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스승님, 슬슬 시간이 됐는데요!”
“그래. 간다.”
오후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회진을 한 번 돌아야 했다.
모든 동물 환자들을 내가 전담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각 의원들에게 적당히 분배를 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각 의원이 담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현 상황을 업데이트해야 했다. 그래야 문제를 빠르게 확인하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누구 하나 확실하게 전문가가 아닌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별 문제 없죠?”
제일 먼저 앞마당과 붙어있는 건물로 향했다. 마당에서는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개들이 무리를 지어 놀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푹신한 멍석 위에서 슬개골을 수술한 강아지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다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방 안에는 고양이들이 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누웠다. 소와 말을 제외하고는 개와 고양이가 가장 많았고, 조금 떨어진 방에는 쥐나 새, 토끼 같은 동물들이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선 달리 들리는 게 없어요. 말을 전할 수 있는 동물이 따로 있는 걸까요?]
아까 막둥이의 말이 들린 이후로 홍령은 동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다. 말도 걸어보고, 툭툭 쳐보기도 하는 둥 여러 시도를 해보는 거 같긴 했는데 딱히 반응하는 녀석이 없었다.
혹시 모르지. 말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거나, 아니면 영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똑똑한 녀석들에게만 가능한 일일지도.
[그런 거라면 말이 되네요. 아까 막둥이는 감사를 표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영물이라, 영물도 그럴 수 있죠. 그런 애들은 말을 하지는 못해도 인간이 말하는 건 귀신같이 알아듣거든요. 아, 내가 귀신같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좀 웃기네요.]
귀신같이 동물의 말을 듣고 있으니까 맞는 말이지. 금가장에는 동물을 키우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영물이라 부를 만한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영물의 내단 같은 건 많이 섭취했군. 내 업보가 깊다, 깊어.
장소를 옮겨 다소 으슥한 곳에 위치한 건물로 향했다. 장원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작았는데, 대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곁문이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늘진 연못이 위치해 여름에 머물기 좋아 보이는 공간이었다.
“금태양 옴? 여긴 문제 없음!”
“그래, 문제 없어 보인다.”
이곳은 당당이 뱀과 도마뱀, 거북 같은 파충류를 도맡고 있었다. 그건 녀석의 전문분야니까.
“이 흰둥이 진짜 귀엽지 않음? 비늘 다 나은 거 봐. 사천으로 데려가고 싶음!”
녀석이 내민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구렁이였다. 당당 녀석처럼 이런 놈들을 귀여워하고 반려동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안 돼. 주인 있는 거 알잖아.”
나는 뒤로 반 발짝 물러나며 손을 내저었다. 파충류를 귀여워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거랑 파충류가 내 취향이 아닌 건 다른 얘기지.
“주인은 얘를 잘 몰라. 관리 안 된 거 봤잖음! 내가 데려간다고 해도 줄듯!”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겠지. 네가 잘 가르쳐줘. 만약에라도 그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그 애를 맡긴다 해도, 사천으로 데려가는 건 반대하지 않겠냐. 거기 가면 영락없이―”
나는 말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본사(本蛇)가 있는 앞에서 사천에 갔다간 뱀탕이 될 거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건 그렇잖아. 막둥이가 말을 했다는 걸 들은 뒤라 더더욱 신경이 쓰인다.
“그거랑 그거랑은 다름! 우리도 예쁘게 돌보기만 하는 애들 있음!”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해도 아무튼 안 돼.”
“예뻐만 해줄 건데~!”
사천에서 수많은 파충류를 이런 용도 저런 용도로 다뤄본 녀석이기에 지금 파충류를 치료할 수도 있는 거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군.
이번에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자리가 모자라서 임시로 증축한 마구간까지 해서 거의 사십 마리 가까운 우마가 자리를 차지했다. 아까까지 막둥이가 있던 자리를 정돈하고 있던 최 의원이 나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둥이는 잘 갔어요. 건강하던데요?”
“그렇습니까? 참 다행입니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까진 순조롭습니다.”
“이게 다 최 의원님이 있어서죠. 최 의원님이 마의(馬醫)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닙니다. 마의라니요, 저는 그냥 조수를 자청하며 따라다녔을 뿐인데요.”
최 의원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그는 수술의 자격을 따기 위해 수련을 할 때, 부족한 수련비도 벌고 수술 연습도 할 겸 말 전문 수의사인 마의의 조수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막둥이 주인의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최 의원인데 말이지.
“그때 실수도 많이 했지요. 오히려 제 손에 다리를 잃은 말도 꽤 있었습니다. 여태 그 녀석들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살았는데, 이렇게라도 다른 녀석들에게 치료로 돌려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네요.]
그렇다. 내가 데리고 온 의원들은 대부분 수술의가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수련했고, 사람을 수술할 기회가 적은 만큼 보다 접하기 쉬운 동물들에게 수술 연습을 해본 경험이 많았다.
수술뿐만이 아니다. 약을 실험하느라 동물을 다뤄본 이들도 많았다. 초짜가 만든 약, 효과도 모르는 신약을 먹어 보겠다 나설 만한 사람은 드무니까.
내가 태양의원―수의 무한 출장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에는 그들의 경험과, 그 경험을 단순히 ‘연습 한 번 했다’로 치부하지 않고 꼼꼼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놓은 성실함과, 그때 자신의 경험이 되어준 동물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간직한 그들의 선량함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내가 이번 진료는 무료로 진행하겠다는 말에 자신들도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손을 거쳤던 동물들에게 빚을 갚는 셈 치겠다는 거였다.
