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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110화 (110/350)

110화

“내가 키우는 애인데 요새 영 기운이 없어서 말이다. 밥도 잘 안 먹으려 하고, 하루 종일 구석진 곳에서 잠만 자려고 해.”

“귀엽게 생긴 녀석인데…… 털이 좀 많이 빠졌네요. 피부도 붉고.”

생긴 건 생쥐보다는 햄스터에 가깝게 생겼는데. 여기도 이런 쥐를 햄스터라고 부르진 않을 거고, 뭐라고 불러야 하지?

종의 이름이야 어쨌든, 이번 환자는 고양이에 이어서 쥐였다.

“좀 자세히 봐야 할 거 같은데. 녀석, 긴장했네.”

쥐는 보석함 안에서 찍― 찍찍! 소리를 내며 숨을 곳도 없는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금동이 때문에 겁을 먹었나? 낯선 곳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금동아, 여기 있니? 금동아!”

“신생! 금동이 여기 있다! 와서 데려가렴!”

때마침 신생이 금동이를 찾으러 와서 금동이를 들려 보냈다. 근처에서 고양이 냄새가 안 나서인지, 금동이가 사라지고 반 각 정도 지나자 쥐는 아까처럼 비명에 가까운 찍, 찍찍― 소리를 내지 않고 몸을 세워 보석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좀 긴장이 풀렸나 보네요.]

핸들링이 되려나? 손을 조심스럽게 내밀자 쥐가 내 손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작고 따끈한 덩어리가 내 손에 한가득 찼다.

솔직히 진짜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아까 경계하는 것만 봐서는 물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았는데.]

“호오, 그 애는 내가 아니면 손에 올라오질 않는데. 신기하구나.”

“그런가요? 저는 이 녀석이 유달리 성격이 좋은가 싶었는데.”

“사실 다른 의원들에게도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해서 보여주었는데, 애기가 의원들의 손을 물고 난리여서 제대로 보여주질 못했단다. 그나마 살펴본 의원들도 쥐는 영 모르겠다고 하고…….”

다른 의원들이 진료를 거절했다고? 그건 좀 이상한데.

[쥐는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쥐는 외백모님의 쥐라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이들이 널리고 깔린 곳인데, 한 사람도 이 쥐를 치료해보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니.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한 것도 같고요?]

뭔가 이유가 있는 거 같긴 한데…….

일단 눈앞의 환자(患子)를 살펴보자.

“이 녀석,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성별은 암컷인 거 같은데.”

“나이라.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가 이 년 전이었단다.”

“이 년이라…….”

쥐는 내 손이 따뜻한지 힘없는 몸을 축 늘어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거칠거칠한 털을 살살 쓰다듬으며 녀석을 구석구석 살폈다.

금동이만 되어도 그럭저럭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크기가 조막만 한 쥐가 되니까 이것도 꽤 까다로운 일이었다.

“애가 작아서 잘 안 보여서, 가면을 잠깐 벗을게요.”

“그러려무나.”

외백모에게 허락을 구하고 가면을 벗었다. 내 얼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 크게 거부감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내 맨얼굴에 외백모가 표정을 살짝 일그러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릴 때 얼굴 그대로구나.”

“여러모로 제 몸에 대해 연구는 하고 있는데, 아직 얼굴은 이렇네요.”

“아니, 어릴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었단다.”

내가 이분 앞에 맨얼굴로 나섰을 때가 어렸을 때였나. 그때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일단 눈앞의 쥐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고 상태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다른 데도 그렇지만, 피부가 제일 문제 같아요.]

맞다. 털도 윤기가 없어 푸석푸석했고 배는 그 푸석푸석한 털도 없어서 분홍빛 피부가 드러났다. 피부는 거칠었고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보였다.

[이건 무슨 상처일까요?]

사람도 가려우면 자다가도 긁어서 피가 나곤 하잖아. 피부병이나 알레르기가 있을 때 그러지.

