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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98화 (98/350)

98화

“스승님, 저긴가 봐요! 장원이요!”

[신생의 술버릇도 정말 의외였죠.]

그렇다. 그 망할 금감양은 이 어린 꼬맹이에게까지 술을 퍼 먹였다.

거기에 왜 저가 끝내주게 말아낸 술을 한 입도 안 대냐고 내 앞에서 징징댄 당당 녀석의 어시스트가 있었지.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라고! 귀가 터져라 얘기했지만 당당이 누군가, 사천당가 직계고 뭐고. 포 떼고 차 떼고 해도 당당이 아닌가?

녀석이 하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내가 곤란해 하는 걸 두고 보지 못한 신생이 저가 마시겠다며 흑기사를 자처했고…….

[퍼억, 퍽, 퍽! 살집 있는 곳마다 고루고루 때려주는 찰진 소리. 아직도 생각나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폭탄주를 원 샷 한 신생은 딸꾹질을 좀 해대더니 이내 어디서 웬 기다란 나뭇가지를 구해다가 취해서 난봉꾼이 된 이들의 배와 허벅지 등을 후려까기 시작했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아, 아차! 잘못 셌다, 죄송해요 사부님! 다시 하나, 둘! 셋!’

무한 시내를 보면서 번화한 거리에 눈을 반짝이는 이 어린애가 말이지.

뭐 따지자면 폭탄주를 말아서 끈질기게 나한테 권한 당당이 잘못한 거지만,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금감양이 있었다.

그나마 당당이 만 폭탄주는 도수가 세서 그 금감양마저 침몰시켰고, 신생의 대가리 까기는 사람들을 한 방에 기절시켜서 그 어수선한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 일조했으니…….

“도착했습니다, 도련님. 여기가 장주께서 마련하신 장원입니다.”

그 장원에는 이름이 없었다. 현판을 아직 붙이지 않은 건지 일부러 붙이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부터 왠지 깔끔한 느낌이 드는 장원이었다.

“짐은 저희 사람들이 안으로 옮길 테니 들어가서 먼저 둘러보시지요.”

문을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반색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도 그들을 알아보았다. 금가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특히 내 신변을 돌보던 이들 중 나와 성격이 잘 맞거나 내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이들이었다.

“손가락에 딴 자국이 없네. 요새는 소화가 잘 되나 봐?”

“……도련님! 소인을 기억해주셨군요!”

“물론이지. 나한테 큰 도움을 줬는데 챙겨주지도 못하고 떠나서 얼마나 마음 쓰였는데.”

내가 인사를 건넨 이는 금가장에 있을 때 내가 처음으로 치료를 한 하인이었다. 첫 환자라고 봐도 되겠지. 큰 형님이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이건 아닌 거 같다며 내게 몰래 찾아와 의서와 침구 등을 챙겨주고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사실도 전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큰 어르신께 그 일을 들켜 쫓겨났습니다만, 다행히 장주께서 저를 챙겨주시고 이곳에 자리를 봐주셨습니다. 언젠가 도련님이 오실 테니 잘 돌보라 하셨지요.”

다행이다.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누님이 챙겨줬구나.

나는 가볍게 그의 안부를 더 물어보았고 이내 그가 장원을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작은 연못과 정자가 있는 아담한 정원이며 우리 일행이 묵고도 방이 남을 정도로 큰 건물들, 가벼이 산책할 수 있게 장원 옆에 조성된 고요한 대나무 숲까지.

“연무장은 없지만 여기서 수련을 하면 되겠군.”

창천은 그 대숲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원래 무공 수련은 대나무 숲에서 하는 게 제격이지.

“저기, 스승님! 혹시 나갔다 와도 돼요?”

“구경! 구경!”

그러나 창천 외 대부분의 일행은 작고 소담한 장원보다 무한이라는 대도시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모양이었다.

신생과 당당 외에 나를 따라온 의원들도 작은 아이들의 뒤에서 기웃거리며 내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와. 다들 다녀오세요. 무한은 넓으니까 길 잃지 않게 조심하시고.”

“도련님도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길을 잃으신다면 아무 가게나 가서 금왕전장의 장원에 머무는데 길을 잃었다고 하시면 다 길을 찾아줄 겁니다.”

맞다, 그랬지.

여긴 무한이고, 금가장의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곳이니까. 금가장이 직접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도 금가장과 어떤 관계로든 맺어져 있는바, 이곳에서 내 사람이 길을 잃을 염려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돌아온 실감이 나네.”

“아무렴요. 곧 더 실감이 나실걸요. 장주께서 오신다고 했으니까요.”

“누님이, 벌써?”

“도련님이 성문에 도착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기별이 왔습니다. 중요한 회의 중이라 바로 마중을 나가지 못하시는 대신 회의가 끝나고 바로 이곳으로 오시겠다고요.”

“성격도 급해라.”

창천은 대숲에 수련을 하러, 다른 사람들은 무한 시내를 구경하러, 그리고 나는 내 방에서 잠시 휴식했다가 회의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누님을 맞이했다.

“태양아! 잘 지냈니? 어머, 세상에! 애가 피부에 혈색이 도는 거 봐! 건강해졌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누님도 잘 지냈어요?”

[어휴, 아까는 누가 성격이 급하네 어쩌네 하더니. 당신도 기분은 좋은가 봐요?]

당연하지. 나를 가장 사랑하는 형제를 만나는데 기분이 나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사업적인 면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내게 담보조차 받지 않고 돈을 내어준 사람이다.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사람의 은혜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법.

돈이나 재물로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태양의원이 그나마 규모라는 걸 갖추게 되었다고 해도 금왕전장이 벌어들이는 이문에는 발가락도 걸칠 수 없으니 반갑게 맞기라도 하는 거지. 웃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좋을 땐 좋다고 하라니까요. 은근 이상한 데서 솔직하질 못해.]

