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26화 (126/350)

126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고로 밥과 술을 사는 사람에게 박수를 아끼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특히나 그 밥과 술이 싸구려가 아니라 평소에 먹던 것보다 질 좋은 거라면 더더욱!

금태양의 전생에서도 법카로 회식자리에 돼지고기 먹으면서 생색을 내는 상사는 입 발린 말이나 몇 번 듣고 말 뿐이지만, 사비로 한우를 쏜다든가 점심시간에 여직원들 대상으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브런치를 살 줄 아는 상사는 딱히 바라지 않아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았다.

“우리 금 의원이 말이야, 내게도 귀인이지만 여기 있는 여러분에게도 귀인이네. 우리 무한이 몇 해 전 남해태양궁에서 온 밀수 동물로 인해 큰 전염병 피해를 입지 않았던가?”

성주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일은 아직도 무한 시민들의 마음속에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었다. 키우던 닭과 오리를 생으로 파묻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요, 그 전염병이 사람에게도 옮은 탓에 무한은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을 뻔했는데, 다행히 금 의원이 병증을 발견하고 미연에 방지를 했다네. 그뿐인가? 출처를 추적하다가 허가받지 않은 짐승을 마구잡이로 데려와 판매하는 암거래 시장을 박살 냈다네.”

“세상에, 그런 일이?!”

“혹시 저쪽에서 크게 불이 났던 그 일을 말하시는 건감?”

“맞아, 그곳에서 아주 큰 소란이 있었지. 금왕표국의 표사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물동이를 이고 날라 불을 껐다고 들었는데.”

흑시에 대한 얘기였다. 사실 흑시와 흑사방을 박살 낸 건 금태양이 아니라 정반합이었지만, 애초에 복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이들이 자신들이 했노라 만천하에 그 이름을 드러낼 게 아니었으니 금태양이 그 공을 취하기로 했다.

[일종의 피해보상 같은 거죠. 개방 방주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으니 우리도 그 정도는 얻어내도 된다고요. 게다가 표사들이 불을 끄게 한 건 당신이 시킨 게 맞잖아요?]

매화탄을 나르기 위해 꽤 많은 표사들을 불러놓았던 데다가 불길이 너무 커서 추가로 표국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대로 방치했다간 사람들이 사는 무한 인근까지 불이 번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성주가 치하하는 내용이 전부 거짓은 아니란 말씀.

[전염병도요. 그건 최 의원이 찾아내서 치료한 거긴 하지만요. 애초에 당신이 수의 출장소를 열지 않았으면 무한은 또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겠죠.]

홍령의 말에 금태양은 가슴을 폈다. 약간의 양념을 쳤을 뿐, 그는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금태양입니다.”

금태양은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려 목소리에 담았다. 일전에 홍령이 말했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하진 않았지만 듣기 좋고 웅혼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

“여기 계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무한에서 나고 자란 무한의 사람입니다. 집안의 일에 발 벗고 나섰을 뿐인데 이처럼 대단히 여겨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금태양은 씩 웃고 있었다. 눈을 맞추는 사람마다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 다들 기대하고 계실 우리 코끼리들의 혼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실 흑시에서 도주하다가 매화탄을 잃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코끼리를 데리러 갔을 때만 해도, 이런 이벤트로 승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계산한 건 아니었다.

헌데 코끼리를 무사히 구해서 태양의원에 갖다 놓고 보니, 그간 고삐를 잡을 수 없었던 성주의 코끼리가 갑자기 얌전해져선 구해온 코끼리의 주변을 계속 맴도는 것이 아닌가?

금태양이 수술을 마치고 정신을 차렸을 무렵 <태양의원―수의 무한출장소>의 임시 소장을 맡은 최 의원은 성주의 코끼리가 수컷이고, 금태양이 구해온 코끼리가 암컷이며, 수컷이 여태 패악질을 부리고 상태가 나빴던 것이 몇 번의 발정기를 그냥 넘긴 탓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사실을 최 의원이 보고했을 때 금태양의 머릿속에서 이번 계획이 완성됐다.

