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94화 (94/350)

94화

[나름 구경거리라 그거 보러 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래. 녀석이 화산지회 호북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후, 그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서 태양의원을 찾는 무인들이 늘었다.

듣자하니 상대를 이기면 굳이 예선을 거칠 것 없이 본선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다나? 무슨 말도 안 되는 규칙인가 싶지만,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그게 또 통용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비무가 제법 볼거리가 되는지라 이 일대에서 창천의 비무를 견식 하러 오는 구경꾼도 꽤 됐다. 겸사겸사 의원에서 진료도 받고 말이지.

그뿐인가? 창천은 지금까지 덤빈 도전자들에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패배하면 화산지회 예선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이 뭐가 되겠냐만은, 아무튼 패배하지 않았을뿐더러 도전자가 존재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상대들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었다.

……의원이 필요할 정도로 곤죽을 내놨단 말이지.

태양의원의 연무장에서 벌어진 비무다.

그 패자들, 아니 그 환자들이 어딜 가겠는가?

지금까지 창천이 팔을 부러트리고 다리를 부러트리고 아구창을 날린 그 환자들은 전부 이곳에서 상당한 액수의 치료비를 내고 나갔거나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녀석이 아주 밥만 축내는 식충이는 아닌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충이가 아닌 방향이 너무 이상하긴 하지만!

“옆의 그자는 뭐지. 또 도전자인가?”

“아니, 창천. 이 사람은―”

“도전자? 하! 야, 가만 있어 봐라.”

이 인간은 또 뭐에 꽂혀서 이래? 누가 봐도 도전자로는 보이지 않는 외양과 위압감을 가진 금감양을 보고 도전자로 오해한 창천 녀석도 그렇지만, 그 말에 뭔가 불이 붙은 이 인간도 이상해.

“오랜만에 도전자 소리를 다 듣는구만. 기분 끝내주는데? 야! 가서 그거 좀 가져와라!”

“네, 넵!”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표사들이 화들짝 놀라선 어디론가 향했다.

[뭘 가져오라는 거예요?]

무기일걸. 비무를 하려면 무기가 필요하잖아.

[도(刀)를 패용하고 있잖아요. 저게 주 무기가 아니에요?]

아니, 금감양의 독문무기는 사람 머리만 한 가시 추(錘)가 달린 철퇴다.

평상시에 패용하고 다니기에는 검과 같은 무기에 비해 분위기도 험악하고, 문자 그대로 실전병기인 탓에 금감양도 표행을 다닐 때 외에는 직접 들고 다니는 경우가 없다.

허리춤에 찬 도는 그냥 장식이고. 뭐 비상시에는 뽑아서 쓴다고는 했는데……

“……언제 봐도 진짜 무식한 무기야.”

[진짜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들긴 하네요. 저런 걸 쓰는 사람이 다 있네.]

그치? 취향 한번 독특해.

[철퇴 자체를 무기로 쓰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지만요. 표국의 국주니까, 주로 상대하는 자들이 수적이나 산적, 비적이겠죠? 그런 이들과 난전을 벌인다면 효과적인 무기죠. 검이나 도로 시신을 깔끔하게 남겨줄 필요도 없고요. 내가 말한 건 저 거대한 추 부분이에요.]

내 머리통만 한 추에는 삐죽삐죽 가시가 달려 있다. 저게 전부 쇳덩이니까 무게가 어린애 하나만큼 되겠지. 표사들 몇 명이서 철퇴를 보관한 상자를 낑낑대며 나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렇게 무거우면 휘두르는 것조차 힘들 텐데. 어지간히 괴력의 소유자인가 보죠?]

타고나길 장사라는 말은 들었지.

보다시피 뼈도 강골이고 저런 기괴한 무기를 자유롭게 휘두르면서 금가장의 많은 사업체 중 가장 무공이 중요한 사업체의 국주 자리에 오른 몸이다.

