 거잖아요!]

그래서 사본도 만들었잖아.

나는 베낀 지도를 펼쳤다. 복잡하게 그려진 지도에는 알 수 없는 명칭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아마 암호일 것이다.

정반합에게 지도를 순순히 넘긴 건, 그들이 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해서 곧바로 아버지의 유산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서다.

[당신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느슨하게 발을 걸쳐놓고 그들이 지도를 해석해가는 걸 창천을 통해 전해 듣는다는 거, 그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 지도에만 매달릴 수도 없고요.]

나는 다시 편지와 지도를 품에 챙겼다. 위패는 태양의원에 세운 아버지의 사당에 보관할 예정이었다.

편지. 나는 태양의원으로 돌아가며 다시금 아버지가 남긴 편지에 대해 생각했다.

유산의 행방을 기록한 지도도 그랬지만, 사실 편지가 더 의아했다.

대체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그 위패를 손에 넣을 줄 알고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어둔 걸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계속 매달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니까.

“오셨습니까, 삼촌. 준비는 마쳤습니다.”

금왕공방의 총관을 그만두고 태양의원의 총관이 되기로 한 금리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옆에선 며칠 금리를 어색해하던 신생이 금동이를 끌어안고, 옆에는 걸왕을 끼고 서 있었고, 창천과 당당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데리고 온 의원들 중 일부는 여기에 남아 <태양의원―수의 무한 출장소>를 무한 분원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일을 맡기로 했고, 나머지는 함께 돌아간다.

“좋아, 돌아갑시다. 우리들의 집으로.”

* * *

시간을 돌려 금태양이 무한으로 떠나기 전, 무당파.

무당의 중진이자 무당파의 의원 속가를 전담하며, 태청의원의 장이기도 한 청운진인은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는 장문인을 비롯해 무당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이미 자리해 있었다.

장로회의.

원래대로라면 저 자리 중 하나에 앉아있어야 할 청운진인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서서 고개를 수그렸다.

“청운진인.”

“……예, 장문인. 하문하십시오.”

“일전의 비사는 어떻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소이까?”

양양의 화산지회 예선에서 있었던 일을 말함이다. 누군가 고독을 양양 전역에 뿌렸고 그로 인해 화산지회에 참석했던 무인들의 상당수가 목숨을 잃거나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무당파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탄을 받았다.

물론 공개적으로 지탄을 받은 건 아니다. 어쨌거나 무당의 속가, 태청의원을 비롯한 무당의들이 이 사태를 해결해냈으니까.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무당의가 아닌 다른 의원이며, 태청의원은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암암리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제대로 수습을 했어도 평판에 손상을 입는 상황인데, 실제로는 그마저도 아니라니!

이 일로 인해 무당파 내에서 청운진인의 위치는 위태로웠다.

원래도 청운진인은 무당의 장로이긴 하지만 다른 장로들에 비해 위세가 대단치 못했다.

큰돈을 벌어오는 데다 무당의 평판을 올리는 데 일조하기에 무당 내에서 무시 받지는 않았지만 장로회의 내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무당은 무(武)를 숭앙하는 무림문파다.

돈을 버는 것은 결국 무공 연마에 집중하기 위해서이고, 의술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무공을 위해서다.

청운진인은 그 타고난 자질이 사형제들에 비해 미욱해 일찌감치 의술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무공은 장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장로회의에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였다.

또한 그 반동으로 무당파의 무공에, 무당이라는 그 자부심에 더 열중하게 되었다.

그런 청운진인에게 이번 양양에서 일어난 일은 자신의 자존심과 무당파에 대한 자부심, 두 가지를 전부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확실히 흉수를 밝히지는 못했으나―.”

“아직도 말인가?”

“저, 정반합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정반합.

그 이름에 장문인을 비롯해 무당 장로들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좌수검, 그자가 본문의 심처에 침입했을 당시 연락을 취하던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장문인께서 꼬리를 잡기 위해 그냥 두셨지요. 그자들이 이번 일에도 움직인 것 같은 정황이 있습니다!”

딸려 나온 이름 또한 유쾌한 이름이 아니었다.

좌수검, 그는 일전에 무당의 심처, 정확히는 장문인이 기밀을 숨겨두는 곳에 침입해 문서를 훔치려다 발각되었다.

무당의 고수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추적해 그자가 탈취한 문서를 되찾는 데 성공하고 남은 팔 하나를 베었으나, 그와 동시에 절벽으로 떨어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정왕에게 강력하게 요구해 그를 흉악범으로 잡아오려 했으나, 그 사이 그자가 잘린 외팔을 붙이는 데 성공하는 바람에 그 또한 미수에 그쳤지.”

“……그렇습니다, 장문인.”

“그때 좌수검의 팔을 수술한 자의 이름이 금태양이라 했지. 금왕의 자식이라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단 의견을 기억하네.”

청운진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가 지금 이처럼 납작 엎드리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양양 사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최근 다시 들었지. 태청의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고독의 정체를 밝혀내고 이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젊은 의원, 그 청년 또한 이름이 금태양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그 공을 우리 무당에, 태청의원에 돌리는 대신 책임배상을 이유로 막대한 돈을 받아간 이의 이름 또한 금태양이고.”

청운진인의 고개가 더욱더 바닥을 향했다.

“화산지회 예선 마지막 날, 창천 그 아이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날의 일에 대해 묻게 만든 이 또한 그 금태양이라는 의원이다?”

장문인이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인연이란 참으로 얄궂구나. 금왕의 아이가 우리에게 이처럼 귀찮게 굴게 될 줄이야.”

“죄송합니다, 장문인. 제가 더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어야―.”

“되었네. 청운, 그대는 할 만큼 했어. 그 과정에 과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나 그 이상을 하지는 못 했을 걸세. 금태양이라는 의원에게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 그 뒤에 금가장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창천을 다시 그만큼 치료한 것을 보면. 우리가 찾던 인재일지도 모르지.”

청운진인은 속으로 안도를 삼켰다. 장문인이 제게 보내는 시선이 너그러웠으니까. 허나 그 너그럽던 장문인의 눈빛은 다시 차가워졌다.

“허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린아이의 치기라 계속 받아주다 보면 아이는 버릇을 망치기 마련이야. 그만한 자질이 있는 의원이 천둥벌거숭이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어른이 마땅히 지도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제?”

장문인이 청운진인을 친근하게 불렀다. 청운진인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청운진인의 과실을 한 번 눈감고 넘어가는 대신, 금태양을 제대로 손보라는 얘기다.

“이미 방도를 세워 두었습니다, 장문인.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제게 맡기십시오.”

“너무 과하지는 않게 하게나. 무한 금가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만. 허나 이 무당을 감히 얕보지 않게 확실히 해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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