어차피 구해온 코끼리로 손해를 만회하려면 우선 암시장에서 데려온 이 녀석을 성주에게 인가받아야 했다. 곧바로 성주에게 연락을 넣어서 두 녀석을 성혼시키는 게 어떻냐는 제안과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 또한 제시했고, 성주는 단박에 수락 답장을 보내왔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는 해도 사실 일개 성주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는데, 이때 또 금태양의 전생의 기억이 성주를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전 생에 인접국의 지도자가 풍산개 암수 한 쌍을 보낸 일이 있는데, 그 개가 새끼를 무지막지하게 많이 낳아서 청와대가 동물 애호가들로부터 비난을 산 적이 있다. 그 전대 대통령이 개를 버리고 간 데다 반려동물은 중성화를 해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개를 어떻게 키울 거냐는 걱정이기도 했고.

‘하지만 국가원수가 선물한, 그것도 민족의 전통 품종이라는 맥락이 있는 개를 중성화시켜버리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된단 말이지.’

이번엔 그 사건을 기반으로, 성주에게 역발상을 제시했다.

[성주의 코끼리가 황제가 하사한 거라면, 그 코끼리에게 짝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황제의 관심을 끌기 좋겠죠. 그런데 후손까지 본다면? 황제의 마음은 성주가 꽉 잡게 되는 거네요.]

거기다 후손을 본다면 그 자체로도 큰 자산이 된다. 환경이나 날씨가 코끼리들이 원래 살던 곳과는 좀 차이가 있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성주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로서도 갈비뼈가 부러져가면서까지 구해온 코끼리를 못 믿을 곳에 넘기는 것보다야 애지중지 돈과 정성을 들여 잘 보살펴 줄 무한 성주에게 보내는 게 안심이고.

“화촉을 점화하겠습니다.”

코끼리들의 주례 및 사회는 금태양이 맡았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코끼리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사람을 인식하기 마련이다.

“신랑 신부, 맞절!”

“신랑과 신부는 맛있는 여물은 함께 먹고 과일은 나눠 먹으며, 추워도 더워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까?”

“혼인의 증인이 될 무한의 시민들에게 인사!”

“신랑 신부, 행진!”

금태양이 성주에게 신부 코끼리의 고삐를 넘겨주었다. 성주는 두 코끼리의 고삐를 끌고 행진을 시작했고 금태양은 지휘자처럼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 신호에 맞춰 악대가 더욱 흥겨운 행진곡을 연주했고 대기 중이었던 기녀들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모두들 즐겨주세요! 행복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금태양 만세!”

만세가 나왔다. 누군가 선창한 만세 소리에 산발적으로 만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 의원님 만만세!”

“태양의원 번성하십쇼!”

간간이 금가장에 대한 얘기도 나왔지만, 금태양이 일부러 금가장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은 덕분인지 금태양과 태양의원의 앞날을 기원하는 함성만이 하나가 되어 터져 나왔다.

클라이막스를 찍을 때다.

금태양이 표사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여태 천을 뒤집어쓴 채 대기 중이었던 수레의 덮개가 벗겨지고 내용물이 드러났다. 표사들이 물건에 불을 붙였고 이내―

펑, 퍼펑! 펑!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지금 금가장 앞에서 올해의 인물을 선정 중입니다! 여러분의 한 표 꼭 행사해주세요!”

사람들이 불꽃을 보며 탄성을 내지를 때 표사들이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준비한 말을 외쳤다.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술을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가 투표를 부탁했다. 누구를 찍으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누굴 찍으라고 다 말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올해의 인물!”

“가자, 우리가 한 표를 던져 보자고!”

음식도 술도 양껏 먹고 마셔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이들이 먼저 달려갔다. 어린아이들도 그 뒤를 쫓았다. 사람이 세 명만 먼저 움직이면 나머지는 홀린 듯이 따라간다고 하던가?

“삼 할의 표는 이미 금 의원의 것이군요.”

“그러게 말일세. 금가장의 미운 오리 새끼가 금의환향을 하였구만.”