타고난 무골이다.

[당신 형제 중에 제일 무재가 뛰어난 건 둘째 형님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소림의 기재에 별호가 무승이라면서요.]

둘째 형님도 나이가 있는데 기재라고 하기엔 좀. 내가 어릴 때 기재 소리를 들었으니 지금은 소림의 중진 정도 되겠지.

무공에 대한 재능에 대해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아버지와 은 파파가 둘째 형님과 셋째 형, 금감양의 재능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은 있다.

무골과 무재는 다르다라고 했던가.

[아항,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네요.]

뭔데, 나도 좀 이해되게 설명해달라고. 왜 무림인들은 항상 자기들만 이해하고 말아버리는 건데?

[무골은 몸이 타고나길 무술을 익히기에 적합하다는 거예요. 남들이 어려워하는 동작을 아무렇지 않게 빠르게 체득해버리죠. 초반에 빠른 성취를 보이는 타입이죠. 그러다가 중간에 성취가 멈추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무재가 부족하다는 거?

[보통 무골은 무재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요, 단순히 몸으로 아는 게 아니라 몸과 머리가 무공을 이해하고 풀어낼 아는 걸 무재를 갖고 있다고 하죠. 두 가지가 갖춰질 경우 무공은 단순한 기술인 무술에서 무예로, 더 나아가 무도(武道)의 경지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하고요.]

음,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대충 장인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는 건가?

[검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을 검이 따라온다. 화산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는데, 으음, 당신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끄응.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어차피 나랑 관계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금감양은 무재보다는 무골이라는 뜻이지.

그러면 창천은 어느 쪽이지?

“저건 뭐야? 설마 술인가?”

“한 동이도 아냐, 세 동이나 되는군!”

어느새 구경꾼이 몰려들었는지 주변이 웅성거렸다. 무슨 소란인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니 표사들이 뭔가를 또 나르고 있었다.

[철퇴가 다가 아니었어요? 웬 술? 당신 형의 특기가 취권, 아니 취퇴예요?]

“……저런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저걸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곽 표두도 머쓱하게 웃었다. 다른 표사와 쟁자수들도 그랬다. 영문을 모르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구경꾼들과 귀신 하나, 그리고 금감양을 상대하기 위해 연무장 위에 올라가 기세를 다듬고 있는 창천뿐이었다.

“두 개는 마셔야겠지?”

금감양이 술동이의 마개를 뜯어 동이 째 들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독한 술 냄새가 주변을 메웠다.

[있잖아요, 설마요, 내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잠깐 생각을 해봤는데요. 설마, 창천하고 급을 맞춰주려고 저러는 거예요?]

정답이다.

금감양이 표사들과 정기 대련을 할 때, 금왕표국의 대연무장에서는 술 냄새가 담장을 넘는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얘기라나.

금감양의 독문무기는 저 무식할 정도로 무겁고 큰 철퇴다.

검이나 도에 비해서 봐주면서 싸우는 게 쉽지 않은 무기니 아예 술을 퍼먹어서 자체 핸디캡을 준단다. 정말이지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동시에 금감양과 잘 어울리는 방법이었다.

[창천이 알면 자존심 좀 상하겠는데요.]

눈치챈 거 같은데?

연무장 위의 창천은 있는 대로 오만상을 찌푸린 상태였다.

도전자가 연무장에 올라올 생각은 안 하고 술을 두 동이나 원샷하고 있는데, 솔직히 모르는 게 이상하잖아?

아까야 그냥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귄가 했겠지만, 창천도 익숙한 금왕표국의 표사들이 절절매면서 금감양의 말을 듣는 걸 보고 그 신분도 짐작했을 거고.

“꺼억, 술맛 좋구만. 좋아, 올라가 볼까?”

