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23화 (123/350)

123화

우득―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온몸에 울렸다. 날카로운 뭔가가 폐부를 찢었다.

“헉, 허억……!”

갑자기 숨이 벅찼다.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는데도 공기가 기도를 맴돌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허억, 헉…… 이 녀석아, 가만히 있어……!”

날뛰는 코끼리의 혈을 강하게 짚자 비명을 지르며 날뛰던 녀석이 잠잠해졌다. 그대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쿨럭, 컥―.”

점혈을 위해 막대한 기를 쏟아부은 탓인지 가슴의 답답함이 더 심해졌다. 폐에 모래가 가득 찬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삼촌, 낯색이!”

“괘, 괜찮― 쿨럭!”

[폐에 상처가 난 거 같아요! 이걸 어쩌지? 흉곽에 공기가 찬 거 같은데, 기흉 말이에요,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

홍령은 안절부절못했고 금리도 고삐를 쥔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

나를 구할 것은 나뿐이다.

서둘러 품을 뒤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겨드랑이 쪽이 고통스럽게 당겨 힘들었지만 아직은 손에 힘이 남아 있었다.

흑사방주가 이걸 탐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당신, 설마?]

내 손에 들린 건 간양 누나가 만든 대롱이었다. 태양보도에 검기를 불어넣고 나는 그대로 대롱의 끝을 날카롭게 잘랐다. 그리고 태양보도를 떨어트린 뒤 흉곽을 더듬었다.

여기다―.

뾰족한 단면이 흉곽으로 향하게 잘 겨눈 후 남은 힘을 다해 내 몸을 쑤셨다.

푸욱―

“허억…… 헉…… 휴, 숨은 쉬겠네.”

걸왕의 일로 폐에 대해 집중 공부를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몸에 꽂힌 대롱을 통해 흉부에 찼던 공기가 빠져나갔다.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마른기침도 사라졌다. 여전히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삼촌,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 고삐 이리 줘. 가자.”

[당신 미쳤어요?! 어쩌자고 그런 짓을!]

침착해. 그거 말고 방법이 있었냐고. 여기서 다짜고짜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아는 방법이라 시도한 것도 있고.

전생의 의학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던 소재인 기흉. 의사들이 급하게 볼펜을 꺾어서 환자를 구하는 장면이 멋있었지.

근데 그걸 내 몸에 셀프로 꽂아서 해결하게 될 줄이야.

“서두르자. 휘말리면 진짜 못 빠져나간다.”

나는 대롱을 꽂은 채로 금리에게서 코끼리의 고삐를 건네받았다. 불길은 흑시 주변의 숲에 옮겨붙고 있었다. 내부에서의 싸움은 거의 끝나가는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나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다행히 흑사방의 무인도 흑의인들도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는 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추었지만 오른팔 소매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몸을 돌렸다.

어쩐지,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아무도 오지 않더라니. 좌수검의 지시였나.

당장은 그의 호의에 감사를 전할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태양의원으로 돌아가 부러진 갈비뼈를 맞추고 처리를 해야 했다.

“도련님!”

“도련님이 다치셨다!”

마차를 두고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자 미리 불러놓았던 금왕표국의 무인들이 사색이 됐다. 매화탄의 양이 얼마나 될지 모르니 짐꾼이 필요하겠다 싶어 불러놓은 이들이다. 이들이 끌고 온 수레에 내가 피신시킨 이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표두에게 코끼리의 고삐를 넘겼다.

“이제 모두를 태양의원으로―.”

“금태양!”

[정신 차려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일어났을 때 나는 태양의원―수의 무한출장소의 내 방에 누워 있었다. 본능적으로 흉부에 가장 먼저 손을 가져다 댔다가 꽂아 넣었던 대롱, 그러니까 공기 삽관의 역할을 했던 그것이 사라져 있음을 알았다.

[최 의원이랑 다른 의원들이 당신을 수술했어요. 좀 어때요?]

괜찮아. 아직 통증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 통증쯤이야.

[아직 일어나면 안 돼요!]

