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13화 (113/350)

113화

[휴, 이제야 도착했네요.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예요?]

홍령의 말마따나 우리는 꽤 먼 여정을 거쳐야 했다. 태양의원 무한 출장소를 떠나 장강의 지류까지 가는 데 마차로 약 삼십 분, 거기에 배를 타고 가는 데 약 한 시간, 그리고 배에서 내려서 다시 마차를 타고 또 삼십 분.

두 시간 넘는 시간을 이동에만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왕공방도 무한 안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무한인 거예요?]

놀랍게도 아직 무한 안이다.

나도 이 동네에서 다시 태어났을 때 지리 감각을 다시 익히느라 꽤 고생했지. 처음에는 서울 정도 크기일 줄 알았는데, 대충 경기도보다 조금 작더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전생으로 치면 시에서 시로 이동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큰 대도시라니…….]

뭘 놀라고 그래. 너 살던 화산이며 그 옆에 있던 서안도 만만치 않은 도시라고, 정반합이 그랬잖아.

[그렇게 말해도요. 알잖아요, 난 모든 걸 기억하진 못한다니까요. ……아! 맞아, 서안에 홍화루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거기 음식이 진짜 맛있었어요! 와, 또 하나 기억났다!]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리고 기뻐하는 홍령을 짠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멈춰 있었고, 익숙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참 오랜만이네.

[뭐에요? 왜 마차가 멈춘 거예요? 이거 금가장 마차잖아요.]

사람이 지나가잖아.

마차가 멈춰선 앞에는 길을 가로지르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어깨에 대들보에 쓸 만한 나무를 메고 있었는데, 그만큼 크고 긴 나무를 짊어지고 길을 건너던 중이라 우리에게 길을 비켜주려면 뒤로 뒷걸음질을 하든지 반원을 그리며 돌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차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보통의 예의에 맞는 일이다.

[하지만 금가장이잖아요. 나, 무한에 와서 이 마차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는 건 처음 봤어요.]

그렇지. 무한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지.

우리가 금가장의 마차를 이용할 때마다 그랬으니 홍령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반대편에서 다른 화려한 마차가 다가와도, 길을 가로질러 가는 짐마차가 있어도, 하다못해 천둥벌거숭이 같은 어린애들도 길에서 신나게 놀다가 금가장의 마차가 보이면 곧바로 물러나 꾸벅 인사를 할 정도다.

금가장이 양보를 하거나 길을 비켜주는 건 무한의 고관대작 정도? 그나마도 상대가 먼저 양보해주는 일이 많다.

금가장이랑 사소하게 트러블이 생겨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그 너른 무한 시내 전체에 퍼져 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자존심 하나는 황제도 꺾을 수 없다는 천하제일 장인들의 마을, 금왕공방이다.

“여기 사람들은 여전하네요.”

“그렇지. 너는 오랜만에 오겠구나.”

“네. 간양 누나가 공방에 들어갈 때 한 번, 그리고 공방장이 되었을 때 한 번. 그렇게 두 번 왔죠. 그나마도 마지막으로 온 게 몇 년 전이더라…….”

[멀어서 많이 못 온 거예요? 아쉽다.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게 많은데요.]

구경할 게 많기는 하지.

그야말로 온갖 분야의 장인들이 모여 있으니까. 금화상단이 취급하는 장신구를 주문하는 만큼 최상급의 보석세공과 귀금속 장인이 있고, 방금 건축용 자재가 지나간 것처럼 건축과 목재를 다루는 데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 있다. 그뿐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검장(劍匠)도 있지.

거기에 금왕공방을 관장하는 금간양이 있고.

누나는 어릴 때부터 금가장 대신 금왕공방을 집 삼아 그곳에 있는 모든 장인들의 기술을 흡수했다고 들었다. 장인의 영역에 있는 기술이라면 못 하는 게 없다나?

그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 그런 능력자니까 금왕공방의 그 콧대 높은 장인들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누나를 방장으로 인정하는 걸 거다. 단순히 금가장의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그럼 당신 누나도 저런 거 할 수 있어요?]

홍령이 길 건너편에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한 노인이 아주 작은 막대기를 깎고 있었다. 그것만 봐서는 그 노인이 뭘 만드는 장인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옆에 쌓인 완성품으로 그 막대기가 뭐가 될지는 알 수 있었다.

[저거, 이쑤시개죠?]

그래. 손가락 두세 마디쯤 되는 길이에, 아주 가느다란 나무 조각이라면 그거밖에 없지.

[뭔가 좀 납득이 안 가는데요. 여긴 최고의 장인들만 모여 있다면서요. 그런데 이쑤시개 장인이라뇨?]

이쑤시개가 어때서? 저건 황실에도 납품되는 고급 이쑤시개라고.

아주 부드럽고 세밀한 데다, 두께도 천차만별이라 치실 급으로 가느다란 것도 있어서 치석을 관리하는 데 저만한 게 없다니까. 양치질이라곤 나뭇가지 다듬은 걸 사용하거나 심할 땐 모래로 이빨을 닦는 동네잖아.

[하긴. 우리 환자들 중에서도 잇몸 질환이 없는 환자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이쑤시개를 만드는 사람이 장인이라 불릴 만도 하네요.]

게다가 지금 만드는 저게 바로 황실에 납품되는 이쑤시개라고. 잘 봐봐. 표면에 용 무늬 조각도 되어 있을걸?

[저 작은 표면에 용을 새긴다구요?]

홍령은 흥미가 돋았는지 곧바로 그 장인에게 다가가 이쑤시개 깎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자재를 나르는 목수들이 전부 지나가고 마차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용을 새겼더라고요? 신기해라. 저만한 기술을 갖기까지 엄청 오래 걸렸을 거 같아요.]

