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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93화 (93/350)

93화

“뭐, 그 외에도 여기저기 선물하면서 입소문 좀 내볼 테니 넉넉히 챙겨줘라.”

“뭐야, 왜 그렇게 적극적이야?”

“네 녀석이 이걸 팔면 어쨌든 표국은 우리 걸 쓸 거 아냐? 이건 대박의 냄새가 나. 향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 하면 눈이 뒤집어지는 인간들이 있단 말이지. 피부에도 진짜 효과가 좋다고 하면 여인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날걸? 그러면 우리도 금왕상단의 표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하긴, 전에도 얘기했었지. 양양에서 만났던 것도 새로운 노선을 개척해보려고 왔던 거고.

원래 큰 거인이 일군 사업은 자식들에게 넘어가면서 잘게 쪼개지기 마련이다.

전생에서는 대표적으로 LG가 있는데, 뭐 그 집안이야 두 집안의 결합이었다가 나중에 상속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깔끔하게 정리한 축에 들지만.

대기업에서 형제의 난이니 뭐니 하는 일은 수시로 뉴스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단골 소재지.

“홍보를 겸한다니까 더 챙겨줄게. 일단은 들어가자. 오늘 보자고 한 게 그 비누 때문만은 아니라고.”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도 애초에 나한테 영업할 생각이었냐?”

“정확히는 금왕표국에 대량으로 먼저 팔아볼 생각이었지.”

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물론 진담이 반쯤 섞인 농담이다. 돈이 걸린 문제에 실없는 농담을 해서 쓰나.) 회의실로 향했다. 의원들과 증상 세미나를 하거나 의원 경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때 사용하는 방이다.

“내가 이번에 의원 몇 개를 손에 넣었다고 했잖아?”

“그래. 그건 또 어떻게 된 거냐?”

나는 청화검문과 청화문의 일, 그리고 그 결과 청화검문이 운영하던 의원 건물 몇 개를 받았다는 얘기를 풀어 설명했다.

“지도를 놓고 설명할게. 이게 형이 말하는 수준의 넓은 영역을 차지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의원 하나만 있는 것보다는 넓은 영역을 확보할 수 있거든.”

하오문을 통해 얻은 호북의 지도. 나는 서북쪽에 일곱 개의 말을 올려놓았다.

“이중에 세 개를 빼고는 다시 팔 거야.”

“뭐 하러? 일곱 개 다 의원을 운영하는 게 낫지 않냐? 혹시, 그만한 자금이 없어? 좀 빌려주랴?”

“돈은 넘치도록 있거든. 내가 말하는 건 효율의 문제야.”

방통의원의 비고에 있는 금은 정말 통째로 금괴였다. 몇 개만 빼다 전장에서 전표로 교환했을 뿐인데도 내게는 제법 두둑한 전표 다발이 생겼다. 규모를 키우는 데 있어 돈은 문제가 안 된다.

“봐봐, 일곱 개가 오밀조밀한 지역에 몰려 있잖아. 청화검문의 영역 내에서 최대한 확장을 해서 그래. 세 개만 운영해도 기존에 일곱 개 의원이 내던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그래도 빈 공간이라는 게 생기잖냐. 이동거리도 만만찮고. 아, 우리 표행을 이용해서 환자를 이동시킬 생각인가. 하지만 너 말이다, 그걸 생각해야 해. 표행과 함께 이동하는 건 서민들한테는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냐. 뭐, 정 급하다면 당연히 이용하겠지만 말이다.”

“그것도 감안한 거긴 하지만. 이번에 다녀보니까 출장 의원이라는 것도 제법 할 만하더라고.”

나는 지도 위에 몇 개의 선을 그었다. 금왕표국의 정기 표행이 다니는 경로였다.

“의원을 많이 뽑을 거야. 저번에는 이곳 태양의원 본점만 운영할 생각에 고르고 골라 정예만 데리고 왔지만, 이번에는 세 개 의원을 운영하고도 남을 정도로 뽑을 거야.”

