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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22화 (122/350)

122화

“사분지 삼이라고? 그 돈을 그대로 주는 건 내 손해겠군. 나는 반값을 제시하지.”

“저는 삼분의 일 가격을 지불하겠습니다.”

나와 금리는 과열로 가격을 올리듯 가격을 깎아댔다. 흑사방주는 입을 척 벌리고 나와 금리를 번갈아보았다.

어처구니없겠지. 하지만 이자는 흑시라는 시장을 주관하는 흑사방의 방주다. 아주 멍청하진 않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거다.

희소성이 있는 물건은 가치 있다.

생기를 죄 빨려 동식물이 살아 있질 못하는 땅에서 그나마 쓸 만한 나무를 베어 숯으로 만들어낸 물건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므로 그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때문에 금리는, 그리고 금왕공방은 그에 걸맞은 값을 치러왔다.

여기에 경쟁자가 생긴다면 수요와 공급의 이론에 따라 가격이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이, 이 미친년놈들이?”

그러나 물건의 희귀성은 수요가 있을 때 발생한다.

수요와 공급의 이론에 따라서, 소비자가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 그 물건은 세상에 유일한 것이라 한들 가치를 잃는다.

담합은 공급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떡할 거야? 방주가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격을 더 깎을 건데.”

“사분의 일 가격을 제시합니다, 방주. 이 다음은 이분께서 오분의 일을 제시할 겁니다.”

“더 깎을 수도 있어. 방주가 우리에게 돈을 주고 제발 물건을 가져가라고 사정하게 될지도 모르지. 우리가 가져가지 않으면 방주도 아주 귀찮아지잖아?”

흑사방은 중원 전역에 흑시를 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다.

중원은 넓다. 수시로 전역에 시장을 열려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 그것도 상당히 빠르게. 그때 문제 되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속도를 저해하는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이다.

[무겁고 부피가 큰 것들, 예를 들면 저기 저 코끼리라든가, 사람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가격을 깎아도 적당한 선에서 거래를 하더군요. 하지만 지니기 쉬운 귀중품들은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죠.]

게다가 이 매화탄은 불이 굉장히 잘 붙는다더라고. 순식간에 온도가 올라 강철도 녹여버릴 정도로 위험한 숯 수레를 끌고 중원 전역을 쏘다닌다고? 긴 여정에 화기엄금은 필수 아니던가.

흑사방주는 우리를 미친놈 보듯이 쏘아보면서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에겐 선택지가 많았다.

우리의 가격협상을 묵살하고 거래하지 않고 매화탄의 새로운 거래처를 찾다가 모든 걸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었고, 재고를 떠안고 새 거래처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운 좋게 거래처를 구해도 그간의 보관비와 운송비를 상쇄할 정도의 값을 받아내리란 보장은 없다.

이번에 헐값으로 합의하고 다음번 금리에게 그 이상의 값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가격을 깎아본 금리가 호락호락 그 값을 지불하려 들진 않을 거다. 얜 내 조카고, 금가장의 후계자니까.

아주 인심 좋게, 매화탄을 공짜로, 혹은 돈을 더 얹어서 줄 수도 있다. 그간의 구매에 감사하는 보너스 같은 걸로. 하지만 그러기엔 당장의 손해가 뼈아프겠지.

사람은 선택지가 많고 그 선택지 무엇 하나 빼어난 것이 없을 때 가장 고통받는다.

이제 진짜 거래를 해볼까?

“방주, 잠깐만 얘기 좀.”

“무슨 얘길 하려고?”

흑사방주는 탐탁잖은 얼굴을 하면서도 내 쪽으로 다가와 몸을 기울였다.

“뭐, 나도 진짜 오분의 일 가격만 지불하겠다는 건 아니고. 생각해 보니 두 배 가격은 내게도 부담이 커서 말이지.”

“이 새끼가 장난하나.”

“잘 들어보라고. 나는 매화탄이 필요하지만 저만한 양이 다 필요하진 않아. 두 수레 중 하나면 충분하단 얘기지. 수레 하나에 사분의 삼 가격이면 어때?”

“사분의 삼?”

“싫으면 어쩔 수 없고. 나도 두 수레를 전부 사려면 더 싼 가격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어.”

