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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83화 (83/350)

83화

[좀 신기하긴 하네요.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유독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하다고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무림인도 아닌 평범한 노파한테 말 좀 들은 거 가지고 저렇게나 기분 나빠하다니 말이에요.]

나이로 치면 그런 거에 예민할 사춘기 남자애긴 하지만, 그런 걸 고려해도 당당의 반응은 좀 과하다.

“정확히 노부인이 네 어떤 부분이 불쾌했다는 건데? 들어보니까 당 씨라고 밝히지도 않았다면서.”

청화에게 듣기로는 그랬다. 물론 자식을 먼저 보내 심기가 상한 데다 청화검문의 일로 몸져누우신 탓에 자세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너, 알잖음.”

그러니까 모른다고.

알면 내가 이틀이나 널 붙들고 이러고 있겠냐?

“나 좌수병(左手病)인 거, 알면서 왜 자꾸―!”

[아, 그거 때문에……!]

“몰랐다고 말하지 마셈! 너 같은 뛰어난 의원이 모를 리 없잖아! 가위나 칼 쓰는 거, 글씨 쓰는 거 다 어색함! 가문에서도 그래서 나보고 덜 됐다고, 당가의 독을 다루면 안 되는 반편이라고……!”

당당은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더니 아예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선 목이 꽉 매여선 말했다.

“……그래서 나 검 배움. 암기 근처에도 못 갔음. 독도, 당가 직계인데 직계에게 허락되는 독 못 배웠고. 검을 배울 때도 넌 좌수병이라 안 될 거라는 소리만 죽도록 들음. 그래도 그건 하면 안 된다는 소리는 안 했으니까……!”

[어쩐지 사천당가라는 이름은 자랑스러워해도 가족은 내켜 하지 않는다 했어요. 힘들었겠네요. 그 와중에 허락된 검과 독은 열심히 수련한 거고.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호북까지 와서 화산지회 예선에 참가한 거군요. 안타깝네요.]

……그러니까, 이거 지금 왼손잡이를 얘기하는 거지?

[맞아요. 타고나길 왼손을 쓰는 사람들이요. 안됐죠.]

하아……

그래, 여기는 중원 무림이지.

현대에서도 왼손잡이를 터부시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어릴 때나 그랬고. 한창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는 정말 나이 먹은 꼰대가 아닌 이상에야 왼손잡이를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잡이는 우뇌가 자극되어 IQ보다 EQ가 더 발달하는 편이라 기술과 감성이 결합된 제4차 산업혁명에 적합하다는 둥, 천재 예술가는 왼손잡이가 많다는 둥 유니크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지.

오른손잡이들도 양손을 써야 두뇌발달에 좋다며 애들에게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고, 야구에서는 좌완투수 못 모셔 가서 난리였는데…….

그러니까, 그런 편견이 개선되지 않은 시절의 인식이라는 건, 이 정도라는 거군.

단순한 병이 아니라 거의 장애나 저주를 대하는 수준이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사천당가라면 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도 가요. 거긴 독을 다루잖아요.]

독이랑 왼손잡이가 무슨 상관인데?

[그렇잖아요? 약도 약이지만, 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야 하는 물건이에요. 한 끝 차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게 결정된다고요. 그만큼 꼼꼼하고 오류가 없어야죠. 독을 우린 탕기를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솔직히 지금까지 홍령이 나와 백퍼센트 생각의 일치를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체로는 그녀와 내 생각은 비슷한 방향이었다.

그런데 홍령부터 당장 이런 편견을 갖고 있으니, 이거 원.

“좋아. 네가 좌수병, 그러니까 왼손잡이다 이거지.”

“……그렇슴.”

“너, 내가 실력 있는 의원인 거 알지?”

“알음. 그게 왜?”

“좌수검의 팔을 붙인 것도 알 거고. 그렇지?”

“……! 하, 하지만 그 사람은!”

[그만둬요. 마음의 상처는 함부로 헤집는 거 아니에요.]

“토 달지 말고 내 말 들어.”

이건 당당과 홍령 둘 다에게 하는 말이었다.

“얼마 전에 소식을 들었어. 공동파가 주최한 화산지회 감숙 예선에서는 외팔의 무인이 압도적인 기세로 우승을 거머쥐었다더라고.”

하오문의 문주가 전해온 소식 중에 있었다.

그때가 감숙 지역의 예선이 끝난 지 하루 반나절 됐던가?

인터넷도 안 되는 동네에서 그 정보의 속도며 상대에게 맞춤형으로 정보를 분류해서 보내주는 솜씨는 가히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다.

“좌수검은 원래 왼손잡이가 아냐. 오른손잡이였지만 비무에서 패해 오른팔을 잃고 왼손으로 검을 쥐기 시작했다지. 그리고는 뒤늦게 익힌 왼손 검으로 좌수검이라는 별호까지 얻었고. 자, 생각해보라고. 다른 사람 생각 말고 네 생각만 말해. 후천적으로 좌수를 쓰는 사람이 그만한 실력과 명성을 얻을 정도인데, 타고난 너는 안 돼?”

[…….]

“그, 그 사람은 오른손을 타고 났잖음! 나랑은 다름!”

“아, 답답하네. 지금은 왼손 쓴다니까? 너 오른손 잘 못 쓰지? 오른손잡이들은 당연히 왼손 잘 못 써! 너 창천한테 지지? 창천이 왼손으로 검 들면 너 이길 거 같아?”

타고나길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창천 녀석은 왼손으로도 당당을 압도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명확했다.

