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체력을 끌어올릴 것!
그리고 그 체력을 기반으로 내공을 받아들여 단전을 만들 준비를 할 것!
그 과정에서 토의 기운이 어쩌니 모든 기의 기반이 되는 그릇이 어쩌니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죽도록 달리고 운동해서 그걸 버텨낼 체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그 과정을 창천 녀석이 도와주기로, 아니 감시하기로 한 거고.
녀석은 그날부터 나를 뺑이 치기 시작하더니, 양양에서 태양의원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아깝다며 오는 길 내내 나를 굴려댔다.
졸지에 전담 PT 트레이너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
그 때문에 오는 길이 늦어진 것도 있지만, 애초에 양양 출장소를 정리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함께 일했던 이들 중 나를 따라오겠다는 의원이 생각보다 많아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 다섯 명의 의원을 고용했다.
처음 석 달간은 숙식만 제공하고 급여는 몇 푼 되지 않는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승낙한 이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처음부터 장 의원과 같은 조건으로 대우해주고 싶었지만, 한동안 지출이 너무 많을 예정인 데다 그들에게 어떤 일을 맡길지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
그들에게는 상황이나 앞으로 배정될 포지션에 따라 급여가 더 오를 거라고 말해두기는 했다.
[그 정도도 넘친다니까요? 숙식 제공은커녕 돈을 바쳐가며 제자 노릇을 하기도 하는데요. 많은 걸 배울 테니까 충분해요.]
함께하는 귀신마저 마인드가 이래서야. 돈은 근로자의 의욕에 직결되는 요소라고.
[저기 손보는 곳이 의원들 머무는 숙소죠? 저거만 해도 충분히 잘해 주는 거라고요.]
힘들긴 했지만 뚝딱뚝딱 공사 소리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같이 온 신생은 쉬기는커녕 객잔에 가서 먹을 걸 받아오겠다고 뛰어갔다. 그 어린애도 활기차게 움직이는데 나도 본받아야지.
[신생 걔는 그냥 어린애가 아니라니까요? 요새는 숨기지도 않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나한테 신생은 그냥 신생이야.
장원을 한 바퀴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현에게 부탁해 데려온 솜씨 좋은 목수들이 불에 탄 건물을 보수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과거 건물이 있다가 허물어진 공터를 치우고 새로 건물을 올릴 준비를 했다.
“지현 어르신에게 들렀다 오길 잘 했어. 안 그랬으면 내가 일일이 목수들 찾고 질 좋은 목재와 돌도 따로 구하러 다녀야 했을 거 아냐?”
[맞아요. 치료비로 받은 거라 더 좋네요.]
돌아오면서 현청에 들른 건 딱히 지현을 뜯어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주요 부위에 수술을 한 어린애의 경과를 살펴볼 겸, 김이박 의원과 인사도 할 겸 들렀던 거니까.
다행히 지현의 고명아들은 덧난 곳 없이 잘 나았고 전에 신생이 소문을 들었던 것처럼 활기차게 뛰어놀았다.
지난번 봐주었던 환자들 몇도 상태를 봐주길 원해서 며칠 더 머물렀다. 그 사이에 지현과 지현 부인이 “의원이 반쯤 타버렸다는 말을 들었네만, 이를 손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네.” 하며 지원을 해주겠다기에 겸사겸사 다른 것들도 좀 더 얻어낸 것이다.
“금 의원님, 정말 먼저 와계셨군요!”
대문 밖에서 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포쾌들과 의원들, 그리고 수레가 줄지어 들어왔다. 최 의원이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려 다가왔다.
“태양의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직 수리 중이라 보잘것없지만요.”
“아닙니다, 금 의원님과 함께라면 초가삼간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똑같이 생각할 거고요.”
[이 사람, 처음엔 이렇게까지 열정이 넘치지 않았는데 말이죠.]
변화는 좋은 거지. 그래서 뽑은 거기도 하고.
“우선 빈 방에 짐을 푸세요. 나중에 저쪽 건물이 수리가 다 되면 그쪽을 쓰시게 될 겁니다.”
“예. 장 의원님은 어디로 모실까요?”
“장 의원님은 저 방을 쓰셨으니 그곳으로 옮겨주세요.”
마차 안에 드러누워 있던 장 의원을 포쾌들과 다른 의원들이 영차영차 옮겼다. 곤장을 맞은 건 거의 회복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았다.
“금 의원님! 객잔 주인 어르신이 음식 해다 갖다 주신대요!”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뭐고?”
“음식 될 때까지 우선 드시래요!”
신생이 가져온 보따리 안에는 간단한 주전부리와 술이 있었다. 짐을 푼 의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최 의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 의원님이 같이 안 오셔서 아쉽군요. 이 술, 꽤 좋아하실 거 같은데.”
아아.
다들 최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의원은 양양 출장소에서 치프 매니저의 역할을 맡았다. 일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고 모두를 다독이던 이니 다들 정이 들었을 것이다.
“저는 당연히 한 의원님이 금 의원님과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화산지회 예선 마지막 날 보니 어느 샌가 짐을 빼셨더군요.”
“예끼, 이 사람아. 그 사람은 자기 의원이 있는 사람이야. 대대로 집안이 의원을 한 데다 실력이 있어서 상당히 부유하다 들었네. 그런 사람이 뭐 하러 남의 밑에 들어가겠나?”
