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75화 (75/350)

75화

[무슨 침 놓는 게 바느질 하는 거랑 똑같은 줄 아나? 자리만 안다고 놓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사람마다 놓는 자리도 조금씩 다 다르다구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격도 없는 거잖아.

나만 해도 그놈의 의맹 자격이 없다고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데.

“그거 말고 더 들은 건 없고?”

“급여는 없고 자기가 본 환자의 치료비에서 일부를 떼어 받는대요. 그리고 뭐더라, 실수해도 원장이 다 책임지니까 괜찮다고 했다고요. 항의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인들이 다 쫓아낸다나 봐요. 그래서 그분은 일부러 태양의원까지 왔대요. 그런 데서 계속 치료받다가 병신 될 거 같다고.”

[무슨 그런 인간들이 다 있어요?!]

홍령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 이름의 의원. 이상한 운영방식. 거기에 무인들을 동원해 항의와 불만을 묵살시킨다라.

“신생, 미안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제가 괜한 얘길 한 건 아니죠……?”

“아냐, 잘 얘기해줬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뭔데요. 뭐 생각난 거 있어요?]

그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가 했더니.

“장 의원님, 주무세요?”

“떼잉, 이 시간에 웬일이냐? 이제 막 자려던 참이다.”

장 의원은 바닥에 종이를 잔뜩 늘어놓고 뭔가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대충 훑어보니 활명탕에 초수의 탄산이 날아가지 않게 넣는 방법을 연구 중인 모양이었다.

“방통의원이라는 이름, 아시죠?”

“이잉? 네 녀석이 그놈들을 워찌 알아?!”

방통의원.

그건 장 의원이 일전에 운영하던 신통의원의 자리에 새로 개업을 했다는 의원의 이름이다.

* * *

[점점 심각해지네요.]

홍령의 목소리가 착잡해졌다.

오늘 금왕표국의 표행을 이용해 도착한 환자 때문이다.

방통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사지가 마비된 환자. 다행히 마비가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시간을 두고 치료하면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환자였지만, 다른 환자들마저 이 환자처럼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한의학은 신비롭다.

전생에서 한의학, 즉 동양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허나 때때로, 서양의학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수술이나 엄청난 신약도 정복하지 못하고 심지어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병들을 침 몇 개로 낫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방식이 다르고 체계가 다르다고는 하나 이 또한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의학이다.

음양오행이나 기의 흐름 같은 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법칙이 있으니까 그게 효과가 있고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걸 것이다.

한의학은 그런 신비함만큼이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침 한 방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건, 침 한 방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방통의원의 의원이라는 작자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대체 뭘 기다리는 거예요? 나한테는 말해도 괜찮잖아요. 그 사람들을 정말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에요?]

방통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상태가 악화되어 우리 쪽으로 내원한 환자만 열둘.

태양의원에 대해 듣지 못했거나 여기까지 올 엄두가 안 나는 이들은 더더욱 많을 것이다.

……때를 놓쳐 죽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하지만 경거망동할 수는 없다.

“무인들이 의원을 지키고 있고 불만을 품거나 나쁜 소문을 내는 자는 응징한다고 했지. 거기에 의맹이나 무당의 제재를 받았다는 말도 없어.”

무당의가 되지 않은 의원들에게는 주기적으로 무당의 무인들이 어슬렁거려 압박을 준다. 나야 청운진인과 한 거래 때문에 이제 그러한 압박에선 자유롭지만 방통의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멀쩡하다는 건, 뒷배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

“의원님, 객잔 주인어른 오셨어요!”

“응, 들어오시라고 해.”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오랜만입니다, 금 의원님. 잘 지내셨고요?”

맨 처음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내 실력을 마을 사람들에게 입증한 계기가 됐던 환자.

지금은 절던 다리도 완전히 나은 데다 태양의원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이며 장기 숙박객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동안 부인에게 객잔을 맡기고 마을을 떠나 있다가 돌아왔다.

내게 별다른 언질은 없었지만 나는 객잔 주인이 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돌아온다면 바로 내게 올 것이라는 것도.

“위에서 이것을 의원님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고마워요. 하오문도가 된 소감은 어때요?”

“하하, 아직은 뭐가 뭔지 얼떨떨합니다.”

객잔 주인이 멋쩍게 웃었다.

[아! 그거죠, 그거! 당신이 은 파파한테 그랬잖아요, 정보원이 필요하다고!]

전에 비하면 홍령도 눈치가 조금 늘었네.

한 의원을 연기하던 은 파파의 정체를 밝혀낸 후, 나는 그 대가로 몇 가지 정보를 받았다.

의맹의 정회원에 관한 것과 무당의 배상 책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화산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다른 필요한 건 없냐고 그랬었죠.]

해서 내가 요구한 것이 정보원, 정확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이었다.

의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정보, 주변 일대의 정보, 그리고 나아가 무림이라는 별세계의 정보까지.

내가 직접 정보조직을 꾸리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들고 태양의원은 그만한 규모도 아니다.

그럴 땐 이미 있는 걸 활용하는 게 제일인데, 중원에는 이런 방면으로 특화된 두 개의 문파가 있다.

그 두 개 중에 하나가 흔히 기녀와 점소이의 문파라 알려진 하오문(下午門)이다.