“넌 이상하지 않아. 왼손잡이는 병이 아니고 뭣도 아냐. 그런 웃기지도 않는 생각 따윈 갖다 버리라고 해.”

내가 단호하게 얘기하자 당당은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설마 살면서, 단 한 명도 이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는 건가.

“나, 나는. 난…….”

태어나면서부터 낙인찍힌 인생.

사천당가, 그 피를 지닌 이라면 당연히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에게서 배제된 삶.

당당 녀석의 평생, 녀석은 현대로 치면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온 거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스스로를 긍정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걸 똑똑히 보았던 나의 확신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가도록 해요. 나라고 좌수병을, 그래요, 왼손잡이들을 보지 않은 게 아니에요. 그들은 검이든 도구를 다룰 때 미숙하다고요. 이건 진실이에요.]

“검을 다룰 때, 좌수검은 하나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어.”

나도, 홍령도 좌수검이 태청장원의 비석을 베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창천은 제 집안의 비석이 반 동강이 났는데도 그 무위에 감탄했을 정도였지. 그에게서 어색한 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그 사람이니까―]

“아마 왼손잡이 전용 검을 맞춘 거겠지. 무공도 왼손잡이용으로 다시 익혔을 거고.”

“……무공은 알겠음. 근데 전용 검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달라짐?”

“달라지지. 확실하게.”

왼손잡이들이 확실한 메리트를 느끼고 왼손잡이용 물건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왜 왼손잡이 전용 가위나 전용 마우스 같은 게 상품으로 나와서 팔리겠냐고.

다O소에 왼손잡이 전용 식칼을 파는 걸 본 적도 있으니, 손에 맞는 걸 쓴다면 분명히 해결될 거다.

“좌수검과는 인연도 있고 보은패를 받기도 했으니까, 만나게 되면 검을 만든 장인을 물어볼게. 만약 좌수검이 왼손 전용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왼손잡이용 도구에 흥미를 보일 장인을 알아. 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어.”

나는 많은 형제 중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자신도 쇠를 다루는 장인으로, 그가 운영하는 공방은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을 모아 금왕상단이 요구하는 고품질의 유니크한 제품만을 만든다.

특이한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니까 왼손잡이 물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냐고 한다면 도전정신에 불타겠지?

[……만약 당신 말처럼, 도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이에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던 홍령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 자체로 의술이 되는 거네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편견이 바뀔 테니까요. 그게 틀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겠죠. 지금까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 하고 있었으니 당당처럼 숨 막히게 살던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정말, 더욱 큰 병을 고치는 일이네요.]

―그런 경지의 기술을 우리는 도(道)에 이르렀다고 하죠.

홍령이 무언가를 떠올리듯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가 부탁하는 건 왼손잡이고 뭐고가 중요하지 않잖아. 그거마저 못하겠다고 할 거야? 네가 왼손잡이니까? 네 가족들에게, 아니 그 이전에 노부인에게 한 방 먹이고 싶지 않아?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냐고. 그러려고 이 먼 호북까지 와서 화산지회 예선에 참가한 거잖아?”

“……정말 삼매진화를 잠깐만 피워 올리면 된다는 거?”

“그렇다니까.”

당당의 눈이 내가 알던 그 녀석의 것으로 돌아왔다. 좋아, 이렇게 나와야지.

“하지만 촛불 수준의 삼매진화를 어디에 쓸 거임?”

“문서에 찍힌 도장, 이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쓸 거야.”

삼매진화.

그것은 내공으로 피워 올리는 아주 특수한 종류의 불꽃이다.

홍령의 말로는 내가중수법처럼 한 점에 순수한 화 기운을 집약시켜 만든 불이라는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어쨌든 내 수준에서 펼칠 수 있는 무공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부싯돌이 없는 상황에서 불을 붙이거나 서찰을 태울 때 빼곤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요. 그 귀한 내공으로 목욕물을 데울 것도 아니고, 화공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의미가 없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하는 법을 익히긴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다 싶네요.]

나는 알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불꽃이 피어나다니, 멋있잖아.

세상 모든 사람이 멋과 간지 대신 실용과 효율만 따졌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얼마나 팍팍했겠냐고.

“지금도 할 수 있지? 이거, 여기 도장 부분에 해봐.”

나는 직인이 찍힌 문서를 내밀었다. 당당은 잠깐 갸웃하더니, 이내 내 요구대로 촛불만 한 삼매진화를 피워 직인이 찍힌 부분을 태웠다.

치지직―

타들어가는 소리. 매캐한 냄새.

종이가 타는 게 아니다.

[역시. 진사를 쓴 게 아니에요.]

당당의 삼매진화가 도장을, 정확히는 도장을 찍을 때 쓴 인주를 태우고 있었다.

[인감의 재료인 진사는 수은의 재료예요. 그 때문에 아주 비싸죠. 우리 화씨의문은 수은 사용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대부분은 수은을 신선의 약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수은의 재료인 진사는, 홍령의 말에 따르면, 불로 잘 태웠을 때 정제된 수은이 된다.

[문주가 쓰는 직인 정도면 제대로 된 인주를 갖추는 게 일반적이죠. 문주실에 들어갔을 때 있던 인주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건 거기까진 신경을 안 쓴 거예요. 못 쓴 건가? 비싸긴 엄청 비싸거든요, 으으.]

“뭐야, 이렇게 하는 거 맞음?”

“어, 잘 하고 있어. 이번엔 이걸 태워봐.”

“똑같이 인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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