괜찮다니까. 그보다 시일이 얼마나 지났지?

명절이 코앞이었다. 그 말은 내가 계획한 무한상련의 회합도 코앞이라는 뜻. 나는 그 회합에서 올해의 인물로 뽑혀야 했다. 유력인사들의 반려동물을 치료하며 표를 부탁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올해의 인물이다. 그건 뽑혔을 때 타인에게도 납득 가능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30퍼에 달하는 대중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명절까지 이틀 남았어요.]

좋아, 아직 시간이 남았군. 뭐라도 하나 더 해볼 수 있겠어.

“스승님, 깨어나셨어요?”

밖에서 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감에 예민한 아이니 내가 정신을 차렸다는 걸 깨달았겠지. 내가 그렇다 대답하자 신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벌써 일어나셔도 괜찮으세요? 어디 더 아픈 곳은 없으시고요?”

신생의 얼굴은 기쁨과 안도, 걱정과 불안 같은 것이 가득 뒤섞여 있었다. ……애들의 표정이란 건 참 다채롭다니까.

[말도 마요. 당신 정신 못 차리는 동안 신생이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였는데요. 지금은 당신 앞이라고 침착한 척하는 거예요. 애가 창천의 멱살을 잡았다니까요?]

창천의 멱살을?!

[창천이 함께 갔는데 당신이 왜 저렇게 된 거냐면서, 차라리 자기가 갔어야 했다고 난리였어요. 걸왕이 나와서 달래주지 않았으면 정말 창천이랑 한바탕 싸울 뻔했다고요.]

멱살도 모자라서 싸울 뻔했다니. 으음…….

[그러니까 조심해요. 이제 당신이 잘못되면 당신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요.]

알았어. 앞으로는 조심, 또 조심할게.

“이젠 괜찮아. 그보다 별일은 없었고?”

신생이 창천 멱살을 잡았단 얘기를 듣긴 했지만 모른 척 물었다. 기쁨과 안도가 가득하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뭐지? 창천이 멱살을 잡힌 걸 복수하겠다고 신생을 쫓아다니면서 멱살을 노리고 있기라도 한 건가?

“그게요, 좌수검께서 오셨는데요…….”

“좌수검이?”

“네. 스승님을 뵈어야 한다고 기다리고 계세요. 사부님도 오셨었는데 기다리기 싫다고 가셨고요.”

좌수검과 도개걸이 함께 왔었다라. 정반합의 일인가? 하지만 나는 아직 그들이 내건 조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위패를 가져오는 것 말이다.

“어디 있는데? 내가 갈게.”

신생의 도움을 받아 옷차림을 정돈하고 밖을 나섰다. 좌수검은 정자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가. 다쳤다고 들었는데.”

“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매화탄에 불을 지르고 흑사방과 피를 흘린 건 정반합이 틀림없었다. 도개걸의 목소리는 물론 좌수검으로 보이는 이도 확인했으니까. 도개걸이 우리를 그곳에 데려갔으니 좌수검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았겠지.

“여러 용건이 있지만 우선은 이것을.”

좌수검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건넸다. 받아 열어보자, 그 안에는 내가 전날 흑사방주에게 매화탄의 거래대금으로 건넸던 야명주와 금왕전장의 전표, 그리고 금리가 대금으로 지불했던 보석이 들어 있었다.

“그 매화탄을 그대가 샀다고 들었다. 우리가 그것을 태웠으니 거래는 사실상 무효가 된 것이지. 그것을 돌려주러 왔네.”

이걸 이런 식으로 보상받을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나도 손해라 인식했던 일이다. 손해를 보상받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는 주머니를 내 품에 잘 챙겼다.

“감사는 없군. 그대답지 않아.”

“감사보다는 피해보상을 더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야 할 입장이니 말입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고요.”

“미안하네. 정반합의 행사라 그대에게 말할 수는 없었어.”

“화를 낸다면 좌수검이 아니라 도 방주에게 내야겠죠. 어쨌든 잘 받았습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손실을 보전한 건 다행한 일이다. 안 챙겨줘도 그만인데 구태여 거래대금을 들고 온 것도 사실 감사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좌수검이 여태 이곳에서 날 기다리진 않았을 거다.