얼굴이 벌겋게 된, 제대로 술기운이 오른 금감양이 철퇴를 어깨에 짊어지고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창천은 기분 나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금감양의 기행이 주변에 몰려든 구경꾼들에게는 꽤 신이 나는 일이었는지,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환호하며 비무의 시작을 기다렸다.

“두 분, 준비되셨습니까?”

언제 소문을 듣고 뛰어왔는지 객잔 주인이 자연스럽게 심판의 자리에 섰다.

장 의원과 내가 대결을 할 때도 심판을 서더니, 아예 창천이 도전자를 맞을 때면 누구보다 빨리 뛰어와 심판 자리를 차지했다. 하오문에서 괜찮은 경신법이라도 배운 모양이지.

“준비됐다!”

“음.”

객잔주인이 징을 쨍! 소리 나게 때리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좀 기대되긴 하네요. 당신도 그렇죠?]

아무래도 그렇지.

양양에서 창천 녀석이 얻은 깨달음. 그리고 방통의원에서 내가 가져온, 창천 녀석의 상태 변화에 대한 기록.

이 두 가지를 더해 우리는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냈으니까.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웬일로 창천이었다. 십 수, 아니 십 보의 청면검이라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 녀석은 처음부터 거침없이 금감양의 권역에 발을 딛더니 무시무시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범인보다 발달한 나의 시력으로도 따라가기 힘든 검이 몇 번 있었고, 금감양은 그 막힘없는 공세에 휘말리는 것처럼 보였다.

살짝이지만 피가 튀었고, 옷깃이 잘려나가 허공에 나풀거렸다.

[당신 형, 정말 장난 아니네요. 창천의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게 하나도 없어요.]

은 파파는 금감양이 무골일 뿐 무재가 없다고 폄하했지만, 그건 둘째 형님이 비교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동반할 필요가 없는 육체적 재능이란 얼마나 압도적인가?

“……괴물이군.”

창천 녀석이 조용히 뇌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창천 또한 제대로 검을 펼쳐 보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창천이 화산지회 예선에서 얻은 깨달음은, 무당이 토(土)의 기운을 축적하는 내가기공과 그에 맞는 검을 가르친 것 같다는 거였죠. 남궁세가의 혈족병은 토 기운이 극도로 부족해서 생기는 거라는 우리의 분석과도 일치했고요.]

창천이 지학의 나이에 이르기 전까지, 무당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창천은 그 나이 또래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 결과 창천룡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별호가 짧을수록 그 실력을 증명한다는 무림의 통념을 생각했을 때, 그 당시 창천은 그야말로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기재였을 것이다.

그랬던 창천이 주화입마에 빠졌다.

온몸의 기혈이 역류해 폐인이 되기 일보직전이 되었고 무당은 자신들의 실패한 실험을 폐기하기 위해 태청장원을 몰살시켰다.

주화입마에 빠졌던 어린 창천은 몸을 숨겨 암부들의 손에서 목숨을 건졌고, 주화입마에서도 빠져나왔다. 전과 같은 실력을 유지하진 못했지만 목숨은 부지한 것이다.

[무당이 전부 틀린 건 아니라는 거죠. 장 의원의 기록에선 주화입마가 있기 전, 창천에게 부정맥 같은 증세가 있었어요. 혈우병이 기허로 인한 증상이라고 하면, 그건 기 과다로 인한 증세죠.]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오행의 기.

기 전체를 100이라 치고, 아주 고른 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각 오행의 기를 20씩 가지고 산다고 치자.

그렇다면 창천이나 남궁세가의 핏줄들처럼 토 기운이 기허인 경우, 그들은 80의 기만 가지고 사는 걸까?

[다양한 가능성이 있죠. 나머지 목화금수의 기가 고르게 강할 수도 있고, 특정 기가 유달리 강할 수도 있고. 창천의 경우는, 그래요. 우리도 무당도 너무 기허에만 집중했어요.]

창천의 검이 거칠고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금감양도 이에 질세라 철퇴를 손에 쥐고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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