흑사방주가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 부류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머리를 오래 쓰는 걸 싫어한다. 본능파라고 할까. 이문에 밝다기보단 손해를 보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게 맞겠지.

[당근과 채찍이군요. 그런데 당근도 좀 시들어빠진 당근이고요.]

“……좋아. 그 가격에 수레 하나를 넘기지. 돈은 바로 지불할 수 있겠지?”

“여기, 금왕전장의 전표로 지불하지.”

“난 원래 현물만 받지만, 손님이 전표만 가져온 거 같으니 어쩔 수 없지. 반은 야명주로 하고 반은 전표로 받겠어.”

“금왕공방장의 대롱으로는 안 되나?”

“그건 누가 봐도 장난감이잖나. 저기 사천지역에 가서 독 피리로 쓸 자나 찾아보는 게 낫겠군.”

“조언 고마워.”

나는 창천에게 눈짓하고 흑사방주에게 야명주와 전표를 건넸다. 흑사방도가 말을 끌어 창천에게 수레를 넘겼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아가씨의 거래인가?”

흑사방주가 한결 안도한 기색으로 몸을 돌렸다. 사분의 삼이라면 큰 이득은 못 봐도 손해는 안 날 수준이었을 거다.

게다가 내게는 야명주를 대가로 받았으니, 잘하면 다른 흑시에서 저 물건을 원래 가치보다 비싸게 팔아치워 이득을 볼 수도 있을 거고.

“내가 필요한 물건은 두 수레입니다. 항상 두 수레를 거래해왔고요. 헌데 이번엔 물건이 반뿐이니, 나도 제값은 못 주겠습니다. 사분의 삼을 지불하죠.”

“진짜 짜증 나게들 구는군. 알았어, 가져가! 야, 돈 받아라!”

금리는 익숙하게 품에서 보석 몇 점을 꺼냈다. 그녀 또한 수레를 인도받고 거래를 마쳤다. 그리고 금리는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앉아서 돈 벌었네요. 이제 무한에 가서 이 수레를 제 가격에 조카님에게 파는 거죠?]

그래. 우리의 담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쨌든 금리가 필요한 건 두 수레이므로, 나는 사분의 삼 가격에 산 매화탄을 제값에 금리에게 넘기고 차액을 손에 넣는다.

그렇게 해도 평소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가져온 게 되므로 금리는 내게 그 공로를 인정해 간양 누나에게 주문을 넣을 권리를 인정해주었다. 구두 계약은 불안하니까 휴대용 지필묵으로 즉석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이제 흑시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돈을 아낀 건 좋지만, 그걸로 저 사람들을 살 생각은 말아요.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이 가진 돈으로 저 사람들을 다 구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 봤자 흑사방은 그 돈으로 더욱더 사업을 확장할 거라고요.]

내 눈이 아까 눈을 마주쳤던 어린아이들에게로 돌아가는 걸 본 홍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생과 나이가 비슷한 애들이라 계속해서 눈이 가던 아이들이었다.

나도 홍령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안다. 악순환이라는 거지. 전생의 반려동물 산업구조와 비슷하다. 안쓰럽다고 돈을 써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그 뒤에 있는 착취의 구조를 해결하지 못한다.

안다, 아는데…….

―댕, 댕, 댕

[자정이에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니?!]

금리와 협상을 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젠장, 간양 누나한테 휴대용 시계라도 하나 사둘 것을. 낮과 달리 밤은 시간을 확인하기 불편해서 그만 잊고 있었다.

도개걸이 경고한 자정이 지났다.

“빨리 빠져나가자.”

“저는 이것 말고도 거래해야 할 게 남았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지금부터는 위험해. 이 수레를 끌고 여길 벗어나려면 한참 걸릴 거야.”

“위험하다니요. 달리 지금부터 뭐가 계획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금왕공방의 새 물건을 팔려면―.”

[피해요!]

홍령의 경고와 함께 나는 금리의 손을 다짜고짜 잡아당겼다.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귓전을 울렸다. 누구 하나 그 소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창천 정도만이 검을 뽑아 갑자기 우리를 향해 날아든 그것을 쳐냈을 뿐이다.

“화살?”

그냥 화살이 아니었다. 불화살이다.

우릴 노린 게 아니야.