“흐음, 설마? 그 남는 의원으로?”

“응. 내가 했던 것처럼 표행을 따라다니면서 임시 출장을 다니게 할 거야. 간단한 진료와 처방 정도는 가능하겠지. 본격적인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다면 본점이나 지점으로 방문 권유를 할 수 있을 거고, 처방을 지점에 보내서 약을 배달하는 식도 가능할 거고.”

이렇게 한다면 본점과 세 개의 지점이 커버할 수 없는 영역도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다.

본점과 지점의 실력 있는 의원들이 받쳐주니까, 지난번처럼 고르고 고른 정예가 아니라 조금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유연하게 고용할 수도 있고.

탁월한 기술보다는 서비스직에 어울리는 성격과 붙임성 좋은 사람들을 쓰기 좋은 자리라, 서비스직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이곳에선 합리적인 임금에 좋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가는 거에 비하면 비싸겠지만 형 말처럼, 급하고 거동이 힘들 정도의 환자라면 할 만하지 않겠어? 의원을 초빙하거나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낫잖아.”

“그, 그렇지?”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뭐 치명적인 단점 같은 게 있으면 지금 말해줘. 보완하거나 검토하게.”

“아니, 양양에서도 놀랐지만 뭐랄까, 네가 이렇게까지 사업적인 머리가 돌아갈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해봤으니까 말이다.”

“난 또 뭐라고…… 맥 끊기니까 적당히 놀라라고. 그리고 이 방법은 금왕표국에도 꽤 이득이 될 거야.”

“의원들이 수시로 정기 표행의 한 자리를 차지할 테니 푼돈은 좀 늘어나겠다만, 고작 그 정도로 날 여기까지 불렀다고?”

[웃겨, 정말. 서찰로 얘기해도 된다는 걸 부득불 와보겠다고 한 게 누군데.]

사업 얘기는 관심이 없으니 가만히 있겠다던 홍령이 투덜거렸다.

“아니, 의원들은 표행을 이용하는 비용을 안 낼 거야. 주문한 약을 배송하거나 환자를 나를 때는 당연히 표비를 지불하겠지만.”

“야. 지난번에는 너니까 봐줬는데, 네 휘하 의원들까지 공짜로 표행을 이용하게 하겠다고?”

“대신,”

나는 한 번 말을 끊었다. 원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말을 하다가 끊는 게 제일이라지 않던가?

“순회 왕진을 다니는 의원들이 함께 다니는 표사와 쟁자수들의 건강을 봐줄 거야.”

“하아?”

“생각해 봐. 금왕표국은 각 표행단들이 상단이나 지역과 유착해서 돈 빼먹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표행단마다 인원을 교체하지? 그러면 이 경로를 이용하면서 우리 의원들에게 검진받는 인원이 계속 늘어난단 소리야. 한 해에 표사와 쟁자수가 건강 문제로 몇이나 그만둬? 좀 쓸 만할 정도로 키워놓으면 다리의 연골이 삭아서, 뱀에 물렸다 제때 응급처치를 못 해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표행을 더 갈 수는 없어서. 온갖 이유로 그만두잖아.”

금왕표국의 한 해 퇴사율은 이미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 놨다. 그냥 되는 대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금감양도 알 거다.

외견은 단순무식해 보이지만 그 또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금가장의 사람이다.

아버지는 형제자매들에게 각기 성격에 맞는 일을 나눠주었지만, 그 일을 해낼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저 산도적 같은 머릿속에선 지금 주판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겠지.

“……너랑 내가 손을 잡으면 그런 일이 없을 거란 말이냐?”

“없는 게 아니지. 확실히 줄일 수 있다 이거야. 잘 생각해, 형. 금왕표국은 물건이나 돈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 아냐. 사람, 그것도 표행이라는 전문적인 일에 특화된 인재들을 갖고 하는 사업이야. 아무나 그 일에 재주가 있는 게 아니고 그 재주를 능력으로 끌어올리려면 그만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해. 나는 그렇게 키운 인적자원을 낭비하는 걸 막아주는 제안을 한 거야.”