“홀홀, 우리도 이만 가봅시다.”

객잔과 주루의 높은 층에서 코끼리 혼례라는 이색 행사를 구경하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무한상련의 회원들이었다.

금태양은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떠나는 이들을 하나하나 목례하며 배웅했다. 숫자는 여기 모인 이들에 비해 한없이 적지만 저들의 표가 올해의 인물 을 결정하는 칠 할의 비중을 좌지우지한다.

마차들은 이윽고 금가장에 도착했다. 상련의 회원들이 회합 자리에 들어서자 절반이 빈 회합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제일 상석에서 금건양이 탐탁잖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늦으셨소이다.”

“미안허이, 금 장주. 길이 막히더구만. 밖에 어찌나 큰 잔치가 열렸던지.”

“금 상단주도 나와 보지 그러셨소이까? 성주의 코끼리가 신부를 맞았는데. 아마 무한 사람들이 만나면 석 달은 그 얘기뿐일 거외다.”

상련의 회원들이 금태양이 벌인 잔치에 대해 얘기할수록 금건양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그도 밖에서 벌어진 금태양의 기행에 대해 이미 보고를 받았다. 아버지 금왕의 상 이후로 금가장은 삼 년간은 화려한 잔치를 자중하기로 했건만! 알든 모르든 괘씸한 일이었다.

금건양의 불편한 심기는 끝까지 비어 있던 두 자리의 주인이 도착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금진양과 금감양이 도착한 것이다.

“너희들은, 금가장의 사람이 되어서 무한상련의 회합에 제일 늦게 도착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죄송해요, 재밌는 구경이 있어서 늦어버렸네요.”

“얜 구경한 거고, 난 일이 있었수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일이 들어왔거든.”

둘 다 금태양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금건양은 이미 저 둘이 금태양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금건양이 시비를 걸 구석이 없었다. 퍼주는 것이라면 제재를 하겠지만 둘 다 금태양과 정당한 거래를 하고 있고, 심지어 다른 곳과 거래하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을 내고 있었으니까. 많은 부분이 돈으로 설명되는 금가장에서 이득을 낸다는 데 걸고 넘어질 부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거 원, 음식이 입에 안 들어가는구만.”

“아까 잔치에서 많이 드시고 오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차라도 드시지요.”

“차도 전보다 영 텁텁하게 느껴지는 것이, 쩝. 술도 안 먹히는군.”

“금 의원이 준비한 상이 상련의 회합에서 준비한 것보다 고급스러운 것이었나 봅니다. 어디서 그리 귀한 것들을 준비했담?”

잔치를 다녀온 상련의 회원들이 저들끼리 투덜거리는 소리가 금건양의 귀에 들어갔다. 눈을 부릅뜨고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들 또한 금왕과 함께 무한에서 몇십 년을 굴러먹은 무한의 노회한 상인들이었기에 젊은 금건양의 그런 기세쯤은 무시하고 흘려 버릴 수 있었다.

“태양이 그 아이도 무한상련의 회합에서 나온 밥을 평생 먹었는걸요. 어느 정도 이상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겠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 그 애는 위태롭지 않은 상황을 아예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는 법을 익힌 모양이에요.”

“진양이 너는 아예 그 아이 편을 들기로 결심한 것이냐.”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금진양이 잔잔히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마 화를 낼 수도 없는 금건양은 화를 삭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올해의 인물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지만 정해진 행사를 취소할 수는 없다. 그것은 수십 년간 무한상련을 이끌어 온 그들의 아버지 금왕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올해의 인물도 상련의 회합도 취소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금건양은 회원들이 투표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금가장의 하인이 투표 결과를 취합해 금건양에게 가져왔다.

“호북 무한, 올해의 인물은…….”

예상한 결과였지만, 눈으로 그 결과를 보는 것은 또 달랐다.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에 적힌 세 글자의 이름에 금건양은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는 그 이름을 제 입으로 부르는 것이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이름 석 자를 내뱉었다.

“올해의 인물, 금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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