의술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난 홍령이 어떤 포인트에 감탄을 하는지 알고 있다.

의술은 그것이 쓸모 있다는 확신이 있고 공부해서 배울 가치가 있지만, 사실 이쑤시개에 용 조각을 하는 일은 누군가 가치를 알아줄 거라고 보장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금왕공방은 그걸 한다. 장인들의 실험적인 도전에 돈을 대주기도 하고 그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문을 받아 건네주기도 한다. 이곳은 장인들에게는 꿈의 낙원 같은 곳이다.

“다 왔구나. 내리자.”

[흐응, 여기가 당신 누나가 기거하는 곳이군요. 그러니까, 여기도 태청의문이랑 비슷한 거죠? 이 일대가 전부 금왕공방인?]

그런 셈이지. 지금까지 우리가 온 길에 있던 건물들이 장인들의 집이자 작업실이고, 우리가 내린 곳 또한 그런 곳이었다.

장강의 거친 강물에 세워진 거대한 수차. 그리고 그 수차를 반원형으로 둘러싸며 세워진 건물들. 그 중앙에 있는 곳이 바로 금간양의 거처다.

[저 수차는 뭐예요? 장인들이 있는 곳이니까 저걸로 밀을 빻지는 않을 거고. 척 봐도 그냥 물레방아랑은 전혀 다르게 생겼어요.]

저게 바로 금왕공방이 금왕공방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지.

저 수차는 수십 년도 전에 한 기관 전문가가 아버지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보통의 물레방아랑은 차원이 다른 크기며 규모로, 장강의 물살을 받아 돌아가며 끊임없는 동력을 제공한다.

저걸 기반으로 아버지가 이곳에 장인들을 끌어모았다고 들었다.

[흐응, 신기하네요. 각 건물마다 하는 일이 달라요. 한 곳에서는 저 수차랑 연결된 기관(機關)이 광석을 빻고 있고요, 그 옆에서는 풀무질을 하네요? 다른 데선 뭘 하나?]

모르긴 몰라도 수차를 이용해서 별의 별 걸 다 하고 있을걸.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말이다.

심지어 저 크기를 보라지.

저만한 수차가 있는 곳은 아마 이 넓은 중원에도 여기밖에 없을걸?

그러니까 최고의 장인들이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이곳에 모이고, 금왕공방이 중원제일 소리를 듣는 거다.

“간양아, 우리 왔다.”

외백모가 금간양의 방 앞에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얘가 어딜 갔지? 내가 온다고 기별도 따로 넣었건만.”

“제가 싫어서 어디 가버린 게 아닐까요?”

“얘는, 내가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할 거 같니? 당연히 너와 함께 온다는 얘긴 안 했지. 이보게, 혁이. 마침 잘 왔네.”

외백모는 옆을 지나가던 한 장인을 불러 세웠다. 간양 누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인데?

[왜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어요?]

금왕공방은 최고 중 최고만 모이는 곳이니까. 장인의 기술은 시간에 비례하는 관계로 이곳에는 최소 사십 대 이상의 장년층이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간양 누나야 이곳에서 자라다시피 했으니 예외고, 그런 점에서 누나 또래의 장인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금화 부인 아니십니까. 어서 오세요. 이쪽은?”

“얘는 우리 조카. 간양이 동생이라네.”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는 간양이를 도와주고 있는 남궁혁이라고 합니다.”

“도와주다니, 겸손하구나. 이 아이가 부방장를 맡고 있단다.”

[호오, 당신 누나 애인인 거 아니에요?]

누나가? 기술과 연애를 했으면 했지 남자를 만날 타입은 아닌데. 하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보다―

“이름이 남궁혁이시면 설마?”

“아, 그 유명한 남궁세가와는 별 관계 없어요. 방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죠. 피 한 방울 정도는 섞였을지도요.”

남궁혁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아쉽네, 남궁세가의 혈족병에 대해 더 연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간양이 이 아이는 어딜 갔는가? 내가 온다고 미리 기별도 넣었건만.”

“아, 간양이는 지금 자고 있을 겁니다.”

“자고 있다고?”

“예. 오늘 아침까지 마감인 물건이 있어서 간양이가 삼일 밤을 새웠죠. 외백모님 오시기 전까지 조금만 잔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못 일어났나 보네요.”

자고 있다라. 대놓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보단 낫나.

“그런데 마감이라니. 언제부터 금왕공방이 마감을 지켰던 거죠? 아, 죄송합니다. 제 말이 좀 무례하게 들릴 수는 있는데―.”

“아, 압니다. 원래 금왕공방은 마감을 성실히 지키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공방이죠. 예전의 금왕공방을 잘 아실 테니 그렇게 말씀하실 만도 해요.”

[그건 무슨 얘기에요? 마감은 원래 지키라고 있는 게 마감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금왕공방과는 좀 거리가 있는 얘기지.

금왕공방은 마감 같은 거 상관없이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하는 곳이니까. 마감은 뭐랄까, 형식적인 거랄까?

[그런데도 계속 주문이 들어와요? 신기하네요…….]

주문 넣는 사람도 다 감안하고 넣는 거지. 마감 늦는 거, 어기는 거 다 알고 하는 거야. 대신 그만큼 최고의 물건을 보내주니까.

오히려 수도의 귀족과 황족들 사이에서는 금왕공방에 주문을 넣고, 마감보다 얼마나 늦게 물건을 받았느냐가 자랑이 되기도 한다던걸.

[으음, 나한텐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요.]

뭐, 그건 과거의 얘기고. 지금은 마감을 칼 같이 지킨다는 거다. 그래서 외백모가 약속을 잡고 찾아왔는데도 간양 누나가 여태 자고 있다는 거고.

문제는 내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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