“그러고 보니 저 이상한 소리를 하나 들었어요. 한 의원님이 화산지회 예선 기간 동안 지현의 주치의를 맡았다던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나는 별 내색 없이 계속 밥을 먹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리야? 한 의원님은 우리와 함께 있었지 않나?”
“동명이인을 헷갈린 게 아니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물어보니까 내력이 딱 한 의원님이었습니다.”
모두가 얼굴에 물음표를 백 개쯤 띄운 것 같았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반 시진 후부터 다시 의원 문을 열 거예요. 장원이 수리 중이라 정신없긴 하지만 자리를 비운 지 꽤 되어서 환자들이 많을 겁니다. 다들 긴 여정에 피곤하신 건 알지만 저도 함께할 거니까, 어서 드시고 조금이라도 쉬세요.”
“아, 네!”
“아이고, 벌써부터 일이라니. 어서 밥부터 먹어야지.”
적당할 때 끊은 덕분에 한 의원에 대한 화제가 뒤로 밀려났다.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히 알아서 좋을 얘긴 아니니까.
[이번에도 꼼짝없이 당했다니까요. 한 의원이 은 파파일 줄이야.]
말은 제대로 해야지. 난 안 당했다고.
[이익, 당신 그러기에욧!?]
그가 은 파파라는 걸 알아차린 건 당당에게 당한 중독 환자들을 어찌 할지로 의견 대립을 했을 때였다.
알고 지낸 기간은 짧았지만 한 의원의 성정을 알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기간이었다. 장소며 상황도 딱 은 파파가 어슬렁거리기 좋은 시기이기도 했고.
화산지회 예선이 끝나갈 무렵 따로 불러서 얘기하니까 이번에도 들켰냐며 너털웃음을 지었지.
진짜 한 의원은 별 문제 없이 지현의 주치의 노릇을 하다가 자기 의원으로 돌아갔고, 은 파파가 가져온 재물은 진짜 지현이 내게 보내던 것을 가지고 온 거라고 해서 한 시름 덜었다.
무릎이 영 쑤신다 해서 침을 놔주고 여러 가지 정보를 얻었다. 의맹의 정회원 자격과 무당의 배상 책임에 대해 들은 것도 그때였다.
[화산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었죠.]
홍령의 목소리가 깊어졌다. 은 파파가 화산에 대한 정보제공을 거절했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때가 아니라는 건 뭘까. 언젠가 내가 알게 될 때가 온다는 건가? 아니면 그걸 알고도 감당할 때가 온다는 걸까.
“그 대신이라며 이것저것 알려주긴 했지.”
물론 은 파파가 대답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양양 근방에서는 화산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던 조언을 받들어 현청에 도착하자마자 화산에 대해 물으러 다녔다. 그러나 대답은 한결같았다.
― 화산? 섬서에 있다는 그 산 말인가?
― 무림에 그런 문파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 구파일방이라나? 망했다고? 언제? 나는 못 들었네.
― 섬서에 있는 유명한 무문은 종남뿐이지 않나요?
현에는 화산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홍령은 납득할 수 없어 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정보라는 건 원래 그토록 차별적이다. 전생의 21세기야 다들 인터넷으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곳 중원 무림은 다르다. 신문은커녕 다른 동네의 소문은 오고 가는 인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게다가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관심 있는 거 외에는 잘 모르는 게 정상이다.
전생에 대우그룹이라는 큰 그룹사가 있었다. S사나 H사에 못지않을 정도로 큰 규모였고 돈 좀 만진다 하는 중공업, 자동차, 전자, 증권회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 곳이 1999년 부도가 났고, 내가 사회인이 된 시점엔 계열사가 스무 개가 넘던 거대공룡은 글로벌 계열사에게 매각되어 자동차회사 하나에 겨우 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내가 죽기 전 내 또래들은 대부분 그 이름을 몰랐다. 나도 관련한 일이 아니었다면 거의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름 정도는 알아도 그 정도 규모를 가진 곳인 건 몰랐겠지.
IMF는 알아도 IMF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알아도 리먼 브라더스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미국의 연준, 연방준비 은행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건 알지만 한국은행과 달리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인 걸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결국 무림인이거나 무림과 연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화산파가 멸문한 게 내가 태어나기 전의 얘기라고 하니 최소 이십 년 전의 얘기. 어지간히 나이가 있지 않고선 2020년대에 대우그룹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했다.
[괜찮아요. 앞으로 알아 가면 되니까요.]
홍령이 다시 기운차게 말했다.
“좋아, 문을 열어볼까?”
어느새 의원들에게 얘기한 반 시진이 지났다. 벌써 내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났는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킥킥, 홍령이 가볍게 웃었다. 간만에 환자를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가?
문을 열자―
“금 의원님! 어서 오세요!”
“자네가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다네!”
“늦었잖아! 그래도 와줬으니까 당과는 안 돌려받을게!”
―마을 사람들이 와 있었다.
[눈치챘어요? 한 명도 빠진 사람이 없어요.]
홍령의 말대로 한 명도 빠짐없이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무릎이 아파 거동을 하기 힘든 노인부터 하루 종일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게 일이라 밥 먹으라 불러도 오지 않는 어린아이까지.
모두, 돌아온 나를 보러 왔다.