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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11화 (111/350)

111화

“잠이 든 거 같은데, 괜찮은 거니? 계속 잠만 잔다고는 해도 지금은 잘 시간이 아닌데.”

“침이 잘 들으면 잠이 오는 경우가 있어요. 푹 자고 일어나서 상태를 보면 될 거예요. 그래도 손에서 바로 잠이 들다니, 외백모를 많이 신뢰하나 봐요.”

쥐는 외백모의 손에서 기절한 듯이 자고 있었다. 쌕쌕 내뱉는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좋아, 아픈 숨소리는 아니다.

“신뢰라…… 그래, 이 아이 덕분에 나도 신뢰라는 걸 다시 믿게 되었지.”

“신뢰를요?”

“너도 금가장에서 자랐으니 알 거 아니니. 사람이 돈을 우선에 놓게 되면 피폐해지게 되는 법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믿기가 어렵지. 가족도 돈 때문에 등을 돌리고 칼을 꽂는 세상이 아니니. 그러나 이런 짐승들은 주는 애정만큼 곧이곧대로 돌려주지.”

딱히 부잣집이 아니어도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사람보다 동물이 믿을 만하다는 점은 공감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오로지 진실 어린 행동으로만 그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지만 한번 마음을 주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손에 꼽게 드문 건 사실이지.

“무한의 부자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단다. 헌데 동물을 봐주는 의원은 귀하지. 그 틈을 노려보는 것도 좋을 거다.”

사실 그 생각도 해보긴 했다.

무한에는 출장소를 열지 않기로 했지만, 그건 북촌 일대와 달리 내 명성이 먹히기 힘들다는 점이나 다른 의원들의 견제, 그리고 태양의원이 당장 무한까지 영향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점 등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소성 있는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다면 그런 이유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무한의 부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약초 종자를 구할 다른 루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문제는 사람들이 얼마나 올는지…… 북촌에서도, 양양에서도 그거 때문에 애를 먹었잖아요. 입소문이 퍼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니까요. 그나마 북촌은 다른 의원이 없어서, 양양은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특수상황이었는데. 과연 아픈 동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것도 걱정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애초에 할 생각이 없던 일을 벌이는 거니까. 큰 기대는 말고 양보다 질이라고 생각하면서 인맥을 쌓는 데 주력해보자고.

그렇게 잠이 든 쥐의 상태를 지켜보며 그간 무한에 있었던 다른 일들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데 신생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스승님! 손님이랑 계시는 데 죄송하지만, 손님이 오셨는데요. 너무 급하다고 하셔서요.”

“급해? 환자야?”

“네! 장주님 소개로 오셨다고 하시는데요, 환자분은 환자분인데―.”

[설마 이번에도?]

“이번에도 동물을 데리고 오신 분이야?”

“아, 네! 깃털이 엄청 화려한 새를 데리고 오셨어요!”

고양이와 쥐에 이어서 이번엔 새라니. 새는 진짜 아는 게 없는데?!

[걱정 마요! 새라면 자신 있어요! 화산에서도 전서구나 전서응을 다뤘다고요!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우리가 다 치료해줬으니까요!]

이번에는 홍령이 자신 있게 외쳤다.

“다른 아픈 동물이 온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가보마. 상태에 변화가 있으면 전갈을 보낼 테니, 약을 보낼 거라면 그 인편으로 보내주면 된단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백모.”

외백모는 주변의 동물을 키우는 부자들에게 입소문을 내주겠다며 약조하고 떠났다. 나는 곧바로 새 환자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열대조류는 날개 골절이었고, 새의 질병은 물론 해부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홍령이 간단한 수술과 처치를 함으로써 말끔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새의 보호자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 또한 외백모님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많이 알리겠다며 거듭 약속하고 떠났다. 그날만 그렇게 세 건의 동물 환자를 돌봤다.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무한은 넓었고, 아픈 동물을 치료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 * *

이름 없는 장원에 <태양의원―수의(獸醫) 무한 출장소>라는 임시 현판을 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예상보다 많은 환자들, 아픈 곳이 있는 동물들이 그 주인의 손에 이끌려 태양의원을 방문했다.

동물의 종류도 다양했고 아픈 곳도 천차만별이었다. 나와 의원들은 밤새 머리를 맞대가며 동물 환자들을 치료했다. 단순히 침과 뜸 등의 치료만 한 게 아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금 의원님.”

“수술 수고하셨어요!”

무한에서는 진료는 물론이고 수술도 당연히 예정에 없었다. 그러나 환자를 받다 보면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있기 마련. 동물 중에서도 그런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끼잉, 낑―

점혈을 풀자 정신을 차린 개가 앓는 소리를 냈다.

불독이나 퍼그처럼 얼굴에 주름이 많은 중형견으로, 전생에서는 샤페이라는 중국 전통개로 유명한 종이었는데, 눈꺼풀을 덮는 주름이 자꾸 눈을 찔러서 눈이 실명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안검하수와 비슷한 증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쌍꺼풀 수술을 시행했는데, 늘어진 눈꺼풀을 절제하고 단면을 끌어당겨 봉합하는 작업이었다.