알레르기라…….

“밥은 뭐 먹이세요?”

“밥? 애가 견과류를 좋아해서 호두를 준단다. 고기도 잘 먹어서 양고기나 사슴고기 같은 걸 주곤 하지.”

[와아, 사치스럽네요. 호강하는 쥐였어요.]

외백모님의 쥐니까 그 정도 호강은 하겠지.

그렇긴 하지만, 좀 과한 거 같은데? 사람도 밥 대신 호두를 먹고 반찬으로 그렇게 기름진 고기만 먹으면 탈 날 걸.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일단 식사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요. 오늘 하루는 쌀이나 밀 같은 것만 줘보시겠어요?”

“흐음, 그런 걸? 잘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알았다.”

“그간 너무 기름진 걸 먹었으니 일단 기름진 걸 제외해본 다음, 그래도 상태가 호전이 안 되면 먹던 것 중 하나씩 빼서 어떤 게 염증을 일으키는지 보고요. 그래도 낫질 않으면 염증이 아니라 피부병인 걸 테니 바르는 약을 좀 만들어 드릴 거고요. 일단 오늘은 침을 좀 놓고, 간단하게 소독을 할게요.”

“그, 그래. 알았다. 꽤나 본격적이로구나.”

“사람 환자에게도 이렇게 하는걸요. 환자가 쥐라고 해서 의원이 할 일이 달라지진 않죠. 그리고…….”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뭔데요? 내가 못 본 걸 봤어요?]

뭘 봤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긴 한데. 이 쥐가 아픈 근본적인 이유를 알 거 같단 말이지.

“이 아이를 만난 지 이 년이 됐다고 하셨죠?”

“그래. 이 년이 조금 안 됐나 그럴게다.”

그건 외백모님이 찾아갔던 다른 의원들이 쥐는 잘 모른다며 거부한 이유와도 일치한다.

“제가 알기로, 쥐는 보통 수명이 이 년 정도예요.”

[……!]

“식사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나이를 먹어서 아픈 게 가장 클 거예요.”

이건 어떻게 설명해도 쉽지 않은 말이다. 자식처럼 아껴왔던 쥐가 죽을 때가 다 되었다니. 보통 충격이 아니겠지. 하지만 알고 있는데 숨길 수는 없잖아.

“아까부터 관찰해보니까 눈도 좀 흐린 거 같더라고요. 잘 안 보이는 걸 거예요. 냄새만으로 구분하는 거죠.”

나는 다시 가면을 썼다. 초 근접거리에서 뭔가를 집중해서 살폈더니 눈이 다 아팠다. 돋보기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랬구나.”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입을 연 외백모는 약간 슬퍼 보였다.

이 쥐가 수명이 다한 것을 아니까 다른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다. 자칫 치료라도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죽으면 금화상단의 후원은커녕 금가장의 인척에게 미움을 사 이 무한 바닥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환자의 보호자에게 명확한 끝을 알려줘야지. 그래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거니?”

“덜 힘들고 덜 아프게 도와줄 수는 있을 거예요. 수명이 정해져 있다고는 해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평균수명을 뛰어넘을 수도 있죠. 평균이 왜 평균이겠어요.”

[맞아요. 게다가 이 쥐, 사람으로 치면 노년인 건데 눈이랑 피부 상태만 빼면 제법 건강해 보이잖아요?]

“외백모께서 잘 먹이고 애정으로 키우셔서 보통의 쥐들보다는 건강할 거예요. 제가 좀 더 편안해지게 신경 써서 치료해볼게요.”

나는 신생을 불러 왕진가방을 부탁했다. 그 안에서 가장 세밀한 침을 꺼낸 후, 다시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쥐를 손에 들고 꼼꼼히 들여다보며 촘촘한 간격으로 침을 놓았다.

