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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77화 (77/350)

77화

“우리는 지금 장 의원님이 전에 의원을 하시던 마을, 지금은 방통의원이라는 의원이 새로 문을 연 마을로 가고 있어. 거기 가서 환자를 치료할 거야.”

계획은 단순하다.

엉터리 의원들 때문에 없던 병도 생길 정도라면, 실력 있는 의원이 나타났을 때 환자는 몰리게 되어 있다.

몇 달만 공을 들이면 방통의원은 환자가 없어서 몰락할 것이다.

“근데 그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했잖음? 일일이 몇 달씩 쳐부수는 거?”

당당이 불만족스럽다는 듯 팔짱을 꼈다.

자고로 쳐부수는 것의 맛은 빠른 해결에 있다.

정면 대결이어도 오래 끌면 지루하고 김이 샌다. 이 녀석에게 그런 걸 시켰다간 연구고 뭐고 지루하다고 튀어버릴 것이다.

“지금 우리는 표행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지. 청화검문은 이 시골에서도 제법 요충지만 골라다 자기들 영업소를 차려놨어.”

놈들의 의원을 의원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도 않다. 나는 영업소라는 표현을 골랐다.

“혹시, 금왕표국의 표행이 전부 청화검문의 의원들 주변을 지나나요?”

신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답이다.

“금왕표국의 표행이 지나가는 것도 있고, 금왕표국의 표물을 받아서 운송하는 작은 표국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주기적으로 그곳을 순회하는 이동수단이 있다는 거야.”

나는 품에서 이 일대의 지도를 꺼냈다. 내가 미리 표시해둔 붉은 점과 파란 선이 절묘하게 이어져 있다.

“한 곳에서 이삼일씩 머물며 순회 진료를 할 거야. 한 달이면 이 구역을 두 번 순회할 수 있지.”

중간에 태양의원에 들러 의원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확인도 가능하다. 당당 녀석은 호오, 관심을 보이면서도 완벽하게 수긍하진 않았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그리고 너랑 나는 다른 경로로 돌 거야. 그러면 한 달에 네 번을 순회하는 효과가 나와.”

인구가 많아서 둘이 함께 환자를 봐야 하는 부분은 겹치게, 인구가 적어서 혼자로도 충분한 곳은 각자 환자를 볼 수 있게.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설마 못 할 거 같으면 지금 얘기해. 일정을 좀 더 길게 잡거나 다른 의원을 데리고 오면 되니까. 한 의원 님이라면 내가 부탁하면 한 번은―.”

“할 수 있음!”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니 자존심을 살짝 긁은 모양이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일이 잘 돌아가면, 청화검문과 방통의원은 백 일이 되기 전에 무너질 거다.

“좋아, 가보자고.”

* * *

금태양은 백 일을 생각했지만 청화검문의 발에 불이 떨어진 것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돈이 없다.”

청화검문의 문주는 장부를 보다가 집어던졌다. 내던져진 장부는 그 아래 시립한 재정 담당의 발치에 떨어졌다.

재정 담당은 문주의 눈치를 보다가 장부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당장 문파를 운영할 돈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문주. 그저 본문으로 보낼 후원금이 부족할 뿐입니다. 이번 달만 후원금을 줄이거나 하시면―.”

“그게 돈이 없는 거다.”

문주는 매서운 눈으로 재정 담당을 쏘아보았다.

재정 담당은 무림인이 아니었기에 이 간단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파원이 전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본문에 보내는 돈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화검문이 이 일대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뒤에 무당파가 있기 때문이었다.

무당에 보내는 돈을 줄인다고? 한 번 어려워서 돈을 줄인다고 무당이 해코지를 하진 않겠지만, 청화검문이 속가문의 예의를 차리지 못한다는 인식은 확실히 박힌다.

원래 하다가 갑자기 안 하면 그게 유독 섭섭한 법이지 않나.

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에 무당에게 더 강한 비호를 받는 속가문이 들어온다면 청화검문은 영역을 내주거나 흡수당할 것이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왜 돈이 없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내가 적잖은 돈을 주고 네 녀석을 쓰는 걸 텐데.”

재정 담당은 문주의 기세에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는 문주의 이런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하기 위해 적잖은 돈을 받는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다짜고짜 무당에 보내는 돈을 줄여야 한다는 말 대신, 문주를 위해 차근차근 원인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간 청화검문은 제자를 받을 때 후원금을 받거나 이 일대 상가의 치안을 봐주는 걸로 꾸준한 수입을 얻었습니다. 이 부분의 수입은 지금도 꾸준히 유지 중입니다.”

“그렇겠지. 며칠 전에도 상단의 자제 셋을 한꺼번에 제자로 받았으니까.”

“올해 소작을 포기하는 이들이 생겼지만 그 숫자가 크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의원들입니다.”

“의원이? 그 황금알을 낳는 닭들이 갑자기 왜?”

“지난달부터 의원들이 보내오는 수익이 급감했습니다. 문 연 지 얼마 안 되는 방통의원이 보내는 수익이 가장 심각합니다.”

“흠, 손버릇이 나쁜 놈이 있나?”

문주는 곧바로 자신의 부하를 의심했다.

청화검문은 역사가 오래된 문파가 아니었다. 문주가 직접 기른 제자들은 써먹기엔 아직 어렸고 때문에 그는 주변의 흑도 문파를 처리하면서 쓸 만한 자들을 부하로 받아 의원의 관리를 맡겼다.

잘 들어오던 돈이 갑자기 끊겼다면 충분히 의심 할 만 했다.