“쩝, 이런 건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텐데.”

금감양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 회사나 영리집단을 운영하는 사람이 복지를 제공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시작하면 끝이 없다.

지금은 이곳, 태양의원의 본점과 지점이 있는 지역에서만 운영되겠지만 이게 실효성이 있고, 표사와 쟁자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 곧 금왕표국의 다른 곳에서도 요구가 있을 것이다.

금왕표국은 워낙 사업 범위가 넓은 만큼 그 수요를 우리가 다 차지하긴 어렵겠지만, 태양의원이 성세를 확장하는 데는 분명 보탬이 된다. 그들이 다른 지역에서 우리 의원에 대한 입소문을 내주는 첨병이 되어줄 테니까.

“진료는 공짜겠지만 약이나 처방은 아니겠지?”

“합리적인 가격으로 해줄게요. 어차피 이게 잘 활성화되면 표국뿐 아니라 표국의 거래처도 우리 고객이 될 테니까.”

“와, 미쳤네. 아버지가 너 이러는 걸 보고 돌아가셨어야 하는데.”

금감양이 감탄을 내뱉었다. 잘못 들으면 패륜이지만, 나는 그게 금감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한에는 언제 들를 거냐? 이게 궤도에 오를 즈음이면 금가장 대문 한번 넘어 봐도 괜찮을 거 같은데.”

“가야죠. 안 그래도 종자 구하러 한 번은 가야 해서.”

“그래. 진양이가 아주 코를 빼고 기다리고 있다. 마침 명절이니 가족이 모이기 좋은 시기구만.”

나는 금감양과 무한과 가족들의 근황에 대한 시답잖은 잡담을 떨면서 미리 준비해 놓은 계약서를 꺼냈다.

금감양도 입으로는 오랜만에 본 둘째 형님의 민머리가 여전히 달처럼 반짝반짝하다며, 그 매끈한 두피를 잘 유지하라는 뜻에서 약재 비누를 선물하겠다는 농을 늘어놓았지만 눈으로는 신중하게 계약서 글자 하나하나를 검토한 후 금왕표국주의 직인을 찍었다.

“그런데 그놈은 어디 있냐?”

“그놈? 누구?”

“그놈 말야. 네 가면에 시퍼런 칠 하고 화산지회 예선에서 일 등 먹은 놈.”

아아, 창천.

“지금쯤 수련 마치고 내려와 있을 텐데. 왜?”

“왜긴 왜냐. 네 녀석이 이렇게 성장했는데, 네가 찍은 놈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해서 그런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게 왜 궁금해?

[호승심이네요. 상대가 되어서가 아니라, 당신하고 한 판 붙을 수는 없으니까 창천하고라도 붙어보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나랑은 왜 붙으려는 건데?

[형제잖아요. 손아래 동생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나도 형제는 없었지만 사제나 사매를 오랜만에 만나면 실력은 좀 늘었나, 수련을 게을리 한 건 아닌가 궁금하고 그러던데. 좀 해봤는데 전보다 많이 늘었으면 괜히 대견하고 뿌듯하고, 그러면서 질 수 없지! 하고 분발하게 되는 거죠. 뭐, 모든 형제자매 관계가 이렇진 않겠지만요. 그냥 못 개기게 깔아뭉개려고 할 때도 있는 거고. 아, 저기!]

때마침 창천이 마당으로 어슬렁 걸어 나왔다.

그냥 할 일 없이 나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이 일대에서는 태청장원의 미친개의 이름이 매너 없는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금왕표국의 표사들이나 포쾌들보다는 먹히는 편이라, 할 일이 없으면 나와서 대충 얼굴이나 비치고 진상들이랑 눈싸움이나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걸로 저놈 밥값을 퉁치기는 좀 아깝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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