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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96화 (96/350)

96화

“아오, 내 손만 아프지. 안 그래도 어깨 아파 죽겠는데.”

“나도 맞으면 아프단다, 동생아? 그리고 네 손 꽤 매워졌어.”

“시끄러. 비누값 전부 정가 받을 거야.”

“아니, 야. 그러지 말고. 벌써 어디에 보낼지 다 계산해놨는데!”

[그거 비누값 제값 준다고 얼마나 된다고요. 돈도 많을 인간이 엄살은.]

내 말이 그 말이다. 뭐, 계약서에 이미 도장 다 찍었는데 진짜로 계약을 어기고 제값을 더 받으려는 건 아니고. 홍령의 말마따나 그거 얼마나 된다고. 물론 한두 푼은 아니긴 하지만…….

“너 무한에 오면 내가 무공비급 하나 줄 테니까, 그만 화 풀어라. 응?”

“무공비급?”

“너 아까 가시추 메다꽂는 걸 보니까 생각 난 게 하나 있어서. 너한테 잘 맞을 거 같은 비급이 하나 있다. 유래는 불명인데 제법 괜찮은 무공이거든. 적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절대고수가 남긴 건 분명해.”

이건 좀 솔깃한데?

원래 표국 일을 하다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비급이나 보물 따위를 대금 대신 떠맡는 일이 허다하다.

무공에 재능이 있는 인간이다 보니 그런 비급에도 흥미가 많아서 진위 여부를 크게 따지지 않고 받아들인 탓에 금왕표국의 국주 전용 서재에는 귀한 무공비급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내게 와서 자랑을 늘어놓은 적도 있고 말이지.

물론 책을 탐독하는 건 이 인간 성향에 맞지 않는 일이라, 척 보고 제 입맛에 맞는 건만 골라 익히고 나머지는 그냥 처박아 둔다고 했지만.

“고작 하나?”

“네게 맞는 거라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상관없다. 내가 주려던 건 단도술인데, 절화팔단도(折花八短刀)라고 체술과 단도가 결합된―”

[절화팔단도! 그거예요!]

……화산의 무공이야?

[그래요! 내가 가르친 그거! 전부 기억이 나는 게 아니라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답답했는데, 맞아요. 이름이 그거였어요!]

하긴, 화산이 망했다고 했지. 그러면 실전된 비급이 금왕표국의 서재에 쌓여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군.

“좋아. 무한에 가면 들를게.”

“화난 건 푸는 거다?”

“솔직히 짜증은 나는데, 더 뭐라고 하진 않을게. 하지만 스스로 조절이 불가능하다면 술 마시고 비무 하는 건 적당히 해. 그러다 대표두들 팔다리가 아니라 목숨이 상한다고.”

“쩝, 주의하마.”

표국 내에서도 항의가 없진 않았는지 금감양은 바로 납득했다.

자, 두 고삐 풀린 망아지에게 주의도 줬으니 이제 다른 걸 좀 보자.

나는 내가 바닥에 메다꽂은 가시추에서 태양보도를 쑥 뽑아냈다. 가시추가 처박힌 바닥은 돌바닥이 푹 패여 있었고 추는 그 바닥에 반 정도 파묻힌 상태였다. 내가 처박은 힘도 힘이지만 추의 무게 자체가 무거워서 그런 거기도 했다.

“이거 공방 물건 아니지?”

“어, 눈치챘냐?”

“창천의 검이라면 내공이 실리지 않은 이 철퇴를 잘라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만큼 쑤셔박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태양보도라고 해도 그건 무리지.”

“하하핫! 상계와 무공만 늘은 줄 알았는데 눈치도 늘고. 아무리 봐도 이거 내 동생 아냐. 야, 가면 좀 벗어봐라.”

“아 됐고, 그래서 공방 거야, 아냐?”

“공방 거는 맞는데 일곱째 작품은 아니다. 내 철퇴는 너무 오래 써서 수리 맡겼고, 그동안 임시로 쓸 걸 받았지. 그래도 절대 후달리는 물건은 아닌데 그걸 잘라내더라고. 껄껄.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동이만 마시는 건데.”

“애초에 술 마시고 비무하는 걸 작작 하라니까?”

우리의 대화에 잠깐 뒤로 물러나 있던 창천이 발끈하며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다시 검을 뽑아 가시추를 쑥 찔러보고는 입을 댓 발 삐죽댔다.

“납득할 수 없는 승부다. 술 없이, 제대로 된 무기로 다시 겨뤄야 한다.”

“하, 이거 건방진 애새끼네. 호북 예선쯤 이겼다고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 같냐? 나랑 제대로 붙고 싶으면 그 싸구려 검이나 바꾸든가. 본선쯤 나가려면 그거 갖곤 무리일걸? 이 동네에서 쓸 만한 걸 맞추기는 어려울 거고. 야, 태양아. 네가 하나 맞춰주지 그러냐?”

“내가 뭐 하러? 저 녀석 뭐가 이쁘다고.”

“그래도 네 의원 간판 아니냐. 공방 가서 일곱째한테 적당한 거 하나 달라 그래. 금왕공방 물건 정도면 어디 가서 빠지진 않잖냐.”

빠지지 않을 정도가 아니잖아, 그건.

금왕공방.

아버지 금왕이 중원 전역의 탁월한 장인들을 끌어 모아 만든 중원 제일의 장인집단.

그 어떤 물건이든 중원에서 제일가는 물건을 얻으려면 황실의 공방 아니면 금왕공방뿐이라는 말이 있다. 황실 공방의 물건은 일반인이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사실상 중원 제일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쑤시개 같은 하찮은 것에서 노리개와 장신구, 검과 대포 같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물건이 없고 다룰 수 없는 물건이 없다는 신비로운 곳.