그 순간 빗발 같은 불화살이 매화탄을 실은 수레에 퍼부어졌다.

“도망쳐!”

창천은 내 말을 듣지 않고 화살을 쳐냈지만 불화살에 맞는 말까지 지킬 수는 없었다. 갈기에 불이 붙은 말이 기겁을 하며 내달렸다. 화살비가 방향을 바꿨다.

그중 한 대의 화살이 매화탄 더미에 제대로 박혔다.

“안 돼, 매화탄이!”

“가면 안 돼!”

“하지만 저게 없으면 공방은―!”

나는 매화탄을 향해 몸을 던지려는 금리를 가까스로 붙들었다.

“미친, 야! 새끼들아! 물 떠와! 물! 어떤 새끼야!”

흑사방주는 제 무기를 집어 들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를 흑사방의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로 따랐다.

“쳐라!”

익숙한 목소리였다. 방주다. 흑사방주가 아니라 지난 며칠간 귀가 따갑게 들어서 바로 그 걸걸한 말투와 얼굴이 바로 떠오르는, 도개걸의 목소리.

젠장, 자정 전에 끝내고 떠나지 않으면 자긴 책임 못 진다는 게 이런 거였냐고!

흑시는 혼란이 가득했다. 매화탄이 타오르며 공터 주변의 마른 들풀과 나무를 불살랐다.

그 불길 사이사이 검은 옷을 입은 흑사방의 무인들과 그보다 더 검은 색으로 전신을 감싼 흑의인들이 병장기를 부딪치며 싸워댔다. 매캐한 냄새 사이로 순식간에 피 냄새가 짙어졌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불길 소리보다 거세어졌다.

“금태양, 괜찮나!”

매화탄 수레 바로 옆에 있던 창천이었다. 다행히 좀 그을린 거 빼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우린 괜찮아. 퇴로를 열 수 있겠어?”

“물론이다!”

믿음직스러울 때가 별로 없던 창천이 우리 앞에 섰다. 나는 홍령이 넓은 시야로 본, 불길이 퍼지지 않은 방향을 가르쳐주며 달렸다.

“사,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손님들은 도망치고 흑사방은 정체불명의 흑의인들과 싸우고 있어 불길 속에 방치된 이들이 고함을 질렀다. 길을 뚫던 창천이 곧바로 검을 뽑아 그들을 결박하던 밧줄을 끊었다.

“어차피 데려갈 심산이겠지! 서둘러!”

“어, 어? 다들 우릴 따라와요!”

[창천이 웬일로 기특한 짓을!]

안 그래도 저들이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이었다. 아까부터 나와 눈이 마주쳤던 남매를 나와 창천 사이에 앞세운 채 달리다가 나는 발을 멈췄다.

“창천, 이대로 여길 벗어나!”

“넌?!”

“이렇게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순 없잖아!”

거래대금은 이미 지불했고 물건은 불탔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앞에 가던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고는 면사를 집어던지며 방향을 틀었다. 내가 달리는 방향에는 줄에 묶여 방치된 채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내지르는 코끼리가 있었다.

“같이 가겠습니다!”

창천을 따라갔을 거라고 생각한 금리가 내 뒤를 쫓아왔다. 하나보단 둘이 낫겠지.

“면사는 벗어! 불길에 탈 수도 있어!”

“네!”

우리는 빠르게 달려 입구 쪽의 불길에 갇혀 있는 코끼리에게 접근했다. 코끼리를 지키는 자는 없었다. 흑사방도들은 이미 흑의인들과의 싸움에 몰려갔으니까.

“내가 줄을 끊을 테니 고삐를 잡아!”

“알겠습니다!”

태양보도를 뽑아 검기를 불어넣은 후, 놈을 붙들고 있는 단단한 밧줄을 단번에 끊었다.

뿌우우우―

몸을 구속하던 밧줄이 끊어지자 발악하던 코끼리의 몸뚱이가 휘청 기울었다. 금리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패닉에 빠진 코끼리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 녀석아, 가만히 있어―!”

뒷다리를 묶은 밧줄을 마저 잘라주기 위해 코끼리의 후방으로 몸을 옮겼을 때였다.

“삼촌!”

밧줄을 자르는 순간 코끼리의 육중한 뒷다리가 내 흉부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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