“이거보다 더 세밀한 침이 있으면 좋을 텐데. 상태 따라 혈 자리 따라 쓰는 침이 다 다르거든요. 지금 가진 것 중에선 이게 제일 가늘긴 한데, 이 애한테는 큰 침이거든요. 이거보다 더 가늘게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있으려나…….”

“흐응, 더 가는 침이 있으면 좋은 치료를 할 수 있고?”

“더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겠죠. 외백모께서도 아시잖아요, 보석을 세공할 때도 보석마다, 세공 방법마다 다 다른 도구를 쓴다는 걸요.”

아까까지는 침울해 보이던 노부인의 표정이 변했다. 약간 장난기가 도는 걸 보니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알겠다. 이 아이의 치료비로 쓸 만 한 장인을 연결해달라는 게로구나.”

“치료비라뇨. 외백모님께 제가 어찌 그런 걸 받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빙긋 웃었다. 한 번에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건 참 편하고 기분 좋은 일이라니까.

“머리카락보다 가는 침을 만드는 일이라면 확실히 우리와 거래하는 장인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구나. 아까 상태를 살피고 침을 놓는 걸 보니, 확대경 같은 것도 있으면 좋을 거 같고. 마침 우리 금화상단이 질 좋은 수정을 취급하지.”

“그리고 금화상단의 최상급 장신구는 전부 금왕공방을 통해 제작되고요.”

“아직도 간양이랑 그리 사이가 나쁘더냐?”

나는 그냥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첫째 형님 금건양도 나를 싫어하지만, 우리 집안의 일곱째, 금간양이 나를 싫어하는 건 조금 다르다. 셋째 형 금감양과 다섯째 누나 금진양 둘 다 나를 좋아하지만 둘이 나를 아끼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래. 내 부탁이면 간양이가 네 말이라도 한 번은 들어주겠지. 자리를 마련해주마.”

“감사합니다.”

“아니다. 이 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 쉽지 않은 말이었을 텐데 내게 얘기해줘서 고맙구나.”

“뭘요, 아니에요.”

“아니, 정말 고맙다.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겠어.”

내 손을 잡아오며 말씀하시는 탓에 나는 더 이상 겸손을 떨 수가 없었다. 그저 외백모의 손에 침을 맞고 조금 활력이 돌기 시작하는 쥐를 조심스럽게 옮겨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람의 수명도 아니고 그저 동물, 그중에서도 하찮디하찮은 쥐일 뿐이니까요. 당신처럼 상대의 가족이라고 여겨주기는 힘들죠.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이에요.]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그걸 외백모께 알려드린다고 해서 잃을 게 없잖아. 다른 의원들은 무한에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에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친인척간이라는 방패막이도 있고 말이지. 그래서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었던 거뿐이야.

[……잠깐만, 당신이 이렇게 말이 길 때는 민망해서 그러는 건데. 설마 당신, 그게 외백모께 오히려 좋은 쪽으로 먹힐 거라고 계산하고 얘기한 거예요?]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금화상단이 다루는 보석과 귀금속은 그 자체로 공방의 재료이자 제작도구의 재료가 되기도 하니까, 외백모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금왕공방과 금간양이 아니라 다른 장인이라도 연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

무한에 와서 목표한 일 중 제대로 진척이 있는 일이 없었잖아. 당당 녀석한테 약속한 것도 있고. 먼 길을 왔는데 하나는 제대로 손에 넣어가야 하지 않겠어?

[어휴, 그런 정도의 일은 계산했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게다가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행했든, 당신 외백모는 당신의 결정에 고마워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됐고, 당신은 자신을 꽤나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요. 내가 봤을 땐 전혀 아니에요. 그냥 자기 좀 챙기고, 마음이 내키면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대체로 선하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해도 결과는 선한 행동이잖아요. 그러면 됐지 뭘 고민해요?]

나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나는 전생의 죄가 있는걸.

그 말만큼은 홍령에게도 끝내 하지 못할 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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