뭐 말단 조직원들이 기녀와 점소이, 가게의 점원, 지게꾼과 보부상 등일 뿐. 중간 조직원이나 간부 등은 으리으리한 주루의 주인이라고 하더라고.

[그 정도는 손 써줄 수 있다고 하더니. 나는 은 파파가 주기적으로 찾아오거나 부하를 보내거나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예 하오문이 객잔 주인에게 손을 뻗게 만들 줄이야.]

뒷세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란 게 보통하고는 확실히 다르겠지.

“앞으로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제게 얘기해주시면 됩니다. 원래는 돈이 좀 들지만 제가 어떻게 의원님께 돈을 받겠습니까.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죠. 그래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정보라면 값을 지불할 테니 꼭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만 모든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제 겨우 하오문도가 된지라…… 그 정보라는 것도 술처럼 급이 있더군요.”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제게 도움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오문도가 된 객잔 주인은 곧 자리를 떴고 나는 하오문의 위에서 보냈다는 서찰을 펼쳤다.

[……무당의 속가문이군요.]

대체 정보를 다룬다는 이들의 손은 어디까지 뻗어있는 걸까?

하오문에서 보낸 서찰 안에는 내가 궁금해 하는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

[방통의원의 뒤에 무당의 속가문이 있고, 그 속가문의 문주는 무인인 동시에 의원, 무당의라. 그러면 그 일련의 상황들이 납득이 가네요.]

이럴 거 같아서 내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정보를 기다린 거다.

“청화검문이라…….”

무당의 속가문파, 청화검문.

이 일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문파다.

그 영향력이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느냐면, 일단 태양의원이 있는 북촌의 농지는 대부분 이 청화검문이 소유한 땅이다.

이 동네 사람들 전부 청화검문의 땅에 소작을 놓고 그 소출로 먹고 산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방통의원을 흔들었다면 동네 사람들이 위협을 받았겠네요.]

그렇지. 더 이상 농사를 못 짓게 한다든지, 소작료를 미친 듯이 올려버린다든지. 생계 자체에 큰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일대에 무당파 속가문이 청화검문 하나인 걸 보면, 다른 의원들이 얘기한 ‘무당의가 아닐 경우 무당파 무인들이 주기적으로 들러 협박한다’의 주인공도 바로 이 청화검문일 것이다.

“속가문은 문파의 정식 제자가 아니라고 했지?”

[맞아요. 대문파에 정식 제자가 되지 않고 속가제자가 된 사람들이 문파를 차리면 보통 그걸 속가문이라고 해요. 별개의 문파가 되는 거지만, 그래도 어디 속가다 이름을 붙일 정도면 본문하고 관계가 깊죠. 주로 금전적으로.]

태청의문도 무당과 비슷한 관계를 갖고 있었지.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충 조폭들이 돈 걷어서 더 큰 조직에 상납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되려나.

“그리고 방통의원이 내세우는 의맹의 자격은 청화검문 문주의 것이라 이거고.”

[애초에 그걸로 겁박하는 이들이 청화검문이었으니 누가 시비를 걸 일도 없겠죠.]

이거, 일종의 사무장 병원 아냐?

아니지. 사무장 병원보다 훨씬 악질이지.

사무장 병원은 의사만 병원을 차릴 수 있는 법을 요리조리 피해서 일반인이 병원을 개설하고 의사를 고용하는 형태의 병원이다.

언뜻 들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 같지만 이런 병원은 정상적인 의료행위로 이윤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필요도 없는 과잉진료나 잘못된 처방을 내려 국가 건강보험에서 큰돈을 빼돌리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청화검문이 취하는 방식은 더욱 심하다.

그건 그나마 의사를 고용해 의료행위를 하기라도 하지. 청화검문은 제대로 수련을 거치기는커녕 의술에 대해 약간이나마 지식이 있으면 아무나 의원으로 받아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의원이 방통의원만 있는 것도 아닌 게 문제에요. 무려 다섯 군데나 있다니, 이런 나쁜 놈들은 단단히 혼쭐을 내야 한다고요!]

홍령은 제대로 열이 받아서 길길이 날뛰었다. 나도 화가 났다. 사람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산 넘고 물 건너 치료를 받으러 오는데, 돈을 벌자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다니.

[가서 도장 깨기 하자고요. 다 나오라 그래! 장 의원이랑 붙었을 때처럼 거기 실력 형편없는 의원들 다 뭉개버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거기 문주라는 작자가 열 받아서 뛰어오지 않겠어요? 그러면 가라, 창천! 하고 내보내는 거죠! 화산지회 호북 예선 우승자인데, 그깟 속가문 문주한테 지겠어요?]

음, 시원시원한 방법이다.

그랬다간 청운진인과 한 거래고 뭐고 무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무당이라는 거인과 대립했는데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건 뒤에 금가장이 어른거려서도 있지만 대놓고 전면전을 벌이지 않아서도 있다.

……창천 녀석이 대놓고 장갑을 던진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 치자.

[그러면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내가 그랬잖아. 대놓고 들이박지만 않으면 된다니까.

그 전이었다면 홍령의 말처럼 직접 들이박는 방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이번에 양양을 다녀오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

이번엔 이 패들을 활용해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