수술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민감한 부위를 다루는 일이라 꽤 긴장했는데,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늘어진 눈꺼풀을 이렇게 수술하면 된다니.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

알잖아, 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게 아니라니까. 전생의 대통령 중 하나가 안검하수로 인해서 절제술을 받았던 적이 있어서 기억에 있었을 뿐이야.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지.

[당신의 그 자산이군요! 정말이지, 그동안 큰 덕을 봐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도움이 됐네요!]

확실히 이곳의 수의학 지식은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 터라, 내가 알고 있는 현대의 상식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평소 너튜브에서 귀여운 동물 채널들을 자주 봐왔던 것도 보탬이 됐고.

“혹시 금 의원님 되십니까?”

“예, 전데요.”

수술을 마치고 옷차림을 정돈하고 나왔더니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다소 빈한한 차림의 사내였다. 그는 내가 금태양인 것을 확인하자 안색이 밝아지더니 이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저희 막둥이를 살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금 의원님을 찾아다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 말 주인인가 봐요. 기억나요.]

말은 의외로 환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종이었다.

처음에는 부자들의 반려동물로 인기 있는 개나 고양이 등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여긴 상업의 도시 무한이니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운송수단으로 이용되는 소와 말이니 많이 올 만도 하지.

“금 의원님이 아니었으면, 저희 막둥이는 고기가 되었을 겁니다. 저희 같은 장돌뱅이들 사정엔 다리 다친 말을 데리고 다닐 여유 같은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금 의원님이 공짜로 치료를 해주셔서 저도 막둥이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무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동물이라지만, 역시 정이 든 아이를 고깃감으로 파는 건 마음이 아프겠죠. 정말 다행이에요. 처음에 당신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을 땐 당신이 미친 줄 알았는데 말이죠.]

으음, 이런 효과를 노리고 치료비를 공짜로 책정한 건 아니지만.

장원에 태양의원 분점의 현판을 걸기로 했을 때 치료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당연히 돈을 받았을 거다. 태양의원은 봉사단체가 아니라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업체니까.

지금까지 다른 출장소들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치료비를 받았다. 양양에서는 무당에서 뜯어낼 걸 염두에 두고 받지 않았지만, 그건 좀 예외적인 상황이었고.

내가 데리고 온 의원들도 공짜로 일하는 게 아니다.

무한에 이들을 데리고 온 것부터가 출장의 개념이었으니까. 무한의 약초 거래의 흐름을 알아보고, 무한의 의원 등에 부탁해 연수를 하는 등 업무의 연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제 낯선 동물을 돌보는 일까지 추가되었으니 그들에게 정당한 급여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수의학에 정통하다 자신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당신의 결정이 옳았어요.]

그래. 나와 홍령, 그리고 내가 데려온 의원들은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는 제법 정통했지만 그게 모든 동물에까지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처음 한두 번은 임기응변과 요령으로 대처했지만 본격적으로 환자를 받겠다 말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돈을 번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래서 태양의원―수의 무한 출장소는 모든 치료를 공짜로 제공하기로 했다. 공짜라서 신뢰를 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환자의 보호자들이 판단할 문제였으니까.

다행히 누님과 외백모가 퍼트린 입소문 덕분에 환자들이 이어졌고 성공사례들이 다시 입소문으로 재생산되면서 며칠 만에 환자가 끊임없이 올 정도가 되었지만…….

“……저, 이건 아주 약소합니다만.”

감사 인사를 다 했는데도 왜 머뭇거리면서 머물고 있나 했더니. 그가 내민 것은 작은 곡식자루였다.

“치료비는 받지 않지만 후원을 받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치료에 만족했을 때 원하는 만큼 내면 된다고……. 제 마음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나는 빙긋 웃으며 그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내민 곡식자루를 받아들었다. 어린아이의 무게만 한 자루에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마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희 태양의원의 치료에 만족하신 거 같아 다행입니다. 부디 막둥이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여정을 다니시길 바랍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다리가 다 나은 막둥이와 함께 떠났다.

그의 막둥이는 몸에 탄력이 있고 근육이 많아 짐마차를 끌기 좋은 녀석이었는데, 자신의 주인과 함께 태양의원을 떠나려다 문득 멈춰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눈을 맞추다 다시 고개를 돌려 당당하게 다각다각 걸어갔다.

[……막둥이가 고맙대요.]

응?

[몰라요. 갑자기 들렸어요. 느꼈다고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요새 그런 일이 종종 있었거든요. 동물들을 진찰하다 보면 가끔 그 애들이 내게 말을 거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흐음, 보통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괜찮냐고 걱정을 해야 할 거 같지만, 홍령은 귀신이다. 동물들은 순수한 영혼하고 친하다는 말도 있으니까 동물의 말이 좀 들릴 수도 있지.

[그 영혼이 그 영혼이 아니지 않아요?!]

좋은 게 좋은 거지(?). 만약 홍령이 동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 잘됐다. 아픈 곳이 어딘지 잘 알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래도 동물에 대한 수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최고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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