내 바로 손 윗 형제이자 금가장의 일곱째 금간양이 이끄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전에 말했던, 흥미로운 도구에 도전해볼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게 그 사람이에요?]

응. 별로 사이가 안 좋긴 한데……

나를 보는 창천의 눈에서 이글이글 불똥이 튀었다. 그런 곳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말해주지 않고 무엇했냐는 눈빛. 아니, 아직은 네가 좀 굽혀야 하는 상황 아냐?!

“애 잡아먹겠네, 킬킬. 너 아주 영락없이 무한에 와야겠다?”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다니까.”

창천의 검이 아니더라도 가서 볼 일이 많았다. 일전에 당당에게 얘기했던 왼손잡이 전용 검과 도구도 맞춰야 하고.

그건 금왕공방 정도는 되어야 당가 직계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난 그럼 이만 가보마. 온 김에 이 동네 지점 한번 쭉 둘러보고 거래처랑 인사하고 돌아가면 한 달은 되겠군. 너도 그때 즈음엔 올 거지? 무한에 있는 녀석들한테 미리 연락해두마.”

“좋아. 무한에서 보자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을 떠나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흘렀다. 도망치듯 떠나 온 집. 이번에는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가요, 가보자고요!]

그래, 가자.

무한으로.

* * *

무한.

이곳은 호북의 중심을 넘어서 장강 이북의 중심이요, 사실상 중원을 반으로 갈라 북쪽에서는 거의 수도나 다름없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모든 화제의 중심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금왕의 사후 벌어진 금가장의 분화와 형제들 간의 작은 알력다툼, 그리고 그 사이에 무수한 풍문을 남기고 사라진 금가장의 막내에 대한 소문은 철 지난 안줏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혔다는 뜻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셀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이곳. 지금 그 무한성의 성문 앞에서 한 행렬이 검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똑같이 검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며 성문 앞을 서성이는 자들, 그리고 일상의 한 축에 성문 앞을 지나가는 일과가 있던 사람들 모두 그 일행을 보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람? 참으로 기이하구만.”

“금왕표국의 표사들이 함께하고 있는데? 포쾌들도 같이 있군. 중요한 범죄자를 호송하기라도 하는 모양이지?”

“수상한 가면을 쓴 자들인 걸 보니 무슨 사교도라도 되는 모양이야. 쯧쯧, 세상이 어찌 되려고.”

헌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사교도로 보이는 이상한 가면을 쓴 자들은 딱히 포승줄에 묶여 호송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제법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있었고 그들 중 가장 고급스러운 가면을 쓴 자는 제법 실력 있어 보이는 무인들과 같은 마차를 타고 금왕표국의 표두와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수레를 확인해야 할 거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요? 굳이?”

“성내에 이만한 수량이 들어오는데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았다가 큰일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금왕표국의 이름과 도련님 이름을 대보았는데도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요. 가짜가 시중에 돌아다니면 큰일이 날 테니. 알았다고 해요.”

가면을 쓴 귀인이 승낙하자 금왕표국의 표두가 다시 검문소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란 말인가? 성에 출입하고자 하는 이의 행렬이 이처럼 늘어섰는데 검사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테니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는 건 무엇인가? 금왕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저 가면 도련님의 이름은 대체?

세인들의 관심이 행렬 후미에 선 두 대의 수레로 향했다.

“잠깐만, 저 가면 어딘가 낯이 익지 않나? 금가장 근처에서 몇 번 본 것도 같은데?”

“허어? 생각해보니 그렇군. 금가장 막내의 가면이 저랬는데, 설마?”

“그런데 왜 그 가면이 여럿이지? 막내가 여덟 쌍둥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무한 토박이들 몇몇이 가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이상한 추측(?)을 하는 동안 어디선가 사람이 와 검문소장과 인사를 하고 수레로 향했다. 표사들이 수레의 덮개를 열고 그 안에 있는 상자를 연 순간.

눈 밝은 몇몇이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그, 금!”

“뭐가? 진짜 금가장 막낸가?”

“아니, 저기 말일세! 금이야!”

상자 안에서는 누런 금괴가 햇볕을 받아 그 천연의 빛을 찬연하게 흘렸다.

금과 은, 보석이라 불리는 빛나는 광물질들은 사람을 홀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

새어나오는 금괴의 빛깔을 본 이들은 말문을 잊었고 금의 진위 여부를 가리러 온 사람은 서둘러 금을 확인하고 뚜껑을 덮었다.

몇몇 이들은 아쉬움에 한숨을 토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다른 것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저 수레에 실린 게 전부?”

“설마 둘 다겠나. 하나만이겠지.”

“사람들 상상력 한 번 풍부하구만. 방금 전 그 궤짝에 들은 게 다일걸세. 저것도 어마어마한 양이 아닌가. 한 집안이 팔자를 펼 돈이구만…….”

“상상력이 아니라, 금가장이잖나! 금왕표국이고! 오죽하면 줄을 세워놓고 여기서 금을 검문하겠어? 저만한 양이 시중에 흘러들어 갔는데 가짜면 큰일이 나니까 저러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쪽이 진실이든 흥미를 돋우는 얘기임은 틀림없었다. 금을 실은 수레와 마차가 통과하고 이를 구경하던 이들도 문을 통과했다.

수상한 가면을 쓴 이들과 금이 가득 실린 수레에 대한 소문이 무한 성내에 퍼지기까지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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