[‘여러’ 용건이 있다고도 했고요.]

좌수검 개인으로 내게 용건이 여럿일 일이 없다. 그러니까 지금 그는 정반합의 일원으로 이곳에 와 있는 걸 거다.

“다른 용건은 어떤 겁니까?”

“……그대를 걱정했네. 그날 다쳤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지.”

“그게 답니까?”

“그게 용건의 전부는 아니지만 용건의 일부이긴 했네. 은인의 생사를 걱정하는 건 은혜를 입은 자로서 당연한 일이지.”

“그렇게 걱정이 되신다면 마저 용건을 꺼내주시죠. 솔직히 신경 쓰여서 수술 부위가 더 아파 오려고 하거든요.”

아무리 그의 팔을 붙여줬다지만 좌수검이 나를 심하게 걱정하는 것도 영 찜찜했다. 전에는 몰랐다지만, 이제는 그와 아버지 사이에 원한이 있음을 안다. 원수의 자식을 이렇게나 걱정한다는 게 가능한가?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뒤로 다른 꿍꿍이를 할 성정은 아닌 거 같지만…….

“그대 조카에게 볼일이 있네.”

“리한테요?”

“그래. 이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조카님도 그날 화상을 입은 데다 매화탄이 다 타버린 일로 심기가 상했는지 여기 오자마자 쓰러졌거든요. 정신은 차렸는데 아직 요양중이에요.]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정반합은 섬서사변의 피해자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들은 흑시를 주관하는 흑사방을 덮쳤다. 아마도 흑사방의 무인들은 대부분 죽음을 맞았을 거다. 흑시에는 섬서에서 나온,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매화탄이 있었다. 그리고 금리는 꾸준히 그 물건을 구매하던 단골이다―

“내 조카는 나와 동갑입니다. 그 애가 섬서사변과 관계 있을 리 없어요.”

좌수검이 금리를 찾을 이유는 그것뿐이다. 흑사방은 섬서사변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고, 금리는 그들과 거래하고 있었으니까.

“그대 조카를 해하려는 게 아니네. 그저 정보를 얻고자 할 뿐이야.”

“정보라면, 어떤 정보 말입니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무림의 공적. 섬서사변의 실질적인 주모자이며, 화산 제일의 검수였던 매화검 홍령에게 마두라는 오명을 씌웠고, 폐허가 된 섬서에서 지금도 거머리처럼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자들. 바로 혈교(血敎)다.”

[……!]

“양양에서 일어났던 참변을 기억하고 있겠지. 고독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또 잃을 뻔했던 일. 우리 정반합은 그 또한 혈교의 행사라 보고 있지.”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서 정신이 없다. 섬서사변의 주모자인 혈교, 그리고 그 혈교에 의해 섬서사변을 일으킨 마두가 된 매화검 홍령. 거기에 그자들이 양양에서의 사건까지 일으켰다니……

“잠깐만요, 하나씩 짚고 넘어가죠. 혈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보니 뭔가 사특한 술수를 부리는 종교인 거겠죠? 인신공양 같은 걸 하는?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가 혈교와 작당모의를 했단 말입니까?”

“그 일에 필요한 물자를 댄 게 바로 금가장이지. 그 일에 대해서는 금왕의 비밀장부도 손에 넣었네. 그대가 정반합의 일원이 된다면 보여주지.”

비밀장부라니.

아냐, 그 장부를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 그게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좋습니다, 일단 그건 둘째치고. 매화검 홍령이라고 하셨죠?”

매화검.

별호가 짧을수록 그 힘을 증명한다고 했던가.

홍령이 시원하게 말을 해주면 좋겠는데, 무슨 충격을 받기라도 한 건지 홍령은 말이 없었다.

“그렇다. 화산파 제일검수이자 화씨의문의 정통 후계자. 화산의 검과 의술을 전부 이어받았던, 그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답던 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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