물론 그럴 수는 없기에 기본 급여는 지불하기로 했지만, 솔직히 좀 감동이었지.
[저쪽은 아무래도 수당을 더 챙겨줘야 할 거 같지만요…….]
마구간을 지나 정원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홍령이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저 멀리 정원에서는 홍령을 안타깝게 한, 의원들의 비명 아닌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거기 꽉 잡아!”
“으악, 움직인다! 움직인다아!”
“창천 님, 도와줘요오―!”
난리 났네.
커다란 연못과 정자가 있는 정원은 대형동물들이 차지했다. 어디서 구경하기도 힘든 귀한 동물들 말이다.
예를 들자면, 코끼리라든가 기린이라든가.
웬만한 부(富)로는 꿈도 못 꿀 귀한 녀석들이 정원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나마 숫자가 적고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동물이 없는 게 다행―
“으아악―!”
“사람 살려!”
―다, 다행인가?
코끼리를 붙들고 치료를 하려던 의원들이 코끼리의 몸부림에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나는 신법을 발휘해 한달음에 그 자리에 도착한 후 곧바로 내동댕이쳐지다 못해 아예 하늘로 붕 뜬 의원을 하나 낚아채 바닥에 착지했다.
“가, 감사합니다! 휴, 살았다……!”
“창천! 빨리 혈 짚어!”
“하고 있다! 너도 도와라!”
나는 안도하는 의원을 바닥에 내려놓고 창천과 함께 코끼리에게 달라붙었다. 다행히 코끼리는 주인에게서 인계받을 당시 그쪽 전문가들이 병이 생겼을 때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같이 건네줘서 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의 혈을 짚듯이 하면 안 먹힌다!”
[내가 중수법을 썼을 때처럼! 기를 팍 찔러 넣어요! 그 정도로는 혈을 못 건드릴 거예요!]
코끼리 정도 되면 혈을 짚는 데도 상당한 내공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뀨어어어어―
“휴, 됐다…….”
나와 창천이 둘 다 달라붙어 한참을 고생한 후에야 코끼리는 진정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그래. 너도 힘들지? 힘든 거 아는데, 우리도 너를 알아야 네가 아픈 걸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자. 알았지?”
나는 코끼리를 어린애 쓰다듬듯이 쓰다듬고 일어났다. 갑자기 예상치 않게 기를 사용했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차라리 묶어두지 그러나.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못 버틴다.”
코끼리가 환자로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이곳에 상주하며 녀석들을 컨트롤 하고 있는 창천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무한에 온 이후 수련도 못 하고, 그 와중에 정반합과의 일도 신경이 쓰이는데 여기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불만이 많겠지만…….
“이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해. 혼자 하는 수련도 좋지만 상대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네 적수가 없었는데 너를 진 빠지게 하는 상대라면 나름 좋은 수련 상대 아냐? 네가 언제 코끼리를 상대해보겠어?”
“……!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게다가 점혈도 나랑 너랑 달라붙어야 하는데 밧줄이 소용이 있겠냐. 원래 이 녀석을 창살로 찌르며 다루는 조련사가 있었는데, 내가 필요 없다고 했어.”
“어째서지?”
“생각을 해 봐라. 너 같으면 밥 먹어라, 물 먹어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창살로 귀를 쿡쿡 찌르면서 명령하는 놈이 항상 등에 타고 있는데 병이 안 생기고 배기겠어?”
“그, 그렇군…….”
“심신의 병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든 병은 결국 균형이 흐트러져서 생기는 거니까.”
문제는 모든 동물이 같은 균형을 갖고 있진 않다는 거다. 열대에 사는 재규어와 북극에 사는 펭귄의 균형점은 확연히 다를 테니까.
코끼리가 진정한 기색을 보이자 의원들이 다시 다가와 코끼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받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가 코끼리를 알아야 했다. 이 녀석이 온 지방은 어딘지, 여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성별과 나이는 몇 살인지, 코끼리의 성장 단계로 치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등등.
천천히 알아가다 보면 이 극도로 예민한, 그래서 공격성이 심해진 코끼리가 뭐가 문제여서 이러는지 알 수 있겠지.
“스승님, 금화상단에서 오셨어요!”
“알았어, 갈게. 다들 수고하세요.”
회진을 끝내고 나가자 외백모가 탄 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백모가 약속한, 금왕공방의 주인이자 내 바로 손윗누이인 금간양을 만나는 날.
그것이 바로 오늘이다.
“이대로 출발하면 되는 거니?”
“네. 뭐 문제라도 있나요?”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얘기해줬던 거 같은데. 간양이 그 애가 특이한 물건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니. 널 싫어하긴 해도 뭐라도 준비하면 나을 거 같은데.”
아마 외백모님은 내가 누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수레 한가득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미리 일러주신 것도 있으니까.
나는 내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웃었다.
“선물은 양이 아니라 질이죠. 누나를 위한 선물은 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물론 질도 질이지만 양도 만만치 않다. 이걸 다 줄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내 머릿속에는 금간양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전생의 기억이 있다. 이중에서 뭘 줄지 고르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 그래, 내가 또 늙은이 같은 생각을 했구나. 젊은 애들 취향은 젊은 애들이 잘 알겠지. 그럼 이만 가보자꾸나.”
간양 누나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안다. 하지만 내가 내민 이 패를 싫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