“그렇다면 의원 하나나 둘 정도만 그런 현상을 보였을 겁니다. 하물며 방통의원은 부문주가 가 있지 않습니까?”

청화검문의 부문주는 문주의 친동생이다. 그가 부하들을 규합해 문주를 몰아낼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문주는 그 가정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들 형제는 우애도 좋았고 부문주는 그럴 만한 깜냥도 욕심도 없었다. 부문주 정도가 녀석의 그릇이었고 녀석도 이를 만족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돈을 가져온 문파원들에게 물어보니, 요새 이상한 자들이 이 일대에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이동 의원이라고, 마을과 마을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치료를 한다더군요. 그 의술이 신묘하고 치료비도 저렴한 데다 며칠에 한 번 들르니 굳이 우리 쪽 의원을 찾지 않고 그자들이 오길 기다린답니다.”

“한둘이 아니다?”

“하나일 때도 있고 둘일 때도 있습니다. 보조로 어린애가 하나 붙어 총 셋입니다. 큰 마을에선 함께 움직이고 작은 마을은 각개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표국의 표행을 타고 이동해 마을과 마을을 옮겨 다니는 속도가 빠른 듯합니다.”

“……뭐 하는 놈들이지? 왜 내 사업을 방해하느냔 말이다.”

“조금 수소문을 해봤는데, 여기서 좀 떨어진 태양의원이라는 곳에서 온 의원들이라고 합니다. 실력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흐음, 실력이 좋다라. 그놈들, 무당의인가?”

“무당의 표식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무당의라면 다른 무당의의 영역에서 함부로 영업하지도 않았겠지요.”

문주는 흥미가 돋았다. 무당의도 아닌데 실력이 있는 의원이라.

가끔 그런 놈들이 있었다. 시골구석에 처박혀 집안 대대로 내려온 의술을 익힌 탓에 세상 물정은 잘 모르지만 실력은 충분한 놈들.

아무래도 이놈들이 그런 놈들인 것 같았다.

“슬슬 잔챙이들을 가지고 사업을 벌이는 게 한계긴 하지. 그만한 실력자라면 청화검문으로 흡수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군. 내가 직접 가보도록 하지. 놈들이 언제 어디에 도착하는지는 파악했겠지?”

“예, 그들을 만나고자 하신다면 방통의원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좋아. 나는 가볼 테니 그동안 문파 단속을 잘 하고 있게. 다른 돈 나올 곳을 찾아보면 더 좋고. 만약을 대비해 전장에도 기별을 넣어두게.”

“알겠습니다, 문주. 다녀오십시오.”

문주는 당장이라도 그 망할 놈들을 잡아 청화검문의 의원으로 내세울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곧바로 무인들을 소집해 길을 나섰다.

그를 배웅하는 재정 담당은 그저 착잡할 뿐이었다.

‘이 일대의 전장에서는 더 이상 청화검문에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거다. 무당이 요구하는 금액은 날로 커지고 있고. 태양의원의 방해가 없었다 해도 이번 달은 상납이 아슬아슬했을 터…….’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하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라 이곳을 떠나는 일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지만, 사이비 의원들을 쥐어짠 돈으로도 무당에 상납이 불가능해 진다면 청화문주의 칼은 자신에게 돌아올 게 분명했다.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각지에 파견되어 있던 부하들을 의심한 그가 아닌가.

청화문주가 문파를 나선 후 가족들을 데리고 호북 일대를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하던 그에게 손님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금 의원님이 보내셨습니다. 이것을.”

재정 담당은 금태양이 보낸 서찰을 받아든 순간 깨달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 * *

“오늘은 여기까지! 죄송하지만 내일 와주세요!”

신생이 줄을 선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줄을 해산했다. 나는 마지막 환자에게 정성껏 침을 놓고는 주변을 마무리했다.

금왕표국이 이곳을 지나갈 때 잠시 머무르는 객잔을 임시 의원으로 사용했는데, 표행의 숙소로 사용되는 곳인 만큼 규모가 작지 않아서 꽤 쓸 만했다. 잠깐 이용했다가 짐을 챙겨 떠나기도 편했고.

원래 객잔을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건 객잔에 따라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금왕표국이 나서자 문제도 해결되었다. 나도 환자들에게 가급적이면 대기하는 동안 객잔에서 식사를 하거나 마실 것이라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객잔의 매출도 상당히 올랐는지 이제 객잔 주인들은 우리가 오기만 하면 점소이 대신 나서서 모든 편의를 봐줄 정도였다.

“오늘은 끝임? 그럼 이제 연구하자!”

“안 돼요, 당당 님. 제 수업이 먼저예요!”

오늘의 진료가 끝나기 무섭게 당당과 신생이 동시에 쳐들어왔다.

“안 됨. 저번에도 너 수업한다고 내가 양보함. 이번엔 내 차례임.”

“원래도 제 수업이 먼저거든요. 오늘부터 스승님과 상한론을 공부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원래 신생은 좀 수줍고 말을 종종 더듬는 편이었는데, 당당과 함께 어울리더니 보통 또래의 모습처럼 활달해졌다.

당당이랑 신생이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나서 그런가.

[대충 당신과 신생 사이쯤 되겠죠. 그래도 둘 다 활기차니 보기 좋네요.]

당당과의 연구든 신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홍령으로서는 신나는 일이라 그런가, 귀신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당당과 할 얘기가 있어. 둘이서 할 얘기니 혼자 공부하고 있겠니?”

“맞음! 내가 먼저임!”

내 말에 신생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하지만 이 얘기는 아직 신생에게 어렵기도 하고, 가급적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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