홍령이 뭐라고 핀잔을 줬지만 나는 모른 척 누님과 해후를 마쳤다.

“그래,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금동아, 너도 들어가자꾸나.”

그 말에 누님의 앞섶이 뭔가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주먹만 한 머리에 표범 같은 무늬를 가진 그것이 입을 쩍 벌리고는 나를 향해 울었다.

야옹―

“고양이? 누님, 고양이를 키워요?”

“어머, 싫어하니?”

“아뇨. 그건 아닌데, 의외여서?”

“네가 떠나고 나니 쓸쓸해서 말이야.”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다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금동이는 실내에 들어오자 폴짝 밖으로 뛰어나와 방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낯선 사람이 있는데도 개의치 않는 것이, 보통 고양이는 겁이 많은데 얘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누구한테 선물 받기라도 하셨어요?”

“선물은. 나는 그런 살아 있는 거 선물로 주고받는 거 안 좋아해.”

“그럼요?”

선물로 주고받는 것도 싫어하는데 설마 돈을 주고 샀을 리는 없을 거고. 갑자기 고양이가 땅에서 솟았나? 아니면 간택?

고양이가 주인을 고르고(?) 자길 데려갈 때까지 무릎에서 내려가지 않거나 집까지 졸졸 쫓아오는 것을 전생에서 냥간택이라 불렀는데, 천운이 따라야 한다는 그 일이 누님에게 벌어진 건가?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저기 사천 너머 남만 야수궁에서 왔다는 장돌뱅이가 이 어린 것을 돈을 받고 팔고 있었단다. 황실에도 없는 귀한 종이라며 금 열 냥은 받아야 한다고 어찌나 나를 꼬드기던지. 근데 저 작은 게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보니, 타지에서 홀로 고생하는 네가 떠오르지 뭐니.”

냥간택까진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나름 묘연이라 할 수 있겠지.

수많은 반려동물 중에서도 고양이는 유독 인연이 닿아야 키운다며 묘연이라는 말을 쓰더라고. 개는 그렇게 많이들 키워도 견연이라는 말은 안 쓰던데.

“그러면 데려와야죠. 금 열 냥을 다 주셨어요?”

“내가 그걸 왜 주니? 곧바로 무한성주에게 기별을 보내서 허가되지 않은 동물을 반입한 자가 있다고 했지. 검문소장이 버선발로 뛰어오더구나.”

“……그 장돌뱅이는요?”

“몰래 남만의 동물을 들였다 해서 치도곤을 당하곤 옥에 갇혔단다. 벌금도 두둑이 냈지. 몰래 들여온 것이 금동이뿐이 아니었거든. 뱀이나 벌레 같은 것도 있었는데, 일전에 그렇게 들여온 서역의 새가 무한 전체에 전염병을 옮긴 일이 있어서 그쪽으로는 아주 엄해.”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얘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보통 그렇게 위험하면 처분을 할 텐데.]

으음,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 첫째, 누님이 금동이가 안쓰러워서 무한성주에게 돈을 주고 빼냈다. 둘째, 무한성주가 죽이기엔 몸값이 비싸고 귀엽기도 하니까 누님에게 선물했다.

“무한성주에게 협박을 한 건 아니라고만 말해두마. 다른 것들도 적당히 주인을 찾아주거나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라 했지.”

누님은 금동이가 안됐다는 듯 살살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금동이가 골골 소리를 냈는데,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찼다.

“내가 쓰다듬어 주면 이런 소리를 낸단다. 혹시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야.”

“걱정 마세요. 기분이 좋아서 저러는 걸걸요.”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금동이는 누님의 손길을 한창 즐기다가 그 손길을 쓰윽 빠져나오더니, 이번에는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 쪽으로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뺨을 비비기도 하고, 내 팔을 잡아보려는 듯 앞발을 공중에 휘적거리기도―

[히이익! 저리가, 저리갓!]

응?

홍령, 고양이 싫어해?

[싫은, 게 아니라! 얘가 날! 놔, 이거 놧!]

음, 고양이는 영물이라 귀신을 본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금동이가 너를 참 잘 따르는구나.”

[히익! 얘, 얘 좀 저리 치워줘요!]

조막만 한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 있는 귀신을 잡으려고 내 다리를 기어 올라오다 못해 내 등을 등반하고 있었다.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는 기세에 누님은 금동이가 나를 좋아한다며 화색을 띠고 있고.

거참,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다 있군.

에치―!

그때 내 머리를 기어 올라가려던 금동이가 재채기 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고양이니까 착지 정도야 절로 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내 머리에서 뭐가 떨어지니까 손을 뻗었다. 말캉한, 따끈따끈 어묵국물봉지 같은 어린 고양이가 한 손에 잡혔다.

[그래요! 당신이 그렇게 붙잡고 있어요! 난 멀리 떨어져 있을게요!]

“안고 있어도 가만히 있네. 내가 안으면 갑갑하다는 듯이 빠져나가는데. 나는 고양이라는 게 그렇게 액체 같다는 걸 처음 알았지 뭐니. 방에 가만히 있어라 넣어놔도 조금만 틈이 있으면 나온단다. 게다가 문도 열 줄 안다니까?”

으음, 동생 팔불출에 이어서 고양이 팔불출이 된 누님이랑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귀신이라.

에치―!

근데 얜 왜 자꾸 재채기를 하지?

“원래 이렇게 재채기를 했어요? 콧물도 좀 있는 거 같은데.”

분홍색의 코를 쓱 쓸어보자 약간 점성이 있는 투명한 액체가 묻어나왔다.

감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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